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65화 (714/1,000)

00765  85. 1606년 장강에서  =========================================================================

“무한이 반란군의 공격을 받고 있어? 병력은?”

“예, 나리. 처음 공격할 때는 3만쯤 되는 것 같은데 점점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예년에는 이렇게 일찍 일을 벌이는 경우가 없었는데 올해는 아마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알았다. 고마우니 상을 받아가거라.”

수적들의 정보가 정확한 것 같지만 확인을 위해 탐사선을 앞서 보냈다. 그런데 반란군도 고산국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무한에 접근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 쿵!

“아싸! 적의 방해가 시작됐다.”

국왕좌승함에 충격음이 울렸으나 배는 계속 항진했다. 장강의 수심이 깊고 강폭이 넓어 반란군이 강바닥에 말뚝을 설치해 함선의 이동을 막지는 못했다. 대신 상류에서 통나무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누런 장강의 물결 때문에 통나무가 흘러오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 정도 충격에 티크 목으로 건조한 순양함이 관통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 함선 앞에 수적 배들이 늘어서게 해서 삿대를 이용해 통나무를 치우면서 전진했다.

덕택에 운항 속도가 많이 떨어졌고, 수적의 배 한 척이 통나무에 관통된 다음 천천히 침몰했다. 부상자가 생기지는 않았다.

“멍멍이 생각은 어때? 반란군이 무한을 점령당하지 않았더라도 포위된 건 분명한 것 같아. 무한의 성곽은 봤어? 설마 역사책에 나온 양양성 정도는 아니겠지?”

“설마 양양만 하겠어요? 그래도 무창과 한양 성은 꽤 높아요.”

함대의 목표인 무한에서 양양까지 200여 km 거리로 그리 멀지 않았다. 양양성은 몽골의 대대적인 공격을 15년 동안이나 막아냈지만, 결국 무너짐으로써 남송의 멸망을 재촉하게 된 곳이었다.

무한은 무창과 강 서쪽으로 이어지는 한수 남쪽 한양을 함께 부른 말로서 명대에 이미 무한으로 불렸다. 이 시대에 급속히 성장 중인 상업도시 한구와 함께 20세기 전반에 한 도시로 합쳐진다.

“주인님! 남경에서 고관대작들이 몰려와요.”

“왜 오는지 알겠다만, 귀찮게 됐다. 남경에서는 제법 무게를 잡는다 했더니 전공을 눈앞에 두고서는 더 이상 못 참겠나 봐.”

포로를 잡을 때마다 배에 태워 남경에 보냈더니 병필태감을 필두로 남경의 고관대작들이 고산국 탐사선을 타고 뒤따라왔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원정군 명단에 이름을 올려 고산국 군대가 올린 전과에 숟가락을 얹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명나라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면서 전공은 명나라 장수들이 독차지하고 그 대신 상급 등 경제적 이익을 고산국 군대에 넘기는 식으로 서로 협력했다. 장수들보다 욕심이 많은 고관대작들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으나, 잘하면 은을 대량으로 토해내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서들 오시오.”

이민호는 이들이 뱃전에 오르는 동안 직접 나가서 환영했다. 환관이나 고관들이 직접 참전할 경우 전공을 과장해서 황제에게 보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민호에게도 나쁠 것은 없었다.

이들이 지휘하는 명군은 이틀 후에 남경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러나 고산국 함대가 무한에 도착하고도 며칠 더 지나서 명군이 도착할 것 같다고 했다. 병력도 많지 않고, 순전히 산적 토벌에 동원되는 지방 토포군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10인용인 병사 숙소는 너무하다고 생각해서, 4인용인 부사관 숙소를 배정했다. 예나 지금이나 군함이 다 그렇듯이 전투함 승조원들을 위한 실내 생활공간은 몹시 비좁았다.

“무한이 반란군 3만여 병력에게 공격받고 있다고 하오.”

“예? 큰일입니다. 예년처럼 오뉴월에 거병할 줄 알고 병력 소집을 그때로 늦췄습니다. 주애공 대인은 신분이 높으신 분이시니 위험한 곳에 단 한 시라도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 남경으로 내려가 북경에서 보내줄 원군을 기다려야 합니다.”

병필태감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남경의 병부상서 겸 참찬기무는 태감과 다른 의견이었다.

“무창에 이만, 건너편 한양에 일만이 주둔 중입니다. 반군의 병력이 3만에 앞으로 좀 더 불어나더라도 최소 몇 달은 버틸 병력이 됩니다. 주애공 대인께서 무한에서 위엄을 드러내신다면 오합지졸에 불과한 반란군들이 놀라 뿔뿔이 궤주할 것입니다.”

반란군 지도부에서도 무한에 주둔한 병력 규모를 알고 있을 테니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도 무한에 꽤 많은 병력이 있다는 대답에 이민호는 꽤 놀랐다.

아주 옛날 남송 때 무창과 한양이 기마민족을 상대하는 방어거점 및 상업도시로서 번성했더라도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요즘 와서 상업중심지로 번성하는 곳은 한양 북쪽 한구밖에 없었다.

