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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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Virtual Reality : 가상 현실)이 상용화되고 나면, 가장 신경써야할 일이 무엇일까. 수많은 골칫거리 가운데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는 것이 있다면, 바로 '저작권'이다. 거의 그렇듯이 게임을 발매하는 회사들은 전부 저작권으로 골머리를 싸매고 그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지 고민한다. 물론 있을 턱이 없었다. 게임을 출시하기만 하면, 비슷한 내용의 게임을 들이밀면서 소송을 걸었다. 그 소송비만 하더라도 게임의 순이익금에 절반이 뚝 날아가곤 했다.

- 당장 해결책을 찾아!

해결책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없을 지도 몰랐다. 시간이 흘러, 이름없는 게임 회사의 신입사원이 그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찾아갔다. 자신에게 아이디어가 있단다.

- 저작권에 걸리지 않는 것이라면, 동화를 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 뭐?

그것이 '페어리 테일(Fairy Tale : 동화)'이라는 게임 등장의 신호였다.

Cocoon이라는 무명의 회사가 한순간에 거대 회사로 발돋움하게 도와준 '페어리 테일'. 이전에 나왔던 다른 게임들과는 다르게, 페어리 테일은 동화를 주제로 삼고, 자신이 선택한 동화 속에 들어가서 게임을 클리어해야한다. 클리어의 목표는 바로 '소환수'의 결정. 특정 네임드 캐릭터의 소환 목표를 달성하면, 보통 하나의 동화당 한 명의 캐릭터를 소환수로 가질 수 있다.

특정 아이템을 이용하면, 한 명이 더 늘어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캐릭터가 죽으면, 동화가 파괴되고, 게임이 끝난다.

이전의 게임과는 다르게 캐릭터의 인공지능을 무려 인간 지능까지 끌어올렸다. 수많은 데이터들을 토대로 모든 NPC 캐릭터들이 개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적용시켰다.

한마디로 하면, 완전한 '자유'. 모든 사람들이 그 자유에 매료됬다. 동화의 스토리 라인을 파괴하던지, 아니면 순응하던지는 오직 플레이어의 결정이었다.

스토리 라인이 파괴가 된다고 동화가 끝나지 않는다. 게임의 주 목적은 오로지 '소환수의 결정'. 한 명, 또는 두 명의 소환수가 결정되면, 동화는 클리어되고 소환수를 얻게 된다.

동화의 스토리 중간이라도, 아니면 스토리가 무한히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소환수의 결정이 무조건 끝을 알리는 종점이다.

" 최고잖아 ! "

게임 설명집을 접고 고개를 돌려 거대한 게임팩을 바라보았다. 게임팩의 무게는 무려 약 40kg. 그도 그럴 것이 인간 세상의 자유도와 거의 똑같이 만들었다면 이 정도 크기는 어쩌면 작을 지도 몰랐다.

5평 남짓되는 방 하나를 전부 차지하는 VR 캡슐에 비하면 작지만, 가게에서 직접 사오면서 무게때문에 꽤 힘들었다. 기대감에 내 손이 살짝 떨렸다.

혁명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자신도 수백만원이나 하는 페어리 테일 게임팩을 산거고. 이전에 나왔던 게임들은 모두 틀에 박혀있는 시시한 게임들 뿐이었다. 조금만 다른 일을 하려고 해도 제한에 걸려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자유도가 높다고 칭하던 엘더스크롤(Elder Scroll) 시리즈도 한계가 느껴졌다.

" 그렇게 칭송을 받을만 하다 이거지? "

더 이상 기다릴만한 인내심이 없다. 무거운 게임팩을 들어 기기에 연결시켰다.

이곳저곳 선을 꼽자 팩에서 웅웅거리는 작은 소음이 들린다. 그 소리보다 더 크게 심장소리가 쿵, 쿵 하고 들린다.

서둘러 옷을 벗어, 런닝 셔츠 하나와 팬티 하나만 입고 캡슐 속에 들어갔다. 강한 흥분 상태때문에 사정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보통 콘돔을 끼고 기기를 실행하지만, 첫번째 접속부터 그런 기묘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성기에 콘돔을 장착하지 않았다.

두 손을 비비고 헬멧을 머리에 썼다. 캡슐이 천천히 닫히자, 눈 앞이 캄캄해진다.

뇌파에 접속하는 단계다. 약간 어질하는 느낌이 들더니 앞에 환해진다.

순식간에 눈 앞에 네모난 상자가 둥둥 떠있는 채로 말을 건네왔다.

