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49화 (698/1,000)

00749  84. 1605년 루스 동란  =========================================================================

“이반 4세를 그리워하는 멍청이들이 많은 만큼 가짜 드미트리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입니다.”

“차라리 아예 이반 4세를 사칭하지 말이오. 살아 있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소만.”

이반 4세는 1530년에 태어나 1584년에 죽었다. 폭군이 사라진 지 20년이 지났으나 아직 얼굴을 알아볼 사람이 많아 사칭하기 어려웠다. 어렸을 때 암살당해 알아볼 사람이 드문 드미트리를 사칭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바실리 3세의 아들 이반 4세는 세 살에 모스크바 대공으로 즉위했으나 궁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모략과 암투, 골육상쟁을 지켜봤다. 섭정을 맡았던 어머니 글린스카야는 삼촌들을 처형하면서까지 대공위를 지키려다가 이반 4세가 겨우 8살에 독살 당했다. 이후 동생 유리와 함께 누더기를 걸치고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며, 보야르들에게 심심풀이로 고문을 당하는 생활을 버텨냈다.

16세에 왕관을 쓴 이반 4세가 본격적인 친정에 나서며 보야르들을 혹독하게 탄압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그는 러시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스트렐치를 비롯한 상비군을 조직하고 최초의 3계급 신분제 의회인 젬스키 소보르를 소집했다. 카잔한국과 아스트라한한국을 정복하고 시비르한국의 수도를 점령해 정복을 눈앞에 두는 등 내정과 외치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반 4세는 노년에 접어들수록 광기를 발산했다. 의심병이 도져서 도시를 포위해 학살하고, 임신한 며느리를 매질하다가 유산시켜 이에 항의하는 황태자를 부지깽이로 때려죽인 것으로 미루어 미친 인간이 확실했다. 이반 4세는 사흘 동안 울다가 차르에서 퇴임한 다음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죽어서 인간적인 면모가 조금 남아 있었다.

“고산국 국왕전하! 차라리 드미트리 왕자의 시신을 대중에 공개하거나 아예 성인으로 시성을 하는 게 어떻습니까? 드미트리 왕자가 확실히 죽었다는 사실을 대중들에게 납득시키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것도 방법이겠소. 황태자는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의견입니다. 바실리 공이 총대주교하고 협의해서 정해주시오. 드미트리 왕자의 신앙심이 견고했다는 증거를 확실히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황태자 표도르는 보리스 고두노프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미 합법적인 후계자인 차르로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정식 대관식을 열지 못해 지위가 몹시 불안정했다. 이민호는 표도르가 차르로서 대관식을 올리고 안정될 때까지 확실히 밀어줄 작정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대가는 비싼 편이었다. 고산국 입장에서는 시베리아 철도를 발트 해까지 연장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마침 폴란드-리투아니아가 루스 차르국에 적대적이어서, 이 관계를 최대한 이용해 자연스럽게 루스 차르국의 병력을 이용해 유럽 문제에 개입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루스인들을 가급적 오랫동안 고산국의 영향력 아래에 묶어두려고 획책했다.

“전하. 루스 병사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응? 황태자의 목을 따겠다고 몰려오는 놈들이 뭐가 예쁘다고 자비를 베풀라는 것인가?”

“병사들도 루스인들입니다. 그리고 병사들이 원해서 반란군에 가담했겠습니까?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 지휘관들이 그런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찬탈자에게 가담한 병사들이 이번에 고산국 병력이 모스크바에 입성했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혼란에 빠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겠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루스인 전사자들이 많이 나올 수도 있다. 다만 황태자가 내게 루스 병사들을 자비롭게 다뤄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인정하겠다.”

“전쟁 중이니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루스 군대의 총지휘권을 전하께 맡기겠습니다.”

“고맙다. 며칠만 쓰고 돌려주겠다.”

