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28화 (677/1,000)

00728  80. 1601년 순행  =========================================================================

“북미의 토지 면적은 본토의 몇 십 배나 되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거여요. 그래서 복합비료가 태평양을 왕복하는 배의 운송량 중 2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요.”

“문제긴 하오, 비올레타.”

“그래도 전하께서는 비료 공장을 북미에 안 세우실 거죠?”

같은 밭에서 농작물을 연작하다 보니 재배에 필요한 영양분을 전적으로 토양에만 의지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조선에서 농민들이 만들었던 퇴비를 생산하려 해도 북미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하고 가축 배설물을 구하기 어려워 필요한 만큼 생산하지 못했다.

그래서 북미 농민들은 인산염과 유기질 비료 외에 요소 비료를 포함한 복합비료를 사서 작물과 토양에 따라 다른 비율로 뿌리고 있었다. 인산염은 구아노라는 이름으로 페루나 남태평양의 섬에서 수입한 것을, 유기질 비료로는 깻묵이나 어분, 골분 등을 시청 농업과를 통해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잎의 생장을 촉진시키는 질소 비료는 요소 형태로서 오직 고산국 본토에서만 생산했고, 생산법과 원료 등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 있었다. 또한 요소 비료는 가격도 가장 비쌌다. 그래도 요소 비료를 경작지에 시비하면 확실한 수확량을 보장하기에 농민들은 요소 비료, 혹은 인산과 칼륨이 포함된 복합 비료를 구입해서 사용했다.

“비료 공장은 여러 의미에서 위험하기 때문이오.”

요소 비료 생산 공장은 암모니아 합성 과정 때문에 일부 공정이 비밀로 분류됐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은 고산국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으나 본토 밖으로 여행이 금지 당했다. 외국인과 만나는 것도 금지됐다.

“혹시 화약과 비교하면 어때요?”

“제조법이 공개될 경우 그 파장은 거의 무연 화약 수준이오.”

무연 화약을 언급하자 비올레타가 화들짝 놀랐다. 이민호 외에는 오직 혜영과 혜진만 무역 화약 제조의 전체 공정을 파악하고 있는 비밀 중의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네. 다시는 비료 공장을 북미에 지어달라고 요청하지 않을게요.”

“필요하다면 비료 가격을 낮추겠소. 비올레타가 내게 애교를 떨어보시오.”

“아니에요. 지금도 농민들은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하지 못하며 살고 있어요. 그러니 가격을 낮출 필요가 전혀 없어요. 그리고 전하를 위해서라면 애교는 언제든 피울 수 있어요.”

이민호가 비올레타와 눈을 맞추고 있는데 최 선생이 헛기침을 했다. 국왕의 순행 일정은 빽빽이 짜여진 편이었다.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땅콩과 깨를 버무린 버섯두부구이라. 아주 괜찮소.”

“황공하옵니다, 전하.”

새강릉의 항구 가까운 곳에 지어진 절 낙산사는 선원과 어부들이 항해의 안전을 빌러 자주 찾는 곳이었다. 이 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거대한 약사대불도, 금동불도 아닌 두부 요리였다.

이민호는 비올레타, 헤드비히, 최 선생과 함께 대웅전 아래 식당의 별실에서 순두부와 두부구이, 산채나물 비빔밥 등이 어우러진 절밥을 먹었다. 순 식물성 재료만으로 이 정도로 맛있게 요리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재주였다.

“전하께서 법명이 높은 서산대사의 제자 대신 저를 새강릉에 부르신 것은 혹시 이 두부 때문이었습니까?”

“겸사겸사 주지스님이 낫겠다 싶었소.”

임진왜란 때 승병에 참가한 스님들 중에서 살계를 저지른, 즉 왜병을 하나라도 죽인 스님들은 서산대사와 조선 조정에서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파계승을 자처했다. 그렇다고 제대로 환속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 절에서 그대로 생활하면서 머리만 길렀다.

절에 남은 환속승들은 제대로 구도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의 허드렛일이나 농사 등 각종 노동을 도맡아 일했다. 사실 스님으로서의 인생이 파탄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작은 절이나 암자에서 환속승 여러 사람을 부양하기 어려웠다. 이런 문제를 파악한 이민호는 몇몇 스님과 승병 출신 환속승들에게 북미로 이주하길 권했다. 중생들이 고생하는 개척지에 스님들이 함께 고생하며 위로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사탕발림으로 꼬드겼다.

북미에 온 스님들에게 절을 관리하고 환속승들은 절에 부속된 음식점을 운영하도록 했다. 절 음식은 순 식물성으로서 산채비빔밥과 두부, 그리고 간장이 전부였다. 그러나 맛이 무척 뛰어나서 사찰 부속 식당에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절에 돈 받고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뇨. 절에서 고성방가하면서 두부와 고기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조선의 양반님네들을 맞이하는 것과 다른 점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다들 돈을 내고 사먹지 않소? 그 점이 명백히 다르오. 시주, 아니 손님들이 다들 기뻐한다면 좋은 일이오.”

