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25화 (674/1,000)

00725  80. 1601년 순행  =========================================================================

다음 날 새인천에 도착했다. 시청 앞에 시커멓게 그을리거나 무너진 건물이 몇 채 있어서 물어봤더니 지진과 그로 인한 화재 때문이라고 시장이 보고했다.

“거의 일본 수준으로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새원산처럼 높은 건물을 세워 원주민들에게 고산국의 위엄을 보이길 바랐습니다만, 잦은 지진 때문에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암석 기반에 기둥을 단단히 박아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오.”

건축용 쇠기둥이 암석을 뚫고 들어가다가 석유가 쏟아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곤란했다. 지반이 침하될까봐 지하수 개발을 가급적 금하고 도시 전체에 수도관을 매설했는데 걸핏하면 지진이 나서 수돗물 누수가 심했다.

새인천은 입지와 기후가 모두 좋고 땅도 넓어서 앞으로 대도시가 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고산국 본토에서 북미로 향하는 이주민들이 처음 도착하는 관문 역할도 맡았다.

그러나 새인천에는 수시로 지진이 일어나서 항상 불안했다. 그래서 일이 많은 새원산처럼 거의 총독급 시장을 임명해 새인천을 다스리도록 했다.

“북미 서해안에서 유일한 산업도시라서 젊은이들이 많이 이주해 옵니다만,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기에는 적합한 도시가 아닙니다.”

“아직 초반이라서 그렇지 조만간 익숙해질 것이오. 집을 건축할 때부터 지진에 잘 대비하면 두려워 할 필요는 없소.”

새인천 전체를 차라리 농경지대로 만들어버릴까 하다가, 북미 서해안에 이만한 도시 입지가 드물어서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현대에 대도시로 성장한 로스앤젤레스를 아는 이민호는 새인천을 차마 농경지대로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주변 원주민들뿐만 아니라 국경 너머 원주민들도 일하러 찾아옵니다. 신 에스파냐 부왕령에서 자꾸 항의하는데, 사실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외교 문제가 안 생기도록 잘 잡아떼시오.”

새인천 주변 다른 부족으로 위장해 방직공장에 취직하거나, 아예 대놓고 넘어와서 봄가을 사이에 농업 노동자로 취업했다가 추수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원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현대 미국이라면 국경선에 철책을 치고 불법이주민으로 규정해 추방하겠지만 새인천에서는 가급적 원주민들을 가족 단위로 정착시키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멕시코 쪽에서도 국경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했다. 특히 옛날부터 계절에 따라 국경을 넘어 다니며 생활하던 원주민들에게 국경은 의미 없는 가상의 선에 불과했다. 그리고 목화밭이나 대규모 과수원을 경영하는 고산국 농민들은 원주민 임금 노동자들이 계절에 따라 유입을 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기계 영농에도 한계가 있는데 농민들은 땅 욕심이 끝이 없습니다. 특히 목화밭과 과수원 면적을 너무 넓게 잡은 것 같습니다.”

“농업자본가가 육성된다면 일단 좋은 일이오. 나중에 산업자본가로 전환하길 기대합시다. 다음부터 농지면적을 적당히 줄이시오.”

아이누 섬처럼 토지이용형 농업을 하라고 농부들에게 넓은 땅을 맡겼더니 계절형 이주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해 생산성을 대폭 높인 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면화는 면직공업용으로 수요가 있었지만 과일은 가격 폭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자칫 본토의 과수 농가까지 피해를 끼칠 판이라 수출을 통제하고 있었다.

조선 기준으로 만석꾼이 새인천에만 수십 명이 넘었다. 농지가 주변으로 확장되면서 만석꾼이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만큼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 아무리 영농이 기계화되고 심지어 비행기를 동원해 파종한다 해도 만석지기는 결코 농가 하나로 감당할 면적이 아니었다.

그리고 최 선생이 새인천의 교육 현황을 살피다가 에스파냐 선교사들이 건설한 미션, 즉 전도소와 정면충돌했다. 전도소를 운영하는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들은 원주민과 학생들을 전도소에 속한 주민으로 규정하면서 버티려 했다.

그러나 최 선생이 학교 시설과 교육과목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단호하게 원주민 학생들을 일반 학교로 전학시켜버렸다. 영주와 영지민 관계 비슷하게 신분이 유지됐던 원주민들도 시청의 직접 통제 방식으로 변경시켰다. 대신 이민호가 중재에 나서서 전도소를 천주교회로 전환시켜주기로 약속했다.

“전도는 신을 섬기는 성직자들에게 성스러운 사역 의무의 하나입니다. 권력자가 종교를 이렇게 핍박할 수는 없습니다. 흑흑!”

“전도소는 일반 행정력이 미치지 않고 원주민들만 거주하는 오지에 세우는 것이 원칙 아니오? 새인천은 이미 도시로 커졌으니 전도소가 아닌 교회가 필요하오. 전도소를 교회로 발전시킨다면 전도소와 선교사들은 소임을 다한 것이오.”

“원주민들의 교화를 위해 힘써 온 저희들을 이제 필요 없다고 쫓아내겠다는 뜻이군요. 섭섭합니다, 폐하.”

