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795화 (744/1,000)

00795  88. 1609년  =========================================================================

“사언 자네가 대동법의 문제점을 보완하라고 조정에 요구했다면서?”

“그래. 전에 통지 자네가 충고한 대로 정책을 무작정 반대하는 것보다는 사전에 문제점을 파악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고민하기로 했네. 그게 이번 선혜법의 보완 규정으로 마련된 거지.”

“대동법의 성공을 위해 자네도 크게 기여했구먼. 어땠어?”

백성들을 위한 정책이면서도 경기도 지주 양반들은 물론 농민들도 절반 이상이 반대한 제도가 대동법이었다. 그것은 다른 지역으로 확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지주 양반이 아닌 농민의 반발이 확대 실시를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로 작용했다.

“아직은 절반의 성공이야. 방납에 관계하는 아전들, 그리고 공물주인이나 지주들의 대표나 다름없는 대신들의 반발은 어느 정도 억누르고 있네. 그리고 쌀이 많이 나는 지역에서는 공물 대신 쌀을 약간 바치는 것으로 끝내서 매우 만족하고 있어. 하지만 역시나 예상한 대로 쌀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공물을 쌀로 대체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가 되고 있네.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나?”

“방납용 쌀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운송비 부담이 들어서 아깝다고 생각하겠지. 쌀은 무거워서 강변 지역이 아닌 내륙지역에서는 쌀 운송비가 쌀값에 육박할 거야.”

“잘 봤네. 예전보다 부담이 확 줄어들더라도 남들보다 두 배나 내려니 배가 아플 거야.”

쌀이 부족한 지역에 거주하는 농민들이 말로는 대동법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예전처럼 많은 부담을 떠안고 말겠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그저 남들처럼 공평한 조세 부담을 하길 원했다.

“그렇다면 쌀 대신 화폐로 대체해야 하는데 조선에서 쌀 다음은 면포 아닌가? 면포는 가벼워서 운송비가 적게 들 테니 면포 값을 정해서 쌀 대신 내라고 하게.”

“면포로 내려면 여자들이 하루 종일 물레질만 하고 앉아 있어야 하네. 물론 고산국에서 면포를 사서 화폐 대용으로 유통하면 되지만, 중간에 다 헤지면 가치가 떨어질 거야.”

오승포가 기준인데 어느덧 삼승포가 되고, 깨끗한 면포는 남기고 다 헤진 면포가 유통됐다. 이런 식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이야기는 조선의 면포 유통에 고스란히 적용됐다.

“면포도 실물 자산이면서 생활필수품이긴 하지만 사실 유통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아. 굳이 쓰겠다면 헤지지 않게 포장을 단단히 해주겠네. 그렇게 조선 조정에 알려주게.”

“고맙네. 조정 대신들이 아주 좋아할 걸세. 헌데 고산국처럼 돈을 주조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겠는데 말이야. 옛날에 원나라의 저화 때문에 원나라는 물론 고려까지 같이 망한 기억이 있어서 사대부들이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네. 그래서 고산국처럼 재료 자체가 가치를 갖는 금화나 은화를 쓰면 어떨까 논의 중이야.”

설마 조선에서도 고산국 금화와 은화를 쓰겠다고 할까봐 이민호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조선의 경제 규모에서 그런 고액 화폐는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가만히 놔둬도 조만간 조선에 화폐가 도입될 시기였다.

“나도 돈 문제 때문에 골치 아프다네.”

“아니, 명나라 천자에 이어 천하에서 두 번째 부자라는 자네가 돈 때문에 골치 아프다니 말이 되나?”

“재산과 돈은 다른 문제니까.”

이민호가 명나라 황제보다 더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직접 그렇게 말하는 자는 드물었다. 국가나 왕실이 아닌 이민호 개인 재산은 땅을 빼고도 그 누구도 추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말이야. 사언! 내가 솔직히 말하겠네. 조선에서는 1결당 전세로 쌀을 겨우 네 말밖에 안 걷네. 전세 부담은 극히 적어.”

“최소한 전세만큼은 요순시대가 부럽지 않다네.”

“전세 문제에서 조선 사대부들이 자부심을 갖는 건 좋아. 하지만 전세가 적은 대신 다른 세금이 늘어났네. 군역을 직접 수행하지 않고 대립한다면 30말에서 40말이 필요해. 그런데 공물은 평균적으로 50말 수준이었는데 공납이 문란해지면서 1결당 부담이 최대 100말에 달하고 있어. 이게 모두 농민의 부담이라네.”

