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17화 (766/1,000)

00817  91. 1612년  =========================================================================

4월 잉글랜드에서는 급진적인 재침례교도들이 사형 집행을 받았다. 에드워드 와이트먼은 잉글랜드에서 이단 혐의로서는 마지막으로 기둥에 묶여 화형을 당한 자가 됐다.

그리고 이 해에 잉글랜드 곳곳에서 마녀 재판이 진행되고 줄줄이 사형에 처해졌다. 7월 노스햄프턴셔에서는 여자 4명과 남자 1명이 마녀재판을 통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9월에는 랭커셔에서 펜들 위치라 해서 마녀 혐의로 12명이 기소돼 한 명은 옥사하고 한 명은 무죄 방면된 반면 10명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해에 벌어진 잉글랜드의 마녀재판에서는 영주나 이웃 주민들이 부유한 과부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마녀 혐의를 뒤집어씌운 것이 아니었다. 사형이 집행된 자들은 매우 가난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가난하고 병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성 공격이 아닌가 의심받은 경우도 있었으나, 그것 또한 아니었다.

상세한 재판 기록이 현대까지 남아 이를 학자들이 검토했다. 그리고 마녀가 문명과 교회에서 소외된 외딴 지역에서 약초로 환자의 병을 고치거나 구걸을 하는 일종의 생계형 직업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펜들 위치는 서로를 마녀로 고발함으로써 알려졌다. 그리고 마녀 행위 자체보다는 살인 등 범죄가 사형 판결을 내리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정보국 덕택에 왕궁에 가만히 앉아서 세계정세를 살펴볼 수가 있겠구나. 수고했다.”

“저희들이 마땅히 할 일인 걸요?”

정보국장 왕명명은 나이가 들어도 외모는 10대 후반 그대로였다. 여자들은 동안이라고 왕명명을 부러워하겠지만, 왕명명에 한해 서른 넘어서도 여전히 철이 안 들었다는 이야기도 됐다.

“무굴제국의 왕자 자한이 또 결혼해?”

“세 번째 결혼식이에요. 자항기르 황제의 숱한 황후들이 낳은 왕자들 중 한 명일뿐이지만 할아버지 악바르 대제가 그 손자를 편애했다는 정보가 있어요.”

무굴제국의 5대 황제가 될 샤 자한이 아직 왕자 시절인 스무 살에 세 번째로 결혼했다. 왕자가 많은 무굴제국 황실에서, 그것도 왕자의 첫 결혼식이 아니라 조촐히 치른 모양이었다.

그러나 자한을 후계자로 예측하고 면밀히 관찰 중인 정보국 인도 지부에 이 정보가 포착됐다. 정보국 인도 지부는 무굴 제국과 인도 남부 여러 토후국들, 인도에서 교역을 하는 포르투갈과 잉글랜드, 그리고 네덜란드의 동향을 살피는 임무를 맡았다.

“혹시 이번에 결혼하는 부인이 누구지?”

“페르시아계 귀족 압둘 하산의 딸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이에요. 아는 분이세요?”

“아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야.”

혹시나 타지마할과 관련된 여자인가 해서 물어봤는데 모르는 이름이 나왔다. 그러나 샤 자한이 건설한 타지마할의 여주인이며 아사프 칸의 딸 움타즈 마할은 궁정에서 선택된 자라는 의미가 담긴 별칭이었고, 신부의 본명은 왕명명이 보고한 것이 맞았다. 그리고 아사프 칸은 나중에 황제에 오르고 난 뒤에 샤 자한이 움타즈 마할의 아버지 압둘 하산에게 내린 칭호였다.

“저번에 보고 드렸듯이 제 여동생이 정보국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일이 재미있다고 열심히 하다 보니까 어느덧 중요한 지위에 올랐어요.”

“그래서?”

“얘가 벌써 스물다섯 살이란 말이에요. 노처녀로 늙어죽게 놔둘 셈이에요?”

“몰라. 알아서 하라 그래. 나는 멍멍이 너 하나만으로 벅차거든.”

“그게 뭐여요!”

지금이야 정보국을 이민호가 손아귀에 꽉 쥐고 있지만 정보기관의 특성상 원래 권력이 강한 기관이었다. 정보기관의 폐해를 익히 아는 이민호는 당연히 이중삼중으로 견제 장치를 해두었다.

그런 정보국에서 고위직에 진출했다면 왕명명이 뒷배를 봐주지 않더라도 그 여동생이 기본적인 능력은 있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이민호가 직접 본 바로는 여성 무예가로서 괄괄한 편인 왕명명보다 여동생이 훨씬 여성적이고 양순했다.

