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14 100. 세인트 킷츠 앤드 니비스 =========================================================================
도착하니 이미 늦은 오후라 전투는 다음 날 아침에 시작하기로 했다. 함대는 산크리스토발 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묘박을 실시했다. 닻 세 개를 해저에 거는데 모든 함정들이 능숙하게 앞뒤로 움직여 투묘 작업은 금방 끝났다. 며칠 전에 도착한 에스파냐 함대도 이미 닻을 내리고 있었다.
요새에 배치된 대포는 이 시대 잉글랜드 해군 범선의 주 무장인 데미 캐논이었고, 보통 흑색화약 8kg을 사용해 14.5kg의 둥근 포탄을 날렸다. 유효사거리는 490미터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대사거리는 훨씬 긴 편이라 일부러 거리를 충분히 두고 묘박했다.
“사령관은 저 요새에 아국의 작전 목표를 통보했소?”
“예, 전하. 함대로 섬을 봉쇄하는 중에 잉글랜드 사람들이 여러 번 항의하러 왔었습니다. 그때 원주민을 학살한 자들을 처벌하러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통보하면서 범죄자의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저쪽에서는 그 요구를 거부하고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브림스톤 힐 요새가 워낙 좋은 곳에 자리 잡아서 잉글랜드인들이 승리를 자신하는 듯하다고 대서양 함대 사령관이 개인 의견을 첨부했다. 이민호가 옛날에 베트남전 전투를 소재로 다룬 <햄버거 힐>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곳은 경사가 훨씬 가파르고 높은 절벽이나 다름없어서 지상 공격은 아예 포기해야 했다.
이 시대에 제독은 감독관이라는 의미가 너무 강해서 해군 장성을 따로 제독이라 부르지 못했다. 명나라 때 전시 임시 직책으로서 제독이 군정을 장악하고 같은 임시직인 총병관이 군령을 장악한 반면, 청 말기에는 제독이 종1품, 총병이 정2품으로 정식 관제에 포함됐다.
수군절도사의 약칭인 수사(水使)가 아닌 수사(水師)는 주사(舟師)처럼 수군 또는 함대를 뜻한다. 청나라 말기에 육로제독 정원이 12명인 반면 수사제독(水師提督) 정원은 3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일전쟁 전후에 청나라 북양함대의 지휘관인 북양수사제독이라는 직책이 일본에 널리 알려지면서 제독이 해군 장성의 호칭으로 오인됐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 대한민국 해군이 주장하는 ‘이순신 제독’이라는 호칭은 역사에 맞지 않았다.
“대포까지 갖춘 저들이 민간인이라는 말을 믿어도 되겠소?”
“군인이면서 지금은 민간인입니다, 전하. 잉글랜드 국왕군 소속이긴 한데 소집해제 상태일 경우 용병으로 민간에 고용돼 활동하는 수가 있다고 합니다. 고용 주체가 잉글랜드 정부인 것을 감추고 정착민 마을을 내세운 것 같습니다.”
“아! 스코틀랜드 용병들이 보통 그렇지요.”
대규모 정규군을 상시 소집해서 유지할 예산이 없는 것은 이 시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서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용병들이 국왕군 소속 군인이면서도 북유럽 여러 나라에 민간인 용병으로 고용될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4세 겸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가 이런 상황을 더욱 조장한 측면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전투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모든 병사, 승조원들에게 든든한 식사를 하게 했다. 식단은 쌀밥과 된장국 외에 장어조림, 청게찜, 두부구이, 오이무침, 산양 젖으로 만든 치즈 외에도 갖가지 채소가 나왔다. 보관 문제로 항구에서 떠난 지 일주일 동안 실컷 채소를 먹다가 나중에는 냉장보존식품이나 건조식품으로 때우는 식이었다.
“국왕전하께서는 병사들과 똑같은 식사를 하시는군요. 감탄했습니다.”
“어느 나라 군주든 원정 때는 다 그렇지 않소?”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로 무능한 군주가 전용 식재료들을 수송하게 하니까요. 하하!”
이민호와 개똥이는 외교관 및 중립국 관전 무관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개똥이가 스페인어와 불어, 독일어 등으로 인사말을 건네자 다들 아주 좋아했다. 개똥이가 공부 안 하고 놀러 다니는 줄만 알았는데 외국어는 제법 잘 구사했다.
