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04 90. 1611년의 문화외교 =========================================================================
“전하! 여쭤볼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해보세요, 총함장님. 통역은 잠시 쉬어라.”
이민호가 사절단 대표의 발언을 중단시키고 이순신의 질문부터 받았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에티오피아 사절단과의 회담보다는 이순신 한 사람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민호가 지시하자 아랍어 통역이 협상장에서 잠시 나갔다.
“비록 우리 해군이 수에즈 운하와 이어지는 홍해를 지켜야 한다지만 외국에서 돈을 받고 그 나라의 해안을 지켜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해군이나 육군이나 모름지기 군대는 자기 나라를 지킬 때 가장 강력한 법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어차피 홍해를 지켜야 하고, 홍해 주변에서 노략질하는 해적도 토벌해야 해서 그렇습니다. 해적 토벌 비용은 매년 에티오피아가 낸다지 않습니까? 어차피 홍해는 제대로 지켜야 합니다. 해군 증강과 건함 계획이 약간 앞당겨진 것뿐입니다.”
이순신은 자국의 군대가 다른 나라를 지켜주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국민개병제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는 조선에서, 국외로 나가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명나라와 동맹을 맺고 후금을 상대로 사르후 전투를 치르기 전이라서 다른 나라와 군사동맹을 맺고 외국에 원정 간 경험도 적었다. 물론 조선 초기에 명나라와 연합해서 여진족을 공격했으며, 함경도 군은 조선을 노략질하던 여진족을 상대로 두만강을 건너 수시로 반격에 나섰다.
이순신도 함대를 이끌고 나가 장강 하구 주산군도나, 안남과 명나라의 국경 주변에 할거하는 해적들을 소탕했다. 그러나 고산국 해군은 안전한 항로를 위협하는 해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움직였지, 돈을 받고 무력을 제공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민호는 어차피 할 일을 마침 돈을 내겠다는 국가가 있어서 계획을 조기에 집행한다는 입장이었다.
“돌이켜 보면 임진년에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준 상황과 비슷하겠습니다. 큰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돕는다는 것이 제 입장에서 무척 어색해서 그렇습니다.”
“국가간의 전쟁에서야 동맹국이 아니라면 중립을 지켜야겠지만 해적은 범죄자 집단 아니겠습니까? 에티오피아가 해적으로 인해 곤란하다니까 홍해를 지킬 겸해서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돈에 팔려가는 용병과 달리 국가간의 계약입니다.”
현대로 치면 미국이 한국과 동맹을 맺고 한반도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상황에서, 고산국이 바로 그 미국 입장이었다. 물론 한국도 국가안보를 위해 미국의 군사력이 필요하기에 주둔 부담금을 지불해서, 마치 한국이 미군을 용병으로 고용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일본을 이용해 러시아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것이 미국의 국가 전략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전초기지로서 한국이 쓸모가 있었다. 일본 본토 상륙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해안선이 너무 길어 지키기 어려운 일본 입장에서도 전방에서 지상전을 대신 치러줄 나라가 필요했다.
미국이 일본 열도를 방파제 삼아 태평양을 안전 해역으로 유지하려는 국가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은 일본을 밑에 둬야 했다. 일본은 필사적으로 한반도에 같은 편이 있기를 원하므로 자동적으로 한국도 미국의 국익에 극도로 예민한 지역이 되었다. 그러니까 한국이 한반도 주둔 미군에 분담금을 안 내도, 오히려 미군 주둔비를 한국이 받아도 미군은 한반도에 주둔해야 했다.
에티오피아가 원하지 않더라도 고산국 입장에서는 홍해의 해적을 토벌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적 토벌을 오만에게 맡기면서, 에티오피아로 달아나는 해적선을 끝까지 추격하지 못하게 막았다.
공식적으로는 에티오피아의 영토 주권을 보장한다고 변명했지만 예멘과 아라비아 서해안에서 쫓겨난 해적들을 에티오피아로 몰아낸 셈이었다. 결국 에티오피아 해안에 해적들이 우글거렸고 오스만 제국의 하베시 총독령에서 해적을 막아내느라 여념이 없게 됐다.
“그러고 보니 전하께서 전에 홍해 주변에 해적이 더 많아지면 해군 함선들을 파견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신이 나이가 들어 깜빡했습니다.”
“에티오피아 사절단은 모르는 이야기지요.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이민호가 씩 웃자 이순신이 혀를 찼다. 이순신은 이민호를 높이 평가하는 편이지만, 국왕이 돈을 너무 밝혀서 민망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순신도 임진왜란 와중에 수군의 군량을 마련하기 위해 소금을 구워서 팔고 물고기를 잡아 쌀과 바꾼 적도 있기에 이민호가 백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 조건을 마련해준 것이라서 조금 달랐다. 고산국 백성들은 넓은 땅 혹은 풍부한 일자리 덕택에 살 맛이 났다.
