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90화 (839/1,000)

00890  98. 전란의 시대  =========================================================================

1621년 12월 말이 되자 고산국 왕도 고북의 밤 기온이 가끔 영하로 떨어졌다. 현대 타이페이의 겨울 평균 기온은 섭씨 영상 11도, 12월은 영상 15도 정도이며 영하 0.2도가 최저 기록이지만 이 시기 고북은 꽤 추웠다.

“더 추워지면 눈이 오겠는데?”

“설마요.”

대낮에도 이민호와 후궁들이 집무실의 벽난로 주위에 몰려 앉는 경우가 많아졌다. 단독 주택이나 공동 주택과 달리 지금보다 따뜻한 시기에 지었던 왕궁에는 바닥에 온수 배관을 하지 않아 벽난로나 전기난로에 난방을 의존했다.

“겨울에 추워서라도 얼른 수도를 옮겨야겠다.”

“이 정도 추위도 못 참아요? 조선은 훨씬 춥잖아요.”

“이제 우린 조선 사람이 아니니까.”

혜영이 이민호의 옷깃을 여며주다가 피식 웃었다.

“그럼 어서 멕시코를 매입하세요. 그래야 안심하고 텍사스로 수도 이전을 할 수 있잖아요.”

여름에는 좀 뜨겁지만 나머지 계절에는 온화한 현대의 샌안토니오, 오스틴, 휴스턴 등이 수도 후보로 떠올랐다. 여름에 햇볕이 따가워도 나무그늘 아래에 있으면 시원한 편이었다. 산과 강 사이에 빽빽이 지은 각종 건물로 미어터지는 왕도 고북과 달리 공간을 널찍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곳들이었다.

북미 서부는 지진 때문에, 동부는 유럽 해적의 침범에 노출돼 있어서 교통과 기후를 감안해 남부가 수도 입지로 가장 좋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가까운 멕시코가 에스파냐의 영토로 있는 한 쉽사리 수도 이전을 결정하기 어려웠다.

“멕시코를 받는 대신 베네수엘라와 브라질 사이 기아나를 에스파냐에 넘기는 영토 교환을 할까? 멕시코 은광은 에스파냐에서 계속 운영하게 하면 받아들일까?”

“에스파냐는 지금까지 멕시코에 지나치게 많이 투자했어요. 전쟁이 급해서 멕시코를 돈 받고 팔면 팔았지 영토 교환을 하려 들지는 않을 거여요.”

“에스파냐가 파산하길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늙어죽겠다. 프로테스탄트 놈들 정말 더럽게 못 싸우는 것 같아. 군주라는 놈들이 돈 욕심도 많고.”

연말에 트란실바니아 대공 베틀렌 가보르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2세 사이에 모라비아의 니콜스부르크에서 평화조약이 체결될 예정이었다. 베틀렌은 1618년에 합스부르크의 헝가리 왕국 13개 군, 현대의 슬로바키아 지역 전체를 점령했으나 가톨릭 귀족들에게서 몰수한 재산을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1620년부터 벌어진 전쟁에서 귀족들이 지원을 끊는 바람에 베틀렌 대공의 군대가 패하고 말았다.

“대신들이 어서 세자 책봉을 하라고 채근하고 있어요. 똑똑한 왕자 저하들이 많이 계시니까 골라보세요.”

“개똥이가 세자로 어떨까?”

“어머? 농담하지 마세요. 일부러 정치나 행정 쪽과 관계가 먼 곳에 있잖아요.”

혜영은 한 때 개똥이가 책을 읽는 것도 막았다. 원래는 이민호에게 정식 왕비를 들이라는 압박이었으나 이제는 다 포기하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개똥이는 분명히 좋은 아들이었다. 그런데 체력 하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흔히 군주들의 기본 덕목으로 이야기되는 지적인 면은 떨어져 보였다. 현직 국왕인 이민호와 직접 비교되므로 지성은 고산국의 세자 선택 문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오스만 제국의 상황이 오면서 여자 노예 50명을 주인님께 바친 것 알아요?”

“혜영이가 알아서 풀어줘. 고향에 돌아가게 해주거나 정착하도록 도와줬지?”

