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18화 (767/1,000)

00818  91. 1612년  =========================================================================

“빠른 시간에 공항을 잘 지었는데 주변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곳이라 휑하구먼.”

“그러하옵니다, 전하. 항만과 공항, 그리고 도로부터 건설하느라 인간을 위한 시설이 홀대 받는 느낌이 강합니다.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행정청장의 말이 옳았다. 홍콩이 자유 무역항,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항구 도시로 개발하고 있다지만 모든 시설이 그 한 가지 목적에만 충실하려 했다간 목적을 달성하기가 도리어 더 어려워질 수 있었다. 상선이 항구로 진입하는 수로 주변 해안지대에 예쁘장하게 지은 집들이 늘어서 있고 항구 주변에 계절마다 꽃이 만발하면 그보다 좋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청장의 말씀이 맞소. 사람이 삭막하게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요. 거리에 화단을 조성하고 가로수도 예쁜 놈으로 골라야겠소.”

“전하! 그게 아니라 위락 지구 말씀입니다. 오랫동안 바다에서 고생한 선원들이 항구에 들를 때마다 술 한 잔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미희들의 춤과 노래가 곁들어지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이민호가 알면서도 순둥이처럼 한 번 떠봤더니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행정청장의 의도가 바로 드러났다. 말로는 순화해서 위락 지구였지만 그가 의도한 바는 사창가였다. 난징이나 쑤저우, 광저우에서 화류계 종사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목적이었다.

“흐음.”

“혹시 고산국에서는 매춘이 불법입니까?”

“그건 아니오. 매춘하겠다고 나서는 여자가 없어서 따로 법률로 규제할 필요가 없었소. 몸이 뜨거우면 바람을 피우고 말지 돈을 벌자고 그런 일을 하는 여자는 없으니까요.”

“홍콩은 대국과 고산국이 합작한 특별 구역입니다. 반드시 어느 한 나라의 법률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매춘을 합법화하자는 뜻이군요.”

중국은 전통적으로 체면을 중시하기에 사회에 기생하는 여러 가지 지저분한 것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저분한 것이 돈이 된다고 믿고 매달리는 자들이 흑사방 등 흑도의 무리들이었고, 이권이 있는 곳은 어디든 관과 밀착될 수밖에 없었다.

고산국 왕도에도 유흥가라 불릴 지역이 있었다. 그러나 도박장과 무도장을 운영해 봐도 큰돈이 되지 않았다.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다 보니 너무 건전해서 손님이 들지 않는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입에 담기 거북하오나 흑사방 무리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관에서 직접 관리하는 편이 뒷말이 적습니다.”

“홍루에 강제로 끌려오는 여자들이 있을까봐 두렵소. 현실적으로 인신매매는 법으로 근절하기 어렵소. 불법은 아니더라도 강제로 채무를 지게 하는 등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여자들을 옭매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오.”

“지당한 말씀이옵니다. 하오면 광저우나 쑤저우에서 화류계 경력이 최소 3년 이상인 여자만 모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문제를 줄이자면 그 방법이 좋겠소. 필요하다면 종사자들이 매주 성병 검진을 받는 조건으로 추진해봅시다. 다만 행정청장이 아니라 행정위원회를 통해야 할 것이오.”

“아! 윤당합지요, 전하! 저는 그저 대표일 뿐이고 실권은 모두 행정위원회에 있습니다.”

그러나 명나라 말기는 관료들이 급속히 부패하는 시기이므로 명나라 관리들에게 맡겨서 일이 제대로 추진될 리가 없었다. 노무자를 모집한다 하고선 부역을 동원했듯이 비자발적인 화류계 종사자들을 동원할 우려가 있었다. 비슷한 최악의 사례로서 일본은 패망한 이후 도쿄 주둔 미군을 위해 전쟁미망인들과 처녀를 가리지 않고 거의 강제로 위안부로 모집했다.

이민호는 행정청장을 비롯해 명나라에서 파견한 관리들을 숙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관리들을 바꿔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 결코 깨끗할 리가 없으니 지속적으로 감시와 숙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명나라와 고산국 합동으로 구성된 7인 행정위원회에 참가할 고산국 관리 네 명은 특별히 비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로 골라 임명했다.

“황도와 남경에 건설된 비행장도 행정청이 관리해야 하오.”

“물론입니다. 명목상으로는 황상께서 지방을 순행하실 때 사용하실 어용 비행장이지만 실제로 사용하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황상께서 비행기를 사용하실 일이 없으면 좋겠소.”

북경과 남경 외곽에도 관제탑이 없는 간이 비행장을 건설해놓았다. 만에 하나 황도가 적에게 포위당하는 일이 생겼을 때 남경이나 홍콩으로 피난시킬 목적으로 건설했으나, 황제가 비행기를 타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황제와 문무백관 대신 금의위와 환관들이 보는 앞에서 수송기를 띄운 적이 있었다. 그러나 황제가 칙서를 보내 위험한 물건에 타기 싫다는 의향을 밝혔다. 황제는 젊은 사위인 고산국왕이 만드는 각종 신기한 기물을 구경하는 것은 좋아했으나, 전등이나 전화 등 사례에서 그랬듯이 실제로 이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항공대장은 어떤가? 흡족해 보이는데.”

