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59화 (908/1,000)

00959  103. 명나라의 혼란  =========================================================================

1628년 10월 초, 고산국 대서양 함대는 프랑스 서부 해안도시 라 로셸로 향했다. 전함에 탄 이민호는 레 섬 북쪽을 지나가면서 여기저기 파괴의 흔적이 남아있는 생 마르탱 요새를 구경했다. 프랑스 포병들이 성벽 위에 늘어서 있었으나 고산국 함대를 향해 적대적인 행위는 하지 않았다.

현재 프랑스 국왕군이 지키는 생 마르탱 요새는 지난해에 버킹엄 공작이 지휘하는 잉글랜드 함대 100척의 공격을 석 달 동안이나 막아냈다. 요새 수비군이 처음에는 1,400명에 불과했으나 밤에 작은 배들을 동원해 5천 명을 증원시켜 압도적인 규모의 적을 끝내 물리칠 수 있었다. 장기적인 원정으로 인해 유행한 전염병 탓도 있었지만 잉글랜드 함대와 상륙군에서 사상자가 자그마치 5천이나 발생했다.

“저 요새는 사각형 두 개를 위아래로 겹치고 위엣 것을 45도 돌려서 별 모양 다각 방어 진지를 만들었소. 이동 경로가 매우 복잡하구려.”

“그렇습니다, 전하. 그러나 방어 병력의 절감과 대포 사격의 효율 제고를 위해서는 뿔이 더 얇고 길게 나와야 합니다. 2층으로 건설해 내성 역할과 대포 사격의 집중을 노린 설계이나 보기보다 효율은 많이 떨어집니다.”

현대에 보방의 요새로 흔히 알려진 근대 별 모양 요새(Star-Fort)는 보방이 태어나기 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이미 유행하고 있었다. 라 로셸 바깥의 레 섬에 위치한 생 마르탱 요새도 뿔 8개를 가진 별 모양이었다. 이민호를 수행한 데카르트는 요새의 외관을 보고 암산만으로 수비군 대포 사격의 효율을 계산했다.

“어떻게 건설하든 고산국 전함의 주포 한 방에 무너지겠지만 말입니다.”

“아국 해군의 수적 주력인 순양함의 8인치 함포로 저런 성벽을 붕괴시킨 적이 있소. 일반 탄종은 아니오만.”

“과연 대단합니다. 그렇다면 그 포탄의 탄두가 매우 단단하겠습니다. 제가 구성 성분을 모르는 합금이겠군요. 목표물 접촉 이후 약간의 시간이 흐른 다음, 그러니까 충분히 관통한 다음 폭발하게 만드는 지연 장치도 달려있겠습니다.”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데카르트 백작은 이민호가 무슨 말을 해도 금방 알아들었다. 국가 기밀에 속하는 지연 신관의 개념을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그 필요성을 먼저 제기할 정도였다.

데카르트가 고산국에서 태어났다면 화학과 물리학을 전공시킨 다음 국방 연구소로 보냈을 텐데, 몹시 아까웠다. 데카르트 입장에서는 외국 출신이기에 이민호에게 평생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레 섬을 지나 라 로셸의 시가지가 보이는 해상에 진입했다. 도시 여기저기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와! 도시 하나를 바다와 육지로부터 완벽하게 봉쇄했소. 프랑스의 야전 축성 기술은 실로 대단하오.”

라 로셸의 바다 쪽 출구에는 1차와 2차에 걸쳐 해상장벽이 건설돼 선박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지상에는 라 로셸 성벽 바깥에 12km 길이로 깊은 참호를 파고 그 뒤에 11개의 요새와 포대로 사용할 18개의 보루를 쌓았다.