“우크라이나가 온통 전쟁터라 돌아갈 곳이 없잖아요. 그리고 왕궁 후원을 가꾸는 갈라티아와 우크라이나 아이들이 나이 들어서 나무를 타기 어렵다고 젊은 애들을 충원해달래요. 궁녀로 왕궁에 남겠다고 한 20명 중에서 세 명을 후원에 배치했어요.”

오스만 제국에서 선물한 여자 노예는 북아프리카 해적이나 흑해 해적이 오스만 황실에 바친 처녀들 중에서 황제나 왕자들에게 배분하고 남은 여자들이었다. 오스만 제국 황실에서는 모계 혈통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노예 출신이 낳은 황자가 황제로 즉위한 사례가 많았다.

이번에 온 노예들은 베네치아 외에 여러 이탈리아 지역 처녀들과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 처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중에서 사치나 권력욕 때문이 아니라 바깥세상이 무서워서 고산국 왕궁에 남겠다고 결정한 여자 노예들이 꽤 있었다. 해적들에게 붙잡히는 와중에 부모형제들이 난도질당하는 꼴을 보면 다시 세상에 나가기 어렵다.

“알아서 해. 그런데 걔들도 내명부 소속이야?”

“왕궁의 보안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해요. 세자 책봉과 상관없이 주인님이 떠맡으세요.”

“으으!”

이민호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저런 이유로 후궁들이 꾸준히 늘어났다. 내명부의 수장인 혜영이 후궁을 들이는 결정권을 갖고 있어서 이민호가 얼굴도 못 본 후궁이 30명이 넘었다.

“세자를 책봉하기 전부터 세자익위사를 먼저 조직해야 해요. 오랜 훈련 기간이 필요하니까요.”

“아! 그렇지.”

“교육은 민희님, 훈련은 민영님이 맡기로 했어요. 두 분과 이야기해봤는데, 순수한 경호부대가 아니라 왕실 업무도 도와야 해서 절반 정도는 여자 호위를 뽑기로 했어요. 호위라면 여진족이 단연 낫겠지만 출신을 따지지 않고 16세 이상 지원자를 모집할 거여요.”

세자를 지킬 여성 호위를 뽑는다면 여진족은 물론이고 고산국 본토에서도 지원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으로 예상했다. 호위는 단순한 경호원도 흔한 후궁도 아닌 국정에 참가하는 고급 인력으로 백성들에게 인식돼서 인기가 높았다.

세자익위사 여성 호위 후보를 뽑는 시험은 기본 체력과 민첩성, 왕실에 대한 충성도를 본다고 했다. 말 타고 총 쏘기는 훈련 과정에 포함돼 있고 호위가 된 뒤에도 평생 익혀야 했다.

“다음 대 국왕도 힘들겠구나.”

“서자로 제위나 왕위가 계속 이어지는 명나라와 조선을 보세요. 왕실에서 일부일처제는 이상일 뿐이에요.”

“그렇지 뭐.”

“그리고 국왕이 왕실 바깥의 여성에게 집적대면서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역사상 나쁜 군주의 사례가 많지만 특히 왕실 인척이나 신하의 부인을 빼앗은 군주는 쫓겨나는 것은 물론 반드시 험한 꼴을 보게 된다. 군주에게 자제력이 없다는 것은 반란을 일으킬 세력에게 아주 좋은 빌미가 되었다.

“나야 바람을 피운 적은 한 번도 없지.”

“저희들 속은 쓰리지만 후궁과 호위가 많아서 그렇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이민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개똥이를 집무실로 불러 차 한 잔을 나눴다. 3년 만에 이면과 함께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할 꿈에 부푼 개똥이의 발 한 짝이 출입구 쪽으로 향해 있었다.

“국왕이 돼 볼 생각이 있느냐?”

“예? 어머님은 제가 정치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하셨습니다만.”

“그거야 그렇지만, 네 의사가 중요하다. 싫다는 놈에게 억지로 맡길 수는 없으니까.”

“아바마마는 정정하시지 않습니까? 차라리 손자들 중에서 후계자를 키워보십시오.”

“너 같은 불효자 놈에게 맡기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겠다만, 백성들이 불안에 떨어서 말이야. 그리고 환갑 넘으면 퇴임하려고 한다. 평생 일했으니 나도 좀 쉬어야지.”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아니더라도 이민호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데 힘써왔다. 과정도 결과도 다 좋아서 백성들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정치를 잘했다고 자부했다. 백성들의 유일한 소망이 이민호 같은 국왕이 계속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민호는 군주정이 아닌 공화제를 지지했다. 추밀원과 지방의회가 잘 돌아갔다면 조기에 입헌군주정을 실시하려고 했으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현재는 추밀원에 직능대표제를 가미해서 지역대표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있었다.

