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46 94. 1615년~1617년 =========================================================================
“피임과 임신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발전이에요. 그러나 고산국의 국시는 인구 증가에요. 설마 피임약을 자유로이 판매할 계획인가요?”
“바로 그것을 논의해야 합니다, 총리님. 제가 국왕전하와 총리님을 비롯해 대신 여러분께 인구 현황과 전망을 보고하겠습니다.”
보건국장이 미리 준비한 커다란 표를 회의장에 세웠다. 앞의 몇 장은 각종 피임법과 문제점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 내용이라서 보건국장이 얼른 넘겨버렸다. 국무회의에 총리 혜영과 교육국장 최 선생이 참석했기에 보건국장은 신체를 객관적으로 논해야 하는 의사로서의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피임약이나 도구의 사용은 역사가 오래 됐다. 피임을 부도덕한 행위로 금지한 중세 유럽에서도 유서 깊은 질외사정법이 활용됐으며 백합이나 루타(rue)라는 식물의 뿌리를 질 내에 삽입하는 식으로 피임을 시도했다. 기원전 1850년과 1550년에 제작된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는 꿀이나 아카시아 잎을 피임도구로 사용했다고 기록됐다.
북아프리카 해안지대에서만 자생하던 실피움(Silphium)이라는 식물은 향신료와 약용으로 사용한 외에도 피임에 효과도 너무나도 좋았다. 그래서 고대 지중해 여러 문명권에서 너도 나도 비싸게 수입해서 사용하다 보니 결국 멸종하고 말았다. 미나리과에 속한 여러 종의 식물은 에스트로겐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야생 당근처럼 피임 효과, 엄밀히 말해서 유산시키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흠! 흠! 고산국의 총 인구는 올해로 2천 5백만이 넘어섰습니다. 국가의 통치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고산국 백성으로 등록된 숫자만 이 정도입니다. 동해국과 큐슈, 아이누 섬, 몽골, 필리핀 북부 등은 제외했습니다.”
보건국장이 지역별, 인종별 인구현황을 세세히 설명했다. 고산국 본토 인구는 자연적 인구증가와 주로 조선에서 온 이민자들로 인해 어느덧 6백만을 돌파했다. 이들 중 다수가 가족 단위로 북미나 호주로 다시 이주했음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인구증가율이었다.
인종별로는 먼저 조선에서 이주했거나 2세대, 아직 어린 3세대 한민족과 다른 인종의 혼혈을 합해 1,600만으로 늘었다. 조선에서 이주한 백성이 약 30년 동안 5백만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난 30년 동안 부부 당 4자녀 이상의 비율로 열심히 낳아서 훌륭하게 길러냈다. 그리고 최근에 성인으로 성장한 2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다.
호주와 북미, 남미의 고산국 영역에 거주하는 원주민이 500만에 달했다. 유럽인의 침략과 전염병으로 인구가 대폭 줄어들었던 남미에서는 최근 회복 추세인 반면 멕시코 북부 지역은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감소추세였고, 그 원주민들이 전염병을 피해 리오그란데 강을 넘어 고산국 백성으로 등록하는 경우가 늘었다.
고산국 탐사대와 접한 신대륙이나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은 무조건 예방 접종부터 실시해 전염병에 감염될 여지를 줄였다. 탐사대원들의 가장 큰 적은 근대적인 의료행위를 격렬하게 거부하는 원주민 주술사였다. 북미 중앙평원과 서부산맥에 거주하는 일부 원주민들은 아직 고산국에 복속하지 않았으나, 조만간 북미 원주민 전체가 고산국 백성으로 등록할 경우 50만 정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그 외에 아일랜드와 모리스코, 프랑스 등 유럽 출신 이주민이 2세대까지 포함해서 300만, 노예 등의 신분으로 고산국에 이주했다가 완전히 귀화한 일본 출신이 50만, 대륙횡단철도 건설을 마치고 주로 북미 서부에 거주하는 중국인 혈통이 10만이었다. 고산국의 교육 정책은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 종교를 보존하는 방향이었으나 일본 출신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람에 출신 언어 교육을 면제해줬다.
“대신들과 백성들이 그 동안 노고가 많았소.”
“전하께서 인구 증가의 일등공신이십니다.”
