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41 94. 1615년~1617년 =========================================================================
이민호가 행차한 곳은 왕도 남쪽 산중턱에 자리 잡은 장수촌이었다. 왕도를 비롯해 도시 근교에 위치한 이른바 장수촌은 주로 은퇴한 노인들이 모여 사는 실버타운이었다.
노인들을 위한 병원과 요양원, 부부나 독신자를 위한 숙소, 체육관 외에 목욕탕과 수영장 등이 건설됐고 숲과 산책로, 큰 연못과 낚시터도 마련됐다. 이곳에는 의사와 남녀 간호사, 구급대원이 상시 배치돼 있었다. 이들 외에도 요리사와 정원사 등 많은 직원들이 교대로 출퇴근하며 24시간 노인들을 보살폈다.
“시설이 너무 좋아요. 노인이 많지도 않은데 이런 큰 시설은 낭비 아닐까요?”
“노후를 편하게 지내게 해주려면 이 정도 시설을 짓는 것은 낭비가 아니야. 아직 오락시설이 부족해.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백성들이 나이가 들면서 차차 빈자리를 채우겠지.”
항상 묵묵하게 할 일만 하던 호위대장 선영이 물어보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젊은 층 일부는 이민호의 노인 우대 정책에 은근히 반발했고, 그것은 갓 호위대장이 된 선영도 마찬가지였다.
“고산국은 건국한 지 이제 겨우 20여 년 지났어요. 노인들이 고산국 발전에 기여한 것이 거의 없는데도 이렇게 좋은 시설을 만들고 밤낮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요. 주인님이 백성들이든 외국이든 마구 퍼준다는 악평이 나도는 것이 저는 싫어요.”
어느 사회든 존경받는 노인들은 극히 드물었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로워지기는커녕 심하게 보수적으로 변하면서 기득권에 안주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몸이 늙어갈수록 반사회적 인격 장애 출현빈도가 높아지면서 노인들 다수가 지독히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늙은이가 전쟁을 일으키고 젊은이가 그 전쟁에서 죽는다는 경구 외에도, 현대 복지사회에서 늙은이가 젊은이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비난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남자는 문지방 넘을 힘만 있으면 여자 생각을 하기에 노인이 된다 해서 성욕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서, 성추행을 하는 추태를 부리기도 한다.
“그럼 정치적으로 말할까? 장수촌은 노인이 아니라 사실은 청년들을 위한 시설이야. 나중에 나이 들어서 의지할 곳이 없을 때에도 최소한 이 정도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곳이거든.”
“그럼 청년들이 더욱 열심히 일하겠군요. 성공 확률이 낮은 사업에 도전하기도 쉬워지겠어요.”
“그렇지. 장수촌은 청년들의 노동력 착취를 위한 선전기구인 셈이야.”
장수촌이 건설됐어도 전체 노인 인구 중에서 절반 이상은 여전히 자식 세대와 함께 살았다. 노인들은 당연히 자식 부부와 손자, 손녀들과 함께 사는 편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인들이 집을 지키면서 하는 가사와 육아 등 집안일이 꽤 다양했다.
노인들이 나이가 들면서 건강과 노동력만 잃은 것은 아니었다. 사회에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의 하락이 가장 큰 손실이었다. 장수촌에 입주하는 노인, 혹은 노인 부부는 자식에게 쫓겨났다는 시선을 받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리고 노인 노동력이라도 알뜰하게 착취하는 기구가 바로 장수촌이야.”
기본 소득은 사망할 때까지 지급됐다. 그러나 소일거리 겸 가끔 찾아오는 손주들 줄 용돈이라도 벌려고 장수촌에서 간단한 노동을 하는 노인이 더 많았다. 대나무로 만드는 바구니 짜기가 가장 대표적인 일감이었으나 장수촌 아래에 개간된 논밭에서 농사도 지었다.
“모든 결정 뒤에는 정치적 배경이 있었군요. 이제는 주인님이 좀 무서워 보여요.”
“이런 것들을 다 떠나서, 원래 인간이 인간을 잘 대해주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 없어. 특히 고산국에는 그럴 여유, 그러니까 장수촌 시설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된다는 거야.”
“저만 나쁜 여자 만들지 마세요, 주인님.”
“그래. 하지만 선영이 넌 아직 생각의 폭이 넓지 못한 어린 여자야. 책에서든 선배한테든 많이 배우도록 해.”
“명심할게요.”
예전에 호위대장을 역임했던 민영도 처음에는 몰라서 많이 헤매고 그랬으나 나중에는 이민호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지적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시무룩한 선영도 노력하기에 따라 민영처럼 급성장할 것으로 이민호는 기대했다. 호위로서 국왕을 따라다니다 보면 배우는 것도 많고 자연스럽게 시야도 넓어졌다.