차르가 직접 지휘하는 병력의 절반 이상이 서쪽 국경에 배치돼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가짜 드미트리에게 투항하는 바람에 모스크바와 크렘린을 지키는 스트렐치와 모자이스크를 방어하는 2만의 군세 말고는 지휘할 병력이 없었다. 모스크바 주변에서 병력을 동원해야 할 보야르들은 추세를 관망하느라 병력을 소집만 해놓고 보내주지 않았다.

고산국 병력이 진주한 직후부터 모스크바의 분위기는 차분히 가라앉았다. 시민들은 수도에 진주한 외국군에 대해 당연히 적대감을 가졌으나, 3년 동안 루스인들을 먹여 살린 나라가 고산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몹시 혼란스러워 했다.

또한 모스크바 시민들에게는 옛날 몽골군이 모스크바 대공국을 유린하고 모스크바 시민들을 학살했던 기억이 강렬히 자리 잡고 있었다. 몽골군과 비슷하게 생긴 고산국, 구르카, 토르구트를 분명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반 주민들이 공포와 분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동안 보리스 고두노프에게 적대감을 가졌던 보야르들은 그 동안 준비하고 있던 반란 모의에서 얼른 손을 떼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대세를 관망하는 기회주의적인 보야르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내일 오전에 주력을 이끌고 출전할 것이오. 황태자와 바실리 슈이스키 공은 반역할 가능성이 있는 보야르들의 목록을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작성해 놓으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만,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유서 깊은 보야르 가문들이 있습니다만.”

“로마노프든 고리친이든, 아니면 슈이스키 당신의 가문이든 모든 것을 이번 사태에서 차르를 지지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구분하시오.”

바실리 슈이스키는 이민호가 자기 가문을 직접 언급하자 움찔했다. 류리크 왕조의 후손이며 실제 역사에서 바실리 4세로서 차르가 되는 인물이었지만 지금은 황태자와 가짜 드미트리에 더해 고산국 눈치를 살펴야 하는 보야르에 불과했다.

“전하! 저도 전쟁에 나서고 싶습니다.”

“그건 부인에 대한 모욕일 것 같은데?”

“헤헤! 동감합니다.”

덴마크의 요한 왕자가 참전하고 싶다기에 단박에 거부했다. 크세니아 핑계를 대긴 했지만 이민호는 요한 왕자를 위험에 노출시킴으로써 괜히 덴마크 왕실로부터 욕을 먹고 싶지 않았다.

만에 하나 루스 차르국의 동란이 길어진다면 덴마크에 군대를 요청할 계획이었다. 그러니 요한 왕자는 훌륭한 인질이었다.

“황태자! 차르가 안치된 곳으로 안내해주게. 마지막 인사라도 나눠야지.”

“예. 성당 지하에 안치했습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민호는 호위들만 데리고 황태자 표도르를 따라갔다. 관에 안치된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는 의외로 평안히 잠들어 있었다. 성당 지하에서 잠시 묵념을 하고 어색하게나마 기도를 올리고 나니 씁쓸해졌다.

이민호는 고산국 출신으로서 보리스 고두노프의 주치의가 된 30대 중반의 의사를 불러서 만났다. 이 자리에는 호위들 외에는 황태자 표도르만 참석했다.

“혹시 독살 당한 흔적은 없었나?”

“몇 가지 검사를 마쳤으나 독살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차르는 혈관계 질환 말고도 갖가지 지병을 달고 사셨습니다. 언제 승하하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번에 무리를 하셨습니다. 제가 친정을 극력 반대했으나 차르께서는 어쩔 수 없다면서 나섰습니다.”

어의가 했던 가장 잘한 일은 차르의 시신을 크렘린까지 모셔온 일이었다. 중간에 호위병들이 대거 탈영하고 심지어 차르의 왕관과 보물을 약탈하려던 자들도 있었으나 어의는 의사로서 임무를 다했다.

크렘린에 도착한 순간 차르의 시신을 실은 마차 주변에는 쿠만 호위병 단 2기만 남았다. 칩차크한국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쿠만인을 루스 차르국에서는 폴로프치라고 불렀다.

