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71 85. 1606년 장강에서 =========================================================================
“대인! 커다란 수레가 움직이면서 엄청난 양의 흙을 간단히 밀어내는 것을 봤습니다. 제갈공명이 발명했던 신기입니까?”
포정사가 이민호에게 달려와 입에 거품을 물었다. 고산국과 가까운 명나라 남부, 특히 노무자를 파견하는 복건과 절강에서는 삽차와 밀차의 존재를 다 알고 있었으나 이곳은 광동에서 한참 내륙으로 들어간 귀주성이었다.
새로 발명된 기계인데도 제갈량 또는 옛 병서에 언급된 비슷한 기계로 치환하는 명나라 관료들의 사고의 편협함에 이민호가 혀를 내둘렀다. 물론 이민호는 이런 식으로 전혀 새로운 발명품이 아니라고 우긴 적이 많았다.
“포정사는 아직도 소문을 못 들었소? 연료를 태워서 움직이는 기계잖소.”
“사람이 직접 작동시키는 기관 장치는 말만 들었지 처음 봤습니다.”
“사람의 손이 아예 필요 없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자격루나 시계도 있으니까 그리 놀랄 것 없소.”
이민호가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여러 발명품을 자랑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 시대 명나라 기술로는 절대 못 만든다고 떠들어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오다 보니까 귀주로 이어지는 관도가 너무 좁고 관리가 안 되어 있소. 본작이 자금을 댈 테니 관도 폭을 지금보다 1.5배로 확장하고 무너진 곳은 손을 보도록 하시오.”
“예! 대인!”
돈을 준다고 하니까 포정사가 얼씨구나 하고 좋아했다. 이왕이면 관도 전 구간을 돌로 포장해줬으면 좋겠지만, 물력과 인력이 딸리는 지역이라 그런 요구까지는 하지 못했다.
괜히 소수민족들을 부역에 동원해 원성만 높아질 것 같아 포장은 포기하고 도로 폭만 넓히도록 했다. 나중에 기병이나 기계화 부대를 이 지역에 긴급 투입할 때 필요한 것이 도로였다.
“하온데 성문 밖에 묘족 군대 500명이 새로 도착했습니다.”
“마침 잘 됐군. 저들과 함께 이틀 후에 광서성으로 출발하겠소.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소수민족들의 반란이 우려돼서 무력 시위한 것으로 생각하시오.”
“양응룡의 난이 진압된 이후에는 소수민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만, 무장까지 시키면 걱정됩니다.”
“소수민족 군대를 정상적인 지휘체계에 편입시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오지에서 고생하는 관리들을 위해 황상께 올리는 표에 내가 좀 더 신경을 쓰리다.”
소수민족들에게는 한족의 반란을 언급하고 포정사에게는 소수민족의 반란을 핑계 삼았다. 그리고 황제에게 올릴 보고서에 포정사의 노고를 언급하겠다는 귀띔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민호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고려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현재 명나라의 행정체계는 황제의 태정 때문에 완전히 엉망이라는 사실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인. 제 임기가 3년 전에 이미 끝났습니다. 3년 전에 임기가 끝났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립니다. 황상께 올리는 표에 제 사직을 허락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꼭 넣어주십시오. 그리고 그 동안 늙어 죽은 관원들의 빈자리도 채워달라고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흠. 황상께서 사소한 일은 관리들이 알아서 하라고 명하셨소. 포정사도 잘 알아서 다른 관료들과 자알 상의해서 인사 문제를 자아알 해결하시오.”
황제와 관계된 일이라 이민호가 대충 얼버무렸다. 아직도 황제가 태정 중이라서 신규 관리를 채용하기 어려워 관청마다 관리 정원을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그리고 10년이 아니라 나중에 가면 20년 넘게 황제 얼굴도 못 보는 고위 관료들이 생겨날 판이었다.
관리가 아무리 사직소를 자주 올려도 황제가 태정의 일환으로서 비답을 전혀 해주지 않았다. 이 경우 관리가 병을 핑계로 관직을 버리고 마음대로 낙향할 수도 없었다.
명나라에는 황제를 능멸했다는 비판을 감당할 용기를 가진 관리는 없었다. 나이 70이 넘고 병이 들어 사직하고 싶은 관리는 미리 관을 짜놓은 다음 사직 상소를 올리고 집에 돌아가서 처분을 기다렸다.
그러나 황제는 권력의 정점이었고, 비록 태정을 하더라도 뭐가 권력 유지를 위해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태정 기간에도 만력제는 고위 군사지휘관들에 대한 인사권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지방의 실력자들인 총독과 순무들에 대한 인사권을 확실히 장악해서 전임자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신임 총독과 순무들을 지방에 파견했다. 환관들은 물론 동창과 금의위 같은 비밀경찰 조직도 황제가 직접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었다. 정치에 무관심한 척하는 태정이라지만 황제가 손 놓고 아무 것도 안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귀양성 남문 밖으로 갔더니 새로 징집에 응한 묘족과 큐슈에 거주하는 묘족들이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주로 큐슈에 사는 묘족 전사들이 이야기하고, 귀주성에 사는 묘족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입장이 됐다.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서 큐슈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묘족들이 많을 것 같아 기대가 됐다. 이민호는 묘족 일부를 추가로 큐슈에 이주시키고, 그 대신 큐슈에 주둔하는 여진족 일부를 동해국으로 돌리고 싶었다.