1615년 아이슬란드는 아주 혹독한 추위를 겪고 있었다. 늦여름까지 아이슬란드 전체에 얼음이 덮여서 심지어 해안에서도 얼음이 녹지 않았다. 지열발전과 알루미늄 생산, 온실 수경재배 외에 전통적인 산업이었던 어업이 큰 타격을 받았고, 얼마 안 되는 목축업은 대재앙을 맞이했다.
5월 말부터 헤드비히 여왕과 아이슬란드의 여자 행정관들이 일주일마다 왕궁으로 급보를 보냈다. 내용 중에 이들의 비명이 섞여 있는 듯해서 이민호가 8월에 직접 아이슬란드로 향했다.
도착하고 보니 한여름인데도 아이슬란드 전체가 얼음에 뒤덮여서 마치 거대한 빙산처럼 보였다. 분명히 밤 11시 이후에도 해가 떠 있는 여름이었으나, 주변에 따뜻한 난류가 흘러 다른 지역보다 따뜻하던 레이캬비크마저 몹시 추웠다.
“아무리 아이슬란드지만 8월 말에 얼음이 언 꼴은 처음 봤다. 가축들이 얼어 죽지는 않았겠지?”
“물론이에요. 유리온실에서 따뜻하게 지내고 있어요. 급히 덴마크에서 건초를 수입해서 먹이고 있어요.”
여자 행정관들의 안내를 받아 가축들부터 살폈다. 추위에 극히 강한 아이슬란드의 작은 말은 시베리아 탐사대와 극지 탐험대가 요긴하게 쓰고 있는 중요한 품종이었다. 갈기가 풍성하다 못해 앞머리를 길게 기른 모습이 장발의 록 스타처럼 생겼다. 아이슬란드 양은 털 색깔이 다양하고 털이 길기로 유명했다.
“지열발전소와 알루미늄 공장은?”
“지열발전소는 냉각효율이 올라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고 있어요. 알루미늄 공장의 가동률이 처음으로 100퍼센트를 넘었어요.”
“흠. 그런데 뭐가 문제지?”
“대구 어장이 남쪽으로 멀리 형성된 것이 가장 큰 문제에요.”
예전에 아이슬란드의 경제 구조는 어업이 7할 이상, 나머지가 목축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열발전소와 알루미늄 공장이 국내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어업과 목축업은 비중이 확 줄어들었다. 이민호가 아이슬란드를 갖기 전에 몹시 살기 어려웠던 것은 스코틀랜드 어부 겸 해적들 때문에 어업이 마비된 탓이었다.
“어민들에게 수입 감소분만큼 매달 보조금을 지급해. 아니, 이 기회에 조업을 아예 쉬게 하고 월수입을 고스란히 지급하는 게 낫겠다.”
“예. 어획을 중단시키고 당분간 산란장과 치어 양장만 가동할게요.”
“그리고 도로 밑에 열선을 깔아 도로가 얼지 않도록 하는 공사를 즉시 추진하도록 해. 해안 마을뿐만 아니라 산간 마을도 고립되지 않도록. 어차피 전기는 남아돌아. 설마 예산이 부족하지는 않겠지?”
“네! 돈 쓸 곳이 없어서 고민 중이었어요. 도로 공사에 필요한 노동력으로 어민들을 고용할게요. 왕궁 아래에서 항구까지 이어지는 아달스트라이티와 김나지움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가장 먼저 개조하면 좋겠어요.”
아달스트라이티는 메인스트리트, 중심 도로라는 뜻이다. 고산국 왕궁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주작대로와 같은 역할이었다. 레이캬비크에는 몇 년 전만 해도 집이 몇 채 되지 않았으나, 레이캬비크 고등학교는 이미 6백 년 전에 세워져 있었다. 최근 레이캬비크가 도시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고등학교 학생들도 대폭 늘어났다.
이민호가 건축가들과 함께 도로결빙 방지 시스템을 설계하는 동안 북미에서 건설장비와 건설 기술자들을 불렀다. 건설자재인 구리선과 시멘트, 석재도 대량으로 수입했다.
“도로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될 때까지 이곳에 머무르마. 그 동안 우리가 할 일이 없네?”
“그럴 리가요.”
일곱 명으로 늘어난 행정관들과 차례로 눈을 마주치자 다들 생글생글 웃었다. 좋으면 좋다는 의사표시를 확실히 해서 남자 입장에서 매우 편했다.