“험! 험!”
칭찬인지 비꼬는 말인지 모를 찬사를 들으며 이민호가 보건국장이 제시한 표를 살폈다. 매년 인구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국가를 다스리는 것은 군주로서 큰 기쁨이었다.
“동해국 인구가 어느덧 80만을 넘었구려.”
“요즘도 꾸준히 귀화인이 늘고 있습니다만, 그 동안 자연적인 증가만으로 두 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건주 여진에 정복당한 해서 여진 여러 부족이나 북쪽 퉁구스 계열 부족들이 가족 혹은 마을 단위로 요즘도 꾸준히 귀부했다. 그 동안 동해국 인구가 충분히 늘어서 이제는 국가를 칭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도 여러 부족장들이 동해국을 고산국에 통합해달라고 청원했고, 이민호나 혜영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었다. 건주 여진 문제가 해결되면 동해국을 흡수 통합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예정이었다.
유구국과 오만, 브루나이와 칼미크로 외부적 명칭이 정착된 오이라트부의 토르구트 족은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고산국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이들 정치집단은 외부적으로 고산국의 속국을 자칭해서 경제적, 정치적 이득을 누리고 있었다. 그 외에 몽골 고원 북동부에 거주하는 몽골인들과 이누이트 등은 천천히 고산국에 흡수할 예정이었다.
아이누 섬은 앞으로도 이민호가 국왕을 겸하며 당분간 후궁 통치를 계속하기로 했다. 몇몇 젊은 부족장과 후계자들이 정치적 야심을 드러냈으나 다른 부족들의 반대가 극심해서 정권 이양을 해주지 못했다. 사관학교 등 단기간 교육받은 수준으로는 고산국에서 장기간 제대로 교육받은 후궁들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전하께서는 고산국의 적정 인구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이제는 인력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소. 그러나 앞으로도 꾸준히 인구 증가 정책을 지속해야 할 것이오. 농업 생산력만으로 따지면 북미에서 10억, 남미에서 10억 정도는 충분히 부양할 것 같지만, 백성들은 애 낳는 도구가 아니오. 농업생산력의 5분의 1 정도를 장기적인 인구 목표로 설정합시다.”
그래도 남북미 합해서 4억이라 대신들이 놀라 입을 떡 벌렸다. 그 외에 본토는 천만, 동해국 영역은 1억, 호주 5천만, 시베리아 3천만 등으로 적정 인구를 제안했다. 그 후에도 자연적인 인구 증가만으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목표 인구를 달성할 때까지 피임약의 판매를 허용하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요.”
“피임 문제는 결혼한 여학생의 학업권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시킵시다. 만 19세 이하로서 결혼한 여학생에게만, 그것도 자유의사에 따라 학교에서 양호교사의 지도 아래 무료 배포하는 게 어떻겠소? 그리고 임산부의 건강이나 성범죄로 인한 낙태 필요성이 있을 테니 낙태시술이 가능한 경우를 법으로 상세히 규정합시다.”
피임이나 유산이 절실한 여성들이 있으니 목숨을 건 온갖 피임과 유산 방법이 세계 모든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이어져 왔다. 고산국의 국시가 비록 인구 증가에 있다 해도 프로이센처럼 산모를 불행하게 만드는 비정한 정책을 강제할 수는 없었다. 이로써 인구 증가라는 국시와 젊은 부인의 학업권이라는 권리의 충돌을 막을 수 있게 됐다.
갈릴레오가 로마를 방문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케플러와 그의 어머니를 변호한 다음 1616년 연말에 귀국했다. 갈릴레오가 시차 적응이 안 돼서 새벽이나 밤이 아닌 대낮에 만나서 이야기하려니 이민호도 몹시 어색했다.
갈릴레오는 교황과 천동설, 지동설을 두고 학설과 교리를 구별하자고 담판을 벌였고, 교황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완고한 로마가톨릭 신학자들로 구성된 ‘자격부여위원회’를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 위원회는 이미 지난 2월에 태양중심설은 철학적으로 불합리하고 성경 구절에 모순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단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었다. 그래서 갈릴레오의 논문은 여전히 금서목록에 남았다. 3월 5일에는 1543년에 발간된 코페르니쿠스의 책 <천구의 회전(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도 금서목록에 추가됐다.