“전하! 서 묘족의 족장 12인 중 하나가 인사 올립니다.”
“반갑소. 흠! 젊은이 위주에 경험 많은 전사들을 적당히 섞었구려. 500명에 불과하지만 아주 잘 뽑았소.”
사천의 세습지휘사 양응룡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고산국 군대가 개입한 적이 있었으나 벌써 십 년도 지난 일이었다. 그리고 이곳 귀주성 남쪽의 묘족들은 사천과 귀주성 북부에서 일어난 반란에 가담하지 않아서 고산국과 원수 질 일도 없었다. 큐슈에 사는 일부 묘족들도 대부분 귀주나 광서 출신이었다.
“이 빌어먹을 명나라! 무너질 듯 말 듯 안 무너지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크오, 족장.”
“죄송합니다, 전하. 2천 년 넘게 한족으로부터 핍박을 받으면 이렇게 욕이 절로 나옵니다.”
소수민족의 반란이야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묘족은 오랜 세월 한족에 의해 황하에서부터 차츰 밀려나 남부 중국에 정착하게 됐고, 명나라 때도 압박이 멈추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반란과 학살이 자행되고 특히 16세기 초반에는 4만 명이 처형됐다. 1460년에는 1,565명의 묘족 소년들이 환관으로 끌려가 거세당하는 과정에서 329명이 죽었다. 거세 시술을 받는 자들 중에서 절반 정도가 죽는 아랍지역보다 생존확률이 훨씬 높았으나, 묘족의 민족적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요즘 묘족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어떻소?”
“전하께서 오랫동안 보살펴주신 덕택에 옛날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오크남 대인께서 먼 나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슬피 우는 묘족 여인들이 많았습니다만, 다행히 왕 부인께서도 오크남 대인처럼 저희 묘족을 잘 돌봐주고 계십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무역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의 연장이었다. 무역의 이익이나 자원 확보를 위해 전쟁을 벌이는 사례는 역사상 흔히 볼 수 있고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다른 세력과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동안 무역을 이용해 특정 국가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사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미국은 이차대전 이후 공산권 국가, 특히 소련과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을 방파제로 삼아 전후 부흥을 이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미국과의 무역에서 갖가지 특혜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공산권 국가들과 직접 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일본의 요청과 상관없이 미국은 1950년 1월의 에치슨라인 선언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지키기로 이미 결정하고 군사원조협정을 체결했다. 전쟁이 나자 미군은 유엔군의 주력으로서 한국에 대규모 병력을 보내 참전하고 휴전 이후 한국에 막대한 군사 및 경제 지원을 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방어 전략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무역 시스템 아래에서 특혜와 보호를 받아가며 성장한 나라들이었다.
이민호가 옥남이나 왕명명을 통해 명나라 남부의 소수민족들과 우호적인 접촉을 유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볼 때는 이익 추구를 위한 상업 활동에 불과하지만, 경제적 지원을 계속해 단순한 상업 활동이 아니라 소수민족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로 떠올랐다. 묘족을 비롯한 귀주와 운남의 소수민족들은 단순한 식량작물 농업에서 벗어나 차 재배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식량부족 문제에서 해방됐다.
지난 10년 넘게 도와준 결과 소수민족들을 명나라 조정이 아니라 사실상 고산국 지배 아래 편입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위해 고산국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했고, 급기야 이번에 소수민족들이 병력을 제공할 정도까지 관계가 발전했다.
옥남의 입장에서는 자그마한 해남도의 관리인에서 이집트 총독 대리로 옮긴 것은 결코 승진이 아니었다. 이집트 총독 대리보다는 해남도와 명나라 남부의 지배자 대리인으로서 할 일이 훨씬 많고 권한도 컸다.
“앞으로 명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오. 그때 족장들이 선택을 해야 할 것이오.”
“저희들은 무조건 전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전하께서도 저희들을 믿어주십시오.”
족장이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쳤지만 배반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만약 중국 남서부에 소수민족들이 나라를 세울 만한 땅이 생긴다면 이를 두고 소수민족들끼리 싸우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묘족 족장이 역시나 한 마디 했다.
“퉁족은 그렇다 치더라도 투자족은 명나라에 붙어먹어 비슷한 처지의 소수민족들을 핍박한 족속입니다. 저들을 조심하십시오, 전하.”
“알고 있소.”
족장이 퉁족은 도망을 잘 가느니, 투자족이 한족의 앞잡이라느니 하는 욕을 해댔다. 이민호는 가끔 맞장구를 쳐주면서 묘족 병사들의 상태를 살폈다. 큐슈에 주둔하거나 해남도에 거주하는 묘족처럼 싸움 자체는 참 잘하게 생겼다.