마침 헤드비히가 덴마크와 네덜란드로 건초를 사러 가서 레이캬비크 왕궁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여자 행정관들과 함께 침대와 온천을 오가며 일주일쯤 지내는데 특이한 보고가 들어왔다.
“전하! 에스파냐의 포경선 세 척이 여기서 북쪽, 베스트피르디르에서 출발한 직후 강풍을 만나 암초에 좌초됐어요. 아마도 겨울 내내 수리해야 될 것 같아요.”
“그쪽은 인구가 적어서 많은 사람들을 손님으로 접대하기 어려울 거야. 배를 보내줄 테니 포경선들을 예인해서 선원들이 겨울 동안 레이캬비크에서 지내도록 배려해줘.”
바스크 사람들이 주축이 된 대서양 포경업은 1560년대에 테라 노바, 즉 뉴펀들랜드 방면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때 포경선이 30척에 선원은 2천 명이나 되고 매년 고래 400여 마리를 잡았다. 그러나 겨우 몇 십 년이 지나면서부터 고래가 확 줄어들어 포경업은 사양 산업이 되었다.
바스크 포경선들은 고래를 쫓아 고래잡이의 범위를 점차 넓혀갔고, 17세기 초반에 아이슬란드에 기항했다. 서로 이익이 되므로 아이슬란드 사람들도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이민호가 아이슬란드와 뉴펀들랜드를 차지한 다음에도 바스크인들을 포함한 에스파냐의 포경업을 금지하지 못했다. 외국에서는 고산국과 에스파냐가 동맹국이라서 바스크 포경선을 보호해주는 줄로 오해했다.
이틀 후, 좌초한 포경선들을 긴급 수리한 다음 순양함이 예인해왔다. 배 3척의 상태를 살펴보니 겨울 내내 레이캬비크 조선소에서 수리해야 할 것 같았다. 따뜻한 어민 숙소에서 지내게 된 포경선 선원 80여 명을 대표해 선장 세 명이 이민호를 알현해 감사를 표했다.
“선장 마르틴 데 비야프랑카와 페드로 데 아기레, 에스테반 데 텔레리아가 고산국 국왕전하께 경의를 표합니다.”
“어떻게 된 게 올해의 아이슬란드는 일 년 내내 겨울이오. 아마도 해류의 흐름이 바뀌면서 일시적으로 북극의 추위를 몰고 온 모양이오. 그대들은 따뜻한 선원 숙소에서 지내면서 배를 고치도록 하시오. 그대들이 조난을 당했기에 선원들이 숙소에 기거하는 동안의 모든 비용은 아이슬란드 왕궁에서 지불하겠소.”
“감사합니다, 전하. 아이슬란드가 몇 년 사이에 확 바뀐 것 같습니다. 훨씬 풍요로워졌다 했더니 역시나 고산국 국왕전하께서 계시는군요.”
“나는 곧 아이슬란드를 떠나겠지만 불편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왕궁에 보고하시오.”
포경선이 좌초한 것은 선장들에게 불운이었지만 고산국 국왕을 직접 알현한 것은 평생 자랑거리로 삼을 만했다. 특히 선장 마르틴 데 비야프랑카는 할아버지 대부터 뉴펀들랜드에서 포경업을 해오던 집안이었다. 이민호가 선장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본 다음 선물을 주어 돌려보냈다.
그 사이 선원들이 있는 돈 없는 돈 다 동원해서 레이캬비크의 상점들을 털고 다녔다. 고산국 상품을 잔뜩 구입한 선원들은 바스크에 돌아가면 큰 부자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전하. 온천과 지열 해변을 제외하면 아이슬란드 전체가 꽁꽁 얼었어요. 바스크 어부들을 지열 해변의 숙소로 옮길까요?”
“안 돼. 거긴 레이캬비크 주민들이 쉬는 곳이야. 외국인들이 떼로 몰려가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을 테니 근교의 적당한 온천에나 안내해 줘. 여름 추위 때문에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어. 이럴 때는 외국인들과 가급적 안 마주치는 게 좋아.”
이민호의 판단이 옳았다. 실제 역사에서 여름에도 추위에 시달리던 바로 이 해에 아이슬란드 역사상 마지막 학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번역하면 에스파냐 사람들 학살 사건인데 그들 대부분이 포경선 선원인 바스크인들이었다.
1615년 선장 마르틴 데 비야프랑카 밑에서 일하던 바스크 선원들과 아이슬란드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해 1차로 바스크 선원 13명이 집단 학살당했다. 그 다음 치안 판사가 판결을 내려 나머지 바스크 선원들도 모조리 학살당했고 딱 한 명만 다른 지역으로 도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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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질 내용인데 먼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