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67화 (816/1,000)

00867  96. 1619년 사르후 전투  =========================================================================

추격전은 긴박감이라곤 하나도 없이 여유롭게 진행됐다. 동로군의 최고지휘관인 이민호가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고, 허투알라를 비우고 도망친 후금 잔여 세력도 후방 정찰을 실시하고 있기에 쫓는 자와 쫓기는 자들은 잡힐 듯 말 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걱정했던 매복이나 야습은 없었다. 쇠로 만든 괴물이라고 소문이 난 장갑차를 공략할 방법이 후금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기름이 든 질그릇 병에 불붙은 심지를 매달아 던진 화염병은 후금군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무기였으나, 장갑차 정면에 던져서는 전혀 소용이 없었다. 사실 그때 이민호는 몰로토프 칵테일을 떠올리며 많이 놀랐다.

- 북쪽으로 이동할수록 후금 잔당의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도주했던 팔기가 집결하고 분산 거주하던 후금 백성들이 꾸준히 가담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총 인원이 5만을 돌파했습니다.

“알았다. 앞으로도 두 시간 단위로 보고하라.”

정찰기와 연결된 통신을 끊었다. 도주하는 후금 집단을 정찰기가 하루 종일 따라붙어 위치를 보고하고 있었다. 그러나 홍타이지는 이민호가 추격하더라도 적대감이 없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의외로 느긋하게 움직이는 편이었다.

다음 날 오후 개원 남동쪽의 너른 들판에 들어서면서 진군 속도를 높이려는 찰나, 북동쪽 지평선에서 기병 수천 기가 나타났다. 선두에 선 장갑차 연대가 전투 준비에 들어가고 기병 여단이 우회 공격하기 위해 자리를 잡는 사이 기병 집단에서 전령이 달려왔다.

“예허부의 전령이오! 고산국 국왕전하께 고하게 해주시오.”

전령이 이민호가 탄 장갑차 앞에 말을 세우면서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무릎을 꿇고 군례를 올렸다. 조선이나 후금 기병의 착지 동작을 보고 감탄했었는데 예허부 전령의 착지는 그들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고하라.”

“패륵 부양구는 예허부 기병 1만이 고산국 국왕전하께서 지휘하시는 동로군에 배속되기를 원합니다.”

“예허부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고작 그것밖에 안 되나?”

예허부가 북로군에 속해 공동작전을 했을 때는 겨우 기병 2천기를 동원했다가 명군의 패전 소식을 들은 즉시 본거지로 퇴각했었다. 이민호는 동로군이 승리한 소식을 들은 예허부에서 전력을 박박 긁어서 나온 것으로 판단했다.

“본거지에 2만이 더 있습니다만 당장 정예만 1만을 동원하기로 했습니다. 국왕전하께서 여진의 일을 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만, 예허부의 군세는 건주 여진에 이어 두 번째 규모입니다.”

“아니. 세 번째다.”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한때 예허부보다 세력이 강했던 우라부나 다른 부들은 모두 멸망했습니다.”

“우라부는 멸망하지 않았다.”

때마침 동쪽에서 우라부의 패륵 부잔타이가 기병 2만을 이끌고 달려오고 있었다. 전령이 눈을 비비고 우라부 기병 집단을 살폈으나 동해국이나 중소 부족이 참가한 연합세력이 아닌 순수 우라부 기병들이 맞았다.

우라부는 1613년 건주 여진에 의해 일단 멸망했으나 패륵 부잔타이를 중심으로 흑룡강 중류 지역에서 유목과 농경을 하며 차분히 힘을 기르고 있었다. 부잔타이는 지난 6년 동안 동안 흩어진 우라부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조상이 같은 하다부의 유민들도 흡수했다. 그리고 북만주의 여러 삼림 부족들을 유인해 단 6년 만에 우라부를 재건할 수 있었다.

“국왕전하! 신수가 여전히 훤하십니다.”

“패륵이 인구 증산에 힘쓴다는 말은 익히 들었네.”

“국왕전하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 수준입니다.”

우라부의 패륵 부잔타이는 흑룡강 중류에 정착한 이래 새장가를 열 번 넘게 들었다. 신부들은 몽골계 부리야트 족, 퉁구스계 시버 족과 에벤키 족, 나나이 족, 투르크계 야쿠트 족 등 다양한 구성이었다.

정보국에서는 부잔타이가 북방 민족들을 아우르는 결혼 동맹을 형성하는 줄로 오해하고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나중에 파악해 보니 부잔타이는 그저 여러 종족의 신부들을 수집한 일종의 컬렉션 겸 하렘을 구성한 것이었다.

부잔타이는 이민호가 발간하는 남성 잡지의 열렬한 구독자로서 잡지에 모델로 등장한 처녀들에게 욕심을 냈다. 그래서 가끔 고산국 왕도를 방문했으나 고산국 본토 처녀들은 추운 북쪽 땅으로, 그것도 열 몇 번째 첩으로 시집가려고 하지 않았다.