“전하! 고산국 병사들이 익혔다는 무공이 있지 않습니까? 권법과 검법, 창법, 총술 등이 수록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저희 묘족들도 배울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규화보전 말이오? 한자로 된 책을 몇 권 전해드리겠소.”
“아!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벌써 강병이 된 것 같습니다.”
제목이야 이민호가 장난스럽게 지은 것에 불과했고, 훈련병들이 익히는 야전교범에 가까워 딱히 비밀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고자가 되어야 배울 수 있다거나 수련할수록 신체가 여성화되는 것도 물론 아니었다.
규화보전에는 다양한 무술이 정리가 잘 돼 있어 이민호도 권법과 검법을 조금 배웠다. 총술 부분에서 사격술과 총검술은 이민호가 작성했다. 총검을 착용한 채로 보병방진을 짜는 진법 비슷한 것도 수록돼 있어서 이것을 합격술로 볼 경우 얼핏 보면 무공비급과 유사했다.
귀주성을 떠나 광서로 향했다. 대열 중간에 자리 잡은 묘족은 악단과 함께 즐겁게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즐겁게 행군했다. 묘족과 관계가 나쁜 퉁족과 투자족은 후미에 배치됐다.
열두 살부터 노래를 배우며 자작곡을 지어 여자에게 청혼하는 풍습이 있는 투자족도 노래라면 밀리지 않았다. 고산국 군악대가 침묵을 지킨 가운데 묘족과 투자족이 노래 대결을 하며 전혀 심심치 않게 행군했다.
관도를 따라 남동쪽으로 이틀을 행군하면서 부이족(布依族) 집단 거주지에 접어들었다. 부이족은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이 파란 옷을 입는 것이 특징이었고 모자 장식이 특히 화려했다.
그러나 부이족은 언어와 인종이 퉁족과 거의 같아서 말이 서로 통할 정도였다. 타이 족의 말과 거의 같기도 했다. 기원전부터 귀주 지방에서 벼농사를 지으며 살던 유서 깊은 종족이라고 했다.
“고산국 국왕전하를 배알합니다. 저는 부이족 검남 마을의 장로입니다. 그 동안 입은 은혜를 갚는 의미에서 전하와 군사들께 대접을 하고 싶습니다. 단 열흘만이라도 머물러 주십시오.”
“손님 대접이 훌륭한 것 같소. 하지만 민폐를 끼칠 수 없으니 은으로 음식 값을 지급하겠소.”
“아쉽더라도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저희 종족도 전하의 군대에 참가할 수 있는지요? 저희 종족은 오크남 대인이 금과 은을 바꾸던 시절부터 고산국에 협력해왔습니다.”
“물론이오. 가능하다면 보병 천 명을 내시오. 한 달 안에 돌려보내 주겠소.”
귀주성에 들어온 이래 도적은 단 한 명도 잡지 못했으나 퉁족, 투자족, 묘족, 부이족까지 3,500명의 군세를 얻었다. 큐슈에 주둔했던 묘족 병력 일부까지 총 4천의 소수민족 전사들이 이민호 휘하에 들어왔다.
도적을 잡고 반란을 진압하는 것보다 아군을 늘린 것이 더 기분이 좋은 이민호는 사흘 동안 부이족 밀집거주 지역에 머물며 축제를 즐겼다. 옥남이나 왕명명이 추정했던 비 한족 인구 6백만 이상이 앞으로 고산국과 협조하게 됐으므로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병력 몇 천은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했다. 귀주성 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 자체는 적더라도 중국 남방에서 살아온 대다수 소수민족들이 거점을 가진 곳이 바로 이곳 귀주였다. 대리국과 관련된 자칭 백인(白人) 바이족, 티베트-버마 계열의 리수족 등의 종족들은 거주지가 멀어서 직접 가담을 못하고 전령을 보내왔다. 운남에 사는 강족의 후예 이족에서는 정령신앙을 모시는 사제 비마우를 보내 군대 전체에 축복을 해줬다.
“분위기가 이래서야 이 지역 사람들이 죄다 눈치 챘겠어요. 우릴 감시하는 간세가 명나라 조정에 보고하기 전에 얼른 왕도로 돌아가요.”
“뭘 눈치 챘는데? 헤헤! 그럼 좀 어때.”
부이족 미녀가 따라주는 달짝지근한 과일주를 연거푸 마시고 알딸딸해진 이민호가 밤하늘에 빛나는 은하수와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모닥불과 부이족 악사가 연주하는 호금 소리에 취한 채 민지에게 되물었다. 민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이 술을 못 마신다는 사실을요.”
내외 호위대장 민지와 민정이 이민호의 양 어깨를 부축해서 장갑차 안으로 옮겼다. 이 시대에 장갑차 탑승공간만큼 안전한 곳도 없었다. 그런데 너무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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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전자책 편집 때문에 연재가 늦춰지고 있습니다.
내일까지 하루 정도만 더 하루 한 편만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