“저는 음식점 주인이나 상인이 아니라 중입니다, 전하. 불교 탄압입니다!”

낙산사 주지는 비 맞은 중처럼 쉴 새 없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에도 교회의 자립을 빙자해 수도원처럼 각종 부업을 시키고 있었다.

고산국에서는 신부가 화덕에서 피자를 굽고 목사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을 신도들이 더 이상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신도들이 먹고 나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해서 더 좋은 상품이 개발되기도 했다.

“스님은 새강릉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두부가게 주인이기도 하오. 혹시 마차를 타고 산 너머까지 두부 배달은 안 하시오? 내리막길이 아주 가파르던데 말이오.”

“배달은 안 하고 식당 주인들이 와서 사갑니다. 구도랍시고 허송세월 보내는 저 같은 땡중에게 돈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요즘 환속승들 생활에 문제는 없는 것 같고, 남는 돈은 불쌍한 사람을 찾아서 돕기라도 할 수 있잖소.”

“고산국에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돈을 쓸 곳을 찾지 못해 천주교회 구호기금에 매달 기부하고 있습니다.”

마침 천주교회에서 절로 배달해준 피자 포장을 풀었다. 북미가 개척되고 토마토를 마음껏 쓰게 되면서 피자의 품질도 많이 올라갔다.

“잘했소. 중남미의 가난한 원주민들을 돕는 기금이라고 들었소. 여기 피자 한 조각 들어보시오.”

“피자에 얹힌 치즈는 낙농업제품입니다만, 뭐, 부처님도 우유 시주는 받으셨으니까요. 맛있습니다.”

사정이 어려운 조선의 몇몇 사찰에도 주지가 매년 일정 금액을 보내는 것으로 이민호는 알고 있었다. 종교기관에서 신도들에게 시주나 기부를 안 받게 되면서 더욱 건실한 종교생활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언어학 교수님들이 알곤킨 어족에 이어 이로쿼이 어족도 드디어 표기법을 완성했어요.”

“분명 한글인데 뭔 놈의 기호가 이리도 많이 붙었소?”

최 선생이 보여준 원주민들의 문자는 한글과 비슷했으나 한글이라 할 수 없었다. 조선말에 없는 음가는 비슷한 음소에 각종 부호를 붙여 발음하는 것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서여요. 비슷하게 들려도 사실은 다 달라요. 가가라고 발음할 때 앞의 가와 뒤의 가는 소리 값이 다른데도 한글에서는 같이 표기하거든요.”

조선말에서 무성음과 유성음은 단어에서의 위치에 따라 결정되나 그렇지 않은 언어가 더 많았다. 북미 원주민들의 언어는 표준화하기도 어렵고 부족마다 매우 달라 같은 어족으로 묶였어도 통역이 없으면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알곤킨 어족에는 중앙 알곤킨, 동부 알곤킨, 평원 알곤킨으로 분류되고 부족 언어마다 기본 단어조차 다 달라서 공통점을 찾기가 더욱 어려웠다. 다만 문법이 기본적으로 포합어라서 함께 묶인 것뿐이었다.

“용케도 한글로 표기했구려.”

“보통 그 언어 구사자보다 오히려 외국인이 소리를 더 잘 구분해요. 에스파냐와 이탈리아 교수들이 표기체계를 잘 만들었어요.”

북미 원주민들은 주로 한글에서 비롯된 문자를 만들어서 사용했다. 그러나 모리스코인들은 스페인어를 아랍문자로 기록했다가 북미에 이주한 다음 다시 알파벳으로 돌아왔다. 모리스코인들은 이슬람교를 믿더라도 명백히 스페인어 사용자들이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알파벳으로 게일어 표준 표기법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지역마다 많이 달라서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원주민 부족마다 고유 문자를 만드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원주민들도 문자가 표기하기에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하면 그냥 한글로 비슷하게 표기하고 말거든요.”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오. 부족의 전통 문화 중에서 언어가 가장 중요한 요소요. 문자가 생기면 부족 언어가 사어가 되는 것을 최대한 늦출 것이오.”

“장기적으로 원주민 언어가 조선말에 흡수될 것으로 예상하시는군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요. 표기법이 생기면 부족마다 고유어가 가급적 오래 유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소. 언어 정책도 동화보다는 고유어 살리기에 주력하시오.”

“저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어명을 받들게요, 전하.”

북미 원주민들은 조선말을 빠르게 배웠다. 고산국이 북미에 오기 전에도 두세 언어는 기본적으로 구사하던 원주민들이라 통역 언어로서 조선말은 생존에 유용한 언어의 위치에 올랐다.

이로써 처음 만난 부족끼리도 조선말로 의사가 잘 통하게 됐다. 그 전에는 중간에 통역 서너 명씩 세우고도 제대로 의사소통을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마치 제주도 사람들이 가족 혹은 이웃과는 제주도 사투리로, 모르는 사람끼리, 혹은 사회생활에서는 표준말로 대화하는 것과 비슷했다.

“전하! 보름 전부터 와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찾아왔습니다.”

“유럽 여행은 잘 했나?”

