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06화 (755/1,000)

00806  90. 1611년의 문화외교  =========================================================================

굵은 대리석 기둥들이 양쪽에 늘어선 웅장한 대전에서 베네치아 음악가들의 방문 공연을 환영하는 만찬이 열렸다. 문화교류라는 명목으로 유럽이나 인도, 오스만 제국 등에서 문화예술인들을 왕도로 초청한 것이 벌써 몇 년째였다.

처음에는 일회성 행사에 그쳤으나, 고산국에서의 생활이 너무 심심하다고 느낀 백성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자 그 다음부터 여러 나라에서 유명한 문화예술인들을 초청했다. 역시 미술보다는 음악이나 무용이 즉각적이고 대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쉬웠다.

외국 예술인 초청 공연이 계속해서 큰 반향을 일으켜 왕립극장이나 시민극장에서 장기간 공연하는 경우도 생겼다. 돈 쓸 곳이 없던 고산국 백성들은 열 배 스무 배씩 뛰는 암표 값에도 아랑곳 않고 공연이 열리는 시간에 극장 앞에 장사진을 쳤다. 그러자 유럽 각국에 주재한 대사관들이 경쟁적으로 예술인들을 왕도로 초청하기 위해 애썼다.

“베네치아 음악가들은 유럽에서 최고의 솜씨와 예술성을 자랑한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을 초청하는 일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돼서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먼저 영광스러운 산마르코 대성당의 제1 오르간 주자이며,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인 조반니 가브리엘리 씨를 소개합니다. 가브리엘리 씨가 우방국을 위해 특별히 고산국 찬가를 작곡해서 왕립극장에서 초연을 한다고 합니다. 가브리엘리 씨에게 감사의 박수를 쳐주실 것을 참가자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이민호는 베네치아 음악인들의 정신적 스승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만찬 연설을 짤막하게 마쳤다. 외국 작곡가가 개인적인 감사의 표시로 찬가를 고산국에 헌정하겠다고 해서 이민호도 속으로 몹시 기뻤다.

사람들의 갑작스런 주목과 박수에 어리둥절하다가 통역을 통해 뜻을 전해들은 조반니 가브리엘리가 일어나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악기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합창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젊은이들도 기뻐하며 박수 치기에 동참했다.

산마르코 대성당은 교회 음악을 비롯해 수준 높은 음악을 선보이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작곡가 가브리엘리를 유럽 전체에서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가브리엘리를 비롯해 산마르코 대성당의 합주단과 성가대는 고산국 왕도에 초청될 만한 충분한 실력과 명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제가 멀리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전설 같은 소문만 듣던 고산국 왕궁에 초청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오나 국왕전하로부터 영광스러운 부름을 받았음에도 결석증을 너무 심하게 앓고 있어서 황송하게도 집에서 편안히 눈을 감으려 했습니다.”

“저런요!”

“그런데 고산국 의사선생님들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고통스런 몸을 고치고 싶었지만 이 늙고 병든 몸이 장기간의 여행을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산국은 사람들의 건강과 목숨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지, 군함도 아닌 여객선에도 선내 의사가 고정 배치돼 계셨습니다.”

모든 여객선에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장기 항해를 하는 대형 여객선에 한해서 의사가 배치됐다. 베네치아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고산국을 왕복하는 항로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성지 순례자들이 자주 이용하기에 의료진이 꼭 필요했다. 1600년에 교황의 성지 순례를 도와주며 이민호가 직접 겪어봤듯이 성지 순례자들 중에서 환자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병자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성지에 가보는 소원을 풀려고 했다가 멀쩡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게 됐으니 성지는 기적을 낳는 곳이 맞았다. 다만 환자들이 성지에서 몸이 나은 것이 아니라 배에서 의사들이 병을 고쳐줬을 뿐이었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제가 여객선 의사선생님의 도움으로 목숨을 연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그저 가슴이 벅차도록 넘쳐나는 환희와 뇌리에 떠오르는 악상을 악보에 급하게 기록했을 뿐입니다. 다시 한 번 그 의사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대한 국가이면서도 문화를 사랑하고 인류애가 넘치는 고산국 백성들과, 특히 국왕 전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가브리엘리 씨가 건강해지고 좋은 곡도 만드셨으니 참으로 좋은 일이오. 서로에게 고마운 일이 생겼으니 이보다 기쁠 수가 없소.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건배합시다!”

