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54화 (703/1,000)

00754  84. 1605년 루스 동란  =========================================================================

“국왕전하! 코사크 포로들은 어찌 처리해야 할지요?”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이 가리킨 곳에는 돈 코사크와 자포로제 코사크들이 밧줄로 묶인 채 루스인 병사들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남쪽 평원에서는 지금도 토르구트 기병들이 잡아들이는 중이라 코사크 포로 숫자는 거의 일만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모스크바로 연결되는 병참선을 습격하다가 구르카 대대에 의해 쫓겨난 코사크 기병들도 집 방향인 남쪽으로 도주했다. 그런데 이들을 추격하는 여진 기병들은 포로를 잡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봤더니 포로로 잡아봤자 기마 실력이 형편없어서 쓸모가 없을 것 같아 다 죽여 버렸다고 대답했다. 열에 한 명꼴로 간신히 살아남은 코사크들은 여진 기병의 잔악성에 치를 떨며 악마의 기병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장군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소?”

“루스인 병사들은 이들을 다 죽이길 원할 것입니다. 내버려두면 루스의 국경을 지키기는커녕 다시 반란군에 가담해서 루스인 마을들을 약탈할 테니까요. 전하께서 결정하십시오.”

대표적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는 자포로제 코사크와 루스 차르국에 협력하는 돈 코사크로 나뉜다지만, 지역에 따라 다양한 코사크 마을 연합체들이 있었다. 폴란드 영토인 드네프르 강 서안의 우크라이나 지역에만 해도 자포로제 코사크와 등록 코사크가 있고, 그 외에도 지역에 따라 흑해 코사크, 아조프 코사크, 다뉴브 코사크 등이 합종연횡을 하며 군사집단 사회로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루스 차르국 남부에는 돈 코사크, 쿠반 코사크, 1577년 볼가 강에서 테렉 강 유역 사이에 정착한 테렉 코사크, 나중에 우랄 코사크라 불릴 야이크 코사크 등이 흩어져 살았다. 이들 중에서 특히 돈 코사크는 루스 차르국의 국경지역 경비를 맡거나, 루스 차르국이 추진하는 중앙아시아 또는 시베리아 방면의 확장에 앞장서고 탐험대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돈 코사크는 독립적인 성향 때문에 루스 차르국 정부와 자주 충돌하는 편이었다.

“자포로제 코사크는 그렇다 해도 돈 코사크는 루스 차르국의 부용 민족이 아니었소?”

“그래서 더 증오를 받고 있습니다. 반역자들입니다.”

그러나 반란군에 가담한 루스인 병사들을 풀어주기로 한 마당에, 똑같은 행위를 한 돈 코사크 포로들을 처형할 수는 없었다.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도 그 문제로 인해 고민하는 듯했다.

“일단 모스크바로 끌고 갑시다.”

“그게 가장 좋겠습니다.”

코사크 기병 포로들에 대한 처분은 모스크바 개선식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포로들은 개선식부터 며칠 앞으로 다가온 차르 대관식 때까지 승전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소도구였으므로 살려둘 필요가 있었다. 루스 차르국 입장에서도 남부 국경 경비를 위해 돈 코사크의 군사력이 필요했으므로 감정대로 무조건 처형할 것 같지도 않았다.

폴란드의 윙드 후사르 3천기 중에서 살아남은 자가 별로 없었다. 기병으로서 부상을 입고 생포된 포로는 겨우 500명 남짓했고, 다른 폴란드 보병들과 함께 따로 감시를 받고 있었다. 창을 앞세우고 돌격하다 장갑차와 충돌한 직후 동료들이 무한궤도에 깔리는 꼴을 본 후사르 기병들은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후사르 중에서 전사자들은 갑옷만 벗기고 평원 약간 높은 언덕에 집단으로 매장했다. 나머지 전사자들도 마찬가지로 분류해서 매장해, 혹시나 시체를 찾아갈 세력이 있다면 차르의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운구하도록 했다.