“고산국 외교관 신분으로 방문하지 않았다면 자칫 종교재판에 회부될 뻔했습니다.”
“성경 구절을 천문 관측 결과와 공존시킬 유연성이 신학자들에게 부족한 것 같아. 마침 신교도들도 지동설을 반대하니까 교황청이 종교적 권위로 진실을 억누를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위원회 소속 신학자들이 케플러와 갈릴레오의 천문 관측 결과를 무시하고 무작정 큰소리만 친 것은 아니었다. 천문학자들의 결론을 신중히 검토해서 일식과 월식 계산이 더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는 점을 확인하고도 결론은 여전히 천동설이었다.
이들에게는 과학보다 신앙이 우선이었고, 성서에 기록된 내용은 무조건 진리여야 했다. 그리고 유럽의 정세를 살피고 정치적인 고려를 한 다음 지동설을 폐기시키려 했다. 당연히 신학자들의 대척점에는 천문학자들을 후원하는 이민호와 고산국이 서 있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소한 문제 때문에 성경과 교황청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신자들이 배교를 할까 두렵습니다. 괜히 논문을 발표해서 물의를 일으킨 제 책임이 큽니다.”
“아니야. 진리가 먼저지. 신앙과 과학적 진리 사이에서 갈릴레오 백작이 고민이 많겠어. 백작처럼 진리를 추구하면서도 신앙을 굳건히 할 수 있는데 말이야. 참으로 안타깝네.”
이어서 갈릴레오가 이민호에게 케플러에 관해 보고했다. 케플러와 그의 모친에 대한 마녀 재판 일정이 최소 몇 년을 끌 것 같다는 암담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케플러가 구금되지 않아 천문학 연구를 계속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후원이 끊긴 케플러가 경제적으로 곤란에 처하지 않도록 갈릴레오가 충분한 자금을 전달하고 돌아왔다.
“갈릴레오 백작. 이 메달을 받게.”
“이건 무엇입니까?”
큼직한 금메달을 받은 갈릴레오가 어리둥절하며 메달에 새겨진 문자와 도안을 살폈다. 출발 직전에 비행기 앞에서 조종사들과 승무원, 그리고 갈릴레오가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바로 그것이 메달 앞면에 새겨져 있었다. 뒷면의 내용을 갈릴레오가 얼떨떨하게 보는 사이 이민호가 말했다.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한 사람들에게 주는 기념 메달일세. 순금 640그램으로 제작했네. 축하하네.”
“지구 반지름 6,400km를 상징하는가 보군요. 감사합니다, 전하. 하오나 저보다는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 더 어울립니다.”
“물론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도 지급했네. 자넨 승객 1호 자격으로 비행기에 탄 셈이야. 역사에 길이 남을 걸세.”
스위스 용병들이 주둔하던 기간에 로마 교외에 활주로를 닦아놔서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로마 주재 대사관 직원들이 수박 겉핥기로 배우고 교범을 보면서 관제를 해준 덕에 안전하게 이착륙을 하게 됐다.
이민호가 일어나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갈릴레오와 악수를 나눴다. 그 전에 기자들이 접견실에 들어와서 두 사람을 사진기로 촬영했다.
“억지로라도 웃게. 사건이나 업적보다는 기념 촬영한 사진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네. 메달에 새겨진 그림처럼 말이지.”
“본질과 상징의 차이입니다만 가끔은 상징이 더 인상적일 때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기네스북 대신에 세계 기록 백서가 매년 발간되고 있었다. 앞으로 여러 나라에 학자들을 파견해 조사하거나 인증하면서 내용을 채워나갈 예정이었다. 물론 항공 분야를 비롯한 여러 분야를 고산국이 독점하고 있으므로 과학 분야는 거의 고산국의 독무대였다.
“그런데 저 젊은이는 누군가?”
“프아티에흐 대학 법학과에서 리상스를 획득한 레나투스 카르테시우스가 고산국 국왕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갈릴레오가 네덜란드에서 만나 데려온 프랑스 젊은이가 이민호에게 정식으로 인사했다. 네덜란드에 주둔한 프랑스군 병사였는데, 갈릴레오와 만나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다가 현지에서 제대하고 갈릴레오를 따라왔다고 했다. 이민호는 이름이 어색하게 들려서 혹시나 하고 물어보았다.