" 어서오십시오, 상혁님. "

" 얼른 게임팩 연결시켜. "

" 로드시키겠습니다. "

내가 서 있는 흰 공간에 노이즈가 낀 것처럼 지직 거리더니 서 있던 곳이 푸른 들판이 되고 저멀리 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쏴-하는 소리를 낸다. 따뜻한 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풀냄새뿐만이 아니라, 손끝에서 느껴지는 풀 감촉까지 정말로 현실같다. 확실히 세간의 인정을 받는 이유가 있었다.

네모난 상자는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요정으로 변해있다.

" 현재 로드된 '페어리 테일'의 공간입니다. 다른 공간 테마로 바꾸시겠습니까? "

" 아니, 바꿀 필요 없어. 상속되어있는 동화가 어떤 것이 있지? "

" 로드된 게임팩은 프리미엄팩이므로 '백설공주'의 동화가 상속되어있습니다. 다른 동화를 실행하시려면 구입을 하셔야합니다. "

웃음이 새어나온다. 백설공주란다. 설마 이 나이가 되어서 백설공주의 스토리로 게임을 하게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정말 인간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고 느껴졌다.

" 소환수 결정에 대해서 한번 더 설명해봐. "

" 소환수 결정은, 동화 속에서 게임을 진행할때 네임드 캐릭터, 즉 동화로 치자면 중요 등장인물들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의 모습을 한 안내자가 계속 말을 잇는다.

" 소환수 결정이 게임의 목표이므로, 한 명 혹은 두 명의 소환수가 결정된다면 게임이 클리어되고 종료됩니다. 한번 클리어된 게임은 컬렉션에 수집되고, 진행한 스토리는 삭제됩니다. "

" 소환수를 결정하려면 뭐가 있어야하는데? "

요정이 내 주위를 한바퀴 빙 돈다. 은빛 가루 같은 것이 내 주위를 반짝이며 떨어졌다.

" 각 네임드 캐릭터마다 달성해야할 미션이 있습니다. 그 미션을 클리어하면 소환수가 결정에 응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 가능성? "

이상한 단어다. 가능성이라니.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 미션을 클리어하지 않아도, 소환수를 결정한 권리는 있습니다만,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네임드 캐릭터 스스로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이므로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확한 수치로 대답하기 힘듭니다. "

생각보다 굉장히 괴랄한 이야기다. 간단히 줄이자면 이런 말이다. 소환수를 결정하면 게임이 끝난다. 네임드 캐릭터만이 소환수로 결정될 수 있고, 각 네임드 캐릭터마다 미션이 존재한다. 미션을 달성하면 소환수 결정 가능성이 높아진다.

" 소환수라는 것을 캐릭터들이 알고 있는건가? "

" 모든 동화 속 네임드 캐릭터에게 소환수라는 개념을 이미 입력해놓았습니다. 소환수가 되면, 그 주인에게 영원히 영속되며,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요. "

굉장히 심오하다. 누군가에게 영원히 영속된다는 것은 왠만한 충성도가 아니면 불가능해 보인다. 그것도 네임드 캐릭터라면 더더욱 어려울 터. 난이도가 상승하는 것을 몸소느끼면서도 기쁜 희열감이 차오른다. 재밌을 것 같다. 이 따분한 일상생활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될 것 같다는 희망으로.

" 좋아. 일단 시작해봐야겠어. 백설공주를 실행시켜줘. "

" 개발자의 말이 있습니다. "

" 스킵시켜. "

다시 온 세상에 노이즈가 끼인다. 푸른 초원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고 한 명의 사내가 모습을 보인다. 나와 똑같은 모습이다.

" 캐릭터 생성을 하겠습니다. 성별을 결정해주십시오. "

" 남자. "

" 나이를 결정해주십시오. "

" 스물 여섯. "

" 얼굴을 결정해주십시오. 목록을 나열하겠습니다. "

굉장히 다양하다. 현재 내 모습으로 게임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일단 게임에 유리하게 만들려면 얼굴이 잘생긴 것이 좋다. 미소년 타입은 스스로가 싫어하므로 어느정도 남자다움이 새겨진,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

" 이게 딱 좋겠다. "

마침 내가 원하는 얼굴이 딱 있어서 다른 것을 볼 필요도 없었다. 키 역시 무난하게 185cm. 현재 키보다 약간 더 크다. 몸 전체로 근육이 고르게 분포해있다.

" 성기의 모습을 결정해주십시오. "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당연히 성인게임이 분명했으므로 성기의 크기와 모양도 직접 결정해야한다. 무작정 크게 만들기 보다는, 꽤 크다-하고 생각할 정도로 크기를 키우고, 두껍게 만들었다.