“건배!”

원래 역사에서 가브리엘리는 1606년부터 신장 결석을 심하게 앓다가 1612년에 사망했다. 오르간 연주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교회에서 대리 연주자를 자주 지명해야 할 정도였다.

가브리엘리는 마지막 여행이라 여기고 교회 성가대, 합주단원들과 함께 고산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큰 행운을 얻었다.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고산국 왕도에 도착해서 고명한 의사로부터 치료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고산국에 가는 길에 기적이 일어났다. 여객선에 상주하는 의사가 결석을 용해시키는 약물 치료와 식습관에 대한 조언을 해줌으로써 가브리엘리의 증상을 크게 완화시킬 수 있었다. 이제는 크게 고통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대신 물을 아주 자주 마셔야 했다.

여독을 풀고 최종 연습을 하기 위한 사흘간의 휴식 후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 성가대와 합주단의 공연이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 가브리엘리가 만든 고산국 찬가는 이름만으로도 고산국 백성들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신문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돼 공연을 갖기로 한 왕립극장만으로는 도저히 관객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축구경기장을 급히 공연장으로 개조했다. 그 동안 전자기학과 음향학이 크게 발전해 확성기를 통해서도 높은 품위의 음질을 감상할 수 있었다.

공연 당일 축구경기장에는 좌석 3만을 넘어 입석 2만 명까지 5만 명이나 모였다. 그러나 고산국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취미로 악기 한두 가지 연주하는 사람들이라 연주 전 연습시간 동안 놀랍도록 조용했다.

성가대와 합주단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은 처음이라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젊은 여성 성가대원이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해 끝까지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놀랐어요. 겨우 음악에 불과한데도 듣다 보니 가슴이 벅차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더군요. 그 동안 초청 문화공연을 예산 낭비라고 오해해서 죄송해요.”

“혜영이 그렇게 감동할 정도면 정말 대단했나봐.”

이민호가 씩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왕실 가족들과 공연을 다녀왔는데 다들 얼굴이 잔뜩 상기돼 있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을 빼고는 뭔가 큰 충격을 받은 듯 깊은 생각에 잠긴 아이들도 있었다. 전반적인 감상평은 몹시 자랑스럽고 기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어렸을 적 이야기를 그 작곡가에게 해줬나요? 설마 듣는 사람마다 감상이 다른 것은 아니죠?”

“나는 그 작곡가하고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어. 흠! 혜영이는 어렸을 때가 더 행복했나봐? 인생에서 처음 겪는 어려움 이후 누리게 된 크고 기나긴 행복. 그 음악의 주제야.”

고산국 찬가라고 해서 이민호는 처음에 광대한 영토와 강력한 군사력, 도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부를 소유한 고산국의 위엄을 찬양하는 웅장한 음악일 줄 알았다.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베네치아의 교회 작곡가가 만든 곡이라서 더더욱 그런 쪽으로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면서 정신없이 감상에 빠져들어 그때는 아무 생각도 못했다. 돌이켜 보니 따뜻하고 행복한 인간들의 생활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민호는 더욱 기분이 좋았다. 고산국 찬가 역시 겨우 몇 십 년 전에 시작된 초기 바로크 음악으로 분류되겠지만 가브리엘리라는 거장은 시대와 장르를 따질 필요가 없는 천재였다.

“녹음은 했겠지? 음반을 내자. 당장 계약해!”

“네!”

“그리고 저 작곡가와 성가대, 합주단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원할 것을 고려해봐.”

“산마르코 성당에 기부금으로 10만원을 내고, 성가대와 합주단원 전원에게 평생 연금을 지급하면 어때요?”

혜영의 손이 갑자기 커져서 이민호가 화들짝 놀랐다. 금화 한 닢에 벌벌 떨던 얼마 전의 어려운 상황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 듯했다. 그만큼 큰 감동을 받았다는 반증이었다.

