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51 107. 양위 =========================================================================
1640년의 새해가 밝았다. 항상 그랬듯이 신년 하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지구상 대부분 국가에서 사절단을 보냈고, 무수한 상인들이 제도에 몰려들었다. 제국의 수도 티완은 날로 번창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옛 왕도 고북 시가 쇠락한 것은 아니었다. 티완, 새강릉, 칠레의 산티아고, 바이칼과 함께 오경의 하나로 남은 고북은 아시아의 거점으로서, 그리고 서태평양에서 외교와 경제의 중심으로서 꾸준히 발전했다.
황제가 매년 고북에 머무는 한두 달 동안 중국의 3국과 조선, 안남, 기타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사절을 보내 현안을 논의했다. 고산도가 작아서 그렇지 정치와 무역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다할 지정학적 위치에 있어서 고북의 중요도는 여전했다.
“폐하! 명나라 3국의 전쟁이 조금 진정된 것 같아요. 조선이 촉나라 반군을 치도록 허용해주셔서 고마워요.”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대명 백성들의 삶이 조금 나아졌다고 들었소. 비록 대명 제국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오.”
주상아 공주는 환갑이 넘어서도 단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송나라와 원나라에 이어 명나라까지, 황실 여자들에게만 내려오던 비법이 과학과 의학의 힘을 빌려 제국의 황실에서 꽃을 피웠다.
물론 이전 시대와 달리 그 비법이 일반 대중에게 개방됐다는 차이가 있었다. 제국 전체에 미녀가 넘쳐나서 남자들이 아주 좋아했다.
“제가 사람들을 사서 명나라 3국에 풀어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도록 했어요. 역시 명 3국이 아니라, 제국 황제의 은혜가 미치는 복건과 해남도의 백성들이 가장 풍족히 살더군요.”
16세기 후반 복건 인구는 채 200만이 되지 않아 명나라 국초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복건 산악지대에 고산국 왕실 차밭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꾸준히 늘어 어느덧 500만에 달했다.
복건 외부에서 유입된 인구도 많았지만 훨씬 더 높은 비율이 자연적으로 증가된 인구였다. 지난 50년 동안 중국 대륙에서 해남도와 함께 인구가 대폭 늘어난 극히 예외적인 지역이라서, 제국과 대명의 통치능력이 극명하게 비교되는 객관적 잣대로 활용됐다.
“험! 황태자 주자랑이 제국에서 공부를 했고 지금도 제국에서 발간된 서적을 구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소. 좀 더 기다리면 대명 제국도 형편이 나아질 것이오. 예전과 달리 지금은 백성들이 굶어죽는 일이 드물지 않소?”
“예전에 폐하께서 은혜를 베풀어 대륙 전체에 고구마와 감자, 옥수수 종자를 나눠주셨지요. 덕택에 기나긴 전란 중에도 무수한 백성들이 굶어죽지 않을 수 있게 됐어요. 이 모두가 상황폐하의 공덕이에요.”
“주 태후가 대명의 백성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풀었소.”
“전쟁 통에 논밭은 자꾸 줄어드는데 어찌 된 셈인지 인구는 계속 늘어났어요. 지나고 보니 지금 백성들은 쌀과 보리, 밀이 아니라 구황작물만 먹게 됐어요.”
주상아 공주의 눈에서 진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백성들을 사랑하는 주상아의 가슴이 아픈 만큼 이민호도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명 3국 백성들은 척박한 황토밭에 고구마를 심고 숲을 베어내 옥수수를 심었다. 그래서 전란 중에도 굶어죽지 않고, 식량에 여유가 생긴 만큼 아이들을 더 낳아 기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인구는 많아진 반면 주곡을 생산할 토지는 늘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가 늘어 토지가 더욱 잘게 나누어지는 바람에 가구당 경작 면적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고구마와 옥수수를 더욱 많이 심으면서 숲이 사라지자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닥쳤다.
