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74화 (823/1,000)

00874  96. 1619년 사르후 전투  =========================================================================

8월 하순에 고산국 왕실 전체가 규슈 남부로 옮겨 여름휴가를 보냈다. 시마즈 가문이 다스리던 사츠마 국은 완전히 사라지고 화산섬 일대가 왕실 휴양지로 변모했다. 야자나무가 자라는 따뜻한 곳이면서도 말라리아가 번창하지 않은 지역이라 필리핀보다 나았다.

“우리 식구들밖에 없는데 짧은 수영복을 입지 그래?”

“그런 수영복은 민망해서 차마 못 입겠어요.”

이민호가 비키니를 권했으나 혜영은 끝까지 원피스에 치마가 긴 수영복을 입으려 했다. 그러나 혜영은 수영복을 위쪽을 벗고 엎드린 채 혜진에 이어 이민호가 일광욕용 기름, 즉 선탠오일을 발라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상태는 민망하지 않고?”

“그래서 수건으로 등을 가렸잖아요.”

“그게 그거지.”

기름을 발라주면서 적당히 안마를 했더니 혜진이 편안히 잠에 빠져들었다. 그늘이라 화상을 입을 염려가 없어서 그대로 두고 이번에는 혜영의 등에 기름을 발랐다. 혜영은 이 나이에도 아직 탱탱한 피부를 자랑했다.

“후궁들만이 아니라 왕자와 공주들도 다 왔잖아요. 벗고 다니다 보면 혹시 미혼인 왕자와 공주들이 눈이 맞아 사고치는 것 아니에요? 그게 걱정돼요.”

“설마 그러겠어? 지금도 서로 소 닭 보듯 하고 있잖아?”

형제, 자매, 남매들은 서로 원수가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보수적인 어른들은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지만 그 어른들이 젊었을 때에 마음에 드는 형, 누나, 언니, 동생이 있었을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함께 생활하다 보면 하는 짓이나 말하는 꼴이 자주 거슬리기 때문이다.

“왕실은 일반적인 가정이 아니에요. 왕자와 공주들이 비록 동기간이라 해도 어미가 다르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왕궁에서 함께 살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없을 거야. 똥오줌을 지린다거나 서로 못 볼 꼴을 많이 봐서 남매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못하거든.”

이민호의 자식들은 같은 아버지의 핏줄을 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서로 가까이 생활했기 때문에 이성으로서 관심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왕실 식구들이 매일 저녁식사를 같이 한다거나, 이민호가 어린 자식들을 모아놓고 함께 놀아준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이 문제에서만큼은 안심할 수 있었다.

20세기 들어서 이 민감한 문제에 관한 역사적, 진화론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연구가 다방면으로 진행됐다. 이스라엘의 공동체 키부츠에 관한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키부츠에 거주하는 부모들은 일반적으로 자식들이 같은 키부츠 내의 이웃집 자식들과 부부로 맺어지길 원한다. 그러나 젊은 부부 2,800쌍을 실제 조사한 결과 같은 키부츠 출신으로서 결혼한 사례는 겨우 13쌍으로서, 거의 0퍼센트에 수렴했다. 그 13쌍마저도 6세 이후에 만났거나 어렸을 때 2년 이상 떨어져 살았던 경우였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아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성적 흥미를 잃는 경향이 있다는 웨스터마크 효과였다. 인류의 초기 역사에서 어렸을 때 같이 자랐다는 것은 혈연일 가능성이 높기에 근친상간에 대한 혐오로 배우자 선택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가설이다. 유아기에 따로 자란 남매가 근친상간을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데 공주들은 왜 이리 시집을 안 가는 거야?”

“눈이 너무 높아서 그런다고 했잖아요.”

“차르 같은 신랑감이 어디 그리 흔하나?”

명나라나 조선, 유럽 여러 나라에서 국혼을 하자고 제안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자바 섬의 마타람 왕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고산국 공주들은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에 반해 왕자들은 비교적 쉽게 장가갔다.

“어머나! 주인님! 저도 발라주세요.”

“그러지 뭐. 옆에 엎드려 있어.”

“저도요!”

항상 이민호 곁에 머무르는 여진족 호위들이 줄줄이 엎드렸다. 멀리서 물놀이를 하던 후궁들도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자리를 깔고 엎드렸다.

이민호는 땡볕 아래서 수십 명에 달하는 후궁들의 등에 기름을 바르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다행히 후궁 절반은 어린 자식들과 함께 물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실 휴양지에는 후궁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아바마마! 저도 발라주세요!”

“남편이나 남자친구한테 발라달라고 해.”

후궁들과 달리 비키니를 입어 맨살을 과감히 노출한 공주들이 이민호에게 매달렸다. 공주들은 어렸을 때부터 잘 먹고 미용과 미백을 꾸준히 시행해서 아버지의 눈이 아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눈부시게 예뻤다. 그러나 이민호는 노처녀 공주들에게 콧방귀만 뀌었다.

“그런 것 없잖아요!”

“그럼 어서 만들든지. 너희들 그러다가 평생 시집 못 간다?”

“그럼 평생 아바마마, 어마마마한테 빌붙어 살죠 뭐.”