“썩은 유학자가 어찌 군대의 일을 함부로 논하는가? 두 번 다시 허튼 소리를 하는 자는 즉참하리라!”

갑자기 병필태감이 병부상서에게 큰소리로 꾸짖었다. 상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태감에게 사과했다.

유학자 출신이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남경의 병부상서인데 환관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대사는 토목보의 변 때 황제 친정군이 퇴각하는 도중 황제를 안전한 거용관으로 먼저 모시자는 병부상서 광야에게 사례태감 왕진이 한 소리였다. 이후 황제 정통제는 오이라트의 포로가 됐고 왕진은 난병에 휩쓸려 죽었다.

“이보시오, 병필태감. 여기서 총지휘관이 누구요?”

“그야 100전 100승하신 십전장군 주애공 대인이십니다, 헤헤!”

병필태감이 이민호 허리에 매달린 상방검을 주시하면서 아부를 떨었다. 십전(十全)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는 뜻이었다. 이민호는 자못 비장하게 선언했다.

“천군이 위기에 처했는데 어찌 구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소.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일단 직접 가봅시다.”

“그, 그게 좋겠습니다. 갑자기 배가 살살 아픕니다.”

“화장실이라고 표시된 곳에 가서 해결하시오.”

“예! 대인!”

적의 대군 앞에서 두렵고 겁이 나면 배가 살살 아플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 군의 최고 지휘관에 해당하는 병필태감이 그래서는 안 됐다.

“병필태감은 남경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소. 금의위 교위도 돌아가도 좋소.”

“아닙니다, 대인! 금의위 전소는 황제폐하로부터 주애공 대인을 보필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병력은 얼마나 되오?”

“3백 명인데 대부분을 남경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배를 타고 오더라도 며칠 걸릴 것 같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대인!”

황제의 눈과 귀인 태감들과 금의위 교위가 따라다닌다면 묘족 등 소수민족들을 만나길 원했던 이민호 입장에서는 몹시 거북했다. 그래서 무한의 반란군을 진압한 다음 그곳에 고관대작들을 내려두고 떠날 계획을 세웠다.

- 쿵! 콰콰콰콰쾅!

함포를 쏘는 소리가 난 직후 엄청난 굉음이 귀청을 때렸다. 국왕좌승함이 크게 흔들렸고, 잠시 후 배 위로 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배가 침몰합니까?”

“화약을 실은 배가 접근해서 요격한 모양이오.”

갑작스런 폭음과 진동에 이민호도 사실 놀랐다. 이민호가 함교에 오르자 태감, 상서, 교위들이 어미 닭을 따르는 병아리들처럼 줄줄이 따라왔다. 수뢰는 아니고 유럽의 화선이나 주원장이 파양호에서 그랬던 것처럼 화약을 잔뜩 실은 배를 떠내려 보낸 것 같았다.

그 직후 상류 쪽에서 수상한 배들이 나타났다. 돛을 펼치고 빠르게 함대에 접근하는 배는 30척 정도였다. 이민호는 순양함 한 척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적이 나타났소.”

“장강 하류의 수적들을 모두 위무했다고 여겼는데도 반란군에 붙은 수적이 있습니다. 제가 제대로 일을 못한 탓입니다.”

아마도 남경 병부상서가 수적들을 포섭하는 작전을 지휘한 듯했다. 유학자 출신치고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병부상서는 섭섭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소. 수적이 아니라 산적들과 반란군이 배에 탔소.”

쌍안경을 통해서 적선을 살핀 이민호는 적이 신발을 신고 있는 것으로 수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확인했다. 지금까지 봤던 수적들은 예외 없이 맨발이었다. 배에서 내린 다음에는 신발을 신을지 몰라도, 이 시기에 가죽신이나 나막신 혹은 짚신을 신고서는 미끄러운 갑판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이건 천리경입니까, 대인?”

“그렇소. 남만의 천문학자가 크게 개량했소.”

갈릴레오가 나중에 개발할 반사식 망원경이 이민호가 몇 마디 조언을 해주고 국방연구소에서 제작해서 벌써 활용되고 있었다. 천문용 및 장거리 관측용 망원경은 여러 가지 개량을 거쳐 뉴튼식 망원경을 지나 카세그레인식 망원경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런 복잡하고 정밀한 관측 장비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군이나 지상군이 장비한 것은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6배율, 혹은 최대한 8배율이 고작이었다. 삼각대를 거치하고 관측하는 야전 망원경도 개발해놓았으나 방어용 요새가 아니라면 실제 활용도는 극히 떨어졌다.

“우와! 저 수적 알통 좀 보시오.”

“어디요? 산적이라니까요.”

명나라 관리들에게 쌍안경 여러 개를 넘기고 이민호는 해전을 진행시켰다. 전방을 감시하던 탐사선들을 불러들이고 선두에 선 국왕좌승함이 포문을 열었다. 좌우에 다른 순양함들이 대형을 갖추기도 전에 좌승함에서 먼저 발사했다.

- 쿠쿵! 쾅!