“아니요. 그대들이 새로 지은 교회에 남아서 사역 임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교황청에 특별히 요청하겠소.”

전도소가 교회로 발전하면 그것은 경사로운 일이었다. 또한 선교사들이 소명을 완수한 것으로 인정됐다.

신부 자격을 가지거나 일부 신부 자격이 없는 선교사들도 지식인이나 기술인으로 교육받은 인재들이었다. 이들이 새인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해서 새인천에 정착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종교 색채가 들어간 대학교와 소속 단과대학으로서 신학대학을 창립했다. 전도소가 종합대학교로 발전한 첫 사례였고 동부에도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슬람 성전은 기본적으로 교육적인 기능을 가지므로 이리의 대 모스크에도 이슬람 색채의 종합대학교를 건립하기로 했다.

다음 날 저녁에는 새목포에 입항해 별궁에서 묵었다. 악어가 꾸준히 정원의 연못에 침범해서 현재 일곱 마리가 잡혀서 벽에 매달렸다.

“악어가 굉장히 크고 사납게 생겼어요.”

“저건 다 커도 3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종류라오.”

“호주 장영실 항에 산다는 7~8미터짜리 바다악어는 얼마나 큰지 상상이 안 돼요.”

그러나 교과서에 숫자와 문자로 기록된 내용을 읽어도 실감할 수 있는 학생은 몹시 적었다. 실제 악어를 눈앞에 직접 보여줘야 제대로 된 교육이라 할 수 있었다.

“동물원을 늘리는 것은 좀 그래요. 바다악어를 박제로 만들어서 학교마다, 아니, 도시 박물관마다 전시하면 어떻겠어요?”

“그것도 괜찮겠소. 악어가죽을 얻으려 장영실 항에서 대량 사육하고 있으니 바다악어가 멸종할 위험은 없을 것이오.”

“악어가죽이 아깝긴 하지만 학생들 교재로 필요하겠어요. 악어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이는 효과도 있을 거여요.”

고산국 학생들은 훌륭한 교육행정가를 만난 것 같았다. 교과서 그림만으로 인식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실물을 학생들 눈앞에 들이댔다.

작년에는 환경에 대한 동물의 적응력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통통하게 진화한 북극 여우와 털이 짧고 귀가 큰 사막 여우가 같은 마차에 실려 학교마다 돌아다녔다. 재작년에는 북극곰과 바다코끼리들이 철창에 갇혀 학교마다 돌아다니는 수난을 당했다.

순행 함대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때마다 에스파냐 관리들이 최고의 예우를 했다. 에스파냐 국왕 펠리페 3세가 이민호를 친구로 인정한 외에도 에스파냐가 중남미 식민지를 유지하는데 고산국이 도움을 많이 준 때문이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 에스파냐의 중남미 식민지는 유럽 여러 나라 해적들에게 수시로 공격을 당했었다. 에스파냐는 재정적인 부담에도 불구하고 카리브 해 연안에 병력과 군함을 꽤 많이 배치해야 했고, 그럼에도 보물선이나 상선은 물론 군함과 요새, 심지어 도시까지 해적들에게 약탈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카리브 해에 해적선이 나타나면 일단 고산국 대서양 함대부터 불렀다. 고산국 해군과 충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유럽 국가들은 사략선들을 대서양 동쪽으로 퇴각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양에서 군함들에게 호위를 받는 보물선단을 약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만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 외에 교역 확대로 인한 경제적인 도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산국의 전체 교역량 중에서 일정한 비율을 에스파냐 몫으로 판매해줌으로써 에스파냐가 프랑스나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 대한 교역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해줬다. 페루 지역의 구아노는 현 추세가 유지된다면 5백년은 채취할 수 있었다.

“에스파냐 관리들은 항상 정중한 것 같아요.”

“에스파냐가 모든 나라에 정중한 것은 절대 아니오.”

물론 최 선생이 오해한 것은 아니었다. 에스파냐는 걸핏하면 다른 나라에 전쟁을 걸고 교황을 압박해 잉글랜드 국왕의 이혼 문제에 개입했던 국가였고, 역사 교과서에 이런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실렸다. 그런 에스파냐 입장에서도 고산국은 충분히 존중을 받을 만한 국가였다.

“유럽 현대사는 너무 복잡하게 얽혔어요.”

“복잡한데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만 가르치기도 어렵소. 현실이니까 말이오.”

“맞아요. 작은 장사를 시작할 때도, 공장을 세울 때도 유럽과 아시아의 현재를 알아야 해요.”