“북유럽 용병 포로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장군은 포로가 된 용병들을 고용하고 싶소?”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금도 없지만 기껏 고용한다 해도 우릴 배반하고 폴란드로 도주할 것입니다.”

그러나 포로가 된 용병들을 함부로 처형할 수는 없었다. 폴란드처럼 루스 차르국에서도 네덜란드와 독일 출신 용병들을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용병 포로들을 처형하면 상대방에서도 같은 짓을 하므로, 용병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 지역에서 석방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요즘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 용병을 고용한다니까 배에 태워서 그쪽으로 보냅시다.”

“그게 좋겠습니다. 다시는 폴란드에 고용되지 않겠다고 맹세하더라도 용병들은 맹세를 지킬 놈들이 아닙니다.”

폴란드 군 주력은 몇 년째 몰도바에 묶여 있어서 루스 차르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할 여력이 없었다. 남쪽에서는 오스만 제국과 상대해야 하고 북쪽에서는 스웨덴과 왕좌 문제로 계속해서 분쟁 중이었다. 그래서 폴란드 귀족들이 가짜 드미트리에게 사병을 일부 지원하고 모자라는 병력은 외국 용병을 고용하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직접 참전했다가 생포된 폴란드 귀족들도 있었다. 이들은 외세가 개입한 직접적 증거였으므로 개선식 때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보여줄 가장 중요한 포로였다. 루스 병사들에게 단단히 지키도록 하고 수레를 개조해 조선식 함거를 만들어서 그 안에 폴란드 귀족들을 수용했다.

이민호는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의 조언을 받아 나머지 포로 문제를 처리했다. 토르구트의 타이지, 코오를룩이 직접 와서 보고하거나 전령을 보낼 때마다 루스 병사들은 물론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마저 겁을 먹고 몇 걸음씩 물러났다.

“이제 같은 편인데 장군은 뭘 그리 겁을 내오?”

“전하! 칼미크 기병이 착용한 갑옷과 투구가 몽골군과 너무 닮았습니다.”

“몽골군이오.”

“예?”

“저들 칼미크는 서 몽골 오이라트의 일부로서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이주했소. 물론 킵차크한국과는 상관없으니 겁내지 마시오.”

루스인들은 킵차크한국이 사라지고 나서도 여전히 심리적으로 타타르의 멍에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이나 루스 병사들은 토르구트, 즉 칼미크 기병들에게 더더욱 겁을 집어먹었다.

토르구트는 인구 30만에서 최대한 기병 6만 정도를 전쟁에 동원할 수 있었다. 크림한국이나 노가이한국보다 기병 숫자는 적지만 전력은 훨씬 강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요즘은 기병 일부가 기병용 머스킷으로 무장해 마상 사격 훈련에 열중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명령을 안 듣고 반란군 숙영지를 약탈했던 노가이한국 기병들은 반란군에게 포위되면서 천여 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고산국 직할군이 반란군 본진을 공격할 때 배후가 안전했던 것은 이들이 진채에 남아서 싸웠던 덕분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이들은 지휘관인 케이쿠바트에게 처절하게 응징을 당했다. 부상자를 포함해 3천 명이 남은 노가이 기병들은 목숨 걸고 구한 전리품을 모두 빼앗기고, 전원 포박됐다. 결정적인 승리 직전에 병사들이 흩어져 적진에서 약탈에 열중하다가 전세가 뒤집히는 경우가 이 시대에도 흔했기에 케이쿠바트는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뭐하시오?”

“허허! 죄송합니다. 이들을 처형함으로써 군기를 바로 세우고 국왕전하께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노가이한국 기병들이 땅을 파고 포박된 기병들을 구덩이 앞에 무릎을 꿇렸다. 이민호가 직접 가서 대답을 듣곤 더욱 어이가 없었다.

“3천 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다 죽이겠다고요?”

“명령을 듣지 않는 자들 때문에 전쟁에서 패할 수 있으니 차라리 지금 없애느니 못합니다.”

“유목민 기병들이 다 그렇지요. 저들의 약탈행위나 케이쿠바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소. 하지만 노가이한국의 전력 약화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오.”

“그렇다면 제가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하명해주십시오.”