“그래서 선혜법을 실시하자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전들은 무급이 원칙이라 앞으로도 어떻게든 문제가 될 걸세. 먹고 살라고 고을 수령들이 어느 정도 비리를 눈감아주긴 하는데 정도가 심한 자들이 있네.”

“이렇게 봐주고 저렇게 봐주면 결국 백성들만 온전히 부담을 지게 되네. 그런 식이면 대동법이 무슨 소용인가? 아예 공물을 없애고 전세로 통일해서 받는 편이 나을 거야. 아전들에게 정식으로 녹봉을 지급하고 말이야.”

조선의 자작농 입장에서 세금으로 1결당 겨우 네 말을 내는 대신, 임금님에게 바치는 지역 특산물인 공물을 대리 납부하는 가격으로 세금의 12배 혹은 25배를 바치는 꼴이었다. 그 외에 요역이나 군역도 몸으로 때우는 대신 쌀이나 베를 바치는 추세로 바뀌는 추세이므로 실제적인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있었다.

시대에 따라 1결의 면적이 달라지는데 농업기술의 향상에 따라 시대가 지날수록 면적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세종 이후 효종 4년에 토지를 측량할 때 사용하는 길고 짧은 자의 길이를 통일하기 전인 이 시대에, 1등전 1결의 면적은 3천 평, 6등전은 1만 2천 평이었다.

고려시대에 상등전의 수확량은 마지기당 1~2가마 정도였다. 이앙법과 관개농법이 확산된 조선 후기에 한 마지기당 소출량이 3가마 정도로 추산되므로 1결당 60가마 정도의 소출이 기대된다.

여기서 전세로 쌀 네 말을 낸다면 전체 수확량의 1퍼센트 약간 넘는 정도라서 결국 상징적인 의미밖에 남지 않는다. 국가가 따로 수익사업을 운영하지 않는 조선에서 전세만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었다. 전세로 걷은 세곡은 조운선을 통해 마포 광흥창으로 옮겨져 주로 한성에서 일하는 문무백관들에게 늠료로 지급됐다.

“험! 험! 전세를 많이 걷는 것은 학정을 하고 있다는 증거일세. 그 어느 임금이나 정권도 전세를 더 많이 걷자는 주장은, 단정적으로 말하지. 못하네!”

“체면 때문만이 아니라 지주 양반들의 극심한 반대가 두렵겠지. 결국 세금은 적게 걷히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있네. 중간에 줄줄 새는 세금이 어느 입으로 들어가는지 자네는 알고 있겠지?”

“나도 같은 양반으로서 몹시 부끄럽네.”

전세는 지주의 수입을 줄이는 효과가 있으므로 지주 겸 양반들이 정권을 잡은 조선에서는 쉽게 늘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호와 인정을 기준으로 수취를 하는 부역과 군역, 공납이 점차 늘어나게 되고, 그럴수록 인구 구성비가 높은 농민들에게 부담이 가중되었다. 공납 중간에 줄줄 새는 시스템적 낭비도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부담이 가중되었다.

대표적인 폐단이 그 지방에서 나지 않는 공물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전라도의 공물로 강원도 매를 내라고 배정하면 쌀을 이고지고 강원도에 가서 매를 잡거나, 사서 내야 한다.

또한 관아에서 꿀 등 토산품을 공물로 받을 때 다시 양을 재는데, 이때 관아의 되나 말이 시중의 도량형과 달랐다. <쇄미록>에도 부족한 공물의 양을 채우라고 아전들로부터 채근을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급 봉사직인 아전들이 구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보니 공물을 납부하는 과정에서 공물 값보다 훨씬 많은 가치의 뇌물이 오고가게 돼 있었다.

“그러다가 명나라처럼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 조선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어렵다 해도, 정치 때문에 살기 어려워질 때마다 도둑이 횡행했었지.”

“임꺽정 말인가? 문정왕후 때문에 정치가 엉망일 때였지.”

“그리고 왜란이 끝난 직후에 충청도에서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나? 물론 중간에 흐지부지됐지만 말일세.”

“어리석은 일이었지.”

백성들이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중앙에 개혁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다른 생각을 하게 되거나 직접 움직이게 된다. 이몽학의 난이 일어난 과정을 보면 명나라에서 매년 초여름에 반란이 일어나는 반란이 이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는 대동법 도입이 실패해서 이대로 조선이 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조선이 망하면 고산국으로 이민 올 사람들이 많아지겠지. 고산국 입장에서는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야. 그렇지 않나?”