농민들은 평생 곡식을 생산하지만 과중한 세금으로 인해 해가 갈수록 곡식을 먹을 기회가 줄어들었다. 숲이 줄어들면서 자연재해도 더 잦아졌다. 또한 고구마와 옥수수 덕택에 굶어죽을 염려는 줄어든 대신 식문화가 단순해지고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각종 병마에 시달리게 됐다.
세계 여러 나라의 농민들이 새로운 구황작물의 도입을 꺼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감자잎마름병 하나에 전체 인구 3분의 1이 굶어죽고 3분의 1이 이민을 떠난 아일랜드 대기근 때 아일랜드의 여러 항구에서는 밀과 돼지고기를 잉글랜드로 수출하고 있었다.
“그래도 제국에서 대명과 두 나라에 매년 쌀과 밀을 지원해주지 않소? 주 태후 덕분에 말이오.”
“지배층이 군량미 확보를 이유로 백성들에게 풀지 않아요. 풀더라도 관료들이 중간에 착복해서 정작 백성들이 먹을 쌀은 없어요.”
이민호의 품에 안긴 주상아가 속이 상해 펑펑 울었다. 그러나 주상아는 명 3국을 멸망시켜 제국의 직할령으로 삼아 통치해달라는 요청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판이었다. 지나고 보니 명나라에 식량과 구황작물 종자를 지원해주면서도 결국 내부적으로 쫄딱 망하게 만든 셈이었다.
그러나 겉보기로 명 3국은 여전히 멀쩡했다. 해가 갈수록 조정이나 백성들이나 지독히 가난해질 뿐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 인구가 몇 배나 늘었지만 백성들은 명나라 때보다 훨씬 가난해졌다. 쌀보다 단위당 생산량이 훨씬 많은 고구마를 주식으로 삼게 됐기 때문이다.
“명나라 3국의 가내수공업이 대부분 파산했다는 말을 들었소.”
“백성들에게 남은 쌀이 없으니 다른 물건을 살 수도 없어요.”
중국 대륙에서 전쟁이 멈췄는데도 문제는 여전히 남았다. 그렇다고 제국에서 명 3국의 지배층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도 없었다. 아무리 살기가 어려워도 무정부상태보다는 그나마 나았기 때문이다.
“조정이 통치를 하는데도 이 모양 이 꼴이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소. 황제를 만나 문제를 해결해보겠소.”
“방법이 있을까요?”
“세 나라 사이에 휴전조약을 체결하게 만든 다음 백성들의 세금을 내리도록 강제하는 방법이 있소. 세 나라의 지배자들을 소환해 군사적 압박을 가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소.”
이민호가 그 뜻을 전하자, 황제가 세 나라의 지배자들을 소환했다. 촉나라에서 황제에 오른 장헌충이 제국에서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는데, 공항에 착륙하자마자 스스로를 밧줄에 묶어 죄인을 칭했다.
남명에서는 황태자가 급히 제위에 오른 다음 티완에 도착했다. 숭정제는 소환장 같은 국서를 받자마자 퇴위한 다음 은거했다고 한다.
문제는 사천과 운남에서 나라를 세운 소수민족들이었다. 소수민족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산악지역에 흩어져 살아가는 특성상 같은 소수민족 안에서도 특정인이 대표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라 이름도 없고 통일된 정부도 없어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대표자들이 모여 결정하는 식이었다. 결국 대표만 30명이나 되는 대규모 대표단이 티완을 방문했다.
“3국 대표단은 어떻게 하고 황제 혼자 여길 왔느냐?”
“예, 아바마마. 휴전 조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협상장에서 나오지 말라고 전하고 왔습니다.”
“휴전할 때가 되긴 해서 내심으로는 반기더라도 명분 때문에 쉽게 조약을 맺기 어려울 거다.”
