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80화 (729/1,000)

00780  86. 1607년  =========================================================================

예조 판서를 유럽에 보냈을 때 고산국이 에스파냐로부터 남미 대륙을 매입했다는 소식이 유럽 전체에 알려진 다음이었다. 예조 판서는 프랑스 국왕과 네덜란드 총독을 직접 만나 남미대륙 북동부 해안지대의 국경선 획정 조약을 비교적 순조롭게 체결했다.

기아나 정착지를 지키기 위해 고산국과 전쟁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프랑스나, 수리남 정착지를 포기하고 남미에서 물러나려던 네덜란드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남미 식민지는 대서양을 통해 본토와 연결돼야 지킬 수 있는데, 고산국 해군을 피해 본토에서 식민지를 지원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결국 두 나라는 고산국에서 제시한 국경선과 몇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고 국경 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고산국이 제안한 면적은 기존 정착지 혹은 두 나라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넓었다. 해안선 300km에 내륙으로 40km가 네덜란드령 수리남, 그리고 프랑스령 기아나로 고산국에서 가져간 지도에 표시돼 있었다. 해안지대의 비옥한 토지를 이용해 사탕수수를 재배하려던 두 나라는 예상보다 훨씬 넓은 면적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추가로 제시한 조건은 받아들이기 약간 애매했다. 원주민들을 학살하거나 추방하지 말고 식민지의 주민으로 받아들일 것,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매입하지 말 것, 이 두 가지였다. 적도 인근의 토지를 활용해 설탕을 얻고 싶으면 자국에서 농민들을 보내 직접 사탕수수를 재배해야 했다.

그러나 뜨거운 적도의 태양 아래에서 말라리아와 황열병에 죽어 나가면서 노동집약적인 사탕수수 농업을 하고 싶어 할 북유럽 농민은 별로 없었다. 자연스럽게 노예에 눈을 돌리게 될 수밖에 없는데 국경조약이 강력하게 가로막았다.

대신에 두 나라의 식민지가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할 때 고산국이 군사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정착 농민들을 위한 예방접종과 의료지원도 고산국에서 보장했다.

에스파냐와 잉글랜드의 공격으로부터 정착지를 지키기에도 급급하던 두 나라는 얼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조약 내용을 대내외에 공표했다. 이 조치만으로도 에스파냐와 잉글랜드가 두 나라의 남미 식민지를 공격할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

“유럽에서 설탕 가격을 높게 유지하면서 가격 결정권을 계속 주인님이 보유하려는 계획인가요? 노예 노동으로 인한 여러 상품들의 비정상적인 가격 하락을 막으려는 목적도 있죠?”

“그럴듯한 분석이긴 한데, 설탕을 비롯한 상품 가격 유지만이 목적은 아니야. 노예 노동을 이용하더라도 농기계를 활용하는 고산국보다야 당연히 비효율적이겠지. 우리하고는 아예 가격 경쟁이 안 되거든.”

“그럼 흑인 노예무역을 붕괴시키려고요?”

“그렇지. 그래야 남미를 더 천천히 개발할 수 있으니까.”

혜영과 대화한 것처럼 아프리카 서해안의 노예무역을 붕괴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포르투갈령 브라질과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남미 식민지, 쿠바 등 카리브 해 식민지로 판매되던 흑인 노예들이 이 조약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북미에서 흑인노예를 수입하지 않은 탓에 노예무역의 규모가 더 이상 커질 일은 없었다.

그리고 고산국에서 처음 사탕수수를 재배할 때 수확기에 이민호를 비롯해 왕실 사람들이 총동원돼서 낫으로 수숫대를 베거나 묶어서 설탕 공장으로 옮기는 일을 했다. 목화밭에서 목화를 딸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상징적인 왕실의 노동이었지만 그 장면이 초등학교 교과서 삽화에 고스란히 실려 있는데, 사탕수수 재배가 대표적인 노예 노동의 하나로 인식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미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원주민들을 임금 노동자로 고용하도록 강제하는 조건이군요. 그것도 저임금으로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임금을 주게 하려는 거죠?”

“그렇지. 식민지 원주민들이 먹고 살게 해줘야지. 임금이 너무 낮으면 원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고산국 영역으로 이주하게 만들어야 해.”

“현재 흑인노예 가격이 너무 낮아요.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일을 시켜요. 그리고 노예가 죽으면 새로 사는 편이 훨씬 싸게 먹혀요.”

“맞아. 노예 가격이 적당히 높아야 노예가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노예가 비싸야 노예들이 후손도 볼 수 있고 정착이 가능해.”

비참한 현실이지만 현재 노예 가격이 너무 싸서 생기는 문제가 많았다. 노예무역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재 아프리카 서부의 노예무역에 개입된 나라가 한둘이 아니었다.

