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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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에 없는 일이다. 적어도 결혼식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그녀는 생각하겠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공녀는 갑자기 싱긋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 무리야. "

" 알고 있어. 그러니까, 거래를 하자니까. "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도 굳이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백설 공주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다는 의미지. 하지만 괜히 그런말을 공녀에게 할 필요는 없다.

아마도 공녀는 자신이 그녀의 세력을 얻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르세뜨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을터.

"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설마 공작가를 손에 넣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꿈 깨시지. "

" 아, 들켰나? 흐흐. "

" 지금 장난치는 걸로 보여? 이렇게 된 이상 넌 이미 우리에게 쓸모없는 패일 뿐이야. "

과연 그럴까. 백설 공주와 이미 틀어져버린 이상, 나는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가치가 되는 보석이다. 날 놓친다면 공녀도 꽤 곤란한 상황이 될 것이 확실하다. 어제까지 내가 어리버리한 행동을 해서 그런지 그녀에게는 준비된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마약으로 충분히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 그래? 그러면 나도 널 포기하지. "

공녀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내 말이 옳다는 것을 확신시켜주는 단서였다. 그녀와의 줄다리기는 내가 이겼다.

여기서 확실히 보낼 것인가, 아니면 도망칠 조그만 구멍을 보여줄 것인가. 나는 벗겨진 옷을 정리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날 붙잡겠지. 아니, 날 붙잡아야 나도 쉽게 갈 수 있다.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 저벅 저벅

문 가까이 다가갔지만 공녀는 아무런 말이 없다. 이대로 나를 놓치는건가? 정말로 날 포기하는건가? 순간 내 마음 속에서도 갈등이 일어난다. 내가 그냥 한발 양보할까. 자존심이 상한다. 차라리 혼자 시작하고 말지, 괜히 구차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

- 탁

정말 나도 포기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신호가 왔다.

" 자.. 잠깐. "

속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나의 완승이다. 주도권은 이제 나에게 넘어왔다.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직, 끝난건 아니다.

첫번째 승부에선 이겼을지 모르지만, 두번째는 모른다. 공녀도 만만치 않을테니. 아니, 공녀뿐만이 아니라 공작가의 세력이 아마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여기서 승리의 기쁨에 젖어버리면, 나중에 패배자가 되기 쉽상이다. 나는 약간의 여유를 주고 빙글 돌아섰다.

" 나한테 할 말 있어? "

" 비열한 놈. "

" 무슨 소리야? 내가 비열하다니. "

입꼬리가 씰룩 거렸다. 어쩔 수 없이, 웃음소리가 입에서 조금씩 새어나왔다. 공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 아까 했던 말.. 자세히 설명해줘. "

" 그런데, 그건 너에겐 손해아닌가? "

" 하. 난 손해날 건 별로 없어. 아버지가 싫어할 뿐이지. "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건 또 공작 내부의 문제인 것 같았다.

아마도 공작은 아들을 밀어주고 있는 실상인가. 그렇다면 공녀는 희생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그렇군. 그러면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여기서 그녀가 실패하면, 르세뜨는 모든 것을 잃겠지. 아닐 수도 있지만, 날 붙잡은 걸 보면 그럴 확률이 높다.

" 아니, 오히려 내 쪽에서 이득일 것 같은데? 너도 이득이고. 서로 이득이니 괜찮은거잖아? "

공녀의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날 이용할 생각인 모양이다. 하지만, 사실 나에게도 이득이라서 사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세한 얘기를 하기 위해 침대에 다가갔다.

" 머리를 쓰는군. "

" 아니. 머리 쓸 필요도 없어. 내쪽에서도 니가 멀쩡한 사내라면, 내가 굳이 물러설 필요도 없겠지. 널 왕으로 만들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면 자동적으로 나도 왕비가 되고. 어때? "

" 날 죽일 생각이었구나. "

" ! "

그녀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이렇다. 내가 멀쩡하니까, 왕으로 만들 수 있다.