“어쩔 수 없었겠지. 수고했네. 다음 차르를 잘 모시게.”

이반 4세의 아들을 참칭해 차르의 상속권을 주장한 반란이라서, 배반 가능성이 높아진 보야르들을 쉽게 믿고 군세를 맡길 수 없게 됐다. 보야르들은 가짜 드미트리를 믿지 않으면서도 이 기회를 활용할 생각에 몰두했다.

결국 차르가 친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어의를 내보내고 나서 표도르와 처음으로 단독으로 마주했다.

“표도르 황태자. 서쪽 모자이스크는 누가 지키고 있지?”

모스크바 서쪽 110km에 위치한 작은 읍 모자이스크는 스몰렌스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하며, 전통적으로 모스크바의 서쪽 외곽 방어선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재위 중인 모스크바 대공의 남동생이 영주를 맡는 관습이 1493년까지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도 단일 전투로서는 최대 규모인 보로디노 전투가 모자이스크 서쪽 12km에 위치한 마을에서 벌어졌다. 1562년 덴마크와 벌인 리보니아 전쟁을 끝내는 조약을 체결한 곳이기도 했다. 숲과 평원이 뒤섞인 평지에 북쪽으로 모스크바 강이 흐르고 남쪽으로 긴 언덕이 있어서 평원에서 방어 거점으로 삼을 몇 안 되는 지형이 모자이스크에 있었다.

러시아어에 ‘모자이 너머로’라는 관용구가 있다. 모스크바로 진군하던 적군을 모자이스크 서쪽으로 완전히 물리치거나, 사람을 멀리 추방한다는 표현에 주로 사용됐다. 조선시대 한성의 남쪽 과천처럼, 수도 모스크바의 서쪽 관문도시로 보면 된다.

모자이스크 서쪽 스몰렌스크는 리투아니아 영토와 가까운 서부 국경지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1602년에 보리스 고두노프가 기근 중에 식량을 나눠줄 목적으로 농민들을 대거 동원해 성벽을 강화하는 공사를 했었다. 그러나 아깝게도 스몰렌스크 수비대는 드미트리가 이끄는 반란군에게 쉽게 넘어가버렸다.

“전하께서 명하신 대로 가짜 드미트리의 군세가 지나칠 곳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새에 지난번 1월의 전투에서 승리한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지휘관은 그때 승리를 이끈 표도르 므스티슬라브스키입니다.”

“잘했어. 승리한 지휘관은 이전에 패배시켰던 적을 겁내지 않을 거야. 그리고 가짜 드미트리에게 크게 이겼으니 그에게 배반할 수도 없겠지. 성이 참 기네.”

서부 브리얀스크 지방의 도브리니치 마을 근처에서 1605년 1월 21일에 벌어진 전투에서 므스티슬라브스키는 2만, 가짜 드미트리는 2만 3천의 병력을 동원해서 전투를 벌였다. 가짜 드미트리는 폴란드의 대귀족들이 지원한 사병들 외에도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과 예수회 등에서 지원한 자금으로 고용한 용병, 남부 초원에서 달려온 친 폴란드 성향의 자포로제 코사크와 평소 차르에게 불만이 많았던 친 러시아 성향의 돈 코사크, 투항한 루스인 기병대 등으로 이뤄진 대군을 형성했다.

드미트리는 이들을 지휘해 서남부 지역과 쿠르스크를 점령한 다음 북쪽으로 진격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므스티슬라브스키가 지휘하는 루스 군대와 맞붙었다. 이 전투에 강력한 폴란드 후사르 일부가 가담했어도 결과는 전술 운용에 따라 결판났다.