포우하탄 부족연맹의 대추장 와훈수나콕이 여객선에서 내리자마자 행궁에 찾아왔다. 와훈수나콕은 여행 선물 대신 딸 포카혼타스를 이민호에게 안겼다. 마치 바보 온달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평강공주처럼 포카혼타스는 이민호의 목을 껴안고 자연스럽게 품에 안겼다.

“아주 잘했습니다. 포카혼타스가 이제 다 커서 시집가도 되겠습니다.”

“아직 여섯 살인가? 적당히 크면 내 자식들과 선을 보게 해주겠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토아카의 배우자는 전하뿐입니다.”

이 문제로 대화해봤자 끝이 없어서 와훈수나콕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대추장은 유럽에 다녀온 일로 꽤나 들떠 있었다. 부인들과 자식들, 그리고 부하들은 집에 바로 보냈다고 한다.

“유럽 여행은 어땠나? 배와 마차를 타고 다니는 게 힘들지 않았어?”

“걷는 것보다는 안 힘들었습니다. 에스파냐와 프랑스를 주로 들렀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말로만 듣던 멕시코인들처럼 좁은 지역에 빽빽이 집을 짓고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작년 말부터 와훈수나콕이 유럽에 여행 가겠다고 비올레타와 헤드비히 여왕을 졸라 귀찮게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민호는 포우하탄에게 유럽 여행을 허가하면서 백작 작위를 내렸다.

그가 지배했던 영토와 백성, 고산국의 지배 영역 확장에 적극 협력했던 공로를 감안하면 적당한 작위였다. 또한 그의 행동에 고산국 귀족으로서 제약을 가하기 위해서 억지로 작위를 내렸다.

와훈수나콕은 부인들과 자식들, 특히 포카혼타스를 데리고 유럽 여행을 떠났다. 실제 역사에서는 버지니아 컴퍼니가 제임스타운 정착지의 성공적인 정착을 선전하기 위해 1616년 포카혼타스에게 영국을 여행시켰다. 북미가 고산국 영토가 됨으로써 여행이 15년이나 빨라진 셈이었으나, 여행지는 영국이 아니라 에스파냐와 프랑스, 덴마크로 바뀌었다.

“자네 유럽에서 웃통 벗고 다녔지? 유럽인들은 여름에 옷을 가볍게 입은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혹시 자네를 미개인 쳐다보듯 하지는 않았나?”

“전혀 아닙니다. 저희 일행을 이상하게 쳐다보다가도 고산국 백작이라고 하니까 바로 고개를 숙여 절을 하더군요. 유럽인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었고 에스파냐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예절을 잘 알았습니다. 그 다음은 덴마크였고, 프랑스는 예절을 모르는 야만인이었습니다. 파리라는 도시의 궁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수문장의 머리에 도끼를 던질 뻔했습니다.”

“아마도 왕궁 같은데, 방문하겠다고 미리 통보를 하지 그랬나?”

고산국이 에스파냐나 덴마크에 가까웠고 프랑스는 동맹이 아니라서 프랑스 사람들이 와훈수나콕에게 홀대한 것 같았다. 그러나 와훈수나콕은 담배농사로 인해 엄청난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대추장이 가진 금괴만으로 작은 집 정도를 지을 수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대추장은 가는 곳마다 금과 은을 뿌려서 프랑스인들에게 호감을 샀다. 고산국 담배상인이 안내하고 추장에게 고용된 본토인 출신 호위들이 지켜줘서 큰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황금으로 장식한 화려한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웃통을 벗고 다니는 신대륙의 귀족을 구경하게 된 프랑스 언론들은 크게 호들갑을 떨었다. 북미 원주민들이 고산국 사람들의 용모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대추장을 원주민이라기보다는 고산국 본토 사람으로 오해한 면도 있었다.

이번 여행으로 인해 고산국 남자는 와훈수나콕처럼 키가 7피트가 넘는 거인족이라고 프랑스에서 오해하게 됐다. 물론 호위나 다른 원주민 전사들은 그렇게 키가 크지 않았으나, 과장하길 좋아하는 언론의 특성상 가장 큰 키가 평균으로 둔갑했다. 프랑스 대사들이 몇 년째 파리에 주재했는데도 소문은 항상 그런 식으로 과장됐다.

“전하! 여행을 통해 저 스스로를 성장시킨 것 같습니다. 세상은 넓습니다. 특히 바다는 아주 지독하게 넓었습니다.”

“여행을 통해 배운 게 있어서 다행이야.”

“그래서 내년에는 고산국 본토로 여행을 갈까 합니다. 허락해주시는 거죠, 전하?”

“그렇게 하게. 국내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되지만 유럽에 갈 때는 반드시 내 허락을 받고 가게. 자넨 고산국의 귀족이니까.”

와훈수나콕이 괜히 잉글랜드나 러시아에 여행 갔다가 붙잡히면 곤란했다. 그리고 지독하게 넓다는 대서양보다 더 넓은 태평양을 건너게 된 대추장에게 마음속으로 애도했다.

============================ 작품 후기 ============================

이것으로 순행 끝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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