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하아, 하아…….”
퍽, 퍽.
몸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벌써 두 번이나 사정을 마친 질 내에서는 마른 정액과 새롭게 분비되기 시작하는 애액이 난잡하게 섞여 질척댔다.
뜨거워. 루나는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눈앞이 뿌옇다.
“이, 이상해요. 앗…….”
루나는 더운 숨을 토해 냈다. 진한 정액이 몸 안으로 내쏘아졌다. 그녀의 질 안쪽이 수축하며 사내의 것을 물었다. 뜨거운 내벽에서 몽글한 애액이 왈칵 토해졌다.
루나는 엉덩이에 힘을 주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랫도리의 감각은 이미 몸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저릿하게 아픈 비부가 뜨거웠다. 정액이 흘러내리는 그곳에 남자는 손가락을 대고 천천히 쓰다듬었다. 움찔대는 빨간 살결이 그의 손에 엉켜 왔다.
“뜨거워.”
“이제 지쳤어요. 그만-.”
루나가 속삭였다.
남자의 굵은 손가락이 입구 주변을 희롱하듯 살짝 긁다가 손가락이 몸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는 단 한순간도 그녀의 예민한 부위들을 자극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아름다워.”
“…….”
“그리고 지금은 온몸이 붉어져서 더 아름답지. 여기도 발갛게 달아올라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어.”
그가 속삭였다. 루나의 머리로 피가 몰렸다. 부끄러워. 누군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다. 누군가와 욕망을 나누는 것도 처음이고.
모두, 전부 처음이었다. 그래서 아릿하고 아팠다.
“완벽해.”
“아아, 흐읏…….”
루나가 헐떡였다. 그러나 남자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닿지 않는 듯했다.
“당신을 가지는 대가로 날 팔라고 해도 팔지. 그러니- 난 이제.”
자신을 가지라는 속삭임. 나직한 목소리는 평소의 단정한 존댓말과 정반대였다.
심장이 조이고 욱신거렸다. 속이 울렁거렸다.
‘당신,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이런 말, 절대 안 할 거잖아.’
루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그녀도 알고 있다.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이 밤의 기억을 모두 잊으리란 것도.
“하아…… 응…… 그만…….”
그녀는 관성적으로 중얼거렸다. 그 애원은 의미 없는 속삭임에 가까웠다.
“먹어도 먹어도 목말라. 당신 때문에 미치겠어.”
남자가 나직하고 굵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가 루나의 아랫도리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히익, 으응……!”
살짝 부풀어 오른 육벽을 헤치고 꽃잎처럼 부풀어 오른 대음순을 그가 혀끝으로헤쳤다. 그러다 점점 뾰족하게 세운 혀끝이 도톰하게 부푼 클리토리스 끝에 자리했다.
추웁, 축.
그가 혀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야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손가락이 찌걱이는 소리도 멈추지 않았다.
살짝 열린 질구가 다시 움찔거리며 몸을 열기 시작했다.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었다. 쾌락을 쫓기 위해 내밀한 부위가 벌름거린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응, 흐윽…… 윽…… 아키…… 스…….”
안 돼. 이러다간 머리가 이상해질 거야.
루나는 허리를 세웠다. 엉덩이부터 허리, 침대에 뉘여진 온몸이 들썩였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모를 거야.’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쾌락을 느끼면서 루나는 생각했다.
‘내 정체를 절대 모를 거야, 내가 평소 어떤 모습인지, 내가 여인인 것조차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겠지.’
왜냐하면…….
다가오는 쾌락의 물결에 생각이 삼켜졌다. 루나는 허스키한 숨을 끊어질 듯 내뱉기 시작했다.
긴 밤이, 흘러갔다.
* * *
루나는 낯선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루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녀의 새하얀 피부는 화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배 아래에서는 계속 알싸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루나는 좁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앉은 그녀는 완전히 알몸이었다. 루나는 그런 자신을 의식하며 시트를 끌어올려 봉긋한 가슴을 가렸다.
루나는 떨리는 눈으로 조심스레 침대 옆자리에 누운 사람을 응시했다.
‘세상에…… 정말, 꿈이 아니었어.’
