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19화 (768/1,000)

00819  91. 1612년  =========================================================================

에티오피아 원정이 진행되면서 병참 대부분을 책임 진 고산국 본토 경제가 영향을 좀 받았다. 미리 예고되긴 했어도 상선 다수가 병참선에 투입되면서 수입과 수출 물동량이 적체된 탓이었다. 홍콩 항만 건설 사업은 퇴역했던 해군 예비 함선들을 수송선으로 전용해서 간신히 일정에 맞출 수 있었다.

이번 원정은 에티오피아 동부 해안지대와 아프리카의 뿔 부분이 핵심 작전 지역이었다. 현대 지명으로 북부 소말리아에 해당하는 소말리란드와 푼틀란드, 그리고 지부티였다. 아무래도 이 지역에 거주하는 소말리 족 계열의 이사 족과 아파르 족이 주요 작전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말리 족은 현대 홍해 주변과 아덴만에서 생업으로 약탈과 인질 억류사업에 종사하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조상이었다.

소말리 족은 바다 건너 아라비아 반도의 영향을 받아 오래 전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흑인 종족이었다. 소말리아가 아달 술탄국 영토였을 때는 여러 아랍계 종족들이 군에 등용되면서 대포와 화승총을 쏘고 유럽처럼 기사와 말이 중장갑을 두른 중장기병들이 전장을 지배했다. 문명에서 동떨어진 벌거벗은 아프리카 원주민 전사를 생각하면 안 된다.

고산국이 에티오피아 편을 든 것이 종교 문제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소말리 족에게 납득시키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꿔 소말리 족 거주 지역 곳곳에 멋들어진 모스크를 건축해 무슬림들의 지지를 얻어내면서 해적 본거지 마을들을 하나하나 소탕해나갔다. 작전 기간 중에 공병대가 가장 고생을 많이 했고 건축자재를 실어 나르느라 병참선에 더더욱 부담을 가중시켰다.

“오늘은 국가운영에서 비능률과 비효율적인 면을 찾아 논의하기로 했소. 의견이 있으면 내보시오.”

저녁식사 시간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하는 것이 행복한 가정의 이상일 것이다. 특히 케네디 가문에서는 식사 시간에 특정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민호도 그렇게 했다. 다만 인원이 좀 많아서 넓은 연회장을 사용해야 했다. 왕실 식구들의 숫자는 기준에 따라 달라지지만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고 매년 꾸준히 늘어났다.

“아바마마! 제가 홍콩 항만 건설에서 드러난 비효율을 제기해볼게요.”

“그래. 우리 똑똑한 영희가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말해봐라.”

개똥이와 마르그레타를 비롯해 성인 연령인 16세가 넘은 자식들이 점점 늘어나서 예전에 예술과 문학, 과학 등에 머물렀던 주제가 요즘에는 정치로도 확장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어머니인 후궁들은 먼저 나서서 발언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고산국의 개방적인 교육을 받은 딸아이들은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밝혔다.

똑똑한 딸자식들에 비해 개똥이를 비롯한 왕자 놈들은 무식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이민호의 불만이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남학생들을 체육활동에 전념하도록 배려하는 것이 고산국 교육의 특성이기에 왕자들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리고 미묘한 후계문제와 맞물리면서 후궁들이 왕자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강요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고산국 젊은이들 중에서 20대 초반까지는 확실히 여성들이 더 똑똑했다. 갓 성인이 된 남성들은 이것저것 놀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하면 남자들은 군대에 가고 여자들은 대학에 갔기에 지적 수준 차이가 확 벌어졌다. 그러나 20대 중반 이후에는 2, 3년 복무를 마친 남학생들 일부가 대학교에 입학함으로써 대략 균형이 맞춰졌다. 현재 30대 이하 인구 중 남녀 절반 정도가 대학교육을 이수했다.

“항만이나 도시 건설에는 엄청나게 많은 건설자재가 소모돼요. 특히 시멘트가 많이 들어가는데 이를 조선 강원도에서만 수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분명 그렇다. 그러나 어느 지역에서 건설자재를 구입할지는 정치와 연관 지어 결정해야 할 것이다.”

“본토나, 건설 현장인 홍콩과 가까운 광동이나 복건이 아닌 멀리 강원도에서 시멘트를 구입하는 것은 조선을 염두에 둔 정치 논리가 개입한 경우로 이해하겠어요. 그러나 시멘트 공장과 가까운 강릉을 두고 굳이 멀리 아산까지 육로로 시멘트를 수송하는 것은 비효율의 극치에요.”