3국 대표단을 티완에서 협상하도록 내버려두고 황제가 과학도시로 이민호를 찾아왔다. 중국이 세 나라로 분열되면서 제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역전됐다. 이제는 3국 중 어느 나라도 제국 황제의 불호령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주 태후께서 저리 슬퍼하시는데 제가 모른 척할 수 있겠습니까?”
“3국의 황제나 추장들보다는 우리 제국 황제 이모의 눈물이 더 무거운 시대가 됐구나.”
“남명에서 숭정제가 자진해서 퇴위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세자 시절에 북경에 입조했던 저도 상전벽해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로 명나라 3국에 대한 제국의 우위가 더욱 확고해졌다. 협상장에 욕설과 고함이 난무했으나 결국 휴전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조약이란 동등한 당사자와 맺는 만큼, 정통 왕조라는 남명의 대의명분도 사라지게 됐다. 남명과 북명에서 고산국 눈치를 보면서 대외적으로 왕을 칭하는 내황외제 체제를 고민했으나, 석현 황제가 쿨하게 황제 명칭을 계속 쓰라고 권했다. 조약 체결 이후 사천의 소수민족들은 의회제를 도입하게 됐다.
“본격적인 원자력 연구를 앞두고 먼저 바위 산맥 깊숙한 곳에 동굴을 파서 방사성 폐기물 처리 장치를 완성했다. 원자력의 위험성을 명심하고 후대에 그 비밀을 전수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바마마. 참! 새로 나온 영환데 꽤 재미있습니다. 이걸 보여드리려고 왔습니다.”
화상방송이 시작된 이후에도 여전히 영화의 인기가 시들지 않았다. 북미대륙 1단계 개발이 완료된 요즘은 현대의 서부극과 비슷한 내용이 크게 유행했다. 기병대와 원주민 사이에 벌어지는 대규모 전투가 현실에 있을 리 없으므로, 북미 개척 초기 탐사대 대원이나 우편국 직원들이 주인공이 되어 활약을 펼친 내용이 많았다.
다만 원주민도 제국의 신민이라 영화에서 악역을 설정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영화에 나쁜 원주민이 등장하면 착한 원주민도 반드시 등장해야 했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농장주나 목장주가 악덕 고용주인 악역으로 자주 등장했다.
이민호가 젊었을 때 함대를 이끌고 다니던 시절도 영화 소재로 각광을 받았다. 이번에 황제가 가져온 것도 이민호의 업적을 기린 영화였다. 영화 주인공은 이민호보다 훨씬 잘생긴 배우가 맡아서, 이민호 본인은 기분이 묘했다.
“카랑카와 족과 불가사리 구이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구나.”
“워낙 인상적인 장면이었으니까요. 억지로 드신 아바마마께서도 대단하셨습니다.”
새순천에 거주하는 카랑카와 족이 키가 워낙 크고 인심이 순박해서 제국 신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원주민에게 받은 불사가리 구이를 씹는 배우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요즘 여동생들이 황제의 속을 썩인다면서?”
“죄송합니다. 가무단을 키우는 애들이 자꾸 신곡을 달라고 합니다. 제가 가진 곡이 사실은 아바마마께서 지으셨다는 것을 여공작들이 대충 눈치 챈 것 같습니다.”
젊어서 걸 그룹 가수로 활동했던 공주들이 요즘은 걸 그룹을 키우는 기획사를 차려 운영했다. 제국에서 성장한 작곡가들이 좋은 곡을 만들고 있었지만 곡 하나 하나가 파격적인 21세기 대중음악을 따라가긴 어려웠다. 그래서 기획사 사장인 여공작들이 황제를 채근했고, 이민호 사후에 발표하기로 약속했던 신곡들이 하나둘씩 풀려나갔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고 했으니 적당히 건네주도록 해라. 새로운 곡 하나가 발표될 때마다 비슷한 느낌의 곡이 쏟아질 것이다. 나중에는 진짜 창작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아바마마 덕택에 창작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게 됐습니다.”
“맞는 말이다마는 꼭 내 덕택은 아니다.”
