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63 85. 1606년 장강에서 =========================================================================
원정군 함대가 영파 앞을 지나는 순간 포르투갈 범선 한 척이 나오다가 다시 항구로 돌아갔다. 만약 함대를 피해 바다로 도망갔다면 해적으로 의심해서 추격하겠지만, 항구로 돌아갔으니 순수 상선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포르투갈이 고산국에 우호적이라 하지만 상선은 군함을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었다.
영파가 아주 망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포르투갈 선원들이 영파에서 거래할 것이 없어 빈 배로 돌아가는 중일지도 몰랐다.
“황상의 허가로 병력을 언제든 파병하게 된 것은 좋은데 5천이면 너무 적지 않습니까?”
“북경에서도 외국군이 자의적으로 들락거리는 것에 거부감이 크겠지. 기다려 봐. 병력은 앞으로 차차 늘려 가면 돼.”
이민호가 원정에 나갈 때 보통 신중한 감동보다는 저돌적인 감불을 데려간 경우가 많았다. 신중함은 최고 지휘관 이민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원정군 사령관은 매우 신중하게 선택해서 감동에게 맡겼다. 그 사이 감불은 북경 남쪽 요새로 파견됐다.
“도련님은 매사에 길게 보시는군요.”
“나도 명나라가 이대로 존속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어. 하지만 갑자기 명나라 영토 전체가 유목민들에게 넘어가면? 내란으로 왕조가 바뀌고 우리 고산국과 대립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지요. 하지만 명나라 내부 사정과 상관없도록 왕도를 멀리 옮기는 방법도 있습니다.”
“지금 인구 분포나 산업 구조로 볼 때 수도를 옮기는 것은 시기상조야. 나중에는 북미 지역에서 알아봐야겠지만, 도시마다 각자 장단점이 확연해서 고르기 쉽지 않을 거야.”
수도가 한쪽으로 치우치고 명나라 앞바다에 위치한 것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이 생겼으나 쉽게 결정 내릴 일이 아니라서 이민호도 고민해야 했다. 수도가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닐 경우 안정감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잃을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 명나라가 망하면서 그 영토 상당 부분을 고산국이 획득할 경우, 현재의 왕도 위치가 가장 적합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명나라가 망하든 말든 확실히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함대가 장강을 거슬러 올랐다. 미리 통보를 받은 명나라 수군 함선들이 고산국 함대를 남경의 노호산 포구로 유도했다.
“어서 오십시오, 주애공 대인.”
순양함과 수송선들이 차례로 입항하는 동안 이민호는 남경 포구에 마중 나온 명나라 고위 관료들과 만났다. 역대 중국 왕조들이 수도를 두 곳 혹은 여러 곳에 두는 양경제나 다경제를 운영하는 것처럼 명나라도 남경에 북경과 똑같은 중앙기구를 남겨두었다.
남경에는 북경처럼 6부와 도찰원, 대리시 등이 고스란히 있었고, 상서와 시랑, 도어사 등의 관직 품계도 북경과 같았다. 다만 우시랑이나 우도어사가 없고 해당 부서에서 근무하는 관료 인원도 적은 편이었다.
남경의 핵심 관료들은 공, 후, 백이나 도독이 맡는 남경수비와 협동수비, 그리고 자금성 사례감에서 파견된 환관들 중에서도 특히 지위가 높은 수비태감, 그리고 남경의 6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위인 병부상서를 겸임하는 참찬기무 등이었다. 시장에 해당하는 남경부윤은 단순한 행정 관료일 뿐이었다.
“수비태감은 오랜만입니다.”
“예, 주애공 대인. 고산국에 더 큰 배가 있는데도 강 상류로 가급적 많이 오르시려고 일부러 작은 배를 타고 오셨군요. 역시 주애공 대인은 황상의 첫째가는 충신이십니다.”
중국인들의 허풍은 세기로 유명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남경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다. 남경 보선창에서 정화의 원정에 사용된 보선(寶船)을 건조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배는 길이가 122미터, 선폭이 52미터, 배수량이 2,700톤으로 추정됐다. 고산국에서 동원한 경순양함보다 조금 길고 배수량은 절반 정도였다.
“대인의 안색이 나쁘십니다. 혹시 문제가 있었습니까?”
“수비태감이 칙서를 보시겠소?”
“저는 감히 칙서를 볼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대인.”
수비태감이 놀라 얼른 물러서고 뒤에 도열한 환관들 중에서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이민호가 수비태감보다 훨씬 젊은 환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비태감이라면 남경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였다. 천자의 ‘삼천리 바깥의 근신(三千里外親臣)’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남경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의 감독관 역할을 맡았다. 남해 원정을 주도했던 환관 정화가 맡은 높은 관직이기도 했으나, 남경의 다른 관리들처럼 북경의 고관대작들이나 환관들 입장에서는 좌천이나 다름없었다.
칙서를 받드는 환관은 동창을 지휘하는 병필태감이었다. 금의위 고위 관리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자금성의 실세들이 때 이르게 남경에 몰려와 있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두 사람이 칙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한 다음 공손히 칙서를 받들고 내용을 읽었다. 다 읽은 두 사람이 칙서를 접고 일어섰다.