이전의 나는 마약에 쩔어있는 쓸모없는 사내였다. 그러면, 결혼을 하고, 나의 세력을 얻은 다음에 날 죽이려는 계획이었나보다. 그리고 그 잘못을 백설 공주에게 뒤집어 씌우면 완벽해진다. 아아, 내가 생각해도 너무 완벽한 스토리잖아. 하지만 모두 헛일이 되어버렸다.

" 뭐, 기분은 나쁘지만 그에 대해서 보복할 생각은 없어. 어찌보면 너희 쪽에서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니까. 하지만, 너는 버려지겠지. 그렇지? "

아무 말 없다. 하지만, 긍정으로 받아들여도 괜찮아 보인다. 그녀도 마지막에 자신이 희생되고 싶은 시나리오는 거부하고 싶은 것 같다.

" 그래. 오빠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 난 사라지겠지. 어쩌면 아버지에게 죽을지도 몰라. 그런 계획을 아는 사람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좋은 법이거든. 나는 이미 버려진 패고. "

공녀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그녀도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즉, 내 손에 그녀의 생명줄이 쥐어진 셈인거지.

- 물컹

" 무슨.. 짓이야? "

내가 그녀의 가슴을 꽉 쥐자, 공녀가 눈썹을 찌푸리며 날 쳐다봤다. 내 손을 쳐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심히 불쾌하다는 목소리다.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동등한 아군이 아니라, 갑과 을의 관계인 조력자일 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을'이 되었다. 물론 '갑'은 '나'고.

" 지금 나랑 동등하다고 생각하는거야? "

그녀가 모든 것을 털어놓은 이유는 단 하나. 이제 손을 뻗을 곳은 나뿐이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와의 관계가 실패한 이상, 그녀는 버려진다. 최악의 경우는 아마도 소리소문없이 죽을테지.

" 하하, 최악이네. "

공녀가 손을 들어 머리를 쓸어올린다. 그래도 상황에 순응할 줄 아는 대범함이 있다. 역시 범새끼에게 고양이가 나오지는 않는 법인가보다.

" 좋아. 이미 버린 몸. 어떻게 쓰든 상관없어. 그래도, 그에 대한 보답은 받아야겠어. "

" 물론. 널 버릴 생각은 없어. 난 그래도 의리있는 놈이니까. "

" 어쩔 수 없이 믿어보는 수밖에. 그래도 날 속일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니까? "

여자의 몸이지만, 왠만한 남자보다 더 큰 그릇이다. 이 정도되면 그녀도 어느정도 이용해먹을 가치는 있다고 느껴진다.

" 좋아. 우리의 결혼식이 언제지? "

" 빠르면 내년 4월. 길면 후내년 4월. 즉 1,2년 정도 남은 셈이지. 사실 너의 세뇌정도에 따라 시간이 정해져있었거든. "

" 그러면 더 빨리 당기도록 해. 내가 완전히 세뇌당했다고 보고하고. "

공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공작가를 서두르게 만들어야한다. 그러면, 공주측도 서두르게 되겠지. 내가 완전히 세뇌된 것처럼 행동해야하는 것은 필수고. 문제는 왕비에게 이 사실을 숨길지 알릴지의 문제다.

" 좋아. 그럼 자세한건 천천히 얘기하지. 지금 나는 마약에 쩔어야하겠지? "

" 그래야겠지. "

다시 옷을 벗는다. 공녀도 옷을 벗었다. 새하얀 피부에 갑자기 음심이 동한다. 이젠 정말로 내 여자가 된 느낌이다. 아까 없었던 부끄러운 모습이 보이니 더 자극적인 느낌이다.

" 정액도 필요하니까... "

그녀는 나의 속옷을 벗기고 거대한 성기를 손에 쥐었다. 이제 막 저녁이 시작되는 시간이고, 밤은 길다.

아직 동이 터오르지도 않았는데, 눈이 뜨였다. 밤 늦게까지 공녀와 관계를 맺어서 그런지 몸이 뻐근하다.

몸은 피곤하다고 아우성인데, 정신이 말짱하다. 옆을 보니, 공녀가 새근새근 자고 있다.