영희는 160km에 달하는 도로를 유지하고 수송 업무에 투입된 마부들과 마차 등의 소요량, 해로가 복잡한 서해안을 통해 왕복함으로써 화물선에 추가로 지급되는 비용도 자세히 밝혔다. 확실히 대관령을 넘어 강릉에서 시멘트를 화물선에 선적하는 편이 수송비용이 훨씬 적게 들었다.

“모든 것을 수치로 판단하게끔 우리 영희가 준비를 많이 했구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치적 선전 효과는 수송비용처럼 쉽게 계량할 수 없단다.”

“시멘트 포대를 실은 마차가 강원도와 충청도 서해안을 왕복함으로써 조선 사람들에게 고산국의 발전상을 간접적으로 홍보한다는 뜻인가요?”

“그렇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알리기 위해 비용을 들여야 할 때가 있단다. 그리고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시멘트를 구입해도 고산국에서 사용할 때는 그리 비싸지 않다. 시멘트 20kg 한 포에 얼마인지 알고 있니?”

“소매가가 3전 이하인 것으로 알아요. 그것도 건축자재상의 이익과 운송비용을 포함한 금액이에요. 하지만 본토 설산 인근의 석회석 지대에서 생산한다면 판매가를 절반 이하로 대폭 낮출 수 있어요. 건국 과정에서 조선과의 특별한 관계를 이해하겠지만 이제 서서히 멀어져도 되지 않겠어요?”

고산국에서 신구 갈등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에 대한 관계 설정 문제였다. 인구와 군사력, 경제력 등 모든 분야에서 조선에 앞섰으니 이제 더 이상 조선을 특별 대우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점차 힘을 얻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순신과 부친 이응화는 몹시 못마땅한 표정이었으나 젊은이들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젊은 층은 고산국의 뿌리가 조선이라는 감정에 휘둘린 기성세대가 조선에 외교적으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익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샀다.

“사실 조선에 대한 특별대우는 이미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럼 시멘트 구입이나 이민에서 특별한 지위는요?”

“우리가 외국과 무역을 하더라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을 제외하고 언제 일방적인 흑자를 얻은 적이 있었느냐? 수입국의 경제 규모와 산업 구조를 파악해서 무역이 꾸준히 이루어지도록 수지 균형을 맞춰왔다. 수요 기반이 적었던 브루나이 같으면 억지로 목재산업을 일으켰지. 조선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하자원은 고산국에서 개발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외국의 것이 더 비싸더라도 수입하는 것을 선호했다. 자원을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만성적인 인구 부족 문제에 시달리는 고산국이 광업이나 여타 1차 산업에 많은 인원을 투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역 수지를 맞추는데 첫 번째로 이용되는 산업이 광업이기도 했다. 고산국은 여러 나라에서 철광석과 무연탄을 수입했다. 스웨덴 같으면 생산한 철광석의 절반 이상을 북미에 판매함으로써 경제위기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금광은 여러 모로 보아 매우 특별한 경우였다.

“그리고 이민에서 조선 출신이 우대받는 것은 기존 고산국 백성들 다수가 조선 출신이기 때문이다. 일단 언어가 같아서 좋잖니? 고산국을 구성하는 여러 종족의 문화가 어우러져 고산국 특유의 문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당분간 조선 문화로써 정체성을 삼을 수밖에 없다. 물론 건국 이후 많은 분야에서 큰 발전이 있었고, 지금은 오히려 고산국이 조선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식으로 역전된 분야도 많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건국한 지 겨우 20여 년이 지났지만 자식들에게는 태어나기 전의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일 뿐이었다. 세월은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을 점차 바꿔놓았고, 이 변화는 끊임없이 진행됐다.

17세기에 북미 영토를 두고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을 때 애국심에 불타서 영국 편을 들었던 식민지 개척민들이, 18세기에 들어서서는 영국 정부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였다. 조국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충성심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 흐름에 따라 조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서 점차 영국을 조국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워싱턴 등 독립전쟁 시대의 군사지휘관들 다수가 젊었을 적에는 영국군에서 복무했었다.

“아바마마께 궁금한 게 있어요. 나이 든 분들은 조선에서 그토록 고생했다면서 아직도 조선 편을 드나요?”