케이쿠바트도 3천 명이나 되는 아군을 죽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민호가 보는 앞에서 쇼를 한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재산을 탐하다가 대사를 그르칠 뻔했으니 재산으로 응징하시오. 이번 노가이한국의 출전수당과 승전수당, 그리고 전리품을 케이쿠바트가 공과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시오.”

“명을 받들어 죄를 지은 기병들이 관대하신 국왕전하께 목숨을 빚진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전투 와중에 약탈하라고 부추긴 족장들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케이쿠바트가 족장들 몇 명만 대표로 참수하도록 수하들에게 지시했다. 사형집행인이 초승달처럼 휜 칼을 내려치자 목이 뎅겅 잘리면서 족장들의 머리와 몸이 한꺼번에 구덩이에 처박혔다.

그리고 케이쿠바트는 이민호가 하사한 수당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명령을 듣지 않고 약탈에 참가한 자들을 제외시켰다. 반대로 케이쿠바트의 명령을 따른 기병들에게는 더 많은 액수를 지급했다.

약탈에 나섰다가 전리품을 빼앗기고 수당도 못 받은 기병들의 불만이 커졌으나, 참수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이후 노가이한국의 기병들은 좀 더 정예화됐고, 최소한 지휘관의 명령을 따르게 되었다.

이민호는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는 용도로 노가이한국의 경기병을 활용하려 했다. 그러나 코사크가 남쪽으로 도주하다가 토르구트에게 포위되는 바람에 전혀 써먹지 못했다.

나흘 후에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그 다음 날에 개선식이 열렸다. 서문에서 크렘린까지 이어진 도로에 장갑차 연대 차량 100여 대가 선두에 서서 행진하자 구경 나온 모스크바 시민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도로변에 서서 꽃잎을 뿌리기로 돼 있던 처녀들이 제자리에 못 박혀 꼼짝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장갑차 대열에 이어 토르구트 기병들이 몽골군과 비슷한 찰갑을 입고 등장한 순간 놀라 도망가는 자들도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노가이한국 기병들이 행진했을 때는 모스크바가 타타르인들에게 점령된 것으로 착각한 모스크바 시민들이 절망에 빠졌다.

“와아~”

그러나 루스 군 병사들이 대로를 행진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보야르들이 지휘하는 기병 2만에 이어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이 지휘하는 보병들이 강군의 이미지에 맞게 좌우 정확히 대열을 맞춰 행진했다.

이때는 반란군에 가담했던 루스 병사들도 차르에게 충성스런 군대인 척 어설프게나마 대열을 맞춰 행진했다. 루스인 반란군들에게 무기를 회수하지 않고 포로가 아닌 진압군 신분을 부여했기에 개선식에 참가하면서 가장 기뻐하는 자들이었다.

목적지인 크렘린 북동쪽 붉은 광장에 도착한 각 부대가 도열하는 사이, 군악대가 ‘제국 행진곡’과 ‘서부군 행진곡’을 연주했다. 군악대가 루스 차르국 국가를 연주했을 때는 루스 군 병사들과 시민들이 러시아어로 합창해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어서 코사크와 폴란드, 북유럽 용병 포로들까지 거의 2만 명이 도로를 가득 채웠다. 인상적인 폴란드 후사르들은 손이 뒤로 묶인 채 말을 타고 갑옷까지 입은 채 행진했다. 포로들은 광장을 지나고도 행진을 계속해 포로수용소로 직행했다. 그제야 크게 승리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한 모스크바 시민들이 열광적인 환성을 질러댔다.

“비바 엠페라토르!”

도로에서 광장까지 가득 몰려나온 모스크바 시민들이 장갑차에 탄 이민호에게 황제 만세를 연호했다. 태극기를 꽂은 장갑차와 호위 기병들을 향해 꽃바구니를 들고 길가에 도열한 처녀들과 건물 창문에서 구경하던 여자들이 꽃잎을 가득 뿌렸다.

“주인님! 루스 여자들은 머리가 작고 다리가 너무 길어서 비율이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러게 말이다. 좀 이상하게 생겼어.”