정보국에서 보고하길 국왕군 병력 3만이 이 요새선에 배치됐다고 한다. 3차 위그노 반란을 일으킬 당시 라 로셸의 인구는 2만 7천이었고, 전투와 굶주림, 질병으로 시민 절반 이상이 이미 죽었다. 현재는 국왕군 병력이 위그노 시민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전하. 라 로셸 포위전은 프랑스의 종교적 내전일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네덜란드, 에스파냐가 참전한 국제전입니다. 탐욕스런 위정자들에게 종교란 단지 필요할 때 동원하는 명분에 불과합니다. 벌써 60년째 싸우고 있는 에스파냐와 네덜란드가 이번 전쟁에서는 함께 프랑스 국왕 편을 든 것이 단적인 증거입니다. 잉글랜드가 프랑스의 신교도들을 돕는 척하지만 1625년 9월 프랑스 국왕군이 위그노로부터 레 섬과 생 마르탱 요새를 탈환할 때는 군함 7척을 보내 프랑스 국왕을 도왔습니다.”

“대체적으로 맞는 말씀이지만 그 중에 네덜란드는 아니오, 백작. 네덜란드는 단지 프랑스 국왕군에 배를 대여해줬을 뿐이오. 그 전에 콩피뉴 조약을 근거로 프랑스로부터 48만 탈러의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말이오.”

“네덜란드는 같은 신교도들을 위해 프랑스 국왕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배를 대여해줬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프랑스 국왕을 지원해준 것입니다.”

데카르트 백작의 말이 옳을 수도 있었다. 암스테르담 시 의회에서는 이 문제로 엄청나게 논쟁을 벌였는데, 결국 프랑스군이 네덜란드 배에서 로마 가톨릭 방식의 미사를 집전하거나 설교를 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달아 배를 대여해줬다.

“백작 말씀처럼 루이 13세와 붉은 추기경에게 종교는 크게 상관없을 것이오. 프랑스는 같은 가톨릭인 합스부르크 가문과 싸우라고 네덜란드에 재정지원을 해줬고, 신교 국가인 스웨덴에도 같은 조건을 제시하며 접근하는 것 같소. 국왕과 추기경은 다만 지방 세력이 중앙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뿐이오.”

“윤당하십니다. 위그노를 지원하던 여러 공작들이 패해 국외로 도주했습니다. 앞으로 프랑스 국왕의 권위에 도전할 만한 귀족이나 지방 세력이 전무하게 됩니다.”

함대가 라 로셸 앞바다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프랑스 국왕군 쪽에서 배를 띄워 함대로 접근했다. 이번 원정에서 좌승함으로 지정된 전함의 함장이 보고했다.

“주상전하! 프랑스 국왕의 라 로셸 친정을 대리하는 수석국무대신 리슐리외 추기경이 전하께 알현을 신청했습니다.”

“만나보자. 이곳 항해함교로 부르게.”

전함에 오른 리슐리외 추기경은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붉은 망토를 덧입었다. 추기경의 패션은 갑옷과 법복을 함께 입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고산국 국왕전하의 용안을 다시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또 만나서 반갑소, 추기경! 지난 수십 년간 북미로 이주한 프랑스 출신 위그노들과 가톨릭교도들은 이미 내 백성이 되었소. 그들이 라 로셸의 위그노들을 살려달라고 청원하기에 이곳까지 오게 됐소.”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북미로 이주한 위그노들이 국왕전하께 청원을 해서 그 먼 고산국 왕도에서 이곳까지 오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추기경이 이민호에게 진짜로 여기에 온 목적을 밝히라고 요구했으나 외교전을 진행할 때 진짜 목적은 항상 숨기는 것이 정석이었다. 어쨌든 고산국으로 이주한 위그노의 청원은 이곳에 오는 좋은 핑계거리가 됐다.

“추기경! 위그노의 청원이 없었더라도 나는 이곳에 왔을 것이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누구나 양심에 따라 행동할 자유가 있는 법이오. 내가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 전에 먼저 묻겠소. 추기경은 라 로셸의 위그노들을 모두 죽일 셈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 저는 결코 살인마가 아닙니다. 라 로셸을 점거한 위그노들이 항복하면 즉시 국왕군 병력을 뒤로 물리고 그들이 평화롭게 살게 해줄 예정입니다.”