포르투갈이 가장 주도적인 노예상인이었고,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가 대서양 노예무역에 연관돼 있었다. 심지어 덴마크도 노예시장을 기웃거렸다가 이민호에게 호되게 비난을 받고 그만 두었다.

현재 콩고 강 유역을 장악한 므부투가 적도를 넘어 기니 방향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오요 제국으로 발전하는 요루바를 비롯해 노예사냥으로 번성한 강력한 흑인 국가들이 버티고 있어서 아직 서아프리카의 노예시장을 직접 위협할 거리에 이르지 못했다. 다만 아프리카 왕국이 장악한 방향으로 노예사냥꾼들이 감히 진입하지 못하게 됐다.

므부투가 이끄는 군대가 비록 단발총으로 무장했다지만 기병이 주력인 요루바나 기타 흑인 국가들과 싸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재 므부투는 기병부대 규모를 확대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고산국에서는 페르가나 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기병연대에서 밀려난 말을 아프리카 왕국에 공급했다.

“아프리카는 므부투가 알아서 잘 하고 있지만, 포르투갈의 브라질이 문제네요.”

“그래. 브라질 서쪽 경계선을 더 이상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노예무역을 쇠퇴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야.”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를 대량으로 매입해서 브라질 식민지를 개척하고 있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에서 규정된 서경 43도 37분을 넘어 서쪽으로 빠르게 확장하는 것도 저렴한 흑인노예들 덕에 가능했다.

포르투갈 식민 개척자들은 흑인노예를 매입하는 외에도 노예사냥꾼들이 내륙 깊숙이 진입해 사로잡아 온 남미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다. 반데이라스, 혹은 반데이란테스들은 1620년대에 조직됐지만 그 전에도 개척민들에 의한 노예사냥은 흔한 일이었다.

예조 판서가 유럽에 간 동안 대서양 탐사전단, 태평양 탐사전단, 시베리아 탐사단, 북미 탐사단 지휘관들을 급히 왕도로 소집했다. 남미 탐사단을 조직하고 훈련시키기 위해서였다.

“나눠준 지도를 봐. 이번에 에스파냐로부터 남미를 매입했다. 땅은 내 소유로 돼 있지만 앞으로 고산국 백성들이 살아야 할 땅이다. 물론 원주민들도 백성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그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덕택에 저희들에게 일감이 잔뜩 늘어나게 됐습니다.”

그러나 탐사 조직 지휘관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미지의 땅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렇다. 문제는 앞으로 3년 내에 에스파냐로부터 남미 대륙을 인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탐사 조직을 만들 때 항상 하던 대로 해야겠지.”

“예. 탐사단 예하 부대 일부를 떼어서 새 탐사 조직을 만드는 것은 간단합니다. 빈자리는 신병들을 모집해서 훈련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남미는 악어나 뱀, 독충 등이 많아 꽤나 위험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슷한 기후대에서 더 많은 훈련 기간이 필요합니다.”

“훈련지로는 베네수엘라가 가장 적당하겠지.”

새로운 남미 탐사단장에는 대서양 탐사전단 소속 베네수엘라 탐사전대장이 승진 임명됐다. 몇 년 전에 북미 탐사단에서 미시시피 강 서쪽 미주리 강 탐사대장으로서 로키산맥 정상을 넘어 태평양까지 도달했던 유능한 인물이었다.

북미 개척 초기에 호전적인 원주민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면서 용감무쌍하게 미지의 땅으로 돌격하던 과감한 지휘관들은 이미 모두 전사했다. 그들과 정반대로 교역과 선물 제공 등을 통해 원주민들과의 호의를 쌓아 탐사에 활용할 줄 아는 주도면밀한 자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아마존 강 유역에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아나콘다나, 5미터나 되는 피라루쿠, 떼를 지어 말을 뜯어먹고 단시간에 백골로 만들어버린다는 피라냐라는 물고기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60년 전에 에스파냐 탐험대가 남긴 수기에도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충과 유독한 공기가 흘러나오는 연못 같은 것이 현실적인 장애가 될 것입니다.”

“피라냐 같은 것은 사실로 안 믿어?”

“그거야 탐험가들이 흔히 하는 과장 아니겠습니까? 다만 남미 악어나 아마존 수달은 아주 큰 종류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민호가 입구에 서 있는 호위병에게 신호를 보냈다. 곧 문이 열리고 수조 하나가 바퀴 달린 운반대에 실려 들어왔다.

“이것은 이빨이 달린 피라냐 여러 종류 중에서 하나야. 길이는 30cm가 넘지 않아.”