“비정한 현실이지만 그렇지. 하지만 조선은 양반 사대부의 나라라네. 양반들은 결코 특권을 내려놓지 않을 걸세.”

“그게 문제야. 양반 사대부들이 먼저 욕심을 줄이라고 하게. 지주 양반들이 하는 꼴을 보면 마치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애쓰는 국가반역자 수준이야. 조선이 망하기 전에, 다른 나라에게 조선을 넘겨주기 싫어서라도 고산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면 어쩔 텐가?”

“자네 신하들 중에 그런 무도한 말을 하는 자가 있던가?”

안방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고산국 군대가 강하긴 했지만 숫자가 적어서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강력해지고 숫자까지 많아졌다.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꼴을 본 안방준은 고산국이 한참 앞서나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동원 가능한 총병력은 여전히 조선이 비상식적으로 많았지만, 상비군으로 따지자면 고산국이 약간 앞섰다. 1593년 1월에 명나라에 보고한 조선군 동원 현황에, 전시인데도 불구하고 현역으로 부대 편제에 들어온 병력이 전국을 통틀어 겨우 17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조선이 잘못되더라도 고산국이 조선을 병탄하려고 나서지는 않을 걸로 믿고 있네. 국왕 자네도 조선과의 관계에서는 몹시 조심스럽지 않았나?”

“예전에는 그랬지. 고산국 군대에서 총을 가진 자들이 용병 일부 빼고는 죄다 조선 출신이었으니까. 조선과 전쟁을 할 경우 내가 만든 총에 내가 맞게 생겼었어.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알겠나?”

일부 조선 출신 중년들이 여전히 군대에 남아있었다. 기병연대 하급 지휘관들 중에서도 조선 무과급제자 혹은 응시자가 임시로 복무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민호가 아군에게 저격당할 염려가 사라졌다.

지금은 이민호가 직접 전쟁터에 나가서 군대를 지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장군들이 충분히 전략과 전사를 공부하고 참모본부가 뛰어난 인재들로 채워진 지 오래였다. 참모본부에서는 젊은 참모들이 비록 도상연습에 불과하긴 했지만 조선을 대상으로 삼아 전쟁 연습을 한 적도 있었다.

“음. 알겠네.”

“시대가 흘러서 고산국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이 병사와 초급 장교를 맡고 있네. 외국인 용병도 충분히 많아.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조선과의 관계가 희미해질 거야. 그리고 내가 죽고 나서는 조선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네.”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겠네. 고맙네.”

안방준이 조선으로 돌아가고 나서 대동법 확대 정책이 급물살을 탔다. 안방준을 비롯해 대동법을 극력 반대하던 서인 세력이 찬성으로 급선회한 탓이었다.

죽 쒀서 개 주지 말자는 말이 조선 양반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다는 보고를 정보국으로부터 받은 이민호는 안방준이 다시 고산국에 오기만 별렀다. 생각은 다르지만 말이 통하는 학자 친구를 위해 여러 가지 선물을 미리 준비해두었다. 유럽의 철학과 신학 서적을 고산국과 조선에 소개하기 위해서는 편집자인 안방준이 먼저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다.

물론 안방준을 은근하게 협박한 것과 달리 이민호는 조선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가능성 자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합심해서 이민호에게 나라를 들어 바친다면 몰라도, 강제로 병합할 경우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생기고 같은 말을 쓰는 자들이 저항세력이 된다면 그것은 차라리 악몽이었다.

고산국에서는 조선을 혐오하는 자들이 많았다. 조선에서 매우 어렵게 살다가 고산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나, 비슷한 인적 구성을 가지면서도 고산국처럼 발전하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자들이었다. 일종의 동족 혐오가 강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동시에 고산국과 조선이 같은 핏줄이라는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외국인, 혹은 북미 원주민들이 고산국 백성으로 받아들여지더라도 절반 이상은 여전히 조선의 핏줄이기 때문이다.

“불쌍한 조선 백성들을 생각한다면 주인님이 조선을 도모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거여요.”

“조선 백성들을 구해주기 위해 조선 백성들을 대량으로 죽이는 모순을 몸소 실행해 보고 싶지 않다.”

특히 조선 문제에서 혜영과 이민호에게 시각차가 많이 드러났다. 혜영은 조선 사람들을 위해 조선을 공략하길 원했으나, 똑같은 이유로 이민호는 전쟁보다는 공존을 택했다.