“정보국은 중요한 기관이야. 보통은 국왕에게 충성하겠지만 여차 하면 역으로 국왕이 휘둘릴 수도 있어. 그래서 전에는 내 여자들 중에서 골라 정보국장을 맡겨야 했는데, 이제는 괜찮아.”

“흐응~ 자신 있으세요?”

무예가라지만 기본적으로 상인 가문 출신인 왕명명은 두뇌 회전이 빠른 편이었다. 고혹스런 표정 뒤에 숨긴 머릿속에서 맹렬히 계산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시대에 정보국은 국가가 아니라 최고 권력에 봉사하는 부속 기관일 뿐이야. 정보 분석과 가공에 그치지 않고 권력을 직접 휘두를 욕심을 내는 바로 그 순간 공중 분해된다는 사실을 명심해.”

“그럴 리는 없잖아요.”

“그럴 리 없겠지.”

두려움에 떠는 왕명명의 어깨를 이민호가 감싸는 순간 주변에서 긴장하고 있던 호위들이 일제히 움찔했다. 왕명명은 맨손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예가라서 이민호와 밤일을 할 때에도 호위들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왕명명이 그럴 의향은 없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제가 주인님을 믿듯이 제 동생도 주인님을 믿어요.”

“그럼 그걸로 됐어.”

“그러니까 평생 혼자 살게 될 거여요.”

여자는 남자의 부속물이라는 인식이 우세하던 시기였다. 조선에서도 전기에 상속이나 친족 관계에서 여성의 권리가 그나마 평등했던 반면 후기에 들어서면 여지없이 급전직하한다.

중요한 정보국 여성 간부가 결혼한 남자에게 국가기밀을 술술 불어댄다면 간부 자격이 없는 것이다. 물론 적성국 여성 스파이의 미인계에 넘어가는 정보국 남성 간부도 마찬가지였다.

“미인이던데 아깝잖아. 그럼 정보국 안에서 배우자를 찾으라고 해.”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어요. 설마 정보국 내에 혼인으로 인한 파벌이 생기지는 않겠죠?”

“혼맥이 어떻게 구성되든 파벌이 안 생기도록 조정하는 것이 정보국 수장이 할 일이야.”

이제 건국 초기의 인적 관계보다 시스템에 의해 조직이 굴러가야 할 때였다. 앞으로 정보국 내외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하겠지만 그것은 비단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홍콩은 여름에 습도가 높다더니 날씨가 의외로 괜찮소.”

여름에 건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홍콩을 방문했다. 정식 조차지도, 할양지도 아닌 공동 투자 지역이라는 애매한 법적 위치인 홍콩은 20세기에 비해 반도 안 되는 규모였으나 국제 무역항으로서 건설이 차근차근 진행됐다. 홍콩이 집중 개발되는 곳이 홍콩 섬과 건너편 구룡반도 중심인 것은 20세기와 같았다.

“여름에 비가 자주 오고 무더워서 그렇지 날이 개면 화창한 편입니다, 전하. 홍콩은 의외로 수심이 깊어 상선이 24시간 언제든지 부두에 접안할 수 있습니다. 자유 무역항이라는 개념을 다른 나라들이 잘 이해해서 자주 이용하면 좋겠습니다.”

“천조와 고산국이 공동 투자해 미래를 열 항구 도시요. 행정청장이 홍콩이 번영하도록 잘 이끌어주길 바라오.”

“황상과 국왕전하의 지시에 따를 뿐입니다, 전하.”

원임 예부상서라는 행정청장은 도시 건설에 별다른 경험이나 비전이 없었지만 의전에 밝았다. 외국 사신들을 대할 때 실제 이익은 하나도 안 주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게 해줄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대국의 예부상서임에도 종주국 대신으로서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사절단 대표들과 시문을 교환하는 등 친구처럼 대해줘서 조선에서 감동을 받은 사람이 많았다.

실권이 거의 없는 홍콩 행정청장 역할을 하기에 적당한 사람을 북경에서 보낸 것 같았다. 명나라와 고산국이 공동 투자해 건설했다지만 자유 무역항으로서 홍콩은 거의 반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행정청장은 외국 사신과 상인들의 방문을 공적으로 맞이할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허수아비, 좋게 말해서 바지 사장이었다.

“그런데 저기서 관리자가 노무자를 채찍으로 후려치는 것 같소만.”

“볼 것이 못 되니 눈을 돌리시지요, 전하. 황상과 전하께서 추진하는 사업에 참가한 백성으로서 막중한 일을 감히 게을리 한 무도한 자들입니다.”