다른 핑계가 없더라도 인도주의에 반하는 국가의 폭정은 언제든 강대국에 의한 내정개입의 빌미가 되기 마련이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고산국의 개입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민호 뒤에 데카르트 백작이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리슐리외는 논리에 혹시 빈틈이 없는지 자꾸 확인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꼈다.

“포위망에 갇힌 위그노들이 지금도 굶어죽고 있지 않소?”

“저도 1년 넘게 포위망에 갇힌 위그노들을 불쌍하게 여기지만 바다가 막혀 식량을 지원해줄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오스만 황제군도 아닌데, 아군의 군량을 적에게 넘기는 아량을 베푸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혹시 고산국 함대에 식량 여유가 있다면 라 로셸에 반입을 해도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리슐리외는 고산국 함대가 무력을 쓰지 않는 한 바다에 펼쳐진 장벽을 열어줄 의향은 없어 보였다. 아무리 외국 함대가 강압적인 요구를 하더라도 국내에서 진행되는 내전에서 자발적으로 포위망을 풀어줄 수도 없었다. 다만 고산국 함대에서 바다 장벽을 무너뜨리고 라 로셸에 식량을 공급하는 동안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바닷길만 있는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보시다시피 육로도 막혔습니다만.”

“그럼 하늘 길을 이용하면 되는 것이오.”

이번 원정에서도 호위항공모함을 대동했다. 상륙함보다 작은 2만톤 급 항모 비행갑판에 비행기 한 대가 프로펠러를 맹렬히 회전시키며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이륙 준비일 뿐이었다. 고정익 항공기가 아무리 출력이 강하더라도 항모의 이동속도를 더하지 않으면, 즉 항모가 움직이지 않으면 이륙에 필요한 추력을 충분히 얻을 수 없었다.

“저 배에 실린 작은 비행기로 식량을 운반해봤자 얼마나......”

- 부우웅~

그때 굉음이 울리며 4발 수송기 수십 대가 라 로셸 상공을 지났다. 그리고 지상을 향해 뭔가를 떨어뜨렸고, 곧 낙하산이 펼쳐지며 서서히 떨어졌다. 수송기들은 본토나 북미가 아닌 아일랜드에서 이륙해서 여기까지 왔다.

“전하! 설마 폭탄은 아닐 테고, 도시에 무엇을 떨어뜨린 것이옵니까?”

“굶주린 자들에게 필요한 식량이오.”

고산국에서 항공기를 통해 식량 보급을 할 줄 몰랐던 리슐리외는 잠시 눈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지난 1년 4개월 동안 라 로셸을 포위하면서 참호를 파고 바다의 방벽을 쌓는 등 온갖 노력이 헛고생으로 변했다.

“국왕전하! 포위된 도시에 식량이 생겼으니 위그노들이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의 자비심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위그노와 국왕군 병사들이 죽어갈 것입니다.”

“판단을 미루고 잠시 기다려 보시오, 추기경. 그 동안 식사나 할까요?”

한 시간쯤 지나 성벽을 따라 수십 개의 백기가 올랐다. 항복할 때 내걸 깃대와 깃발이 라 로셸에 공중 투입한 보급품에 섞여 있었다. 라 로셸 시장 장 기똥(Jean Guiton)이 이민호를 알현하고 싶다고 해서 그를 전함으로 불렀다.

시장은 사진에서 본 모습과 많이 달라서 호위들이 잠시 당황했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벗은 40대 초반의 장 기똥은 1년 넘는 포위전이 진행되는 동안 비쩍 말라 노인처럼 보였다.

“고산국 국왕전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국왕전하께서는 종교 문제에서 엄정중립을 지키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의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지켜주려 오신 것은 아닌 줄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시장에게 경의를 표하오. 시장이 하신 말씀처럼 나는 항상 종교적 중립을 고수하고 있소. 다만 내게는 사람 목숨이 가장 우선이오. 그대들의 목숨을 구하고 싶소.”

“시청에서 대표들과 함께 죽을 때까지 도시를 사수하기로 결의했습니다만, 이렇게 무너지는군요. 고산국 국왕전하! 혹시 저희들이 항복을 거부하면 계속 하늘에서 식량을 내려줄 계획이십니까?”