이젠 한 배를 같이 타게 된 여자라서 그런지, 공주보다 예뻐보인다. 그래봤자, 백설 공주를 보면 그런 생각이 싸그리 사라지겠지만. 어제 밤새도록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왕비에게는 이 사실을 숨기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왕비까지 계획을 알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이젠 이 사실을 가지고 백설 공주를 흔드는 일이 남았다.

' 그 전에 얼른 후작가에 다녀와야겠어.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는 편이 좋겠지. '

그래도 나의 혈육이 되는 곳이니까 당연히 내 힘이 되어줄 것이다. 내 생각에는 되도록이면 왕비가 모르게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녀도 아마 나와 공녀가 빠르게 결혼을 준비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일테니까. 사실 나는 이 결혼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왕비와 공주쪽 세력이 모두 반대하면, 아무리 공작가라고 할지라도 결혼이 성립되지는 못한다. '

내가 원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결혼으로 인해 생기는 불안감이다. 아마도 공주와 왕비쪽 세력은 공작가 세력을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일단 우리가 결혼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공작가는 그것을 강경하게 밀고 나갈 것이다. 거기서 내가 공작가에게 한방 먹이면 된다.

' 이 결혼은 무횹니다 ! '

" 히히히히. "

생각만 해도 즐겁다. 그때 과연 공작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싶다.

아, 사실 지금 얼굴도 모르지만 조만간 알게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일단 결혼을 무효시키기 위한 증거물이 필요할테니, 그녀가 잠든 사이에 마약을 조금 숨겨두었다.

이대로 해가 뜰때까지 옆에 있다가 자연스럽게 내 방으로 가면 끝이다. 손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현실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풍만한 느낌이다. 그녀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 귀찮아. "

그녀는 내 손을 쳐내고 빙글 돌아누웠다. 쳇. 나쁜 년같으니라고. 나는 천천히 기어가 그녀 등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 손으로 다시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고 주물럭거렸다.

" 후. 호색한게 변한건 아니구나. "

" 크크크. 영웅이 호색한건 칭찬이라지? "

아무 말 없다. 답을 원한 건 아니다. 가슴을 만지다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녀의 오목한 배를 지나 배꼽을 간질고 천천히 더 내려가자 까칠까칠한 풀숲이 느껴진다.

- 탁!

그녀는 내 손을 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햇빛에 그녀의 몸매가 비친다. 풍만한 가슴 아래로 슬림한 허리와 적당하게 튀어나온 엉덩이가 내 눈을 어지럽혔다. 그냥 두기엔 너무 아까운 여자다.

" 가지고 싶은데? "

"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

공녀는 파자마를 대충 걸치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고 얼굴 이곳저곳 묻어있는 정액을 젖은 천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빨리 자리를 옮기고 싶어서 그녀를 자극시킨 것 뿐이다. 완전히 사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 그러면 나도 돌아간다. "

" 마중은 안해. "

르세뜨가 거울을 보며 대충 말한다. 쳇. 차가운 여자같으니라고.

동이 막 터오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방으로 돌아오니 벌써 해가 반쯤이나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어제 몸을 꽤 혹사시켜서 그런지 배가 출출하다.

" 마크! 마크!! "

" 네, 왕자님. "

혹시나 불렀는데, 마크가 있었다. 아마도 새벽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모양이다. 다른 시종이나 시녀에게 시켜도 되는 일이지만, 마크가 훨씬 마음이 편하다.

" 출출한데, 대충 먹을거나 준비해줘. "

" 네, 왕자님. "

오늘 할 일은 뭘까. 예전처럼 망나니짓이나 할까. 시녀 엉덩이나 주물럭대면서 돌아다닐까. 괜히 바뀐 모습을 보여주며 경각심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차라리 큰 사건 하나를 터트리는게 좋지 않을까. 공작가가 완전히 마음을 먹게끔.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 히히히히. "

공주가 내편이 아니라면, 확실히 선을 긋는 것이 좋아보인다. 공작가를 완전히 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완벽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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