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54화 (903/1,000)

00954  103. 명나라의 혼란  =========================================================================

아이슬란드를 약탈하려던 해적선 문제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잘못하면 국제분쟁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정보국장 미카가 포로들을 다그쳐 확인해 보니 해적선 두 척은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의 항구도시 살레와 강 건너편 라바트에서 출항했으며, 알제리에서 떠난 해적선 두 척과는 아이슬란드 근해에서 합류했다. 살레는 에스파냐의 펠리페 3세가 모리스코 추방령을 내리기 몇 년 전에 미리 이주했던 자들의 공동체였다.

해적 지휘관은 네덜란드 출신 해적 얀 얀스존, 터키식 이름 ‘젊은 무라트 레이스’로서 이 공동체에서 대제독 겸 최고지도자 직함을 가졌다. 이 가짜 무라트 레이스는 그 전에 해적에 붙잡혀 노예가 된 덴마크인 항해사를 앞세워 아이슬란드로 가는 항로에 올랐다고 한다. 해적들이 아이슬란드가 고산국의 속국인 사실은 알고 있었겠지만 주민들 전원을 납치해 증거를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해적들이 이렇게 설치니 지구온난화 걱정은 없겠군.”

“해가 갈수록 추워지니 문제죠. 아이슬란드를 성공적으로 약탈한 다음 귀환하는 길에 아일랜드를 약탈할 계획을 세운 것도 확인됐어요.”

실제 역사에서 해적들은 아이슬란드 남부 해안 몇 곳에서 남자와 여자, 어린이까지 모조리 납치해 배에 태운다. 심지어 만삭 임산부가 해적선 갑판에서 출산하기도 했다. 생환한 극소수 포로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해적들이 어린이들에게 자기 먹을 걸 나눠주고 친절하게 대했다느니, 임산부를 위해 커튼을 쳐줬다느니 등등 온통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점철돼 있다.

어쨌든 이번 일로 꽤나 거물 해적이 비명횡사 당한 셈이었다. 덴마크인 항해사와 나머지 노예들은 석방하고 여비를 주어 집으로 보냈다. 해적에게 고용됐던 요리사들은 해적선에서 했던 짓에 따라 사형부터 탄광 노역 2년까지 다양한 처벌을 받았다. 이제 대응책을 논의할 때였다.

“해적 지휘관의 공식 직함이 그렇다면 단순한 해적의 노략질이 아니라 정식 군대의 침공이라고 볼 수 있겠어.”

“애매하긴 해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에요.”

“그렇지, 미카? 어쨌든 반격하는 것은 침략을 당한 나라의 당연한 권리야.”

지중해 쪽 북아프리카 해안은 이미 수차례 평정했으나 대서양 쪽 북아프리카는 그 동안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베트남이 적화되면 베트콩이 카누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에 상륙할지 모른다는 명분을 들어 월남전에 참전한 미국처럼, 단순한 보복이 아닌 선제적 예방 전쟁을 하기로 결정했다.

“알제리에서 출항한 두 척에 탄 해적들은 이곳저곳 떠도는 뜨내기들이라서 알제리에 책임을 묻기 어려워요. 그리고 모로코와 살레 둘 중에 하나를 명확히 정해서 책임을 물어야 해요.”

“그것도 애매하군. 카사 브랑카의 포르투갈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모로코 술탄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겠지만, 살레는 공식적으로 모로코 소속이라니까 일단 모로코 전체를 목표로 한다.”

카사 브랑카는 당시 포르투갈인들이 모로코 해안 도시에 살면서 붙인 이름이었다. 이후에 스페인어 카사블랑카로 널리 알려졌다. 이곳은 모로코 술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지역이었다.

“참모본부에 통보할게요. 병력은 얼마나 동원할까요?”

“숲이나 시가지가 적어서 전장 환경은 좋은 편이야. 참고해서 참모본부에서 짜보라고 해.”