므스티슬라브스키는 독일과 네덜란드인 용병, 러시아 기병대 등으로 구성된 우익을 잘 활용해 적 주력의 공격을 흡수한 다음, 중앙에 배치된 스트렐치 부대들의 화력을 집중해서 적 주력을 물리쳤다. 그러자 가짜 드미트리 군의 우익에서 전투를 구경만 하던 자포로제 코사크들이 가장 먼저 도주하고, 곧이어 전군이 무너졌다.

드미트리 군의 예비대로서 말에서 내린 돈 코사크와 포병대는 완전히 포위돼 전멸할 뻔했고, 8km에 걸친 추격전에서 대다수가 전사했다. 가짜 드미트리는 몸만 빼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리스 고두노프가 친정군을 추가로 이끌고 가다가 병으로 죽는 바람에 전세가 완전히 역전돼 버렸다. 만약 친정군과 함께 차르가 모스크바에 남았었다면 내란은 이미 끝났을지도 몰랐다.

“모음이 세 자밖에 안 되는 짧은 성인데요?”

“어? 그러네?”

“혹시나 므스티슬라브스키가 배반할까봐 전하께서 군을 보내 모스크바를 보호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식으로 전령을 보내 경고했습니다.”

“속셈이 빤히 드러나는군.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으니 수하 장군들을 너무 의심하지 말게.”

그러나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두려울 수도 있었다. 황태자 표도르는 그런 의심을 감추지 않았다.

“로마노프 가문도 그렇지만, 류리크 혈통의 방계인 슈이스키 가문이 더 위험하지 않습니까?”

“로마노프 가문도 마찬가지지만 슈이스키도 위험한 일에 승부를 걸지는 않을 거야. 아무리 야심이 크더라도 용기가 안 받쳐주면 소용이 없어. 일반 보야르도 아니고 공 칭호를 받는 대귀족들은 가진 게 많아서 쉽게 나서지 못해.”

황태자는 겨우 16살이었고, 전쟁이나 궁정 암투에 한창 흥미가 많을 나이였다. 그러나 대관식은 아직 열리지 않았더라도 이미 차르가 됐으니 앞으로 직접 전쟁을 지휘하고 궁정 암투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군주가 모든 사람을 의심한다 해서 잘못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심이 지나치면 일어나지 않을 반란을 일으키는 수도 있었다.

“저도 차르의 지위를 잃을까봐 두렵습니다. 제위에서 내려오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니지만, 어머니와 누님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그래. 차르가 가족의 목숨 줄이야. 꽉 쥐고 놓치지 마.”

“혹시나 이번 일이 여의치 않게 된다면 가족들과 함께 고산국으로 망명해도 괜찮겠습니까?”

“그건 안 돼. 백성을 버린 군주에게 도망갈 길이란 없어. 실패하면 백성들에게 사죄하고 안심시킨다는 의미에서 목을 내놔야 해. 전 왕조의 혈통이 아예 단절돼야 내란이 다시 일어날 우려에 백성들이 시달리지 않을 테니까. 만약 내가 패한다면 나도 이곳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왔어.”

물론 이민호는 고산국 군대가 패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으나, 내란은 변수가 워낙 많은 전쟁이라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었다. 최악의 경우 고산국이 루스인 전체를 노예로 삼을 계획이라는 흑선전이 먹혀든다면 장기간의 전쟁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게 될 수도 있었다.

표도르 황태자가 충격을 받아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나 순진하고 착한 학생답게 황태자가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다짐을 했다.

“군주로서 찬탈자를 상대로 꼭 이기겠습니다. 찬탈자보다 제가 훨씬 많이 배웠고, 백성들을 행복하게 할 고민을 더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물론이야, 나의 동맹 표도르여.”

이민호가 손을 내밀고 표도르가 그 손을 잡았다.

============================ 작품 후기 ============================

내전에 참가한 것은 내용에 나왔듯이 주변국인 러시아에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입니다. 대신 식민지 경영 같은 경제적 착취는 안 하고 상호 이익이 되게 하려 합니다.

다음 내용이 출정입니다. 진짜로 싸우러 떠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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