함포가 불을 뿜을 때마다 수적의 배 한 척씩이 격파됐다. 나뭇조각이 하늘을 날고 반란군들이 물에 빠져죽을 때마다 고관대작들이 구경하면서 감탄했다.

순식간에 열 척이 가라앉았다. 이민호는 적선들이 저항할 틈도 없이 모두 수장시킬 것으로 믿었다. 거리가 1km 정도라서 수적들에게 대항할 무기가 없는 줄 알았으나, 오산이었다.

- 삐유우우우~

“제길! 또 날아온다. 갑판에 배치된 해병들 엄폐!”

아직 살아남은 배들의 상갑판에서 뭔가 번쩍번쩍 빛나다가 허연 연기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연기를 뚫고 기다란 창 수십 개가 하늘로 솟구치더니 국왕좌승함을 향해 쏟아져 내려왔다.

이민호가 수화기를 잡고 소리를 질렀으나 갑판에서 전투 준비 중인 해병들이 제대로 피했을지 알 수 없었다. 함장 겸 호위전대장이 다른 배에서 경고를 발했으나, 조금 늦은 것 같았다.

- 텅! 터덩! 텅! 퍼벙!

명나라를 상대할 때는 비화니 주화니 하는 화전 종류의 로켓식 화약무기가 가장 골치 아팠다. 조선에서 사용하는 신기전보다 훨씬 두껍고 긴 창이 날아와 갑판에 꽂힌 직후, 앞에 달린 화약통이 연속해서 터졌다.

화창이라 해서 일종의 기병용 화염방사기 혹은 독가스 분사기를 만들어 전투에 활용한 나라도 중국이었다. 화약을 이용한 온갖 상상 가능한 무기는 다 만들다 보니 별 이상한 것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총구에 꽂는 총검도 17세기 전반에 제일 먼저 명나라에서 제작했다. 총검은 유럽의 야전에서 기병 저지용 창병 방진을 사라지게 만든 중요한 장비였다.

그러나 명나라 보병의 상대는 유럽의 검기병이 아니라 여진이나 몽골의 창기병 혹은 궁기병이었다. 총검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서 총검은 금방 사장되고 말았다.

- 쾅!

함교창 바로 옆에도 비화가 날아와 꽂힌 다음 폭발했다. 명나라 고관대작들이 놀라고 환관들은 뒤로 발라당 나자빠지거나 구석에 머리를 숨기기 바빴다. 이민호는 두꺼운 티크 목재의 견고성을 믿고 피하지 않았다.

“으악!”

“소화기 가져와!”

갑판에 비화 대여섯 발이 떨어져 해병들이 놀라 아우성이었다. 갑판에서 비화에 직격을 당한 해병은 없었으나, 남은 화약이 폭발해 얼굴과 손에 찰과상을 입은 부상자가 몇 명 생겼다. 제대로 맞았다면 상체부터 하체까지 꿰뚫었을지도 모를 무기였다.

적선 10여 척에서 200여 발 남짓 발사해서 겨우 대여섯 발이 좌승함 갑판에 명중했으나, 이 시대 기준으로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화약이 남아돌지 않는 한 로켓형 화살 무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같은 양의 화약으로 차라리 화포 열 번 쏘는 편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주애공 대인! 비화 여러 발에 맞았는데 혹시 배에 불이 붙지 않았습니까?”

“이 배는 적의 화공 같은 건 걱정할 필요 없소.”

이민호가 대답하자 병부상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서는 고산국 함대를 상대할 유일한 방법이 비화 등을 이용한 화공이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그것은 반란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왜 그러시오? 혹시 이런 배를 잡을 방법을 연구했었소?”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

상서가 얼른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그러나 지금은 고산국이 동맹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지만 명나라 입장에서는 미리 대비해야 했고, 그 책임자가 병부상서 같은 군정을 맡은 관료들이었다.

“적의 전선 30여 척을 모두 격파했소.”

그 사이에 전투가 끝났다. 장강에서나 쓰는 작은 돛단배들이 모조리 부서지고 신체 일부가 찢겨진 시체들이 누런 강물에 둥둥 떠다녔다. 살아남은 자들이 부서진 판자를 잡고 필사적으로 헤엄쳐 강변으로 도망치려 했다.

“저! 저! 수급이 도망갑니다, 대인! 어서 수하들에게 명해서 수급을 걷도록 하십시오!”

병필태감이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었으나, 이민호는 순양함이나 탐사선을 핏물에 젖게 하고 싶지 않았다. 수급이 산더미처럼 쌓인 모습을 보기도 싫었다.

“병필태감! 수급은 뒤에 따라올 명군 전선들에 맡기고 함대는 속히 무한으로 향하겠소. 우리가 일찍 도착하지 못하도록 지연작전에 나선 배 몇 척에서 이토록 많은 화약을 사용한다면 무창과 한양의 성이 위태로울 수도 있소.”

“예! 예! 대인! 윤당합지요.”

병필태감이 과도하게 굽실거리는 것을 이민호는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수급을 다 주는 것으로 알아들은 듯해서 그냥 넘기기로 했다. 나중에 은으로 받아내면 된다.

============================ 작품 후기 ============================

늦어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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