“나이 많은 조선 출신 이주민들은 대체로 조선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비록 조선에서 낮은 신분으로 살면서 설움도 많이 겪었겠지만 그들에게 조선은 영원한 정신적 고향이다. 조선을 부정하는 것은 조선 출신 이주민들의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 된다.”

“노예근성이에요.”

딸아이 하나가 별 생각 없이 말하자 움찔하는 후궁들이 꽤 있었다. 당장 혜영과 혜진만 해도 조선에 대해 극도의 증오와 동시에 옛 고향이라는 아련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다행히 혜영과 혜진 자매는 당시 집권층이었던 위정자 일부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뿐 일반 조선 백성들에게는 한없이 자애로웠다.

“험! 시각에 따라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 앞에서 직접 그런 소리를 입 밖에 내지 마라. 부정하지 못하는 대신 너희들에게 몹시 화를 낼 것이다.”

나이가 들어 젊었을 적이 그리워지면 그 시절의 모든 것이 미화되기 마련이었다. 중년 여인들이 장성한 자식의 젖먹이 시절을 미소 지으며 추억하지만 실제로 아기를 키울 적에는 잠을 못 자는 고통 속에서 지옥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돌이켜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를 미워할 수 없으니 그 사람에게 적대감을 품게 된다. 이성과 합리, 논리 같은 것은 전혀 소용이 없고 설득도 되지 않는다.

“해상 교통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비용도 많이 들고 멀리까지 작전을 수행하는 해군, 열대의 주둔지를 지켜야 하는 해병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닌 것 같아요. 거리가 멀고 석유 생산량이 적은 아부다비 같은 곳은 포기하면 안 되나요? 석유는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자원이니까 브루나이나 북미, 혹은 베네수엘라에서 생산한 석유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잖아요.”

“쿨럭쿨럭!”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시다가 엉뚱한 질문에 놀라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아이들은 아직 석유의 희소성이나 현대 아랍에미리트가 석유 부국이 되는 것을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이민호는 전쟁 없이 석유가 나는 곳을 미리 장악했다고 좋아했는데 세간의 평가는 무덤덤했던 모양이었다.

“석유는 국가 전략 자원이라 그 중요성에 대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은 얼마든지 싼값에 쓰고 있으나 나중에 국제적으로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이 지금보다 100배 이상 뛰어오를지 모를 일이다.”

“에이~ 설마요.”

“적게 잡은 건데 안 믿는구나. 소중한 자원이니 아껴 쓰도록 해라.”

흔히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을 때 고유가의 기준이 된다. 배럴당 생산 원가는 이라크처럼 땅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것을 채취했을 때 1달러 이하, 툰드라의 영구동토층 아래를 어렵게 뚫고 채굴했을 때 20달러 이상이 든다. 심해 유전의 경우 국제유가가 높을 때에만 채산성이 있다.

고산국에서는 초기에 브루나이와 북미 몇 곳의 육상유전에서 생산하고, 아부다비에서도 얕은 층에서 원유를 발견했기에 생산 원가가 매우 적게 드는 편이었다. 석유류 생산원가에서 수송비가 생산단가보다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할 정도였다.

현재 고산국에서 석유류의 소비자 가격은 영토 내 모든 지하자원의 소유주인 이민호 개인이 폭리에 폭리를 거듭 취했는데도 1배럴을 대략 159리터로 잡았을 때 10전 이하였다. 현재 석유류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초기 개발비용이 많이 드는 대륙붕 유전 개발은 전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전에 공무원 연수 때도 강조했던 내용이지만 지하자원을 아끼도록 해라. 석유나 석탄 같으면 우리가 사는 지구가 수천만 년 혹은 수억 년을 들여서 만들어낸 소중한 자원이다. 후손들에게 남겨주면 그들이 인류에게 더욱 유용한 곳에 사용할지도 모른다.”

물론 후손들이 태평양에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섬도 만들어내겠지만, 과학이 발달하면서 석유로 더욱 유용한 물질을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했다. 국방연구소 연구원들이 석유에서 플라스틱을 뽑아내고 농약 같은 물질을 만들어냈어도 상품화하지 않고 일단 묻어두었다. 아직은 농약이 없어도 생산력이 뒷받침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어제 못 올려서 죄송합니다.

요즘 졸리면 책상에 바로 엎어지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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