“환관의 한 사람으로서 주애공 대인께 사과드립니다.”
“병필태감이 사과할 일은 아니오.”
“아무래도 이곳 사정이 자금성에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섬서와 호북, 절강은 거의 매년 반란이 일어나는 곳인데 병력을 보내주기는커녕 주애공 대인이 많은 병력을 지휘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문제요. 사실 본작은 빈민 구호를 방해하는 도적을 잡으러 왔는데, 벌써 반란이 일어났소?”
“겨울에는 도적, 여름에는 반란군이지요. 올해는 초봄부터 분위기가 뒤숭숭합니다. 그래서 좀 일찍 남경에 내려왔습니다.”
1600년에 조무민, 조고원, 당운봉 등이 일으킨 반란은 참가자가 10만이 넘어갔다. 그 후에도 요기저기서 대규모 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도 외국인이 아니라 황상을 모시는 명나라의 벼슬아치로서 한 마디 해야겠소. 민란이 빈발하는 원인이 있을 것이오.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할 수는 없겠소?”
“황공하게도 관료들의 부패도 심각하지만 환관들이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방마다 광세사 환관들의 발호가 지나친데도 황명을 받고 일하는 자들이라 제 상전인 사례감 태감께서도 제대로 제어를 못하고 있습니다. 황상께 문제를 고해야 할 내각수보 심도 환관들과 결탁해 권력다툼만 하고 있습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환관이 환관들을 비판해서 새삼 신선했다. 그러나 환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직위인 사례감 태감과 병필태감이 환관들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환관들의 조직 체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했다.
심일관은 절강 출신으로서 만력 30년, 1602년부터 내각 수보로 임명됐다. 절강 출신의 관료들을 규합해 절당으로 불리며, 역시나 동향 출신으로 구성된 다른 정파들과 함께 1604년에 설립된 동림당을 공격했다. 현대 중국에서도 상하이방이니 태자당이나 공청단이니 해서 각자 집단에 속해 권력다툼을 하는 것이 일상사였다.
“에이! 중앙에서 권력자들이 하는 짓이 항상 그렇지요. 본작은 도적들이나 잡고 반란이 일어나지 못하게 분위기를 유도하겠소. 남경에서 지원해줄 수 있소?”
“주변에서 3개 위를 동원해서 주애공 대인께 맡기고자 합니다.”
“우와! 그럼 병력이 1만 6천이 넘는 것이오?”
“기보 합해서 겨우 3천 정도 됩니다. 부끄럽습니다.”
“어쩌다가 위가 천호소 규모로 줄었소?”
위소제가 점차 붕괴되면서 지방 주둔군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흔했다. 명나라 말기로 갈수록 병력 징집이 어려워져 가정(家丁)을 많이 보유한 전직 무관을 총병관으로 임명해야 하는 사태가 생기기도 했다. 이민호는 차라리 보급 부담이 적어서 잘됐다 싶었다.
병필태감이 토벌군이 모인 곳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병사라는 자들이 대부분 40대에서 50대였고, 심지어 60대 노인들도 흔했다.
“병사들의 나이가 좀 많군요.”
“힘이 세지는 않지만 최소한 전투 경험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신중하지 못해 무작정 적진으로 돌격하다가 허망하게 죽는 경우가 흔하지요.”
임진왜란 기간 동안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에서는 노인들이 군사로 징집돼 전쟁을 하고 젊은이들이 군수품을 운반한다고 비웃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조선에 병력이 남아돌기 때문이었다. 양인 남성은 16세부터 60세까지 군적에 있어야 하므로 늙은 병사들이 충분한 숫자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젊은이들이 군적에 들어 전쟁에 참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은 명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아들이 손자와 함께 집에서 농사를 짓는 동안 나이 많은 가장이 군장을 챙겨 전선으로 향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오. 자네 위소 근무가 몇 년째인가?”
“올해 처음 군적에 들었습니다요.”
이민호가 창을 허술하게 들고 있는 40대 중반 병사에게 물었다. 병필태감과 수비태감이 이마에 손을 얹고 한숨을 토해냈다.
역시나 조선과 똑같은 문제가 명나라에서도 발생하고 있었다. 병사가 전사하거나 60세가 넘어 군적에서 빠지면 젊은이가 군적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보인 또는 명나라의 여정으로서 대기 중인 성인 남성들 중에서 나이가 많은 순으로 뽑히기 마련이었다.
늙은이가 빠져 나간 자리를 또 다른 늙은이가 보충하는 셈이었다. 관리들 입장에서 백성들에게 군역을 공평하게 지우려다 보니 병역기피자가 없도록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뽑을 수밖에 없었다.
“명나라 장수들이 조선군을 비웃었지만, 그래도 조선군은 병력을 징집할 때 최소한 정원은 반드시 갖춥니다.”
“대명에서는 군적을 작성할 때마다 어지러워져서 그게 어려운 문제입니다.”