표절작가 이민호가 얼버무렸다.
티완에 예술의 거리가 조성돼 있었다. 그 중에서 건물 20여 동으로 구성된 미술관은 시대별, 지역별로 분류해서 수많은 작품들을 전시했다.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조각 작품들이 가장 인기가 높았고, 마호메트 이전 시기 중동의 예술작품들은 보존가치가 높았다. 무슬림들은 자기들 조상이라도 이슬람 이전 시대의 역사나 예술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어 현대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응? 자넨 박수무당이 아닌가?”
“예? 잘못 보셨습니다, 상황폐하.”
지질연구소를 방문한 이민호가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 이 세상으로 넘어왔을 때 부친 이응화와 함께 있던 30대 후반 박수무당이 그 동안 하나도 늙지 않은 채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민호가 그 박수무당에 대해 부친 이응화에게 물어봤었다. 그러나 장례 전에 초혼을 하기 위해 왔던 무당도 아니고 그저 알고 지내다가 그 날 마침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이었다는 대답만 들었었다. 잠시 휘청거리던 이민호가 다시 물었다.
“하이랜더...... 아니 진정 전라좌수영의 박수무당이 아닌가?”
“아! 저희 할아버지께서 전라좌수영 성하마을에서 박수무당을 하셨습니다. 저희 아버님도 막내시고 저도 7남매 중 막내인데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가? 휴우~”
조선 중부와 북부에서는 신 내림을 통해, 남부에서는 혈통을 통해 무당의 업을 이어받았다. 이 연구원의 부친은 박수무당의 막내아들이었기 때문에 가업을 이어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무당의 후손이라는 천반 신분에서 벗어날 겸, 젊은 나이에 고산국에 이주해서 지금은 가족 전체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한다.
“상황폐하께서 안도하시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상황폐하께서는 인류를 위해 크나큰 업적을 세우셨기에 수명과 관련해 불안에 떠실 이유가 없다고 사료됩니다. 역사상 폐하만큼 많은 사람을 살리고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경우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신도 함부로 폐하를 건드릴 수가 없어서, 원하시는 만큼 천수를 누리실 것이 분명합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제가 과학자인데 전혀 비과학적인 말씀을 드려 송구합니다만, 제가 아버지로부터 천리에 대해 슬쩍 전해들은 바로는 그렇습니다.”
무당이란 원시종교의 사제 비슷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천지의 이치를 탐구하는 직업이었다. 무당의 후손으로서 가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들으면서 자란 것이 오히려 과학자로 성장하는데 훌륭한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였다.
박수무당의 손자인 지질학자는 꽤나 유쾌한 사람이어서 오후 내내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고생물학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지질 탐사 중에 발견한 화석을 통해 지층의 연대를 결정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고 한다.
“자네는 이 나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솔직히 말해서 나를 어떻게 보느냐 말일세.”
“폐하께서는 남의 평가에 연연하실 필요가 전혀 없으십니다. 굳이 듣고 싶으시다면, 제국의 모든 신민을 애국자로 만드셨다는 말씀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정치가에게 최상의 찬사로군. 오늘 여러 모로 고맙네.”
옛 사람의 손자를 우연히 만나 오랜만에 부담 없이 실컷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일이 워낙 많았기에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박수무당의 손자와 저녁을 함께 하고 헤어진 다음 이민호가 전용 연구실로 향했다. 현재 이민호가 수행하는 연구 과제는 지구 내부의 구조였다. 지각과 맨틀, 외핵과 내핵 같은 내용은 기억하고 있었으나 관측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전 세계에 지진관측소를 설치해 연구를 위한 기반은 이미 갖춰놓았다. 지진파 중에서 P파의 속도 변화를 측정해 내핵의 구조가 고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연구가 이제 거의 완성 단계였다.
============================ 작품 후기 ============================
일이 쌓여 있고 쓸 내용도 더 이상 남지 않아서 이제 끝낼까 합니다. 다음 편이 마지막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