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89화 (938/1,000)

00989    104. 제국의 길  =========================================================================

초가을에 메콩 강 삼각주 개발 현장을 순시했다. 같은 날 핀란드에 눈이 내리고 아일랜드에 낙엽이 쌓이고 왕도의 하늘이 파랄 때 이곳 남부 캄보디아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었다. 복잡하게 얽힌 메콩 강 지류에서 캄보디아의 오우테이 국왕과 함께 고속정에 탄 이민호가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쳤다.

현대 베트남의 남쪽 끝 영토인 이곳은 11세기까지 참파의 영토였다가 크메르 제국이 점령했고, 지금은 이를 이은 캄보디아 왕국 영토였다. 그러나 캄보디아와 참파, 대월국의 백성들이 뒤섞여 살고 있으며 시암과 전쟁하느라 경황이 없는 캄보디아는 이 지역을 제대로 지배하지 못했다.

“프레이 노코르에 대월국 백성들이 너무 많이 오고 있소. 이제는 피난민이 아니라 농업 이주자가 정착한다고 들었소. 더 이상 이주를 막아야 하지 않겠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시암의 침공에 대비해 대월국의 도움을 받으려고 체이 체타 2세 국왕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대월인들로부터 세금을 받고 있긴 하나 강제성을 띄기 어렵습니다.”

캄보디아 왕국은 시암에 밀려 1601년 수도를 오우동으로 옮기고, 대월국의 힘을 빌리기 위해 현대의 호치민 시인 프레이 노코르에 베트남인들의 거주를 허락했다. 그러나 베트남인들이 대거 몰려와 이 지역을 장악해 100년도 채 안 된 1690년에 벌써 대월국 영토로 넘어간다.

“세금에 강제성이 없으면 그 영토와 주민을 제대로 지배한다고 말하기 어렵소.”

“저도 그게 고민입니다. 시암 놈들이 숙적 버마하고 싸울만한가 봅니다. 여유 병력으로 캄보디아를 공격하니 말입니다. 국왕전하께서 시암의 왕을 꾸짖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고산국은 타국의 전쟁에서 중립인데다 전쟁은 주권국의 행사라서 말이오.”

약속 시간이 되기 전에 참파 국왕이 탄 고속정이 접근했다. 이어서 고속정 두 척이 현을 맞대고 참파 국왕이 건너왔다. 메콩 강의 지류는 계절에 따라 수심 변화가 극심해 큰 배가 들어오기 어려웠다.

“국왕전하! 판두랑가에 고산국 군함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왕전하께서 성은을 베풀어주셔서 아주 빠르게 올 수 있었습니다.”

“참파의 왕이 오셨구려. 보시오! 농경지 건설이 거의 끝나가고 있소.”

드넓은 메콩 강 삼각주를 간척하기 위해 고산국이 설계와 건설자재, 중장비를 담당하고 참파인과 캄보디아 왕국 백성들, 그리고 프레이 노코르에 거주하는 대월인들이 각각 10만 단위로 투입됐다. 베트남 남부 응우옌 정권과도 협력 중이므로 4개국이 힘을 합쳐 메콩 강 유역을 개발하는 중이었다.

메콩 강 하구는 무수히 많은 지류와, 그 지류들이 서로 이어지고 얽히면서 거미줄보다 더 복잡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수많은 교량을 건설해 참파로 통하는 주요 도로를 닦았지만 이 지역에 거주할 농민들은 배를 타고 다녀야 할 것이다.

“오면서 계속 감탄했습니다. 사방 모든 지평선이 모조리 논과 밭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강변에 둑을 쌓지 않아서 불안합니다.”

“아홉 마리 용의 강을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겠소? 홍수가 나면 포기하고 물이 빠지고 나면 농사를 지으시오. 농가는 제방과 언덕에만 짓고 있소.”

참파는 베트남의 계속된 침공을 받아 전성기에 비해 크게 쇠락했다. 1471년에 대월국이 25만 병력을 동원한 공격에 패해 6만이 전사하고 3만이 포로로 끌려갔다. 참족이 대규모로 수마트라 섬 아체 지역으로 도주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이 시대 참파는 대월국의 남쪽 응우옌 정권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어느 정도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1594년에는 참파 왕이 조호르 술탄국을 도와 포르투갈이 차지한 말래카를 공격했다.