“하필 저에게 하명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이른바 제왕학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관심도 없고요.”

“제왕학? 군주가 되기 전에 배워야 할 지식이라면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너는 뭐라 생각하느냐?”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 아니면 국가의 발전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하는 것? 다른 요소도 많겠지만 필수적인 자질은 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마르그레타가 진정 여왕감이었습니다.”

춥고 자원도 없는 루스 차르국은 설상가상 외국의 침략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위치였고 실제로 폴란드와 스웨덴, 코사크, 타타르 등의 줄기찬 침략에 시달렸다. 그리고 혹독하고 오랜 동란의 시대와 3년에 걸친 대기근을 겪으면서 재정이 완전히 바닥났다.

그러나 마르그레타가 시집간 이후 루스 차르국을 동유럽의 강대국으로 빠르게 성장시켰다. 유럽 변경의 야만국이라는 평가를 받던 루스 차르국이 지금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 발전하고 있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극히 낮은 루스 차르국에서 마르그레타는 결코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남편인 차르 표도르를 도와 성공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고산국에서 도움을 주긴 했으나 마르그레타와 차르는 세금과 부역 등에 관한 몇 가지 내부개혁만으로도 백성들의 삶의 질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백성들은 당연히 기뻐했고 유일한 비판은 대귀족 보야르들에게서 나왔다. 그들 사이에 마르그레타는 황후, 차리차가 아닌 여성 차르, 차리나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차르 표도르와 황후 마르그레타의 조합을 대체할 경쟁자가 이 시기 루스 차르국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차르 부부 뒤에 고산국이 버티고 있는 한 보야르들은 숨죽이며 국정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루스 놈들이 꼴통인 것은 진즉 알았지만 설마 공주들이 시집도 못 가고 평생 갇혀 살아야 할 줄은 몰랐다.”

“황실 법에 따라 같은 신분하고만 결혼할 수 있는데 정교회에서는 외국인 이교도에게 시집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죠.”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의 딸 크세니아 보리소브냐 고두노바는 덴마크 왕자이며 슐레스비히-홀스타인 대공인 요한에게 시집갔다. 그러나 이 경우는 요한이 정교회로 개종한 다음 데릴사위 비슷한 신분으로 모스크바에서 사는 조건으로 결혼이 가능했다.

실제 역사에서 러시아의 공주들은 이반 4세 알렉세이비치의 딸들을 제외하면 전원 시집을 못 가고 테렘 궁이나 수녀원에서 처녀로 늙어죽었다. 1643년 차르 미하일의 딸 이레네와 결혼하려고 모스크바에 왔던 덴마크 왕자 발데마르 크리스티안은 정교회로 개종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가 장가도 못 가고 2년 동안 옥살이를 한 다음 추방된다.

“불쌍한 이리나와 페오도시아가 시집갈 방법이 없을까? 확 그냥 모스크바를 점령해서 정교회를 해체해버릴까?”

“농담은 마세요. 시집보내는 것보다는 외손녀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그러시죠?”

“뭐,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런 문제도 있다. 사진이나 초상화 말고 직접 보고 싶단 말이다.”

“일단 둘을 시집보내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정교회를 압박, 아니 설득하거나 고산국과 루스 차르국이 한 나라가 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1614년 가을에 시집간 마르그레타는 새로운 국가 건설로 바쁜 와중에도 아기들을 잘도 낳았다. 7년 사이에 아들 둘에 딸 둘을 낳아 건강히 키워서 후계 문제에 대한 백성들의 걱정을 덜었다. 그러나 차레브나 둘이 평생 여성 전용 테렘 궁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루스 차르국 왕족과 귀족 여성들의 삶에서 자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결혼은 전적으로 가장이 결정하며 사위가 정해진 다음 장인이 넘겨주는 것이 바로 딸을 때렸던 채찍이었다.