호위 민지와 민정에게 이민호는 마음에도 없는 말로 맞장구쳤다. 이민호는 호위대 소속 장갑차 소대 및 기병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붉은 광장에 들어섰다. 광장 남동쪽에 색깔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콘처럼 생긴 탑들이 모인 건물이 있어서 성 바실리 대성당임을 알아봤다.

이민호가 탄 장갑차가 사열대 앞에서 멈췄다. 그 사이 모노마흐의 황금 왕관을 쓴 표도르 2세가 사열대에서 내려와 마중 나왔다. 모노마흐의 모자는 아래를 검은담비 털로 두르고 위는 투구처럼 생겼으며 각종 보석과 진주로 장식한 황금 왕관이었다. 14세기 킵차크한국의 우즈베크 칸이 배다른 형제인 모스크바 대공 이반 칼리타에게 준 선물이었으니 원래는 칸의 상징물이었다.

“전하! 루스인들을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도와주실 줄 몰라 몹시 감동했습니다. 혹시 제가 국왕전하를 아버지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안 돼!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까지는 봐주마.”

차르 표도르 2세가 이민호의 열 살짜리 딸을 노리는 것 같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동안 이민호에게 딸을 바쳤던 아버지들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갔다. 장인들에게 좀 더 잘해줘야겠다고 느끼며 이민호가 차르와 함께 사열대에 올랐다.

“먼저 연설을 하게.”

“그럼 제가 먼저 고산국왕 전하와 연합군들에게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표도르 2세가 확성기를 이용해 연설하는 동안 에바를 통해 대충 통역해서 들었다. 승전을 축하하며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한 차르는 고산국과의 친밀한 관계를 재삼 강조하면서, 폴란드나 스웨덴, 오스만 제국 같은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반복했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새 차르가 고산국과 친하니 보야르나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재미없을 거라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표도르 2세는 얼굴 한 번 못 봤을 이민호의 딸들 이름을 읊으면서 루스 차르국과 고산국이 국혼을 맺을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이민호는 피가 거꾸로 솟았으나 국내에서 지지기반이 약한 차르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서 꾹 참고 들었다. 차르의 연설이 끝나고 이민호가 연단에 섰다.

“나는 루스 차르국의 이웃나라 고산국의 국왕으로서, 루스인들에게 한 가지 약속하고자 한다. 현재 루스인들이 사는 영토를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확실히 지켜주겠다. 그리고 루스인이 루스인들을 다스리도록 독립을 지켜주겠다.”

“황제폐하 만세!”

“그러나 루스 차르국의 국경은 더 이상 확장하지 못한다. 동의하나?”

“다아아~”

모스크바 시민들이 생각할 것도 없고 서로 주변 사람 눈치 볼 것도 없이 일제히 동의를 표했다. 혹독한 기근 3년이 중간에 포함된 장기적인 동란의 시대에 루스인들의 영토를 지키기 급급한 판에 한가롭게 영토를 확장할 이유가 없었다.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영토 확장 전쟁에 병사로 동원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뻐했다.

“루스인들이 타타르의 멍에에 이어 고산국의 족쇄를 차게 됐지만, 시민들 입장에서 그리 손해는 아닐 것이다.”

확성기의 전원을 끈 다음 이민호가 중얼거렸다. 연설을 마치고 이민호와 새 차르가 연단에 서 있는 동안 내내 병사와 시민들이 열광적으로 환성을 내질렀다. 두 사람이 손을 흔들어 병사와 시민들의 환호에 답했다.

다시 군악대가 행진곡을 연주하며 분열이 시작됐다. 이민호가 므스티슬라브스키 장군의 보병부대에 며칠 동안 연습시킨 행진 방식이 앞으로 루스 전역에 유행하게 됐다. 대열을 맞춰 다리를 쭉쭉 차면서 걷고 팔을 옆으로 흔드는 구 소련군 행진 방식과 거의 같았다.

============================ 작품 후기 ============================

개선식 연설 내용이 이 편의 주제입니다.

대관식은 짧게 넘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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