실제 역사에서 응우옌 정권이 1720년에 참파의 나머지 지역 대부분을 합병하고 참파 국왕이 캄보디아 지역으로 도주하지만 참파는 국가로서의 명맥을 계속 이어간다. 그 전에는 명나라가 망하면서 대규모 피난민들이 이 지역에 몰아닥친다. 대월국이 참파의 수도 판두랑가 북쪽 20km 거리인 캄란을 합병한 것은 1653년이었다. 이민호가 메콩 강 삼각주 지역에 관심을 기울인 시기는 여러 가지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고산국에서 대월국의 침공을 막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참파가 응우옌 정권의 피보호국 아니오? 참파가 대월국의 보호에서 벗어나려 하면 필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오.”

“그럼 저 같은 약소국의 국왕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잘못하면 인도차이나 반도의 모든 나라가 고산국의 속국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 시암이 캄보디아로부터 영토를 빼앗고, 대월국이 참파를 잡아먹는 동안 네 나라가 계속 고산국의 눈치를 살폈다. 고산국 입장에서 어느 한 편을 돕기가 참으로 애매했다.

“안됐지만 대월국에 둘러싸인 참파의 수도를 비롯해 북쪽 영토 대부분을 과감히 포기해야 할 것 같소. 어차피 대월국과 싸웠다 하면 무조건 질 것 아니오?”

“참파인 전사들이 아무리 용맹해도 대월국이 동원하는 백만 대군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수도를 어디로 정하면 좋겠습니까?”

“메콩 강의 큰 지류를 방어선으로 삼을 수 있는 바로 이 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게 좋겠소. 참파 왕국이 응우옌 정권과 새로 영토 조약을 체결한다면 고산국 예조 판서를 보내 도와드릴 테니 잘 생각해보시오.”

“감사하옵니다, 전하. 앞으로 고산국에서 돌봐주신다면 참파가 멸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국왕전하! 소신의 절을 받으십시오.”

면적이 얼마 안 되는 메콩 강 하구 삼각주에서 현대 베트남 전 지역의 쌀 생산량 절반이 생산된다. 베트남이 먹고 살려면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민호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이대로 두면 참파가 멸망하고 참족이 멸족할 것 같아 결국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그 방법으로 이 시대에는 아직 인구가 희소한 메콩 강 하류 지역을 지난 몇 년간 개발하고 있었다.

현재 대월국이 황제국 행세를 하느라 참파를 완전히 정복하지 않는 대신, 영토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었다. 결국 1832년 참파를 멸망시킨다. 그런데 망국의 유민인 참족이 베트남 사람들과 전혀 다른 인종이며 무슬림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베트남 정부는 2000년대에도 참족을 몇 번이나 학살하고, 참족 문화재와 유물을 철저히 파괴했다. 베트남이 참파를 정복한 역사적 사실을 여행 가이드 책에서 삭제하고 참족 거주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지 않는 등 온갖 치사한 방법으로 제노사이드에 가까운 탄압을 멈추지 않았다.

“어허! 그만하시오. 참파를 속국으로 받아들일 수 없소.”

“국가의 명운과 백성들의 목숨을 걸고 고산국 국왕전하께 청하옵니다. 이대로라면 참파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제발 속국으로 받아들여주시옵소서!”

참파 왕이 바닥에 이마를 쾅쾅 찧었다. 두고 보기 민망해서 호위들을 시켜 그를 일으켜 세웠다.

“쯧! 참파 국왕께 연민의 정을 느끼오. 조만간 사람을 보낼 테니 국왕은 그와 함께 고산국과 대월국 사이에서 살아남는 길을 모색하도록 하시오. 먼저 삼각주의 국경을 확정지읍시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국경은 국왕전하께서 결정해주시면 따르겠습니다.”

캄보디아 국왕도 고산국에서 결정하라고 떠밀었다. 결국 이민호 혼자서 지도에 자를 놓고 선을 그었다. 메콩 강 하구 삼각주에 확실한 주인이 없어서 그런지 간척 비용 대부분을 투자한 고산국이 절반을 가지겠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자! 네 조각으로 나눴소. 아마 큰 불만은 없을 것이오. 대월국의 응우옌 정권이나 프레이 노코르에 거주하는 대월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그렇습니다. 누가 감히 고산국왕 전하의 행사에 뭐라 하겠습니까? 그리고 대월국의 남진을 막을 수 있도록 고산국에서 북동쪽 지역을 가져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국경 획정(劃定)은 끝났다. 그러나 이민호가 자를 대고 고산국 몫으로 배분된 영토에 수평으로 선을 하나 더 그었다. 두 나라 국왕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자! 고산국 몫을 다시 절반으로 나누겠소. 북쪽은 캄보디아에서, 남쪽은 참파에서 사람을 보내 농사를 짓도록 하시오. 소작료로 고산국에 3할만 내라 하시오. 앞으로 30년 동안 소작료를 받고 그 후에는 두 나라에게 영토를 넘겨주겠소. 그 동안 투자된 자본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을 것 같소.”