" 이 모습으로 결정하겠습니까? 한번 결정하면 취소는 불가능하오니 신중하게 선택해주시길 바랍니다. "

" 이걸로 결정하겠다. 다음으로 넘어가. "

" 상혁님의 삶을 결정해주십시오. "

목록이 쭉 나온다. 프리미엄팩이라고 적혀있는 항목이 있는 것을 보니, 일반팩으로 샀었으면 삶이 꽤 한정적이였을 지도 몰랐겠다. 덕분에 귀족도 있었고, 갑부의 아들도 있었다. 당연히 거지나 평민의 자식도 있었지만. 그 중에 특히 눈에 가는 항목이 하나 보였다.

- (프리미엄팩) 백설 공주의 이복 남매끌린다. 이복 남매라면 아마도 자신은 새 왕비의 자식이겠지? 동화라고 할지라도 개작되었으니 스토리가 조금 바뀔지도 모른다. 일단, 백설 공주와 쉽게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녀와 가까운 위치일수록 좋을테니. 단점이라면, 새 왕비의 자식이라는 점이지만.

" 좋아. 이걸로 선택한다. "

" 알겠습니다. 취소는 불가능하오니, 5초 안에 결정하십시오. 5.. 4.. 3.. 2.. 1. 결정되었습니다. 상혁님의 캐릭터가 결정되었습니다. 이름은 '갈리베오르 리츠웰(Galiveor Ritzwell)'입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

지직-거리는 방전음과 함께 온 주위에 금이 갔다. 그리고 어둠의 침묵. 어느새 내 눈이 감겨져 있었다. 번쩍-. 순간 강하게 들어오는 햇살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손으로 눈앞을 막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상당히 호화로운 방이다.

샹들리에하며, 침대하며, 심지어 바닥에 놓여있는 슬리퍼까지! 온통 금빛 색깔의 고급스러운 장식들이 휘황찬란하게 반짝이고 있다.

- 똑똑

" 왕자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

" 알았다. "

처음이라면 바로 적응하기 힘들었을테지만, 이제껏 수많은 VR 게임을 겪어온 나로써, 초보처럼 우왕좌왕할 필요없다. 게임은 시작되었고, 이제 나는 '갈리베오르 리츠웰'일 뿐이다.

이불을 살짝 들어 몸을 빠져나오려고 할때, 문득 옆자리에 무언가 보인다. 이불을 살짝 들춰보니 여자다.

그것도 꽤 미인의. 당황스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캐릭터가 생각보다 호색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자신의 성향이 반영되어 그런지도 모른다.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처음부터 이러면 골치아픈 일이 생길 지도 모른다. 그러나저러나 일단 여자가 꽤 미인이었으므로 몸매 감상은 하고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게임이라서 그런지 몸의 비율이 상당히 좋았다. 가슴의 크기하며, 허리 둘레, 엉덩이 둘레까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었다.

백설 공주의 미모가 궁금했다.

" 갈리브 왕자님.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

" 들어와. "

누군가 들어온다. 그녀도 미인이다. 자신보다 약간 나이가 더 많아 보인다. 그녀가 천천히 걸어와 침대 옆 탁자에 금빛 대야를 놓았다. 그리고 흘긋 침대 위의 여인을 보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봤자 자기가 나한테 뭘 하겠냐만은, 약간 기분이 미묘하다.

" 씻으시고 궁전으로 가셔야합니다. 폐하께서 같이 식사하기를 원하십니다. "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시작이다. 일단 자신의 상황을 파악해야했으니, 같이 모이는 것은 굉장히 바라는 일이다.

양치질같은 것이 동화 속에 있을리가 없을테니, 대충 얼굴만 씻고, 무슨 재질로 만든지는 모르겠지만 부드러운 천으로 얼굴을 닦았다. 입이 약간 찝찝했지만, 시녀가 건네준 물컵으로 몇번 입을 헹구고 대야에 뱉어냈다.

자신의 옷을 꺼내 입혀드리겠다는 말을 한 시녀의 어깨를 한번 툭 쳤다. 그녀는 눈을 똥그랗게 말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는 턱으로 침대 옆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 누구야? "

" 네? "

" 침대 위에, 누구냐고. "

" 아, 왕자님의... 약혼녀이신데, 그건 왜..? "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걸 왜 묻느냐는 얼굴이다.

당연히 나는 모르고 있는 여자니까 물어봤지만, 이 세계에선 그게 당연하지 않았다. 귀족으로 게임을 시작하면, 이런 점이 골치아팠다.