농가 하나가 조선에 비해 엄청나게 넓은 땅을 경작해야 했지만 밭갈이나 추수 같은 힘든 일을 기계로 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여덟 시간만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살 걱정 없이 저녁에 쉬고 주말에는 놀 수 있었다. 장애인이나 평생 음풍농월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시인묵객들에게 일을 안 해도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고산국은 천국이었다.
통역이 다시 들어오고, 해적 문제 말고도 에티오피아 사절단과 여러 가지를 논의했다. 수세니오스 황제는 로마가톨릭이라는 종교적 권위를 수단으로 삼아 제국을 통치하길 원했고, 귀족들 대부분이 기독교도라도 황제의 정책에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또한 포르투갈인들이 아달 술탄국을 물리치는 일을 도와준 이후 마치 점령군 행세를 하면서 에티오피아인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오스만 제국은 에티오피아 북부 해안 에르트리아 일부를 점령한 채 돌려주지 않았다. 현재 에티오피아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한 사절단 대표가 고산국 국왕 이민호에게 정식으로 요청했다.
“잦은 외침과 내란 등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백성들을 정치 외의 것으로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로마 황제가 불만에 가득 찬 도시 빈민들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해서 권력을 단단히 다졌듯이 말입니다.”
“빵과 서커스라. 고산국에 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소. 그보다는 외부 침략자들로부터 영토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소? 또한 아직 공중위생과 예방접종의 개념을 모르는 듯한데, 그런 의료체계부터 일신해야 유아사망률이 줄어들어 에티오피아의 미래가 밝을 것이요.”
“그런 장기적인 문제는 차차 해결해도 됩니다.”
“농지 관개사업은 어떻소?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할 일이 아니겠소?”
“관개사업이야 조상들이 다 해놔서 저희들은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좋은 나라요.”
현대 에티오피아가 세계적인 빈국이라는 인상이 이민호의 판단을 자꾸 흐려놓았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는 기원전부터 이어진 문명국이었고, 유럽 기독교 국가들과 꾸준히 왕래를 한 나라였다.
이민호는 가급적 에티오피아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홍해라는 중요한 항로가 통과하는 나라이며, 므부투의 아프리카 왕국 북쪽에 있어서 나중에 협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일단 전국에 놀이공원과 수영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청춘남녀들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수영장이 가장 핵심 사업입니다. 그러나 수영장이야 땅을 파서 만든다지만 고산국처럼 깨끗한 물을 항상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그보다 먼저 수도에 청년들이 즐길만한 놀이공원을 만들어주십시오.”
“고산국에 놀이공원이 있는 줄은 어떻게 아셨소?”
“유럽에서 발간하는 각국 박물지를 정기적으로 구해서 보고 있습니다. 고산국은 진정한 신세계더군요. 귀족들에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군함도 비행기도 아니고 바로 놀이공원이었습니다. 특히 그 청룡열차나 해적선이라는 놀이기구는 사람을 아주 미치게 한다더군요. 이번에 모처럼 고산국에 왔으니 시간을 두고 실컷 즐겨 보려 합니다.”
언젠가 외국에 플랜트를 수출할 것을 예상하긴 했었다. 그러나 공장 같은 산업시설이 아니라 놀이공원을 먼저 수출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놀이공원과 수영장을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에 놀랐다.
“알겠소. 먼저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 황권이 반석 위에 올라야 다른 정책을 추진하기도 쉽겠지요. 공조와 예조에 일러 에티오피아 백성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놀이공원 시설을 만들어보겠소. 전기는 자체 발전기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오.”
“감사합니다, 전하. 그리고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게 음향학적으로 정밀하게 설계된 극장을 지어주십시오. 단원들의 교육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생활백과를 발간하면서 여러 가지 건축물들을 소개하는 장에 극장의 공간이 왜 다른 건축물들과 달라야 하는지 설명한 적이 있었다. 극장의 넓은 공간은 무대에서 나는 소리가 관객들에게 가장 잘 들리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소리의 반사와 방음에 한해 이 시대 상식보다 한참 앞서 나갔다.
“에티오피아가 부유한 것은 알겠는데, 이것들을 단기간에 건설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 것이오.”
“말씀처럼 에티오피아는 부유합니다, 전하.”
“끙! 알겠소. 긴급히 추진하도록 지시할 테니 담당 판서들과 협의하시오.”
먹고 살기에 급급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유서 깊은 에티오피아는 생각하는 것이 아예 달랐다. 비록 정치적 목적이 다분하긴 했어도 백성들이 즐겁게 살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은 것으로 여겨서. 에티오피아에 최대한 협력하기로 했다.
초여름 어느 날 꼭두새벽부터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왕궁에 쳐들어왔다. 순양함의 진수식 행사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외출을 준비하던 이민호가 깜짝 놀라서 천재 천문학자의 갑작스런 방문을 맞이했다.