“예, 전하. 활주로를 아주 말끔하게 잘 닦았습니다. 관제탑도 시야가 넓어서 좋을 것 같습니다. 하온데 정말로 여객기 시대가 오겠습니까?”

“지금으로선 항공기 운영비가 너무 비싸서 군용이나 왕실용으로밖에 사용할 수 없겠지. 하지만 언젠가 홍콩에서 파리까지 여객기가 날아다니는 시대가 분명히 올 거야.”

지금 당장은 어렵다는 사실은 이민호나 이면이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홍콩이 발전하고 나면 활주로를 건설할 땅이 부족하기에 미리 활주로를 닦아놓았다. 현재 관제탑은 텅 비어 있었다.

“그 문제는 그렇다 치고, 항공대의 소속은 어떻게 됩니까?”

“그게 고민이야. 공군으로 독립시킬 수도 있고, 해군 항공대와 육군 항공대로 나눌 수도 있어. 참모본부에서도 항공대의 소속을 두고 고민이 많은가봐. 항공대장 의견은 어때?”

“저야 당연히 공군으로 독립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 방어 전략에 맞게 정하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영토가 너무 넓은 게 문제야. 공군을 독립시키더라도 해군 항공대는 여전히 필요할 거야.”

“물론입니다. 순양함에 탑재된 수상비행기가 이번 에티오피아 작전에서 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민호가 처음 항공대를 만들 때는 당연히 공군으로 독립시킬 생각을 했었으나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국가전략 혹은 필요에 따라 공군의 소속이나 편제를 이민호가 알고 있던 한국이나 미국과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은 무조건 공군 소속이라고 떠벌이던 괴링의 주장도 언뜻 떠올랐다.

구소련 같으면 전선항공군이나 방공군이 공군과 따로 조직됐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육군 및 해군과 같은 독립된 군종으로서 공군과 방공군, 전략로켓군이 따로 있었고, 같은 공군에 속했더라도 전선항공군은 일반 공군과 달리 지상군 군관구의 통제를 받았다. 임무에 따라 다른 기종의 항공기를 운용할 수도 있고, 같은 기종이라도 전혀 다른 용도로 운용했다.

“지휘권이 해군과 항공대에 분리돼 있는데 작전 통제에 어려움은 없나?”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작전하는 항공기들은 함상 수상기와 일반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항공기로 구성돼 있습니다만, 통합 작전에 문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조직을 하더라도 실제 운용이 더욱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맞는 말이야. 주둔지도 문제가 아니야. 왕도에 배치된 비행기가 남미에서 작전할 수도 있는 거지.”

조직을 유연하게 해서 배치 지역과 상관없이 작전에 동원한다면 항공대를 어떻게 조직하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육군의 사례를 들자면 지금 에티오피아에 파병된 육군 1사단에는 기존 1, 2, 3보병연대와 제1장갑차연대, 제1기병수색대대 외에 2사단 소속인 6연대와 구르카 제1여단 3연대가 배속돼 있었다. 3사단도 비슷하게 다른 사단에서 예하부대를 데려다 배속시켜 전력을 증강시켰다.

그러나 기본 편제란 유사시에 가장 효율적인 대응을 하게 해주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영토가 너무 넓은 탓에 권역별로 육군과 해군, 항공대를 나눠 주둔시켜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민호는 공군을 독립시키되, 해군과 육군에도 필요한 만큼 항공대를 유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역할이 어느 정도 겹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전하. 혹시 홍콩은 중국 대륙에 대한 교두보입니까? 전하께서는 인구가 많은 지역을 영토로 편입한 경우가 없지 않습니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아. 명나라가 지금 그대로 간다면 상관없지만, 이민족에 의해 정복될 가능성이 있다면 괴뢰국이라도 세워서 막아야지. 물론 중국 영토에 대한 욕심은 없어.”

“다만 본토가 중국 해안에서 너무 가까워서 문제인 것이로군요.”

“그래. 수도를 북미로 옮기더라도 고산도 방어 문제는 계속해서 남을 거야.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고산국의 기반인 본토를 위험에 노출시킬 수는 없으니까.”

이민호가 홍콩 순행을 마치고 나서 보름 후에 정보국의 공작이 성공했다. 자금 흐름을 조사해서 행정청장과 환관, 그리고 범죄조직의 연관성을 파악해낸 것이다. 마침 동창에서도 행정청장의 뒤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동창에 정보를 흘렸다.