“얼씨구? 눈을 낮추고 얼른 시집이나 가. 평강공주처럼 평범한 남편을 도와 출세시키는 방법도 있어. 아니면 후처 자리나 알아보든지.”

공주들이 20대 중반에 가까워지니까 어미인 후궁들보다 이민호가 더 초조해졌다. 이 시대 이 지역의 체격에 맞게 아담한 키로 키울 것을 잘못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닮아서 다들 키가 크고 늘씬해서 시집가기가 더욱 어려웠기 때문이다.

“꺅! 너무해요! 누가 이렇게 크게 키워달라고 했어요? 저희들이 시집을 못 가는 건 순전히 아바마마 책임이에요.”

“키가 크거나 작거나 안 따지고 유아기 때부터 영양을 풍부하게 공급했을 뿐이야. 일반 백성들과 똑같아. 할아버지가 선 보여주실 때 욕심 내지 말고 적당히 혼처를 잡도록 해.”

“외국 왕자나 학자 말고 평범한 남자가 좋은데 말이에요.”

“평범한 남자? 너희들을 직접 만나면 어떤 남자든 기가 죽겠지. 너희들 마음에 들기가 어려워.”

만약 스물다섯 넘어서도 시집을 못 가면 최후의 수단으로 남성 잡지에 공주들 사진을 올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공주들은 절대 안 된다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어쩐지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잡지에 제 수영복 사진이 실리면 남자들 수백 명한테서 구애 편지를 받을지도 몰라요. 사진을 같이 보내라고 해서 그 중에서 후보 몇 명을 추려서 만나볼까요?”

“와! 수영복을 입고 사진 찍을 생각을 했어?”

“흥! 제가 봐도 아름답잖아요. 자랑할 수도 있죠 뭐. 그리고 일찍 시집가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요.”

공주들이 주제 파악을 잘하고 있어서 더더욱 시집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민호는 독신을 선언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스물일곱이 넘어서도 시집을 못가면 정략결혼의 희생자로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이 협박은 조금 먹히는 것 같았다.

9월 5일에 모라비아 영토에서 돌니 베스토니체 전투, 독일어로 비스테르니츠 전투가 벌어졌다.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가 보헤미아 국왕으로 즉위하기 위해 프라하로 이동하는 중에, 그리고 페르디난트 2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 선출되기 직전에 벌어진 이 전투에서 뜻밖에 모라비아가 승리했다.

보헤미아 반란을 지지하는 모라비아의 병력은 3,500명에 불과했으나 일만이나 되는 제국군을 맞이해 절반 이상을 사상시키는 큰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 고산국 관전무관들에게 인명피해가 또 다시 발생했다.

“관전무관들이 작성한 보고서가 피와 분노로 점철돼 있군.”

“멍청한 제국군 수뇌부 때문에 유능한 청년 장교들을 다섯이나 잃었습니다. 티에펜바흐 장군이 급히 막지 않았다면 포로가 됐던 나머지 셋도 죽을 뻔했습니다.”

이민호가 혀를 차는 사이 계복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고산국 장교들은 중립국 관전무관으로 참관했기에 제국군 지휘관의 작전에 관여할 권한이 전혀 없었고, 야습에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하지 못했다. 결국 모라비아군에게 야습을 당한 제국군이 전면 붕괴되는 과정에서 다섯이 죽고 셋만 살아남았다.

외국 전쟁터에 관전무관으로 파견할 정도면 유능한 청년 장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허무하게 죽어나간다면 관전무관 파견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육군 대학을 졸업한 인재가 남의 나라 전쟁에서 헛되이 죽어나가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군 수뇌부와 참모본부에서는 외국군의 전술과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관전무관을 계속 파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청년 장교 다섯 명이 죽어 아군 5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죽은 장교들도 억울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민호를 설득했다.

“티에펜바흐라면 제국군 지휘관 아니었나?”

“아! 모라비아 지휘관 프리드리히 폰 티에펜바흐는 제국군 1사단장 루돌프 폰 티에펜바흐의 형입니다. 둘 다 개신교도입니다만 진영이 갈렸습니다.”

제국군 1사단에는 나중에 제국군 최고사령관이 되는 알브레히트 본 발렌슈타인이 지휘하는 흉갑기병 연대가 포함돼 있었다. 루돌프 폰 티에펜바흐는 토르콰토 콘티가 퇴임한 1631년부터 제국군 야전원수로 활약한다.

“앞으로의 일을 예상해보자. 곧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되겠지만 보헤미아 왕위를 잃은 페르디난트는 어떤 전략을 선택할까?”

“당연히 보헤미아를 되찾기 위해 에스파냐와 가톨릭동맹의 지원을 받으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이에른 공작 막시밀리안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여 팔츠 선제후령을 공격하도록 유도할 것입니다. 황제와 공작은 대학 동기라고 합니다.”

“빌어먹을 혈연, 지연, 학연.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바이에른 공작에게 뭔가 이익을 제시하겠지?”