전쟁을 염두에 두고 해병 1개 연대와 해병수색대대, 상륙장갑차 대대, 전차 중대로 이뤄진 해병원정여단을 편성해 새강릉에 집결한 상륙전단 함선들에 승선시켰다. 그리고 정식 출전 전에 사전 조사와 선전포고를 위해 먼저 순양함 2척을 모로코에 사절단과 함께 보냈다. 모로코 술탄과 적당히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살레를 비롯한 모로코 해안 도시들에 함포사격을 가하고 해병을 상륙시켜 본때를 보여줄 작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이에 살레와 라바트가 모로코 술탄에게 세금을 내기 싫어 살레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해버린 데에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얀 얀스존의 대제독 직함은 모로코 술탄에게서 받은 것이라서 신생 독립국인 살레 공화국은 아이슬란드 침공에 책임이 없다고 잡아떼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몹시 짜증나게도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했다. 해적선에 탑승한 자들 중 실제로 살레에 거주하던 모리스코는 극소수였고 대부분 다른 지역 출신 해적들이었기 때문이다. 에스파냐에서 핍박 받던 모리스코들의 사정을 잘 알기에 살레를 목표로 순양함들에게 함포사격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모로코는 한창 내전 중이라 모로코 술탄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렵게 됐다. 이 예민한 시기에 모로코 술탄을 공격한다면 내전의 다른 당사자를 지원해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모로코의 상황을 파악한 사절단은 술탄과의 협상 자체를 포기하고 이민호에게 보고한 다음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할 수 없지. 그냥 돌아오도록 해. 해병원정여단 구성부대들은 원대 복귀시키겠다.”

고산국 역사에서 최초로 원정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상륙함에 오르기 직전 병사들이 부두에서 아내나 애인과 낯 뜨거운 송별행사를 한 것도 모조리 무효가 됐다.

그런데 모로코 술탄 지단 아부 말리, 지단 알 나시르의 불행은 더욱 가관이었다. 내전이 격화되자 술탄이 전 재산과 예술품을 배에 가득 실어놓았는데, 욕심이 생긴 선장이 술탄이 배에 타기 전에 들고 튀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배가 사절단을 태운 순양함에 나포됐다. 그 배는 모로코 술탄의 깃발을 게양하고 있었으므로 순양함이 적성국 함선을 합법적으로 나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순양함 함장은 지나가는 선박을 단순히 임검하고 선장에게 모로코 내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보려 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고산국 순양함이 접근하자 놀란 선장과 선원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해안으로 헤엄쳐 가버렸다. 결국 그 배를 순양함이 예인해 대서양을 건너 새강릉까지 왔다.

“엉겁결에 나포하게 됐는데 그게 보물선이었다고? 운도 좋아.”

“여기 적재물 목록입니다, 전하.”

술탄의 배는 각종 금은보화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민호는 황금보다 모로코의 이국적인 문화유산이 탐이 났다. 사실 합법적인 전리품이라 우겨도 모로코 입장에서는 할 말 없겠지만, 강대국의 체면도 세워야 하기에 마냥 욕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끌고 오느라 수고했지만 모로코 술탄에게 돌려줘야겠다. 도둑놈 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니까. 장물을 찾아줬으니 절반은 다시 돌려주겠지?”

“말씀드리기 황공하오나 술탄은 내전 중에 사망했고 곧 새 술탄이 즉위한다고 합니다.”

“저런! 안타깝군.”

이민호가 속으로 ‘앗싸!’를 몇 번이나 외쳤다. 새 술탄이 적법한 상속권을 가졌다 해도 이미 소유권은 불분명해졌다.

실제 역사에서는 선장이 에스파냐에 가서 모로코 술탄의 재산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주요 보물은 엘에스코리알 궁전으로 이전돼 보관된다. 에스파냐 왕실에서 장물을 사들였다는 뜻이었다.

“그럼 돈 되는 것은 적당히 빼고 모로코 고유의 문화유산은 새 술탄에게 돌려주도록 해.”

그 전에 유산 반환 협상을 통해 외교적 이익을 취할 생각이었다. 내전이 끝난 다음 해적들 좀 소탕해달라고 술탄에게 요구하면 들어줄지 알 수 없었다. 이 시대 모로코 지배자들에게는 그럴 능력도 없고 해적질을 황금알 낳는 사업으로 보고 방조하는 지배자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

“예! 전하. 환금 가능한 물품을 중심으로 적당히 간추리도록 하겠습니다.”