부두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노무자도 아니고 마을에서 단체로 끌려온 것 같았다. 돌이 가득 실린 수레 옆에 쓰러진 비쩍 마른 노인을 관리 복장을 한 자가 채찍을 마구 휘둘러 체벌을 가하고 있었다. 옆에서 비슷한 나이의 노파가 울부짖었으나 관리는 신경 하나 쓰지 않고 채찍질을 계속했다.

마치 대운하에서 배를 끌어당기다가 쇠줄이 끊기면서 죽어나가는 운하 주변 명나라 백성들을 보는 것 같았다. 저들은 운명에 체념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청나라가 명나라의 내부 사정 덕택에 산해관을 쉽게 돌파한 후 명나라를 정복한 다음에도 순응할 자들이었다.

“혹시 저들은 부역을 하는 것이오?”

“험! 노무자들이 모집 인원에 차지 않아서 부득이 부역을 동원한 모양입니다.”

고산국에서 지급하는 높은 일당을 거부할 명나라 노무자가 없을 테니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했다. 부패한 명나라 관료제도가 문제였다. 고산국에는 노무자를 모집해준다 해놓고 일당을 일괄 지급받은 다음 임금을 받는 노무자 대신 근처 주민들을 무임금 부역에 강제 동원한 것이다.

오랜 세월 과다한 부역에 시달린 주민들은 제대로 된 노동 의욕이 있을 턱이 없으니 관리들이 채찍질을 해서 억지로 일을 시켜야 했다. 채찍질을 당한 노인은 결국 일어나지 못했고, 노파가 곡을 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그 노인을 작은 수레에 싣고 떠났다.

언덕에 조선과 비슷한 매장 방식의 작은 공동묘지가 생겨났다. 고향으로 싣고 떠나기 전에 임시로 매장한 것에 불과하니 더 많은 사람들이 건설 과정에서 희생됐다고 봐야 했다.

“참혹한 꼴을 보여드려 송구합니다. 하지만 저런 일이 자주 생기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부역이라지만 맞아죽다니 참으로 불쌍하오. 내탕금을 조금 내드릴 테니 저 노파에게 부조라도 해주시오.”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만, 감사히 받아서 전하겠습니다.”

노파에게 전해질 일이 없을 것을 알고 내주는 부조였다. 홍콩 건설 과정에서의 비리를 적발하기 위해 고산국 정보국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비리에 깊이 관리된 홍콩 행정청장, 명나라 원임 예부상서는 아마도 황도에 잡혀가 참수 당하게 될 것이다.

고산국 금화 중에서 일부는 범죄조직의 자금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만 식별할 수 있도록 아주 약간 다른 부분이 있었다. 공작이 끝나면 보통은 회수하는데 일부가 시중에 유통되더라도 금 함량을 정확히 지켰으므로 큰 상관은 없었다.

“주민들에게 밥이라도 제대로 주고 일을 시키는지 모르겠소.”

“매 끼니를 홍콩 행정청에서 급양하고 있습니다. 하는 일에 비해 과분한 진수성찬입니다.”

부역에 동원된 명나라 백성들이 평소와 달리 식량까지 이고지고 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혹시나 이번 공사를 담당한 명나라 관헌들이 부역에 동원된 자들이 먹은 밥값을 내라고 강요하지나 않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 이민호도 다 알고 와서 하는 소리였다. 이번 방문은 명나라 쪽의 비리를 일소하기 위해 특별히 계획됐다.유독 명나라가 맡은 공사 일정이 자꾸 늦춰진다면 뭔가 문제가 있었고, 그것을 찾다 보니 명나라 관리들의 비리 문제가 드러났다. 이 시대에 군주에게 충성심이 없는 자들은 쉽게 비리를 저지르기 마련이었다. 사실 당금황제는 관리들이 충성심을 바칠 래야 바칠 수가 없는 행동을 일삼고 있었다.

행정청장은 이민호가 얼마나 실무를 제대로 챙기는지 알지 못했다. 물론 알더라도 돈에 눈이 먼 자들은 비리를 저지르게 돼 있었다. 황제를 등에 업으면 이민호도 함부로 건들 수 없겠지만, 행정청장의 뒷배는 최대한 태감 선에 불과했다.

항만 건설현장 다음으로 공항 활주로 건설 예정지를 살폈다. 홍콩 섬은 산으로 된 섬이라 해도 거의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활주로를 건설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객기 시대가 오더라도 카이탁 공항처럼 활주로 양 끝이 산과 바다라서 곡예비행을 해야 할 일은 없었다. 빈민가 위를 낮에 비행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사진에 찍힐 일도 없었다.

============================ 작품 후기 ============================

늦어도 올립니다.

저도 하루 두 편 올릴 때가 그립습니다.

이제 선선해졌으니 시도해보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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