루나의 하얀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녀의 침대 옆자리에는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미청년 한 명이 죽은 듯 자고 있었다. 사내는 아직 숨이 거칠었고, 불편한 꿈을 꾸는 듯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저질러 버렸다.’
그 순간 그녀의 뇌리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하룻밤 통정을 했다. 그것도 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혼남인 공작과.
그녀는 평범한 여인이었다. 남다른 재주 한둘 가진 것을 제외하고는 뭐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여자였다.
모로 보나 그녀는 제국의 유명한 공작, 아키스 드 로텐베른의 하룻밤을 훔쳐 낼 만한 여인이 아니었다. 이 남자가 눈을 뜨면 어떻게 그녀를 대할지 상상만 해도 무서웠다.
아키스 드 로텐베른.
그녀의 옆자리에 누워 있는 사내는 정말 끔찍한 성정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었다.
‘아무리 사고라고 해도, 내가 공작과 자다니.’
그에게 핑계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인에게 냉정하고 잔인한 사내로 알려져 있으니.
그러나 어젯밤 일은 정말로 사고였다.
루나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마룻바닥에 맨발을 딛자, 배 안에 찌르르한 느낌이 왔다.
‘그렇게 난리를 쳐 댔으니…….’
어젯밤 일만 생각하면 정말…….
루나의 귀와 하얀 뺨이 훅 달아올랐다.
‘……몸이 아파.’
그녀는 침대 위의 사내를 관찰했다. 거의 혼절 상태로 잠든 조각 같은 사내는 미동하지 않았다.
‘제발 일어나지 마라.’
루나는 숨죽인 채 사방에 흩어진 제 옷들을 줍기 시작했다.
초라한 옷감으로 지어진 남루한 복장. 가슴을 단단히 동여매는 붕대와 소년들이 흔히 입는 프록시 코트, 그리고 부츠와 바지. 루나는 그 낡은 옷들을 보물단지처럼 끌어안고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삐거덕―
‘헙.’
오래된 계단은 늘 삐걱이는 소리를 낸다는 걸 잊었다. 옷더미를 안은 알몸의 루나는 그대로 정지했다.
‘안 깼어. 괜찮아. 아직 자고 있어.’
다행이 방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그녀는 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간신히 숨만 쉬었다. 그리고 후들대는 다리로 더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끝 벽에는 낡은 거울이 걸려 있었다. 햇빛 아래 드러난 그녀의 몸에는 울긋불긋한 잇자국이 가득했다. 모두 공작이 남긴 것이다.
‘으아…….’
민망한 것도 잠시, 루나는 급하게 옷을 꿰어 입었다.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들켜선 안 돼. 내 인생을 여기서 끝낼 순 없어.’
제국에서 혼전에 일을 친 여인에 대한 대우는 끔찍했다. 평민 여성이라 할지라도 고달픈 인생을 살게 될 텐데, 하물며 이름뿐이라도 귀족 여식인 루나가 얼마나 바닥으로 추락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공작이 루나를 책임질 리도 만무했고, 그녀 또한 바라지 않았다.
‘공작은 절대 내 정체를 모를 거야…….’
제국에서 최악의 성정을 가진 남자이자 최고의 신랑감으로 불리는 남자, 로텐베른 공작. 그는 자신을 희롱한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잡히면 공작의 손에 죽을지도 몰라.’
루나는 계단 끝에서 잠시 망설이듯 빠져나온 방문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모두 잊자. 그냥 사람 하나 살린 셈 치자. 이럴 수밖에 없었어. 안녕히, 공작님. 우리 다시 만나지 마요.’
* * *
아키스, 젊은 로텐베른 공작이 눈을 뜬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헷갈렸다. 머릿속에 난쟁이 하나가 들어 앉아 그를 괴롭히기 위해 쿵쿵 뛰는 것 같았다. 한참 이마를 문지르던 그는, 얼굴을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그는 귀신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몸을 일으킨 아키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가 발에 채였다. 자수정 보석이 달린 펜던트였다.
지난밤 상대가 남기고 간 흔적.
아키스는 경직된 동작으로 그 펜던트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