바바리아, 즉 바이에른은 독일 남동부, 팔츠는 남서부에 위치해 거리상 가까웠다. 그리고 두 지역의 영주는 같은 비텔스바흐 가문 소속이었고, 분가한지 오래 되지 않았다.

영주들은 전부터 서로 상대방 지역을 통합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기에 황제가 바이에른 공작을 같은 편으로 쉽게 유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10월에 뮌헨 조약을 통해 황제가 막시밀리안과 동맹을 맺는다.

“당연히 팔츠 선제후령과 선제후의 직위가 아니겠습니까?”

“영지라면 모르지만 아무리 황제라도 팔츠 선제후 직위를 다른 귀족에게 넘겨주지는 못할 걸?”

이민호의 예상이 맞았다. 황제 페르디난트 2세는 교황의 도움을 얻어 막시밀리안을 팔츠 선제후로 즉위시키는데 성공하지만 귀족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전쟁이 확대되는 계기가 된다.

“어명에 따라 전쟁의 경과를 면밀히 살피고 있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어느 쪽을 지원하실 계획이십니까?”

“어느 쪽도 지원하지 않으며 어느 쪽이라도 지원한다. 이것이 내 계획이다.”

“헤헤! 도련님이 설명 좀 자세히 해주세요.”

대원수 계복이 무게를 잡고 한참 고민하더니 갑자기 이민호에게 아양을 떨었다. 계복도 대충 예상하고 있겠지만 이민호에게서 직접 확인이 필요한 듯했다.

“고산국 건국 이후 에스파냐와 덴마크를 우방국으로 얻어 국익을 확대할 수 있었다. 지금 이 단계에서 우리는 어느 쪽도 버릴 수 없다. 그러나 두 나라는 대표적인 신교와 구교 국가, 우리가 어느 쪽을 돕더라도 반대쪽에서 섭섭하게 여길 것이다.”

“아하! 그럼 양쪽에 무기와 보급품을 팔아먹고 있다가 만약 전세가 한 쪽으로 기울어 어느 한 쪽 우방국의 영토가 적에게 유린될 위기에 처하는 순간에 도와주면 되겠군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유럽에서 세력균형이 유지되는 편이 우리에게 좋겠지. 일단은 중립을 유지하자.”

조건부 참전이지만 전쟁이 흐지부지 끝나지 않는다면 고산국이 참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실제 역사에서는 덴마크가 초반에 승승장구하다가 나중에는 거의 전 국토가 유린당한다. 덴마크와는 서로를 지켜주기로 약속했으니 약속을 지켜야 했다. 에스파냐와의 관계는 북미 방어에 국한된 공수동맹이었지만 상황을 봐서 고산국이 도와줄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30년 전쟁이 실제 역사보다 더 짧게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신교와 구교 사이에 갈등이 쌓여 언젠가 크게 한 번 전쟁이 일어나야 할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개전 자체나 전쟁 초반에는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전쟁이 전 유럽으로 확대되면 북미로 이주하는 자들이 많아질 것이다. 특히 주요 전장이 될 독일이 참화를 크게 입으면 독일계 이주민이 많아질 것 같다. 조정과 북미 도시들에게 독일계 이민자를 받을 준비를 하라고 이미 지시해놓았다.”

“아마도 이번이 이민의 끝물일 것 같습니다. 고산국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니 나중에 오는 이민자들에게 나눠줄 농지가 남지 않겠지요.”

“나눠줄 땅은 없어도 된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업이 가장 중요하지만 농업인구 자체는 적어도 되거든.”

“아차차! 그렇군요. 굳이 농사를 짓겠다는 이주민들을 호주로 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많이 올수록 좋겠지만 그렇게 많이 오지 않을 거야. 이번에 독일인들이 이주하면 북미 중앙평원을 개간하는데 투입하려고 해. 측량해보니까 위도와 경도로 기준점을 삼아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더군.”

북미 중앙평원에서 생활하는 평원 원주민들이 고산국에 복속한 이후 농지는 얼마든지 개간할 수 있었다. 다만 들소 수만 마리가 농지를 짓밟고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들소의 이동로가 고정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유도만 잘하면 농경지에 큰 피해를 끼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 동안 적대적이었던 평원 원주민들을 설득한 유용한 수단이 바로 말이었다. 계절에 따라 남북으로 이동하는 들소떼를 따라다니며 생활하던 원주민들은 고산국에서 제공한 말을 탄 다음부터 인구가 확 늘어났다. 부족한 생필품은 다른 부족에 대한 약탈이 아니라 고산국과의 교역으로 해결했다.

북미 원주민들이 좋은 점이 필요 이상으로 들소를 사냥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한다는 점이었다. 들소가 인간에게 위협적인 맹수가 아니므로 북미에서 적정 규모로 살아남는 편이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들소를 따라다니는 평원 원주민들에게 어느 정도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9월 10일에는 프랑스 내전을 끝내는 앙굴렘 조약이 맺어졌다. 각각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와 모후 마리 드 메디치의 편을 들고 싸웠던 양쪽 군대가 공식적으로 전투를 종결했다.

============================ 작품 후기 ============================

늦었습니다.

조사할수록 언급해야 할 요소가 많아지는군요. ㅜ.ㅡ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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