고산국에 우호적인 에스파냐와 덴마크, 스웨덴과 아일랜드 외에도 네덜란드와 신성로마제국 각 영방들에서 외교관과 무관들을 보냈다. 고산국에서 원정을 준비하는 중에 유럽 여러 나라에 통보하고 고산국 상선에 타고 새동래로 올 시간을 충분히 줬기에 이들이 참관할 수 있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중립국이 아니라 이번 사건에서 적성국인데도 관전 무관을 보내 고산국의 전력을 파악하려 애썼다. 에스파냐와 네덜란드,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무관들이 선상 결투를 하려는 것을 함내 해병들이 간신히 말렸다고 들었다.
“국왕전하. 이 물고기 요리는 혹시 장어가 아닙니까?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지역에 따라, 혹은 선호도에 따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민물장어가 남자 몸에 좋다고 들었소. 신실한 신앙심을 가진 사람은 먹지 않아도 좋소.”
“흠! 그렇군요.”
구약성서에서 금지한 식품은 종파나 신자 개개인에 따라 각자 다르게 받아들였으나 다들 아무 말 없이 장어에 포크를 댔다. 엄숙한 표정으로 식사하면서 개똥이가 눈으로 실컷 웃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포크 사용법은 이 시기에 유럽의 상류층에 퍼져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다만 나이프를 사용하길 꺼렸다. 식탁에 농기구인 쇠스랑이 올라오는 것은 허용해도 무기가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했다. 이 시기 유럽 상류층들이 숟가락과 젓가락은 아주 잘 사용했고 된장국도 불평 없이 잘 먹었다.
“국왕전하! 자그마한 섬에서 야만인 마을 하나가 없어졌을 뿐인데 고산국의 반응이 과한 것 같습니다. 특히 국왕전하와 세자 저하께서 직접 원정을 오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야만인이라서 아무렇게나 처치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생각이오. 요즘 고산국과 다른 나라의 문명 수준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데, 만약 고산국에서 유럽 어느 나라를 야만국으로 지명해서 다 죽이면 어떻게 항변할 것이오?”
역시나 잉글랜드 외교관에게서 슬슬 입질이 왔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지 못하고 발끈하는 것은 이민호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아무리 고산국이 발전했더라도 저희들은 야만인이 아니라 문명인들입니다. 천 년 전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지금도 찬란한 문화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3, 4세기에 로마인들이 보기에 게르만인들은 야만인에 불과했지요. 그 중에서도 노르드인들은 더더욱 외진 곳에 있었고, 특히 앵글족과 색슨족은 브리타니아를 침략한 야만인들이었소.”
웨일즈를 마저 정복하기도 전에 데인인과 노르만인까지 해서 브리타니아 섬에 침략의 파도가 연이어 휘몰아쳤다. 전쟁은 인간의 야만성이 극대화된 현장이기에 잉글랜드 외교관이 씩씩거리면서 쉽게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르네상스 이후 문명의 또 다른 척도가 된 인간의 자유를 들먹였다.
“고산국에서는 개와 고양이도 마음대로 기르지 못할 정도로 인민의 자유가 제한되지 않았습니까? 고산국이 물질문명이 발전했다지만 정신문명은 전형적인 아시아 국가의 전제군주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고산국이 왕정제 국가인 것은 유럽과 마찬가지인데 관료제의 차이에 대해서는 잉글랜드에서 많이 연구했을 것이오.”
“업무분장의 세분화와 관료 임용 방법 등 관료제는 아시아가 더 오래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은 인정합니다. 유럽에서는 매관매직이 반쯤 공식화돼 있으니까요. 그러나 군주와 귀족의 권력 균형은 유럽이 더 발전했다고 봅니다.”
북유럽과 서유럽에서 신교도 혁명이 일어난 것이 최근의 일이었고 종교 문제로 지금도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문명의 척도로 내세우지 못했다. 그리고 유럽문명은 바로 얼마 전까지 중동지역에서 발달한 수학과 천문학, 의학과 건축기술을 받아들이는 처지였기에 이슬람에 대해서도 기독교의 우위를 주장하지 못했다. 오히려 국교를 부정하고 종교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는 고산국이 훨씬 문명화된 국가라 할 수 있었다.
“프랑스가 요즘 절대주의왕정이라 칭하는 전제왕권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소만 예외로 치고, 애완동물에 대해서 설명하겠소. 도메스틱이라 할 만한 토종 개와 고양이는 백성들이 얼마든지 자유로이 기르고 있소. 다만 일부 품종견과 품종묘는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생후 2개월 이후에 분양받도록 하고 적절한 시기에 예방접종을 하도록 규정한 것뿐이오.”