“라틴어 이름인 것 같군. 프랑스어 이름은 뭔가?”
“르네 데카르트라고 합니다, 전하.”
근세 철학의 아버지이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한 철학자가 아직은 파릇파릇한 스무 살 젊은이였다. 이민호는 이 코가 큰 젊은이가 유물론의 창시자 데카르트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법학과를 졸업했다고 했지? 혹시 철학도 전공했나?”
“법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철학과 수학 등을 공부했습니다.”
“훌륭해! 법학은 수학만큼 논리적이어야 하고 철학 없는 법학은 백성들을 학대하는 도구에 불과하거든.”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전하!”
이민호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듯이 근세 최고의 철학자를 반겼다. 프랑스나 네덜란드에서 연구와 저술을 하더라도 실제 역사만큼의 수준에 도달하겠지만, 데카르트가 고산국에서 다양한 학문을 자유롭게 접하면 더욱 큰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 고산국에서 무엇을 할 건가? 철학 교수? 아니면 수학이나 물리학 교수? 무엇을 원하든 자네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야.”
“황공하옵니다, 전하. 고산국에서 여러 가지 학문을 배운 다음 연구와 저술에 정진하고 싶습니다. 갈릴레오 백작께서 광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해주셨는데 그 분야도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좋지. 갈릴레오 백작이 아주 훌륭한 인재를 초빙해왔어.”
“전하께서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대단히 높으십니다.”
갈릴레오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데카르트는 갓 대학을 졸업한 스무 살 젊은이에 불과한 자기를 이렇게 환대해줄 줄 몰라 어리둥절했다.
“사실 전부터 고산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콜레즈 라 플레시에서 공부하는 동안 몸이 아파 침대에 누웠을 때 천장에 붙은 파리의 정확한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좌표계라는 것을 고안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간단하면서도 대단한 발상을 했다고 자부했는데 고산국에서는 지도 제작과 건축 설계, 수학 등에서 이미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좌표는 고산국에서 중학교 학생들이 수학을 배울 때 사용하는 기본적인 도구라네. 누군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그렇습니다, 전하.”
이민호는 속으로 몹시 찔렸다. 데카르트가 말한 좌표계란 x와 y 축으로 표현되는 직교 좌표계였고, 데카르트의 발명품이었기 때문이다. 수학 교과서를 만들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사용했지만, 진짜 발명가 앞에서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데카르트 군! 다른 새로운 발상이 있으면 학계에 발표해서 다른 학자들의 비판을 받아 수정하게. 만약 어떤 과학적, 철학적 사실이 진실로 증명된다면 세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걸세. 나는 그런 자네를 후원하겠네.”
“감사합니다. 전하의 뜻을 받들어 저를 알고 다른 이를 돕기 위해 학문에 정진하겠습니다.”
이민호는 공대 출신에게 쥐약인 철학자와 대화하는 도중 무식이 드러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철학자도 사람인지라 철학자가 아닌 사람과 대화하면서 높은 수준의 철학을 요구하지 않았다.
“자네는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의 후원을 받게 될 걸세. 여기 계신 갈릴레오 백작처럼 말이야. 저택과 연구실, 귀족 작위와 작은 영지, 하인과 하녀 여러 명을 두고 부리면서 편하게 연구와 저술 활동에만 정진하게.”
“주변에 신경을 쓰다가 시간을 낭비할까 두렵습니다, 전하. 그저 조용한 곳에 위치한 작은 집 한 채와 일반 서민의 생활비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집사가 자네를 위해 저택과 영지, 하인들을 관리해줄 걸세.”
데카르트가 이미 업적을 드러낸 학자는 아니었지만 현재 가진 지식과 독특한 사고방식만으로도 이런 대우를 받기에 이미 충분했다. 이민호는 본격적인 근세의 개막을 알릴 철학자가 고산국에 온 것을 몹시 기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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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이 끝났습니다. 의료와 식량, 그리고 더 많이 남아도는 여가 시간 덕택에 백성들이 안 죽고 많이 낳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