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50화 (699/1,000)

00750  84. 1605년 루스 동란  =========================================================================

다음 날 오전 합동 기동부대가 모스크바를 떠났다. 장갑차 연대와 2개 기병연대 외에도 토르구트 기병 2만, 노가이한국 기병 1만이 뒤따랐다.

출정하는 날 아침, 어느 쪽에 붙을지 결정을 못 내리고 모스크바 주변에서 얼쩡거리던 보야르들의 병력 중에서 기병만 골라서 2만을 강제로 행군에 합류시켰다. 이 와중에 이민호의 명령을 거부하던 보야르 한 명을 사살하고 나머지 병력을 해산시킨 경우도 있었다. 이민호가 보기에 마치 대한제국 군대해산 장면이 연출되는 것 같았다.

구르카 제1 여단은 모스크바와 크렘린 경비를 위해 남겨두고 2여단에는 모스크바와 모자이스크 사이의 보급로를 지키는 임무를 부여했다. 추가로 소집된 여진 기병도 모스크바 서쪽 보급로 방어에 증원됐다. 모자이스크 수비군 2만을 포함해 진압군이 반란군을 초과하는 수준의 대군으로 불어나면서 엄청난 보급 소요가 생겼다.

사관학교장 김학이 구르카 제1 여단장으로서 모스크바 방어를 총괄했다. 구르카 용병들은 훈련기간에 배운 대로 현지 주민들과의 접촉을 자제하며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사이 기마헌병대가 수시로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용병들의 일탈과 모스크바 주민들의 반란 기도를 사전에 억제했다.

“무한궤도 폭을 더 넓히라니까 말을 안 들어! 뱃멀미도 안 하는 내가 차멀미하게 생겼다.”

“왕도나 튜멘에서 시험할 때보다 훨씬 굴곡이 심해요.”

장갑차를 타고 가던 이민호와 호위대장 민지가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잡고 비명을 질렀다. 봄 내내 길이 진창으로 변해 엉망이었고, 선두에 내세운 기병은 물론 신형 장갑차들도 진창에서 허우적거렸다. 극악한 초원의 봄에 대비해 무한궤도의 폭을 넓혔는데도 아직 충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중간에서 행군하는 기병 여러 부대와 가장 뒤에 따라오는 보급부대 마차들은 상당히 쾌적한 길을 달릴 수 있었다. 장갑차 연대를 후속하는 공병대대가 길에서 물을 빼고 자갈로 채워 넣으면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서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전하! 적의 배치 현황을 새로 파악했습니다.”

“오! 어서 오게.”

참모본부 정보부장이 흙발로 장갑차에 타기 미안한지 군홧발을 털었으나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민호는 지도부터 확인했다.

“모자이스크가 의외로 잘 버티고 있군. 아직 전투가 없었겠지만. 반란군 중에서 폴란드 군의 정확한 위치도 파악됐나?”

“그렇습니다. 먼저 루스 군의 패배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모자이스크 남서쪽 40km 지점에서 격전이 벌어졌는데 루스 군이 완패했습니다.”

“쳇! 새로운 차르에게 충성하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내 통제를 거부하는 부대들이 있어. 제멋대로야.”

참모본부 정보부장은 고산국 정찰대와 루스군 전령들을 통합 운영해서 전장의 정보를 취합해 분석한 다음 보고했다. 그가 보고한 것처럼 새로운 차르에게 충성하는 루스 군대도 있었다. 그러나 1만에 달하는 루스 군대가 겨우 2천기밖에 안 되는 폴란드 후사르의 공격을 받고 패퇴했다는 소식에 어이가 없었다.

동유럽의 강자 후사르 기병대는 비슷한 숫자의 보병에게 패하기도 하고, 열 배나 많은 적에게 돌진해 승리를 얻기도 했다. 실제 역사에서 바실리 슈이스키가 바실리 4세로 등극한 이후인 1610년 클루시노 전투에서 폴란드 군 후사르 기병 5천 명이 돌격해 루스 차르국과 스웨덴 연합군 4만을 격파했다. 이로 인해 바실리 4세가 폐위되고 폴란드의 셰임에 끌려갔다.

“폴란드 군은 가짜 드미트리의 본진 바로 뒤쪽에서 기동하면서 예비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기병이 3천, 병참부대가 3천입니다. 루스인들이 계속 추가되면서 폴란드 보병은 본진과 병참부대의 호위를 맡는 모양입니다.”

“용병은?”

“폴란드인 용병 5천이 추가로 고용됐고, 항상 그렇듯이 독일인과 네덜란드인 용병들이 좌익에 포진했습니다. 우익과 예비대에 루스인 기병 1만씩이 집중됐습니다.”

“숫자가 적더라도 폴란드 기병이 사실상의 주력이다. 코사크는?”