“그렇소.”

이 시기 라 로셸의 위그노들은 가죽을 삶아먹고 쥐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고 알고 있었다. 아무리 전투용 식량이 맛이 없어도 고맙게 잘 먹을 줄 알았는데 시장의 발언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 식량이라는 것이 바짝 말려서 매우 위생적이고 열량이 높게 생겼더군요. 혹시 군용식량입니까?”

“전투용 식량이오. 맛이 없지만 그게 전염병과 각종 질병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식품이오. 그대들은 오랜 농성전 끝에 지금 각종 질병에 노출돼 있지 않소?”

이민호의 대답에 장 기똥이 결단을 내렸다. 식량 문제가 해결돼 앞으로 얼마든지, 죽을 때까지 싸울 수 있게 됐지만 그 대신 매일 맛없는 전투용 식량을 먹어야 했다. 이는 라 로셸에서 싸우는 위그노들의 사기와 전의를 뚝 떨어뜨렸다. 지난 8월 잉글랜드 함대가 바다 장벽의 파괴에 실패하고 돌아갔을 때보다 더 큰 위기가 라 로셸에 찾아온 것이다.

“추기경 예하. 제가 바로 라 로셸의 반란군 수괴인 시장 장 기똥입니다. 프랑스 국왕폐하의 군대에 조건이 없는 항복을 하겠습니다. 부디 저만 처형하고 나머지 시민들에게는 관대한 처분을 부탁드립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팔짱을 끼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추기경에게서 대답이 없자 이민호가 물었다.

“추기경은 시장을 죽일 것이오? 시장은 추기경이 증오하는 위그노이며 적국 잉글랜드를 내전에 끌어들였으니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겠구려.”

“아닙니다, 전하. 낭트 칙령이 여전히 유효하니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처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지방 귀족들과 잉글랜드의 음모에 라 로셸의 위그노들이 말려든 것뿐입니다. 다만 반란에 적극 가담한 시장의 죄를 물어야 하므로 국왕의 함대에서 사령관으로 오랫동안 봉직해야 할 것입니다.”

라 로셸이 항복한 뒤에 시장을 비롯한 위그노들에게 내릴 처분은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와 협의해 이미 결정돼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라 로셸이 완벽하게 봉쇄된 이후 루이 13세는 관심을 끊고 파리로 돌아가 버렸다.

뜻밖에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자 이민호가 가장 놀랐다. 물론 1628년 농민반란에 가담한 농민들을 초모책으로 유인한 명나라 조정처럼 상황에 따라 반란 세력을 유화적으로 대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장 기똥과 몇몇 귀족들은 잉글랜드라는 외부의 강한 적을 반란에 끌어들인 외환(外患)의 죄를 범한 국가 반역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리슐리외는 로앙 공작 앙리와 수비즈 공작, 그리고 프랑스 내전에 한 발 담그려는 잉글랜드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 했다.

“추기경은 1622년의 해전에서 떨친 시장의 용맹이 마음에 들었나보구려.”

“으드득! 국왕군 함대 대형 함선 72척을 상대로 라 로셸에서 작은 배 56척이 나와서 싸웠습니다. 양쪽 합해 포탄 2만 발이 교환됐지요.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국왕전하께서는 혹시 알고 계십니까?”

“보통은 배가 작거나 숫자가 적은 쪽이 압도적으로 큰 피해를 입지만 그때 결과는 정반대였소.”

“어이없게도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며칠 후에 몽펠리에 평화협정이 체결됐고 반란군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국왕군 함대 지휘관 기스(Guise) 공작 샤를이 크게 창피를 당했지요. 바로 이 사람 장 기똥이 그때 위그노 함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국왕폐하의 함대 사령관이라니, 결국 저는 프랑스 국왕폐하의 노예가 돼버렸군요. 에스파냐를 상대로 싸운다면 제 마음만은 편하겠습니다.”