중순양함은 초기의 자잘한 설계 및 시공상의 문제점을 계속 고쳐나가고 조선소 기술자들의 능력도 향상돼서 이제는 일 년 만에 한 척씩 뚝딱 만들어냈다. 한국의 조선소에서는 무장과 전자 장비를 제외한 군함의 껍데기 정도는 단 몇 달에 만들어냈다.
현재 새로 건조 중인 홍해 작전용 순양함은 더운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 선내 냉방장치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설계하고 있었다. 함명을 황제 이름으로 해달라고 에티오피아에서 강력히 요청해서 수세니오스 1세로 명명될 예정이었다.
“전하! 태양 흑점 관측에 관한 제 연구결과를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유럽에 있지 않다 보니 제 반응이 느려서 몇몇 학자들은 오히려 제가 표절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습니다.”
“갈릴레오! 그게 무슨 소리요?”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진정시키려 했으나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독일 프리시안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파브리쿠스와 다비드 파브리쿠스 형제가 1611년 2월의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파브리쿠스는 라틴어화한 이름이고 독일식으로 파베르라 칭했다. 형제는 망원경으로 흑점을 발견하고 이동하는 것까지 관측해서 발표했다.
“그런데 더 문제는, 크리스토프 샤이너라는 수사도 자기가 먼저 태양 흑점을 발견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백작이 유럽 학계에 가장 먼저 발표했는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소.”
물론 태양 흑점은 중국과 한국에서 먼저 발견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이집트나 마야제국 등 천문관측을 중시하거나 태양숭배 사상이 있는 지역에서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흑점을 관측했다고 봐야 했다.
현재 천문학자들 사이에 분쟁의 대상이 된 것은 망원경을 이용한 태양 흑점 관측이었다. 파브리쿠스 형제도 갈릴레오처럼 흑점의 이동을 관측해서, 태양의 자전을 증명하는 기반이 되었다.
“학자들이란 자기 연구 분야 외에는 후원자인 정치가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남들이 이미 연구한 것을 모르고 세계 최초 발견이라느니 하는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입니다.”
“해결할 방법이 있겠소?”
이런 식이면 앞으로 계속해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두고 분쟁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이민호는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체계를 요구했다.
“논문을 발표해도 학자들이 그 많은 논문을 일일이 찾아서 읽기도 어렵습니다. 저도 당하고 보니까 심각한 줄 알았지, 이런 현상이 만연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학자가 다른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제대로 알기 어렵소. 이는 체계적인 문제이니 체계적으로 해결해야 하오.”
“어떻게 말씀입니까?”
“학회를 만드시오. 지역별, 국가별, 대륙별로 만들고 세계 무슨 무슨 학회, 예를 들어 세계 천문학회를 창설하시오. 그리고 학회에서 공인한 학술지를 발간하면 어떻겠소? 여러 학자들이 발표한 논문의 요약본도 싣고 말이오.”
21세기에야 온갖 학회가 난립했지만 정보 유통 속도가 떨어지는 이 시대에는 학자들 사이에서 연구결과 발표 시기를 놓고 수시로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논문은 요즘 들어서서야 슬슬 활자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필경사가 논문을 보고 그대로 베껴서 판매하는 수준이었다.
“그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이 연구를 내버려두고 그런 사무적인 일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연구 실적은 보잘 것 없어도 권력을 탐하는 학자들은 얼마든지 있다오. 뭐 좋은 말로, 많이 아는 선생과 잘 가르치는 선생이 다르듯이 말이오.”
늙고 실력 없는 학자들이 권력다툼으로 밤을 지새우더라도 학회는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학회의 실체는 학술지였고, 학회장보다 학회지 편집장의 권위가 오히려 더 높을 때도 흔했다.
고산국과 갈릴레오가 주도해서 국제 천문학회를 창설하고, 갈릴레오가 2년 임기의 학회장을 억지로 맡았다. 나라별로 천문학회를 창설하는데 고산국이 자금을 지원한 데 대한 반대급부였다.
그리고 갈릴레오의 제자들 중 하나가 국제 천문학회지 편집장을 맡았다. 밤마다 잠이 쏟아져서 도저히 천문관측을 하지 못하는, 천문학계에서는 매우 특별히 무능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학자가 논문을 발표하면 그 내용을 복수의 다른 학자들에게 의뢰해 검증하는 일에는 매우 뛰어났다.
의학과 철학, 역사학 등 여러 분야에서 국가별로 학회가 조직된 다음 차례로 국제 학회를 창립했다. 고산국 왕도와 북미 새강릉이 국제적인 학술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당연히 언어 문제가 부각됐는데 유럽 학계가 주도할 경우 라틴어가, 고산국이 주도할 경우 고산국어로 통하는 조선말이 국제어로 자리 잡았다. 이제 유럽에서 조선말 번역가를 구하기는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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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못 올리고 자러 갑니다. ㅠ.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