폴란드 후사르 기병의 수가 적은 것은 국왕 시기스문드 3세가 아직 본격적으로 루스 차르국에 직접적인 간섭을 피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폴란드-리투아니아는 공식적으로는 루스 차르국의 내전에 개입하지 않는 중립을 선언했으나, 폴란드 대귀족들이 사병을 보내는 식으로 가짜 드미트리의 전력을 키워줬다.

“지난 1월의 패전 이후 코사크 일부는 돌아가고 다른 일부가 추가됐습니다. 크림한국과 노가이한국이 무력시위를 해준 덕택에 가짜 드미트리 군에 가담한 코사크 기병은 합해서 1만 이하입니다.”

“가장 민감할 때 함부로 나서다니, 바보짓이야. 내전이 끝나면 돈 코사크가 큰 타격을 입겠군.”

루스 차르국의 진정한 힘은 총병 위주인 보병, 스트렐치에서 나왔다. 초원에서 도저히 기마민족의 상대가 안 될 것 같지만, 강의 합류점 같은 중요한 위치에 요새를 쌓고 대포와 화승총을 잔뜩 배치해 놓으면 유목민 기병으로 점령하기가 참으로 난감해진다.

루스 차르국은 흑해와 카스피 해 가까운 지역에 요새를 여럿 건설해서 코사크와 타타르의 침입에 대비했고, 약탈과 노예사냥을 약간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나중에 여러 타타르 세력들을 압박하는 공세적인 작전에서도 요새가 큰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교황 성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전하. 왕도로부터 긴급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그 소식은 얼마 전에 들었다. 새 교황이 선출된 것도 안다.”

클레멘스 8세는 재위 기간 중에 고산국과 꽤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1600년에 교황이 직접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가면서 교황청과 오스만 제국의 관계도 극적으로 풀렸다.

교황은 갈릴레오 등 천문학자들이 마음 놓고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클레멘스 8세가 선종함으로써 고산국과 교황청 사이에 좋았던 날은 지나갔다.

“클레멘스 8세 말고, 새로 즉위하신 교황 레오 11세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저런! 한 달도 안 돼서?”

이민호가 1600년에 로마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주교성성 장관이었던 레오 11세를 직접 만난 적이 있었다. 나이가 70 다 돼서 교황으로 선출됐으나, 즉위하고 나서 겨우 27일 만에 선종했다.

복잡한 과정을 통해 기껏 교황으로 선출해놓았더니 늙어 죽어버리면서 추기경들의 인식이 확 변했다. 그래서 다음 교황은 추기경들 중에서 비교적 젊은 사람들 중에서 선출될 분위기라고 했다.

“젊은 교황이 선출되면 교황청이 좀 더 개혁적인 성향을 띌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글쎄? 50살 넘었으면 젊다고 할 수 있나?”

“상대적으로 말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1605년 5월 중순에 새로 선출될 교황 바오로 5세는 1621년에 선종한다. 재위 기간 중에 30년 전쟁이 발발했으며 1606년에는 교황이 베네치아를 파문하고 더 지나서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는다.

사흘 걸려서 모자이스크 동쪽 평원에 도착했다. 적 정찰대의 눈을 속이기 위해 언덕 뒤쪽이나 숲에 가린 지역에 각 부대가 숙영지를 건설하고, 정찰대를 사방으로 내보냈다. 피아 구분이 어려워 매일 다른 색깔의 어깨띠를 두르게 했다.

“고산국 국왕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표도르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 도브리니치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축하하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드디어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는 것입니까?”

이민호가 감불을 대동하고 모자이스크 성채를 방문해 므스티슬라브스키를 직접 만났다. 고지식한 장군답게 전 루스 군의 지휘권을 행사하는 이민호가 왔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아서 이민호는 더욱 안심이 됐다. 보통 장군들 같으면 최소한 백리 밖까지 직접 마중 나왔을 것이다. 그 사이 지휘관이 없어서 성채가 쉽사리 함락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은 며칠 동안 고립무원의 성채를 지켰다기보다는 여러 날 동안 소규모 전초전만 진행되고 있어서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반란군의 주력이 모자이스크에 도착하려면 아직 며칠 시간이 더 필요했다.

“적이 도착하면 바로 싸울 것이오. 장군에게는 안됐지만 새로 차르에 즉위하실 표도르 황태자께서 루스인 반란군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하셨소.”

“반란군은 무조건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야 군인 생각이고, 정치가는 자비로운 척해야 할 때가 있지 않겠소?”

“그렇긴 합니다, 전하. 어려워지더라도 작전에 반영하겠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네 시 정도였다. 저녁 먹기에는 시간이 일러서 정찰대 장교를 불러 적 포로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정찰대를 깊이 진입시켜 반란군 정찰대의 장교급을 생포해오게.”

“전하! 그 임무를 제가 맡으면 안 되겠습니까?”

“오! 장군이 지휘하시오.”

이민호는 므스티슬라브스키가 루스인 기병들을 시켜서 포로를 생포해올 줄 알았다. 루스인들이 이 근방 지형을 잘 알 테니 루스인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사살보다는 생포가 훨씬 어렵기에 아군에서 사상자가 생길 수도 있다고 각오했다.