위그노 반란군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라 로셸 포위전은 끝났다. 국왕군이 시가지로 진입하지도 않았고 약탈하거나 주범들을 처형하는 일도 없었다. 다만 라 로셸과 위그노들의 영토적, 군사적 특권만 박탈됐을 뿐이었다. 루이 13세는 전투가 끝나고도 한참 지난 후 느지막하게 와서 라 로셸에 입성한다.

그러나 국왕의 군대가 지방의 반란을 진압한 이 사건은 프랑스가 절대 왕정으로 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 동안 위그노 반란을 주도했던 로앙 공작 앙리와 수비즈 공작 등의 지방 세력은 완전히 분쇄됐다. 프랑스 국왕의 절대 권위에 도전할 종교세력, 지방 귀족세력은 더 이상 없었다. 또한 오랜 전쟁과 내란에 지친 프랑스인들이 국왕을 적극 지지했기에 이런 결과가 쉽게 나올 수 있었다.

“그나저나 국왕전하께서는 예전부터 남프랑스 사람들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가장 맛있는 와인을 만들지 않소?”

“중저가 와인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낫지요.”

프랑스의 양해 아래 이민호는 원정을 온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리슐리외 추기경이 지켜보는 가운데 라 로셸에서 나온 위그노들을 병원선에 태웠다. 기아와 전염병 속에서 1년 4개월 동안 전투를 지속했기에 이들의 건강은 말도 못하게 악화됐다. 군의관과 간호장교들이 사람들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소문을 듣고 남프랑스 각지에서 몰려든 위그노들을 대형 여객선 두 척에 가득 태웠다. 앞으로도 계속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에 리슐리외 추기경은 위그노들의 북미 이주를 용인했다.

위그노들도 리슐리외 추기경과 프랑스 국왕을 믿지 않았다. 프랑스 국왕이 이번에 라 로셸에 관대한 처분을 내렸지만 그 정책이 지속될 거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루이 14세 때 낭트 칙령이 폐지되고 위그노들은 가혹한 탄압에 시달린다.

“전하! 제가 중앙집권과 절대왕정을 추구하는 것은 프랑스 국왕폐하와 신민들을 위해서입니다. 고산국처럼 절대왕정과 중앙집권 제도가 받쳐줘야 국가가 최대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고 외국의 침공을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훌륭한 국가를 건설하면 신민들도 이해해줄 것입니다.”

“과연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될지 모르겠소만, 열심히 하시기 바라오.”

절대왕정은 이 시대 유럽 국가들이 추구하던 전반적 추세라서 이민호가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약소국이었던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국왕이 전제군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라를 크게 부흥시킬 수 있었다. 심지어 선거로 뽑는 명목상의 자리였던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폴란드 국왕마저 중앙집권제와 절대왕정 제도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민호도 절대왕정과 중앙집권제의 기반 아래 국가를 성장시켜왔다. 실제 역사에서 신성로마제국과 폴란드는 결국 절대왕정으로 이전하지 못하고 나라 전체가 쇠락의 길에 접어든다. 유럽에서 절대왕정 자체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데카르트 백작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예, 전하. 정치체제를 제게 묻는다고 정답을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의 이성을 신뢰한다면 다른 길도 열어놓는 편이 좋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좀 더 완벽한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낮은 수준부터 점차 높은 수준까지 지방자치를 통해 모든 백성들이 정치를 배워야 합니다.”

“과연 백작은 고산국의 교과서요. 다만 지방자치가 국가와 영토의 분열을 초래하지 않도록 제도를 탄탄히 만들어나갑시다.”

“국왕전하와 후계자들, 그리고 백성들을 볼 때 반드시 그렇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리슐리외와 데카르트라는 이 시대 프랑스가 낳은 최고의 천재들 사이에서 이민호가 기죽을 필요는 없었다. 데카르트가 확실한 이민호 편이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라 로셸 공방전은 유럽 여러 나라가 참전하고 이후 프랑스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므로 한 편으로 묘사했습니다. 20kb 넘어도 업로드 가능하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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