징병권이 고을 수령에게 있는 조선에서는 각 고을마다 군적에 올라있는 장정들로 규정된 인원을 채워서 수군이나 육군에 배정했다. 고을에서 병력을 규정에 맞게 보내지 못하면 수군절도사나 병마절도사가 장계를 올려 고을 수령의 파면을 요구하고, 만약 각 고을의 징병 과정에서 비리가 발생할 경우 고을의 병방들을 처벌했다.
조선과 명나라에서는 이런 식으로 병력 징집이 진행됐다. 그래서 위인전에 묘사되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직전에 전라좌수영의 병력을 증강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규정된 체계에 따라 정상적으로 병력을 수급하는 이순신 장군을 역모를 위해 사병을 모으는 반란군 수괴로 묘사하는 셈이다.
판옥선 숫자도 수영마다 규정돼 있어서 수군절도사가 자의적인 판단으로 함부로 증강하지 못했다. 현대적인 군대에서 당연한 절차가 조선 중기에도 시행된 셈이었다.
“됐소. 큰 상관은 없겠지요. 일단 장강을 깨끗이 하는 일을 마친 다음 관도를 위협하는 산채를 치겠소. 이의 있소?”
“주애공 대인께 토벌에 관한 모든 권한이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대인의 명을 받드옵니다.”
이민호가 허리를 살짝 흔들어 상방검을 보여주자 원하는 대답이 술술 나왔다. 만만치 않은 고위 관료 혹은 태감들인데도 상방검 앞에서는 일단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명나라 병력 3천을 수송선에 태우고 상류로 향했다. 남경에서 합류한 왕명명에게서 여러 가지 보고를 받았다. 장강에서 살짝만 벗어나면 산적들이 횡행하며 농촌마을들을 약탈하고 있다고 했다.
함대는 계속 남서 방향으로 항해했다. 장강을 오가는 상선이나 어선들이 예전보다 확연히 줄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까지 흔했던 유람선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멍멍아. 지금까지 강에서 수적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지?”
“예, 주인님. 수적들도 머리가 있는데 설마 고산국 배를 공격하겠어요?”
왕명명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이민호 입장에서는 뻔히 수적이 분명한 자들이 배를 몰고 돌아다니는데 못 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근처를 지나는 작은 배 한 척을 불렀다. 수적의 배가 틀림없는데도 대낮에 고산국 함대 옆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고 있었다. 해병 통역장교가 수적의 배를 부르는 사이 이민호가 왕명명에게 물었다.
“저 배, 아무래도 수적 같은데?”
“차림새가 좀 그렇지만 장강에서 운송업을 하는 자들일 거여요.”
“무기는?”
“강에 수적, 산에 산적, 들에 마적들이 돌아다니는데 당연히 무기를 차고 다녀야죠.”
이민호가 할 말을 잃었다. 중국이란 예나 지금이나 적응하기 참으로 힘든 곳이었다. 작은 배가 국왕좌승함에 접현한 다음 이민호가 직접 물었다.
“너 혹시 수적이냐?”
“예! 그러하옵니다, 나리. 풍사채라고, 풍사 호에 수채를 두고 있습니다요.”
사공이 자기가 당당히 수적이라고 밝히는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수적이 넷, 갑판에 실려가는 여자들이 열둘 정도였다.
“나리께서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요. 관에서 금지하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수적들과 가끔 싸우기는 합니다요.”
“배에 탄 여자들은 뭐냐? 혹시 납치한 것 아냐?”
“그럴 리가 있습니까요? 요즘 같이 먹고 살기 어려운 때에는 애비들이 딸년을 파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저희 풍사채는 애비들에게 푼돈 좀 쥐어주고 여자들을 사서 남경의 기루에 파는 일로 먹고 삽니다요.”
갑판에 오들오들 떨며 앉아있는 여자들은 자기들의 운명을 아는 듯, 이민호에게 구해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다. 이 배를 통째로 관가에 끌고 가더라도 수적은 아무 죄가 없었다.
“멍멍아. 쟤들 사서 네 밑에서 일을 시켜라.”
“주인님! 이런 식으로 사들인 애들이 지금까지 수백 명이에요. 더 이상 애들 관리하는데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사라면 사! 내 체면도 있잖아. 수많은 장병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명나라 군사도 3천이나 돼.”
“핏! 알았어요. 거기 수적 오빠~”
왕명명이 현란한 화술과 미모를 사용해서 사공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리고 아주 싼 값에 소녀들을 사서 수송선으로 보냈다.
“여자들이 더 필요할 경우 언제든 저희 풍사채로 연락해주십시오. 아주 싸게 모시겠습니다요.”
사공이 이민호에게 굽신거렸다. 그래도 사공이 손해는 안 본 모양이었다. 삿대를 저어 가는 수적들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저 수적들은 관과 유착됐겠지?”
“통행증이나 뭐나 다 갖췄을 거여요. 그리고 배를 약탈하지 않으면 수적이라 부르기도 뭐 하잖아요?”
이런 식이면 수적과 산적을 토벌하겠다는 애초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될지도 몰랐다. 일단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수적을 잡는 일은 포기하고, 산적 위주로 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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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무척 덥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