반면에 농민이나 소작농 집안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가난해서 여자를 집안에만 묶어둘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술 취한 남편이 아내를 두들겨 패는 것은 신분이 높은 자들과 같았지만 농민 가장은 다음 날 술이 깨면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아내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종교인을 설득하는 것은 무척 험난한 길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황후의 친정 나라에게 공격당하면 황후가 국가반역자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프랑스 백성들이 마리 드 메디시스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봤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마르그레타를 황후로 맞이한 것은 루스 차르국이 고산국의 군사적 위협에 비군사적으로 대응하는 좋은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공주들에게 정교회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오! 너 잔머리 좋구나. 루스인들이 국교인 정교회가 아닌 종교도 믿을 수 있게 됐으니까. 그런데 황실 종법은 어떻게 넘어가지?”

왕자, 차레비치들 중에서도 특히 차르가 될 세자, 1797년 이후의 황태자 칭호인 체사레비치는 정교회를 믿는 것이 승계와 집권에 유리하겠지만 공주는 상관없었다. 그러나 차레브나에게 다른 신분과의 결혼을 금하는 황법이 루스 차르국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유럽처럼 사촌끼리 결혼하는 건 안 되겠죠?”

“고산국 왕자하고 결혼시킨다고? 동성동본 결혼하는 것도 반대가 심했는데,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명나라나 조선과의 외교에서도 반드시 손해를 볼 것이다.”

“황실 종법을 바꿔서 차레브나가 왕족이 아닌 고위 귀족까지 배우자로 삼을 수 있게 하면 어떨까요?”

“그 방법이 괜찮겠다. 루스 공주의 배우자에게 결혼 전에 귀족 작위를 내리면 되겠다. 루스 보야르와 결혼하면 바로 해결되겠네.”

“내전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차레브나가 보야르와 결혼할 일은 없겠지요.”

북유럽의 현대 입헌군주제 국가들에서 왕족 여성이 평민 남성과 결혼할 경우 신랑에게 보통 공작 작위를 내렸다. 스톡홀름에서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던 평민 다니엘 베스틀링은 스웨덴 왕세녀 빅토리아와 결혼하는 날에 스웨덴 왕자와 베스테르예틀란트 공작 작위를 받았다.

그런데 루스 차르국에서는 차르 가문이 보야르 가문과 결혼으로 맺어질 경우 다른 보야르 가문들이 심하게 견제하기 때문에 차르도 마음 놓고 결혼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차르가 아닌 공주라면 국내에서 보야르 가문으로 시집가느니 차라리 외국으로 시집보내는 편이 나았다.

“너는 외국에 무심한 듯하면서도 루스 차르국 상황을 잘 알고 있구나.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런 건 예조에서 고민할 일이지. 어떠냐? 세자로 책봉받을래?”

“왜 하필 전가요? 동생들 중에 똑똑한 애들 많던데요.”

“세자는 다음 세대의 왕이 될 사람이지 총리나 대신이 될 사람이 아니다. 하는 일이 달라.”

“몇몇 동생들이 국정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왕좌에 욕심을 내거나 헛물을 킨 것이 아니라 재미있고 취향에 맞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동생들이 관리 선발 시험에 합격한다면 차별하지 말아주십시오.”

“지금까지는 관리로 임용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겠다.”

“고맙습니다. 아바마마께서 생각하시는 군주의 자질은 무엇입니까?”

“백성을 사랑하거나 국가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고 꾸준히 추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군주로서 가장 핵심적인 자질은 국가의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너는 고산국 백성들이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왕자로서 국가의 구심점이 될 자격이 있다.”

생명체와 같이 어느 조직이든 조직의 힘은 최우선적으로 조직의 유지를 위해 작동한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군주가 그 국가의 통합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 능력을 불문하고 제거되기도 했다. 국가 통합은 어느 나라에게나 중요하지만 특히 여러 민족과 넓은 영토로 구성된 고산국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 목표였다.

“그것도 중요한 조건이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하고는 이야기가 되셨어요? 반대하실 텐데요.”

“그걸 네가 설득해줬으면 좋겠는데.”

“에이! 그럼 안 할래요. 국왕이 되는 것은 평생을 바쳐서 하는 봉사인데 어머니를 설득하는 무서운 일까지 제게 맡기시면 어떡해요?”

“끄응! 네 어머니는 나도 무섭거든?”

그래서 혜영을 설득하는 일은 이민호의 몫이 되었다. 이것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만은 명백했다.

============================ 작품 후기 ============================

늦었지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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