“동가 공주의 소식은 패륵도 들었나?”

“예. 몽골로 시집갔다가 일 년도 못 돼서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패륵이 젊었을 때 쫓아다니던 여자였는데, 안타깝지 않아?”

“젊어서 한때였죠. 그리고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리 미인도 아니었습니다. 고산국에서 발행하는 잡지를 정기 구독한 다음부터는 실제 여자보다 사진 속 여자가 더 마음에 들게 됐습니다.”

전형적인 오타쿠 같은 소리를 아무런 부끄럼 없이 입 밖으로 쏟아내는 부잔타이를 이민호가 다시 한 번 살펴봤다. 우라부가 건주 여진에 점령당했을 때 크게 낙심했던 부잔타이는 고산국의 도움으로 우라부를 재건하는 데 성공하자 나름대로 행복해 보였다.

“어? 전하의 호위들은 어찌 그리 한결같이 경국지색의 미인들이십니까? 저에게 한둘쯤 하사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시끄럽네. 고산국에는 그런 풍습이 없어.”

왕이 가까이했던 여자나 왕의 씨를 임신한 여자를 신하에게 하사하는 풍습은 옛날 신라나 바로 전 시대까지 일본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호위나 후궁들은 자신의 의지로 지금의 신분을 선택했기에 국왕인 이민호조차 이 여자들을 마음대로 부잔타이에게 넘길 수가 없었다.

호위대장 선영을 비롯해 몇몇 호위들의 용모를 이민호가 찬찬히 살폈다. 국왕인 이민호가 호위 겸 후궁들의 미모에 혹해 나라가 무너지도록 내버려두지는 않겠지만 구경꾼들이 지나치게 몰려와서 성벽이 무너질 정도는 됐다. 3세대 호위들의 용모가 뛰어난 것은 어렸을 때부터 고산국 후궁들만이 누리는 각종 미모 증진 비법을 듬뿍 전수받은 탓이었다.

“예허부의 패륵이 고산국 국왕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반갑소이다.”

노닥거리다 보니 예허부 패륵 부양구가 가까이 온 줄도 몰랐다. 부양구가 나타나자 불편했는지 부잔타이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부양구는 동가 공주의 오빠로서 부잔타이에게 동가 공주를 시집보내는 척하면서 누르하치에게 대항하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도주하는 건주 여진의 잔당을 예허부 단독으로 칠까 하다가 아무래도 국왕전하의 허락을 얻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기다렸습니다.”

“잘했소. 팔기를 전멸시키고 허투알라를 점령했으니 후금은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소.”

“저들을 죽이거나 사로잡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까?”

“그렇소. 나는 저들을 천천히 추격해서 이 땅에서 완전히 몰아낼 계획이오. 가축들을 끌고 가는 것을 보니 후금 잔당은 초원에서 사는 방법을 쉽게 익힐 것 같소. 혼인 동맹으로 맺은 몽골 부족들이 많을 테니 굶어죽지는 않겠지요.”

적과 맞붙어 싸우다가 저항하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나머지를 노예로 확보하는 것이 여진족의 상식이었다. 예허부와 우라부의 패륵들은 여진족과 전혀 다른 고산국의 전쟁 방식에 놀랐다. 이민호도 평소라면 결코 쓰지 않을 방법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소? 주력인 팔기가 이미 전멸했는데 나머지도 다 죽이거나 노예로 삼는 것은 너무 불쌍하지 않소?”

“그, 그렇기는 합니다. 국왕전하께서는 몹시 관대하시군요.”

“어쨌든, 가까운 개원에 주둔한 명나라 군대가 보고 있을지 모르오. 함께 후금의 잔당을 추격하는 척이라도 합시다.”

홍타이지가 이끄는 후금의 무리는 개원 동쪽을 지나자마자 방향을 서쪽으로 틀었다. 대군을 형성한 고산국과 해서 여진 연합군은 후금 집단을 지평선 거리까지 따라붙었다.

“예허부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요?”

이민호가 말을 타고 장갑차 옆을 따라오는 예허부 패륵에게 물었다. 군사작전이 아니라 앞으로의 정치 지형에서 예허부의 선택을 강요하는 질문이었다. 부양구가 몹시 당황했다.

“예? 저희들은 황제폐하의 칙명을 받고 모인 동맹국입니다. 예허부를 고산국과 동등하게 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동등한 것 같소?”

“국왕전하의 의향을 알 것 같습니다만, 저희들은 일단 황상의 신민이니 외국에 투항할 수는 없습니다.”

“동해국과 우라부는 고산국의 속국이오. 참고하도록 하시오.”