그러나 서문이 열리더니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이 혼자서 직접 말을 타고 서쪽으로 달려갔다. 언덕 위에서 이쪽 성채를 살피다가 깜짝 놀라던 반란군 정찰대원들은 접근하는 기병이 한 명뿐임을 확인하고 총을 꺼내 들었다.

- 타탕! 탕!

므스티슬라브스키는 교묘하게 말을 몰아 총알을 피해냈다. 장군이 말을 채찍질해서 거리가 급격히 좁혀지자 양쪽이 거의 동시에 칼을 뽑았다. 그리고 고함을 지르며 서로를 향해 말을 달렸다.

“우라아아아~”

- 차창!

“으아악!”

므스티슬라브스키가 혼자서 말을 달리며 반란군 기병 10여 명을 줄줄이 낙마시켰다. 그리고 등을 돌려 달아나려는 반란군 장교가 탄 말의 엉덩이를 찍었다. 말이 앞다리를 들고 일어서면서 장교가 땅에 떨어져 나뒹굴었고, 므스티슬라브스키가 허리를 숙여 그 장교를 집어 들었다.

“비바 표도르!”

반란군 장교를 옆구리에 끼고 돌아오는 므스티슬라브스키를 향해 루스 병사들이 열광적으로 환호를 보냈다. 성벽에 올라 지켜본 이민호도 박수를 쳤다.

이민호 옆에서 감불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장으로 알려졌던 므스티슬라브스키가 맹장이기도 하자 감불이 질투하는 것 같았다.

“도련님! 저런 건 저도 할 수 있는데요.”

“시끄러! 넌 고산국 장군이야.”

“루스 장군은 되고 저는 안 돼요?”

“당연하지.”

“치! 쳇! 흥!”

감불에게 굳이 설명해줄 필요가 없었다. 이런 일은 루스인 장군이라면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해야 할 때가 있었으나, 고산국 장군이 할 이유는 없었다. 루스인과 고산국인들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었으나 사는 시대가 아예 달랐다.

“전하 앞에서 솔직히, 그리고 낱낱이 말씀드리라고 타일렀습니다.”

“잘했소.”

5월 초인데도 아직 두툼한 모피코트를 입은 반란군 장교의 눈덩이가 잔뜩 부어올라 있었다. 므스티슬라브스키가 장교를 데려오면서 좋은 말로 잘 타이른 모양이었다. 통역은 루스인 궁녀 에바가 맡았다.

“반란군의 본진 위치는?”

“왕자님이, 아니 가짜 드미트리는 오늘 저녁까지 여기서 서쪽 3레구아 위치에 도달할 예정입니다. 길이 진창이라 진군속도가 무척 느립니다.”

15km 정도라면 지형에 따라 한 시간 만에 들이닥칠 수도 있고, 진창을 지나야 한다면 하루쯤 더 걸릴 수도 있었다.

“고산국 병력이 모스크바에 진주한 것을 알고 있나?”

“예. 들었습니다. 작고 날렵한 보병과 크고 강인한 기병들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구르카 용병들의 키는 루스인에 비해서도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토르구트 기병은 키가 크기로 동유럽에서도 소문 난 몽골계이며, 고산국 사람들도 대부분 큰 편이었다. 어릴 때 못 먹어서 그런지 현대에 비해 루스인들은 대체로 키가 작았다.

“그래서 반란군 분위기는 어때?”

“그렇지 않아도 보급 상황이 나쁜데 강력한 적이 등장했다는 소문을 듣고 탈영병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자포로제 코사크는 남았으나 돈 코사크 절반이 밤새 도주했습니다. 독일인과 네덜란드 용병들이 수당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으나 가짜 드미트리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알았다. 너를 풀어주면 모스크바로 가겠느냐, 아니면 반란군 본진으로 돌아가겠느냐?”

“에. 말 한 마리만 주시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라.”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의 수하들이 끌고 온 말들 중에서 그 장교의 말을 돌려주었다. 반란군 정찰대원 중에서 살아남은 자들도 같이 말에 태워 보냈다. 므스티슬라브스키가 감사를 표했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황태자의 청을 들어줬을 뿐이오. 그러나 전투에서는 조금 다를 것이오.”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전쟁에서 상대를 봐주는 것은 없습니다. 최대한의 자원을 동원해 최선을 다해 공격을 퍼부어야 합니다.”

“물론이오.”

이민호는 여러 가지로 므스티슬라브스키가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나라든 전쟁이 길어지다 보면 자연히 영웅들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이민호는 조선에서 김해부사로 재직 중인 정기룡을 언뜻 떠올렸다. 정기룡도 뛰어난 장수였으나 영웅이 되기도 전에 임진왜란이 끝나버려서 크게 유명해지지는 못했다.

============================ 작품 후기 ============================

적진으로 기마 돌격해서 적 장교를 옆구리에 끼고 돌아오는 것은 사천전투 직전 정기룡 장군의 에피소드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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