“전하아~”

캄보디아 국왕과 참파 국왕이 감격해서 무릎을 꿇었다. 애초에 메콩 강 삼각주에서 영토를 획득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이민호였다. 그러나 소빙기를 맞이해 경작지 면적을 늘릴 필요가 있었고, 두 나라는 대규모 간척 사업을 진행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나라를 끌어들인 다음 간척 사업을 완료했다.

밀림처럼 이 지역도 영토로 유지하기 엄청나게 어려운 지역이었다. 선고가 낮은 고속정은 양쪽에서 총질을 당할 것이고 직승기를 대량 투입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에이레 공화국이 고산국의 속국이 되면서 정치와 경제 외에 문화적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에이레에서 온 가수들과 무용단이 왕도뿐만 아니라 여러 대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하며 에이레의 민요와 춤 공연이 이어졌다.

아일랜드는 스코틀랜드와 함께 켈트 민요가 발달한 곳으로, 20세기 중후반 미국에서 활동한 그룹, 클랜시 브라더스 이후로 미국 포크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는 다시 한국 포크 음악으로 연결된다.

지금은 실제 역사에서 본격적인 잉글랜드의 지배가 시작되기 직전인 시기라서 에이레 사람들 대부분이 아이리시 게일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다. 그래서 민요가 죄다 게일어 가사였다. 표절 작곡가 이민호가 에이레 공화국과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를 비롯한 몇 곡을 게일어 가사로 작곡해 에이레 공화국에 헌정했다.

“아바마마! 에이레 공화국이 잉글랜드로부터 독립하도록 지원한 것이 정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자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오래도록 유지한 나라를 어떻게 다른 나라가 함부로 합병할 수가 있겠습니까?”

“에이레는 음악과 무용, 켈트 신화만으로도 독립할 가치가 확실히 있다. 어떠냐? 문화는 통합하는 것보다 고유한 특질을 보존하는 편이 훨씬 좋지 않으냐?”

“과연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세자 외에도 왕실 식구들이 문화회관 3층 특실에서 공연을 지켜보며 감탄했다. 고산국 백성이 된 에이레 사람들도 많았지만 확실히 본토에서 온 가무단의 실력이 월등했다.

고산국에서 시작된 다양한 음악 장르와 악기가 에이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독립 이후 에이레의 분위기가 밝아지면서 흥겹거나 웅장한 음악도 자주 작곡됐다. 그래서 이제는 에이레 노래라 해서 한 서린 노랫가락만 반복하지 않았다.

“각국 민요와 신화를 채록하고 있느냐?”

“예, 아바마마. 대사관 직원들이 주재국의 시골을 돌아다니며 녹음기와 악보에 민요와 신화를 채록하고 있습니다. 헝가리 지역에 가장 다양한 민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6천 곡이 넘어갑니다.”

주변의 유럽 민족들과 매우 이질적인 헝가리 마자르 족의 민요가 독특하면서도 내용이 가장 풍부했다. 나머지 유럽과 중동에서는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아 민요의 전통이 사라진 지역이 흔했다.

북유럽에서는 게르만 족의 신화가 거의 멸절했으나, 오래된 수도원과 귀족들의 장서에서 몇 가지 사가를 비롯한 옛 기록을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루스 차르국에서도 슬라브 족의 신화를 채록해 인도유럽어족의 공통 신화를 복원하는 연구에 들어갔다.

“북미 중부와 멕시코, 이탈리아 반도와 오스트리아 지역도 샅샅이 훑도록 해라. 민요는 시간이 흐르면 다시는 구할 수 없다. 같은 민요가 시기와 지역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꾸준히 추적하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바마마. 제게 이 중요한 사업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자에게 문화 군주가 되라고 했지만 고산국 국내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세자는 전 세계의 문화 군주가 될 것이다. 조선에서도 모든 민요와 구전설화를 이미 다 채록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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