“애완동물은 어릴수록 귀엽지 않습니까? 애완동물의 귀여움을 즐길 기회를 주인에게서 박탈한 것은 국가의 폭정입니다.”
“바로 여기서 문명과 야만의 차이가 생기는 것 같소. 어째서 2개월 이후에 강아지와 아기 고양이를 분양하는지 이유를 알고 있소?”
“모릅니다. 먹이야 젖 대신 분유를 물에 타서 주면 될 텐데 말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들은 젖먹이 때 어미로부터 항체를 전달받는다오. 어려서 어미를 떠난 애완동물이 일찍 죽거나 평생 병으로 고생하는 이유요. 그리고 인간이 어렸을 때 교육받는 것처럼 동물도 충분히 사회화 과정을 거치도록 기다려줘야 한다오. 같은 종의 다른 동물을 무서워하거나 공격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는 것은 너무 어려서 어미나 형제로부터 분리된 탓이오.”
개고기를 먹는 것은 잉글랜드나 고산국이나 마찬가지라서 피차 공격거리가 되지 못했다.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파는 핫도그는 이름처럼 진짜 개고기로 만들었다.
그러나 가축이 아닌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은 상류층의 취미라서 바로 비교가 됐다. 어떤 규칙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형성됐다면 명백히 문명의 척도가 될 수 있었고, 고산국은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규칙이 적용됐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애완동물과 가축에게도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나라는 이 시대에 고산국이 유일했다.
“어려운 이야기라서 믿기 어렵습니다. 증거가 있습니까?”
“잉글랜드 여러 대학의 도서관마다 ‘애완동물 키우기’라는 책이 영어로 번역돼 비치돼 있으니 읽어 보시오. 잉글랜드 생물학자들이 절찬한 책이라오.”
분쟁 당사자인 잉글랜드 외교관은 이민호가 무슨 말을 해도 결코 설득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대화를 통해 잉글랜드 외교관이 억지를 부린다는 인상을 다른 나라 외교관이나 무관들에게 심어주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는 잘 모르겠지만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고산국의 저명한 수의학자들이 내린 결론이 맞다고 봅니다.”
“고산국에는 동물학 범주 안에서도 생태학과 동물행동학, 동물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저마다 분리돼 있소.”
식사는 이미 마쳤고 디저트로 차와 과자가 나왔다. 식사를 느긋하게 마친 외교관과 관전 무관들이 갑자기 차와 과자를 게걸스럽게 먹고 마시며 조리사에게 추가로 주문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유럽에서 아직 차와 설탕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탓이었다. 과자를 집어서 슬쩍 주머니에 넣는 것을 못 본 척하는 것이 이민호에게 더욱 힘들었다.
“고산국에서 연구한 유전학이 유럽 각국에서 가축의 육종에 미친 영향이 큽니다. 고산국의 과학은 만국에 공개됐기에 다른 나라 학자들이 언제든지 실증할 수 있고, 더욱 발전시켜 실제 인간 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학문의 목적이지요.”
잉글랜드를 야만국으로 몰아붙여 침공하거나 심지어 학살할 수도 있다는 상상이 현실화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았다. 힘으로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에 고산국처럼 약소국에 관대한 나라도 드물었다.
관대하다는 것은 반대로 충분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언제든 힘을 투사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힘과 논리에 밀린 잉글랜드 외교관이 방향을 틀었다.
“국왕전하! 제가 듣기로는 원주민들이 먼저 백인 정착민들을 공격해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기에 정착민들이 반격을 가한 것뿐이라고 합니다.”
“그건 어떻게 알았소? 정보를 제공해준 원주민이 살아남아 있소?”
“전투 와중에 정착민의 오인사격으로 인해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유일한 증인이 사라졌군요.”
원주민들이 먼저 공격하려 해서 선제공격했다면 잉글랜드 측에서 그 증거를 제시하거나 증인을 출두시켜야 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그 어느 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때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진동이 울렸다. 외교관들과 관전 무관들이 깜짝 놀라 이민호를 바라봤다.
“설마 포격이 벌써 시작됐습니까? 국왕전하께서 여기 계시는데 도대체 누가 포격을 지시했습니까?”
“그야 작전 시간이 됐으니까 함대 사령관이 포격 명령을 내렸겠지요. 자! 이제 일어나서 구경하러 갑시다.”
전쟁이 국왕 친정으로 이루어지더라도 국왕이 일일이 명령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유럽 국가들에서는 군주의 개전 명령에 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었다.
- 쿠쿠쿵!