루스인 궁녀 에바와 올가는 튜멘에 주재하면서 서부 시베리아와 토르구트 족, 그리고 루스 차르국과의 연락 업무를 담당했다. 명색이 궁녀인데 하는 일이 어쩐지 총독과 비슷했다. 다만 결정권이 없고 왕도에 보고를 우선할 뿐이었다.

둘과 교대로 튜멘과 왕도를 오가며 근무하는 이리나와 율리아는 현재 왕도에 머무르며 왕립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루스인 궁녀들은 이제 억양 약간 빼고는 조선말을 아주 능숙하게 했다.

“폴란드가 조용한 것이 신기하네.”

“주인님의 위엄을 알고 나서는 몸을 사리는 것 같아요. 스몰렌스크에서 약간의 분쟁이 발생했는데 모스크바에서 군대를 지원하자 폴란드 군은 바로 퇴각했어요.”

실제 역사에서는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스몰렌스크를 장기간 포위하다가, 모스크바에서 지원 보낸 군대를 격파한 다음 모스크바에 입성한다. 이후 폴란드 국왕 시기스문드 3세의 아들 브와디스와프가 차르로 추대되지만 시기스문드가 직접 차르로 즉위하려는 욕심을 냈다가 죄다 잃고 만다.

그러나 고산국이 개입한 이후 폴란드의 침공이나 스웨덴의 개입 등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차르가 된 표도르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자주 고산국에 사절단을 보내면서 고산국의 피보호국을 자처했다.

표도르는 위험한 시기를 잘 넘긴 다음 국내 정치부터 차근차근 장악해 나갔다. 표도르는 젊은 군주답지 않게 주도면밀한 편이었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어린 사자와 나중에 좋은 라이벌이 될 것 같았다.

“그것 참 다행이군.”

“주인님은 석유에만 관심을 갖고 계세요. 루스 차르국이나 토르구트 족에게도 신경 좀 써주세요.”

서 시베리아 남부를 영지로 받은 토르구트 족은 고산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이제는 제법 안정적인 유목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수도 및 겨울 야영지로 사용할 도시가 남쪽에 건설돼 처음에는 행정과 교육 기능에 치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노가이한국과 카자흐 여러 부족, 그리고 각지에 사는 코사크 공동체들과 교역을 하면서 도시가 꽤나 번성하게 되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토르구트 족의 약탈 대상이었을 주변 부족들은 교역을 하면서 더욱 많은 이익을 토르구트 족에게 남겨주었다.

“다들 알아서 잘 사는데 뭐. 나는 석유 다음으로는 이리나와 율리아에게 관심이 있어.”

“아유~ 능글맞으셔라.”

이민호가 둘을 잡아당기자 궁녀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안겨왔다. 근무시간에 집무실에서 딴 짓을 하기는 어렵지만 파릇파릇한 둘과 함께 잠시나마 노닥거릴 수 있었다.

1609년 한 해 동안 본토 출장이 21번인데 반해 북미를 비롯한 해외 출장이 겨우 두 번에 불과했다. 나머지 한 번은 새섬, 현대명 뉴질랜드였다.

관료들이 이미 충분히 훈련돼 있어서 이민호가 직접 움직일 일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래서 예전과 달리 북미 외에는 직접 가기보다는 관료들이 입안한 계획을 검토하고 승인해주는 일만 담당했다. 그것도 대부분 후궁들이나 혜영이 완벽하게 검토를 마친 다음이라 일 자체는 수월한 편이었다.

“심심해서 뭔가 음모를 꾸미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이에요.”

“북극과 남극을 정복할 생각을 하고 있었어.”

“너무 추운 곳이잖아요.”

이리나와 율리아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민호가 직접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항공대장 이면과 산악회 친구들이 히말라야 산맥 최고봉 등정을 노린다는 보고를 받고 내친 김에 3극 정복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가끔은 순수한 탐험이 국가나 새로운 영토를 정복하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일이었다.

장남 개똥이가 자기가 성인이 되는 일 년만 더 기다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이면이 냉정하게 거절했다고 들었다. 16세 성인이 되더라도 고산준봉을 등정할 만한 체력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면의 영향으로 열혈청년으로 자란 개똥이는 이상과 현실을 구별할 줄 알아야 했다. 지독한 말썽꾸러기를 예상과 달리 이면이 잘 가르치고 있었다. 사실 이면만큼 어렸을 때부터 말썽꾸러기도 드물었다.

============================ 작품 후기 ============================

조선에 대한 고민이 있지요. 그러나 전쟁으로 병합하는 일을 선택할 주인공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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