부양구가 고민에 빠졌다. 건주 여진이 이주를 거듭해 무순 동쪽에 자리 잡았었던 것처럼 예허부는 개원 동쪽에 자리 잡았다. 예허부는 그 동안 명나라와 여진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 교역권을 독점하고 몽골과 동해국 사이에서도 중개 무역으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산국의 속국인 동해국이 예허부에 속했던 소수 부족을 회유하는 방식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후금이 밀어붙이면서 현재 예허부는 개원 인근의 좁은 지역으로 영토가 위축돼 있었다. 원수인 후금이 사라졌다 했더니 이제는 명나라와 고산국이라는 두 거대 제국의 틈바구니에 끼게 생겼다.

이 상황에서 만약 동해국이 예허부와의 무역을 끊는다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가 있었다. 후금이 멸망하면서 예허부가 발전할 기회를 맞았다고 기뻐했겠지만 이렇게 되면 확장은커녕 독립도 불가능했다.

후금이 멸망한 순간까지 몰랐었는데 예허부와 후금은 사실 순망치한의 관계였다. 고산국에서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명나라가 후금의 다음 상대로 예허부를 치게 돼 있었다. 패륵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전하! 노여워하지 마옵소서. 조선 국경 가까운 지역에서 거주하던 여진 부족들은 천조와 조선 양쪽에서 직첩을 받았습니다. 듣자 하니 대마도도 조선과 일본에 양속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례 비슷하게 예허부도 천조와 고산국에 양속하면 어떻겠습니까?”

“어허! 예허부가 천조의 제후국인데 어찌 다른 제후국에 속할 수 있겠소? 그럼 내 제안은 없던 일로 하겠소.”

실제 역사에서 유구국이 사신을 파견해 조공을 바쳤던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와 달리 조선 중기 이후의 국왕은 유구국 국왕에게 동등한 입장에서 국서를 보냈다. 두 나라 모두 독립국이었고 국력의 차이가 컸지만 명목상 둘 다 명나라의 제후국이었기 때문이다.

예허부도 명나라의 명목상 속국임을 내세워 버티려면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예허부 패륵의 대답 여하에 따라 고산국 군대와 우라부 기병들이 예허부에 실체적이고 급박한 위협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예허부 패륵 부양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임진왜란 직전에 대마도가 일본의 강한 구심력에 끌려 들어가 매몰된 것과 비슷한 처지였다.

“아니옵니다! 고산국에 신속하겠습니다. 그럼 동해국처럼 먹고살게 해주십니까?”

“동해국이 속국에 불과하지만 그 백성들이 끼니 걱정하는 경우를 봤소? 앞으로 먹는 문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게 될 것이오.”

이민호는 이로써 예허부를 속국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예허부가 고산국에 붙은 것을 명나라에 설명해야 하는 문제가 남았다.

후금이 비우고 떠난 땅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였으나, 예허부 외에는 답이 없었다. 명나라는 자기들이 쌓은 장성을 넘을 수 없고 조선은 기회가 생겨도 압록강을 넘으려 하지 않았다. 동해국에서는 너무 멀었다. 그래서 이민호는 후금 땅을 예허부에 넘기는 대신 다소 강압적으로 예허부를 고산국에 종속시키려 했다.

“형님은 다른 생각을 안 하시는 게 좋을 거요. 동해국에 속한 기병만 해도 거의 10만이오. 이번 전쟁에서 드러난 고산국 본토 군대의 강함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소.”

“어허! 이놈 부잔타이야! 약 올리지 말거라. 그깟 장가 한 번 못 갔다고 원한이 사무쳤느냐?”

“옛 일은 이미 잊었소. 고산국에 먼저 투항한 제가 고산국의 전력을 냉정히 판단하고 나서 형님께 드리는 충고요.”

부잔타이가 말로는 잊었다고 하지만 동가 공주를 놓고 결혼 사기를 친 부양구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같은 해서 여진이라도 패륵들끼리 이렇게 감정이 나쁘니 서로 견제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패륵들은 들으시오. 병참선이 너무 늘어져서 더 이상 후금의 잔당을 추격할 수 없게 됐소. 황상께는 불가피한 사정을 들어 내가 주문을 올릴 테니 이만 돌아갑시다.”

후금의 잔여 세력을 남몽골 평원으로 확실히 쫓아낸 다음 추격을 멈췄다. 보급이야 어떻게 할 수 있다지만 더 이상 추격하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허부에서는 바로 수긍했고, 우라부의 부잔타이는 전리품을 못 챙겼다고 툴툴거렸다.

“허투알라에서 챙긴 것을 적당히 나눠주겠네.”

“아니, 뭐. 주시면 고맙지요.”

“멀리서 왔으니 며칠 쉬었다 갈까?”

부잔타이를 달랜 다음 군대를 뒤로 물렸다. 이민호와 패륵 두 명을 선두로 개원에 입성하자 명나라 군대와 백성들이 길가에 가득 몰려와 열렬히 환영했다. 연합군의 개선을 축하하는 축제가 사흘 동안 열렸다. 이들 입장에서는 후금군에 의해 죽거나 노예가 될 상황에서 구해준 셈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에서 마무리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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