전함의 함수와 함미에 나눠 탑재된 거대한 12인치 3연장 포탑 3기에서 불길을 연속 뿜어냈다. 요새 쪽을 바라보니 어느덧 절반쯤 불길에 싸여 있었다. 순양함에서도 함포 사격에 동참해 요새가 위치한 언덕에 정확히 포탄을 낙하시켰다.
- 콰쾅!
“아아! 포탄의 위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이민호는 여러 나라 관전 무관들의 얼빠진 표정을 살피면서 이번 원정이 절반 이상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특히 잉글랜드 외교관은 진땀을 줄줄 흘렸고 관전 무관들은 거의 넋이 나갔다.
요새에서 포연이 일어난 다음 몇 초 후에 충격파가 상륙함에 도달하며 함교 유리창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다시 몇 초 후에 음파가 도달해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함포사격은 20분 넘게 지속되면서 최대한의 화력을 요새에 퍼부었다. 이미 요새를 무력화시키는 단계를 충분히 넘어서 지금은 외교관과 참관단에 보여주기 위한 화력 투사인 셈이었다. 이것으로 수만 명을 동원해야 하는 전쟁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면 고산국에 훨씬 이익이었다.
“함포사격은 끝났소. 이번에는 하늘을 보시오.”
“아! 저것이 비행기로군요. 항공모함에서 뜬 비행기입니까?”
“다목적 수송기들은 새동래에서 출격했소.”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폭격기와 수송기를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수송기들이 요새 상공을 지나가면서 조준기를 통해 정확히 폭탄을 투하했다.
또 다시 요새가 있던 언덕에서 폭발이 연속 일어났다. 요새에서는 함포사격 개시 이후 포 한 방, 머스킷 한 방 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아 지금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고산국 함대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선전을 기대했던 잉글랜드 외교관과 관전 무관들의 낯빛이 아주 시커멓게 변했다. 고산국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최상의 카드로 높은 언덕 위의 요새를 준비했는데도 이토록 무참하게 깨질 줄은 상상도 못한 얼굴들이었다.
- 그아앙~
수송기들이 폭격을 마치고 돌아가자 이번에는 항공모함에서 수상 비행기들이 출격했다. 첫 제파가 요새를 향해 기관포를 퍼부으며 지나갔고, 다음 제파가 길쭉하고 시커먼 것을 연속 투하했다. 쇳덩어리 같은 것들이 땅에서 몇 번 튀면서 굴렀다.
- 깡! 까앙~ 푸아아악~
네이팜탄과 같은 화염탄이 폭발하며 맹렬하게 불길을 내뿜었다. 함포사격과 폭격으로 인해 이미 평탄해진 언덕 위가 다시 불바다로 변했다. 수상 비행기들은 요새 위 밀림에도 화염탄을 터뜨려 혹시라도 착륙예정지에 매복했을지 모를 적을 제거했다.
“무지막지합니다. 요새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전하.”
“허망하게 죽기도 하지만 사람 목숨은 무척 질긴 편이라오.”
대서양 함대 사령관은 잉글랜드군이 요새에 500명, 마을에 100명 정도가 배치된 것 같다고 판단했다. 나포된 배에 300명 정도가 탔으니 잉글랜드는 대략 천 명을 산크리스토발 섬에 배치하려 한 셈이었다. 요새화된 이 섬을 거점으로 삼아 서인도제도의 여러 섬들을 공략하려 했던 잉글랜드의 기도가 무산된 순간이었다.
- 부다다다다~
드디어 상륙함에서 직승기들이 출격했다. 직승기들이 요새 위쪽에 교대로 착륙하면서 특전대대와 해병대 병력을 쏟아내고, 그 사이 다른 직승기들이 기관총으로 강하 병력을 엄호했다.
“잉글랜드 외교관께서는 감상이 어떻소?”
“저희 잉글랜드 정부는 이번 일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전하.”
“뭐, 그렇겠지요.”
“그래도 잉글랜드 사람들이니 마을 사람들에게 선처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범죄에 대한 죄과를 치러야지요.”
잉글랜드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군사작전에서 고산국이 승리해 산크리스토발 섬, 영어로 세인트 크리스토퍼 섬을 무력으로 점령한 셈이었다. 그래서 잉글랜드 외교관은 고산국이 재판 관할권을 가져가겠다고 해도 항의를 하지 못했다.
인종 청소에 대한 처벌권이 제3국에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 문제에 언제든 고산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교훈으로 받아들였다. 잉글랜드보다는 오히려 그 전에 식민지를 개척해 제국주의로 나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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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크게 차이가 나면 전쟁이 일방적인 학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공개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