“함장은 내게 질문이 있나?”

“외람된 말씀이오나 모로코의 정정이 불안합니다. 돌려줘봤자 전 인류의 자산이기도 한 소중한 문화유산이 멸실될 우려가 있습니다. 내전이 진정될 때까지 본국에서 안전하게 보관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유물을 잠시라도 연구하게 해달라는 학자와 박물관 학예사들의 요청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그럴 수는 없지. 역지사지를 해봐. 문화유산은 온전히 그 지역 주민들의 것이다. 멸실된다면 오로지 술탄과 그 지역 주민들의 책임이다. 사진만 찍고 돌려보내 주도록.”

함장이 수긍하고 항구로 돌아갔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은 적당히라는 말을 몰랐다. 적당히 빼라는 이민호의 말을 오해한 해군들이 적재품 중에서 돈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술탄의 배에서 하역했다.

출발하기도 전에 실패한 원정작전의 비용을 이것으로 충당하고도 남았다. 이민호는 씩 웃으며 승인했고, 어쨌든 적성국 선박을 나포하는 승리를 거뒀으므로 원정 실패를 원정 성공으로 평가를 바꾸었다.

순양함 승조원들은 물론 원대 복귀한 해병원정여단 구성원 전원이 참전수당과 승전수당을 지급받고 어리둥절했다. 임금님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금화가 생긴다는 말이 해군과 해병대에서 떠돌았다.

가축 소의 조상이라고 알려진 오록스 암컷 한 마리를 폴란드 귀족에게서 비싸게 구입했다. 2백만 년 전부터 널리 아시아와 유럽, 심지어 한반도에서도 살았던 오록스의 마지막 후손이었다.

흔했던 오록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자 유럽 왕족과 귀족들이 오록스 서식지인 숲을 사냥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오록스를 죽인 자를 사형에 처했다. 그러나 오록스를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왕족과 귀족들만의 전용 사냥터로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오록스들의 서식처가 파편화된 것만으로도 이미 멸종의 길에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었고, 결국 이렇게 사라지게 되었다. 멸종 바로 전 단계로, 학술적으로 자생지 멸종이라 한다.

탐사대와 수의사들이 바르샤바 남서쪽 37km에 위치한 야크토루프 마을의 숲에 도착했을 때 오록스는 이미 병들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어렵게 포획해 발트해를 통해 새강릉까지 싣고 오는 동안 수의사들이 오록스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것이 마지막 오록스인가?”

“예, 전하. 야생 오록스로서는 마지막입니다. 유럽의 27개 오록스 금렵구는 더 이상 사냥감이 없어 차례로 폐쇄되고 있습니다.”

탐사대 책임자인 수의사가 이민호를 철창에 갇힌 오록스로 안내했다. 씩씩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오록스의 기다란 뿔을 이민호가 쓰다듬었다.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 등에 그려진 원시시대 들소 그림과 똑같이 생긴 긴 뿔이 인상적이었다. 이민호가 보기에 오록스는 뿔 모양과 체형, 검은 털이 에스파냐 투우와 많이 닮았다.

실제 역사에서는 1627년 야크토루프 숲에서 마지막 오록스가 병들어 죽는다. 유해를 폴란드에서 보관했으나 1655년 스웨덴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전리품이라면서 훔쳐갔다. 스톡홀름 왕궁 내의 박물관인 일명 왕실 조병창, 리브루스트카마렌에 마지막 오록스로 만든 뿔잔이 전시돼 있다.

“이제 다 합해서 몇 마리지?”

“성체 암컷 45마리, 수컷 27마리, 송아지가 30마리입니다.”

그 동안 유럽에 산재한 금렵구에서 오록스를 꾸준히 사들여 새강릉과 이리 농장에 분산 수용했다. 유럽 왕족과 귀족들은 1톤에 달하는 커다란 사냥감을 직접 잡으며 희열을 느낄지, 아니면 금화 만 원을 받고 고산국에 팔지 고민해야 했다.