고산국은 이미 국제화시대에 접어들었다. 고산국 영역 안에서 고민해봤자 어째서 농산물 가격이 싸게 유지되는지, 왜 인건비가 비싼지 절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순행 함대 함선들이 차례로 파나마 운하를 넘어 대서양에 진입했다. 카리브 해와 콜론 항은 예전과 달리 몹시 평화로웠다. 항구에 갑옷을 입고 경계하는 병사들 대신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러나 남미 대륙 북동부 기니 늪지대 쪽에서 몇 년 전부터 영토 분쟁이 생겼다. 포르투갈이 브라질 지역을 집중 개발하면서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한 지역에 프랑스와 네덜란드, 잉글랜드 등이 침을 흘렸다. 서 아프리카에서 가깝고 대서양 항로가 지나는 지역이라 조만간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9월 하순 순행 함대가 북미 동해안 새강릉의 행궁에 도착했다. 북미 여공작 비올레타와 아이슬란드 여왕 헤드비히가 기다리고 있다가 이민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예상보다 빨리 와주셨군요. 보고했듯이 아일랜드에서 피난민 수만 명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어요. 여객선 두 척 외에도 어선이나 상선을 타고 온 사람들도 많아요.”

“패전의 여파가 심각하구려.”

“아일랜드 독립군이 전령을 보내서 시청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전령으로 대우하고 있지만 독립군이 와해된 지금은 자칭 대장이라고 해요.”

1601년에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독립전쟁은 에스파냐가 병력을 지원해줬으나 잉글랜드 군에게 크게 패하고 말았다. 에스파냐 군이 아일랜드 남부에 상륙하고 아일랜드 독립군과 합류하기 전에 잉글랜드 군이 각개 격파에 성공했다.

지금은 전쟁이 일단락되고 포로송환 협상이 진행 중이라 에스파냐가 아일랜드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 반란을 지도한 북 아일랜드의 영주들은 체포돼 런던탑에 수감됐고, 거기서 죽을 것으로 예상됐다.

고산국은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뒤에서 지원하긴 했으나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잉글랜드에서는 의심하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매우 섭섭하게 여겼다. 돈 주고 뺨 맞는 그런 식이었으나, 고산국 입장에서는 아일랜드 독립전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애매한 탓이었다.

“폐하! 저희들에게 무기와 자금, 그리고 식량을 지원해주십시오.”

“마치 맡겨놓은 듯이 말하는구나. 머스킷을 2만 정이나 지원해줬는데 쓸모가 없었느냐?”

행궁에 출두한 아일랜드 독립군 전령은 귀족이나 부족장의 아들인 듯했다. 아일랜드가 약소국이라 하나 귀족들의 당당하다 못해 뻔뻔한 태도는 어딜 가나 비슷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북미로 많이 이주했지 않습니까? 당연히 북미의 주인이신 폐하께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북미로 이주한 것에 대한 보상을 너에게 달라는 말이냐? 아일랜드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을 했을 뿐이다. 예전에도 마찬가지겠지만 북미에 온 아일랜드인들은 더 이상 너의 노예가 아니다.”

“제 영지의 주민이 별로 없긴 하지만, 그들은 아일랜드의 농민입니다. 이번 전쟁이 성공했다면 제가 다스렸어야 할 농민들도 있습니다.”

이민호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화를 내기보다는 지금 당장 아일랜드가 잉글랜드에 통째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했다. 그래도 인간적으로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네가 북 아일랜드 영주의 아들이라고? 그래서 당연히 아일랜드 독립군의 수장이 될 자격이 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무지렁이 농민에게 대장을 맡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번 일이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전쟁이 아니라 영주들의 영지전으로 호도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어차피 농민들은 귀족들이 결정한 일에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영주의 아들이 한 말이 이 시대 기준으로 보면 크게 틀린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은 병력, 즉 참가자 부족으로 인해 또 다시 실패할 것 같았다.

“농민들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야 하는데 영주의 아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공감할 사람들이 적을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면 농민에게 이러저러한 이익이 생긴다고 선전해서 참가자를 늘려야 하지 않느냐?”

“어차피 농민들은 절대 농민을 대표자로 내세우지 못합니다. 대장이 농민으로 알려지면 도둑떼로 오인된다는 사실을 농민들이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쟁에 이기더라도 이익을 절대로 농민들에게 나눠주지 않겠다고? 어휴! 알았다. 자금 지원은 해주마. 무기 지원은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에스파냐에서 받도록 해라.”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마 아일랜드인들이 학살당하거나 굶어죽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역사가 비판할 것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잉글랜드하고 결탁해서 아일랜드를 정복하도록 내버려두고 아일랜드인들을 북미로 추방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잉글랜드에서 이민호에게 몰래 서신을 보내 그런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일랜드가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수백 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해서 결국 독립을 쟁취하고야 만다. 지금 당장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일랜드인 전체를 북미로 이주시킬 수는 없었다.

“폐하! 머스킷보다는 단발총이란 것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고산국 주력이 사용하는 연발총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무기 아닙니까?”

“단발총은 다른 나라에 주지 못한다. 속국이나 협력 부족들도 머스킷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잉글랜드가 아일랜드를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북 아일랜드와 더블린에 대한 잉글랜드의 지배가 강화되고 아일랜드 농민들은 또 다시 서부 황무지로 밀려나게 돼 있었다. 황무지에서 굶어죽을 사람들이 대거 동유럽으로 이주했고, 잉글랜드 왕실과 특허 회사들이 소유했던 북미 동해안으로 이주한 숫자는 적은 편이었다.

============================ 작품 후기 ============================

아일랜드 문제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역사와 달라지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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