“작곡가 가브리엘리 씨는? 큰 상금과 함께 백작 작위 정도는 줘도 되겠지? 고산국 백작이라면 성 하나는 소유해야지. 베네치아 주변에 성이 매물로 나와 있는지 좀 알아봐줘.”

“그런 것도 좋지만 베네치아에 가브리엘리 씨를 전담할 주치의를 파견하면 어때요?”

“그게 가장 좋겠다. 가브리엘리 씨 외에 이번에 왕도를 방문한 베네치아 음악가들 전원에게 무료로 진료를 시켜줘.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고 치료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니까.”

작곡가 가브리엘리는 죽기 직전에 여객선에 탐으로써 기사회생하고 명곡을 작곡함으로써 명성을 더욱 드높였다. 그리고 가브리엘리가 고산국으로부터 엄청난 포상을 받으면서 세상의 모든 작곡가들에게 창작 의욕을 고취시켰다.

고산국 백성들은 자부심과 애국심이 높아졌다. 고산국 작곡가가 아닌 외국인이 헌정했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이후 방송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음반을 틀어주고 백화점이나 공공장소에서도 매 시간마다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조선에서 밀려나 고산국에 정착한 소수 양반들에게 애초에 없던 애국심이 새록새록 돋아났다고 한다.

“소위!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뭔가?”

“소위 장봉수! 상세히 파악된 적지 정보 지형을 바탕으로 준비된 전술을 과감히 실행하는 것입니다!”

태풍이 올까말까 하면서도 자꾸만 비켜가는 늦여름 땡볕 아래 총함장 이순신이 연병장에서 해병대 초급간부들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해적 토벌 작전을 앞두고 해전보다는 오히려 지상전에 주안점을 둔 작전이 준비돼 있었다.

“뭐, 그런 대로 좋다. 중사, 자네는?”

“전쟁에서는 무엇보다 병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기나 병력은 그 다음입니다.”

“아주 잘 배웠다. 병참과 정보, 통합적인 지휘, 통신 등은 승리를 얻기 위한 아주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고산국에서 해병은 원래 군함에서 전투를 전담하던 인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해병이 해병대로 확대되고 전투함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조직을 갖춰 지상전에 임하게 되었다.

그래도 해병대가 여전히 해군 소속인 것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특히 조선 수군은 1555년에 판옥선이 제작되기 전에는 바다보다는 주로 해안에서 왜구를 막아내던 군대 조직이었다. 1592년 몇몇 해전이나 1593년 웅천 해전에서도 일부 병력이 판옥선에서 내려 해병대처럼 지상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개전 초에 경상좌수영 예하 수군은 성을 지키거나, 수군절도사 휘하에 집결해 동래성 인근에 진을 치고 지상전을 준비했다. 최소한 경상좌수영만큼은 바다에서 왜군 함대를 요격하는 계획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구나.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 정도면 답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느냐?”

“총함장님. 교관들이 쩔쩔 매고 있습니다. 적당히 하시지요.”

“이것은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혹시 국왕전하께서는 답을 아시는지요?”

이순신이 이민호에게 물었다. 시전부락을 토벌할 때나 이순신이 함대를 지휘할 때 자주 대화를 해서 잘 알고 있는 문제였다.

“그거야 당연히 전투 의지입니다. 싸우고자 하는 자가 길목을 막고 있으면 시간에 쫓기는 공격자 입장에서는 매우 곤란해질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전하. 귀관들은 들었느냐? 군인이 아닌 국왕전하께서도 상식이라고 하신다. 하지만 너희들은 상식을 건너뛰고 고차원적인 해답만 찾다 보니 정답을 못 찾아낸 것이다.”

해병대 초급 간부들이 얼빠진 표정으로 잠시 말을 잃었다. 이민호는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참았다.

“총함장님 중위 한호진 질문입니다!”

“말하라.”

“저희들은 군인입니다. 그것도 장교나 부사관으로 복무할 것을 선서하고 4년간의 사관학교나 각종 훈련을 거쳐 임관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싸울 의지가 넘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전투 의지는 답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쯧쯧!”

이순신이 한참 동안 혀를 찼다. 그리고 거의 있을 수 없는 가정 하에 한 가지 상황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민호가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였다.

============================ 작품 후기 ============================

이만 자러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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