매년 농노들을 쥐어짜도 항상 자금부족에 시달리는 귀족들은 대부분 판매를 선택했다. 물론 북미로 운송하는 비용이 그 몇 배는 더 들었다.

“그 동안 고생했어. 이제 전염병만 잘 막으면 멸종을 피할 수 있겠군.”

“늦여름 짝짓기 철에 수컷들을 분리시켜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놈들은 한 번 붙었다 하면 죽을 때까지 싸우니까요.”

“예산을 충분히 배정했으니 앞으로도 잘 돌봐주게. 조만간 방사해야 할 텐데, 보호구역은 정했나?”

유럽에서 대부분의 오록스 금렵구는 늪이 산재한 숲에 설정돼 있었다. 그러나 오록스의 식성은 일반 소와 동일하므로 사람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런 거주지를 택했거나, 사람들이 오록스를 농경지 개간에 부적합한 숲에 몰아넣은 것으로 판단했다. 오록스는 원래 초원에서 살던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번식까지 고려하면 숲에 인접한 초원이 가장 이상적인 서식지입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발견하면 야생 들소로 착각하고 다 잡아버릴 겁니다. 그래서 몽골 북부와 우랄 산맥 남쪽 평원을 제외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천적이 없는 곳을 찾고 있습니다.”

“유럽 들소도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지. 오록스 보호구역 선정 문제는 좀 더 고민해보세.”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해 국가가 할 일이 많았다. 마침 산업화와 농지 확대로 인한 서식지 파괴가 현대보다 덜 심각하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보존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다만 오록스처럼 커다란 포유동물들이 서식할 곳을 찾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전하께서 멸종 위기 동물을 모아 새 서식지에 풀어주시려는 이유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사람들은 해달의 경우처럼 전하께서 이런 동물들을 이용해 돈을 버실 계획이라고 합니다.”

“나야 상인 출신이니 모든 것을 돈벌이에 이용할 것이라고 백성들이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지. 오록스를 이용해 돈을 벌 방법이 뭐가 있겠나?”

“죄송합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반 소가 낫겠습니다.”

“그렇지. 보통은 일반 육우나 젖소, 농우가 나아. 오록스는 병에 약하고 젖도 적게 나오고 성질도 사납지.”

모든 생물종은 존재할 권리가 있다는 윤리적 반론 제기는 이 시대에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학술적 가치나 정신적, 심미적 가치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어느 시대에나 잘 통하는 경제적 가치를 강조하는 게 최선이었다.

해달이나 늑대가 특정 서식처 내에서 핵심종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고산국 전체에 잘 알려져 있었다. 어부가 해달을 잡았더니 성게가 마구 번식해 바다 속 조류 숲이 멸망하고 물고기가 알 낳을 곳이 없어져 어장이 황폐화돼 어부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중학교 자연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종의 상호의존성이 잘 드러난 이야기라서 야생 동물을 잡을 때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고민하게 만들었다.

“오록스에게 어떤 장점이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큰 비용을 들여 힘들게 보호하시려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장점이 있지. 혹시 알아? 다른 소와 교배해서 지금까지 없었던 훌륭한 육우나 젖소가 나올지. 가능성을 아예 없애는 것보다는 비용이 들더라도 가지고 있는 편이 좋아.”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전하께서는 항상 옳으시니까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10여 년 넘게 일한 수의사도 아직 이 정도 인식 수준이었다. 자연에 대한 인식 문제에서 이민호와 일반 백성들의 간극은 여전히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러나 고양이와 올빼미를 보호했더니 새원산에서 흑사병이 사라진 것을 비롯해 일반 백성들이 인정할 만한 업적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민호의 발언에 큰 권위가 실렸다.

나라에서 충분한 교육을 시키고 있으나 생활 속에서 백성들에게 과학적 사고가 자리 잡기에는 아직 세월이 필요했다. 치어 방류와 농작물의 품종 개량처럼 피부에 직접 와 닿지 않는 탓이었다.

============================ 작품 후기 ============================

약간 연관된 이야기가 이어지므로 아침에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