호위병이 수조 위에서 닭 튀김집에서 자주 보는 털 뽑은 생닭 한 마리를 떨어뜨렸다. 생닭이 물에 잠기는 동안 30마리의 피라냐들이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생닭이 바닥에 닿기 전에 이미 허연 뼈만 남았다.

“봤지? 물에는 안 들어가는 게 좋아.”

“예, 전하.”

대답하는 탐사단 지휘관들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그 다음에 등장한 5미터에 달하는 피라루쿠 박제를 보곤 지휘관들이 아예 입을 다물었다. 10미터짜리 아나콘다도 있다고 봐야 했다.

남미 탐사단은 다른 탐사단에서 1~2개 탐사대를 통째로 받아들이고, 그 외에 전국적으로 모집한 신병, 혹은 다른 부대에서 지원한 병사들을 훈련시켜 조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탐사단은 군인들 외에 모험가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인원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고산국에서는 전쟁이 자주 일어나지 않고 대규모 전쟁에는 주로 용병이나 협력 부족들이 투입됐다. 더구나 전투에 나서더라도 금방 끝나버리는 바람에 실전 경험은 군보다 탐사단이 훨씬 더 많았다. 북미나 시베리아의 오지를 탐험하다 보면 온갖 인간과 생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탐사대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현재 탐사대원들은 그런 위협에서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남미가 본토에서 좀 멀어. 가족은 어떻게 할까? 일 년에 6개월 단위로 근무하든지, 가족을 베네수엘라에 두고 자주 왕복하는 방법이 있어.”

“아내들이 자식 교육 문제 때문에 임지로 오려는 경우가 드뭅니다. 가족 수당을 받더라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전하. 애써 베네수엘라 같은 오지에 교육과 주거시설을 갖추는 것보다는 가족이 안전한 왕도의 집에 있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도 신혼인 대원들은 되도록 부부가 같이 붙어 있는 편이 나을 거야. 신병들에게 근무행태 선택을 강요하지 마.”

“대원들에게 강요하거나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전하.”

가족 수당은 탐사대원이 받는 수당이 아니라, 그 탐사대원의 가족들이 받는 수당이었다. 오지에서 근무하는 탐사단, 기상대 직원, 군인 등의 가족들 개개인이 가장이 격오지에서 근무하면서 집을 비운 동안 추가로 받거나, 아예 가족 전체가 오지로 이사해서 사는 동안 받았다.

탐사대원의 위험수당은 훈련 중에는 봉급의 두 배, 작전 중에는 다섯 배 정도가 지급됐다. 원주민들과 전투가 발생할 경우 생명수당을 지급하려 했으나, 혹시라도 일부 탐사대원들이 생명수당을 타기 위해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경우가 생길까봐서 아예 없앴다. 원주민들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탐사단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으므로 선물을 뿌리는 방법으로 인해 전투는 자주 발생하지 않았다.

“나이 들어서 탐사대에 남기 위해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해. 나이 40에 달하면 웬만하면 보병으로 옮기는 편이 피차 좋아.”

“탐사대는 30대가 가장 왕성한 시기라서 겨우 10년 활용하고 보병에 넘기게 되는 셈입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마흔 살 넘으면 훈련교관 말고는 탐사대에서 할 일이 없으니까 할 수 없지.”

대신 일반 보병부대에서는 야전 생존능력이 출중한 부사관들을 얻게 된다. 이들이 다른 부사관이나 병사들에게 가르치고 실전을 이끈다면 이민호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든든했다.

탐사대와 비슷한 특수전 부대로서 특전대대가 쓸 만한 부사관들을 일반 보병부대에 공급하는 주요 원천이었다. 정찰이나 적지에서 공작하는 것이 주요 임무인데 오랫동안 훈련만 했지 지금까지 전쟁에서 제대로 활용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탐사대와 인적 교류를 통해 실전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요즘 항공 기동부대, 그러니까 수송기에 탑승했다가 활주로에 내려서 보병으로 활동하는 연대 규모의 부대 편성이 한창이었다. 이 항공연대는 특전대대에서 차출한 인원들이 핵심을 담당했다. 낙하산으로 적지에 투입되거나 헬기에 탑승해 지상 작전을 수행하는 공중강습부대를 창설하고 싶었으나 현실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해병대는 해군 소속으로서 대서양 함대와 태평양 함대에 각각 연대 규모로 창설했다. 1개 연대에서 지상 상륙부대는 3천 명, 함상근무자는 2천 명 수준으로서 일정 기간마다 지상과 함상에서 교대로 근무했다. 이민호가 요구한 수준의 수륙양용장갑차를 국방연구소에서 아직 제작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1개 대대는 기병으로 활동했다. 대사관 경비 임무를 용병 대신 해병대에게 맡길 계획이었으나, 아직은 훈련과 조직 유지도 벅찼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탐사대의 장래 임무 이야기로 이어질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