아무런 정보없이 게임을 시작해야했으므로,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알아가야했으므로 간혹가다가 자신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데,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 아니, 니가 그녀의 얼굴을 봤는가 싶어서. "

" ... "

순간 시녀의 얼굴이 굳어진다. 혹시 그녀와 자신이 잔 것을 입막음하고 싶어서 떠본 것일까-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괜히 자신의 심기를 건드려 죽을 수도 있으니까. 약간 떨리는 손을 보아하니,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 긴장풀어. 죽이고 자시고 그런건 아니니까. 단순한 변덕이야. "

" 아, 네.. "

시녀의 몸짓 하나하나에 긴장감이 묻어있다. 아까보다 훨씬 딱딱한 기분이다.

옷을 다 입자, 시녀는 황급히 방을 나갔다. 죽다 살아난 표정이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괜히 지금 깨우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약혼녀는 그대로 놔두고 방을 나섰다. 시종이 길을 안내하며 궁을 나온다.

시종에게 '궁전으로 간다며?'하고 묻자 고개를 꾸벅 숙이고 '그렇습니다.'하고 말했다. 여기가 그럼 그 궁전이 아닌 모양이다.

아마 왕자가 거주하는 궁 정도랄까. 자신은 '왕의 궁전'을 향하는 모양이다. 나의 궁을 나오자 마차가 보인다.

쓸때없이 편리하다. 조금 걷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이들은 그걸 허락하지 않을 모양이다.

내 마음대로 걷겠다고 고집피울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시종이 연신 늦었다고 울상을 하고 있는 얼굴이라 차마 그러지는 못하겠다.

- 덜컹

" 이봐, 시종. 잠시 같이 타도록 하지. "

" 예? 아, 네. 영광이옵니다. "

늙은 시종이 마차를 함께 탄다. 원래는 마차의 밖에 있는 뒷 자석에 타야했지만, 내 명령이라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시종이 마차를 타자마자 말들이 히힝-하고 울면서 마차를 끌었다.

" 그래, 시종. 이름이 뭐지? "

" 마크입니다만, 왕자님? "

" 아, 그래 마크. 잠시 까먹었다. 궁의 상황이 대충 어떻지? "

" 네? "

질문이 조금 난해했나보다. 늙은 시종이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더듬었다. 괜히 떠보는 것도 싫고, 확실히 하고 싶다.

" 그쪽을 어찌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정확히 궁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서 그렇다. "

" 왕.. 자님! "

갑자기 마크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린다. 당황스럽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늙은 시종이 두 손을 맞잡는다.

" 꼭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왕자님! "

" 무슨 소리야? "

대충 이렇다. 자신이 꽤 방황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좋은 말로 돌려서 말했겠지만, 일명 양아치같은 삶을 살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자신을 어릴 때부터 봐온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 시종인데, 어릴 때 그리 영특했던 자신이 나이가 먹을 수록 삐뚤어졌더란다. 아마도 새 왕비의 영향이라고 나는 추측했지만, 자세한 것은 그녀를 만나봐야 알 것 같았다.

어쨋든, 자신의 어머니가 새 왕비가 되고, 자신은 폐하의 양자가 되어 왕자가 되었다. 마크는 내가 조금 변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자들을 끼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궁의 상황이나 생리는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아서 폐하의 꾸중도 여러번 들은 상태라 잘못하면 폐왕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왔다.

얼마나 삶을 개차반처럼 살았으면 그런 상황까지 내몰렸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인상을 찌푸렸다.

" 전 왕자님이 다시 이렇게 마음 잡으실 줄 알았습니다! "

" 어찌됬든간에, 얼른 궁 상황부터 말해봐. "

마크가 눈물을 슥슥 닦고 입을 열기 직전에 마차가 멈췄다. 벌써 왕의 궁전에 도착한 모양이다.

마차 문이 열렸다. 그래도 알고 가는 것이 모르고 가는 것보다는 나을텐데. 시종이 황급히 내려 문 옆에 시립해서 서있다. 아까 내가 했던 질문이 그리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표정이다.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지만.

" 왕자님. 도착했습니다. "

" 그래. "

마차에서 내렸다. 한마디로 하면, 거대하다. 내가 지냈던 궁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근위병들이 창을 들고 무표정한 얼굴로 입구 옆에 시립해있다. 가슴이 약간 떨렸다. 이런 상황을 한 두번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 게임은 하드코어적이다.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물러날 위인은 아니지만.

' 일단 부딪혀보자. 몸으로 느끼면 이해할 수 있겠지. '

물론 백설 공주와의 관계를 물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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