행정청장은 동창 소속 환관들에게 체포돼 황도로 끌려간 다음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대신 행정청장으로 임명된 사람도 비슷하게 돈을 밝혔으나, 최소한 전임자의 불행을 알고 있었으므로 큰 단위로 해먹지는 못하게 됐다.

부패한 명나라 관료들 때문에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홍콩의 항만시설 건설은 잘 진행되고 있었다. 홍콩 항만 건설에 시멘트를 공급하는 조선 강원도와 북미 이리가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홍콩 항만 건설에 명나라 주민들의 부역이 황명으로 금지되면서 명나라 남부에서 노무자들을 대규모로 모집했다. 덕택에 오랜만에 남중국에 돈이 돌았다. 물론 환관 광세사들이 홍콩 건너편으로 몰려와 민간에 풀린 돈에 눈독을 들였다.

홍콩 건너편 마카오는 항구로서는 홍콩의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비좁은 항구 때문에 발전에 한계를 절감한 포르투갈 상인들이 홍콩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이민호는 통 크게 마카오 상인들을 위해 부두 한쪽을 내주어 마카오의 선적과 화물 보관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요즘 에스파냐와 관계가 더욱 나빠진 것은 포르투갈 본국만이 아니었다. 특히 마카오에서는 공공기관 건물에 에스파냐가 아닌 포르투갈 국기를 게양한 채 공공연히 에스파냐에 적대감을 내비쳤다. 그리고 고산국에 무역뿐만 아니라 방어를 의존하는 경향이 더욱 커졌다.

“입에 담기도 힘든 그런 유흥가라뇨! 아바마마께 실망했어요. 힘없는 여자들이 끌려와 흘릴 눈물과 한숨이 안타깝지도 않으세요?”

“휴우! 네게 욕먹을 줄 알았다. 뭐라 변명할 말이 없다.”

홍콩에 홍등가를 열기로 결정하고 나서 마르그레타에게 항의를 받았다. 아직 고등학교 학생인 여자로서 충분히 화를 낼만한 일이었으나 홍콩에 유흥가와 화류계가 없다면 선원들이 건너편 마카오에 가서 즐기게 돼 있었다. 마카오에서는 노예제가 합법이라 세계 각지에서 팔려온 노예들이 매춘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런 사정이 있으니까 너도 이해를 해다오. 고산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외국 선원들은 목숨을 걸고 배를 탄단다.”

“범선이 위험하다는 것은 저도 알아요. 하지만 남자들의 본능은 참으로 저열하군요.”

“나도 남자라서 선원들이 조금 이해가 간다. 그리고 모스크바 같은 경우 매음굴이라는 곳이 있단다. 명나라의 홍루보다 더 적나라한 곳이야, 너도 미리 알아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민망해진 이민호가 고개를 돌렸다. 마르그레타도 시집 안 간 처녀로서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계속하기 곤란했다. 때마침 비올레타가 적당히 무마시켜줘서 다행이었다.

“만약 마르그레타 네가 루스 차르국으로 시집간다면 말이야. 모스크바의 악명 높은 매음굴을 없앨 수 있을 것 같니?”

“그, 그거야 차르가 알아서 할 일이지요. 제가 언제 차르에게 시집간다고 했나요?”

“애야. 차르라도 정책 집행에는 한계가 있단다. 설사 이반 뇌제가 살아 돌아오더라도 그건 불가능할 일일 게다.”

“저는 시집 안 갈 거여요! 차르와 편지를 주고받아 오해를 사고 있지만 그저 질문에 조언해준 것뿐이에요.”

“세계 3대 거짓말이 뭐라고 했지?”

“저는 거짓말 아니에요!”

마르그레타가 얼굴이 빨갛게 변한 채 후다닥 도망갔다. 부부가 합심해서 딸을 놀린 이민호와 비올레타가 마주보고 웃었다.

“전하께서는 홍콩을 단순한 무역 항구로만 생각하시는 게 아니군요?”

“그렇소. 명목상 중국 영토인 홍콩은 중국의 관문이 될 것이오. 그러나 홍콩은 외부에 중국을 알리는 얼굴일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에게 세계를 알리는 창문 역할을 하게 될 것이오.”

“명나라가 아니라 중국이라니, 전하께서는 명나라가 멸망할 것으로 보시는군요.”

“굳이 목소리를 낮출 필요는 없소. 이런 상태라면 명나라는 아무리 개혁을 해도 나라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렵소.”

명나라는 황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백성들에게 걷는 세금이 민간 경제를 압살할 정도로 과중한데도 불구하고 만리장성과 요동을 제대로 방어하기 어렵다면 명나라가 자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북쪽의 방어가 한계에 이른 지금 명나라는 멸망의 길을 향해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었다. 고산국이 재정적으로, 군사적으로 도와준다 해서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별 내용 아닌 것 같지만 아침 6시부터 지금까지 14시간이나 걸리는군요.

글 쓰는 속도를 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앞으로 대규모 전쟁이 두 번 있으니 그때는 빨라지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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