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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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벌떡 일어나서 날 죽일듯이 노려본다. 상당히 분노하고 있는지 손이 덜덜 떨린다.

" 아버지가.. 아버지가 그럴리 없어. 무슨 짓을 한거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아아아아아아!!!!!!!!! "

그녀는 드레스를 두 손으로 꽉 잡고 괴성을 질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허둥지둥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면서 뒷걸음질친다.

" 뭐야, 이게 뭐냐고. 아아.. 으아아아아아!!! "

갑자기 나에게 달려온다. 하지만, 속도를 이기지 못한 다리가 드레스와 엉키면서 바닥에 철푸덕 넘어진다.

"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한지 알고있어?!!!!!!!!!!!!!!!!!!!!!!!! "

" 추하군, 백설 공주. 아, 이젠 공주가 아니지 참? "

" 아아. "

갑자기 그녀가 벌떡 일어나 시녀에게서 각서를 뺐었다. 그리고 그걸 나에게 보여주면서 소리쳤다.

" 너도.. 너도 이젠 더 이상 왕자가 아니야. 알고 있지? "

" 음, 그럼 후계자는 '프로이테드'가 되는건가? "

" !! "

백설 공주의 얼굴이 충격으로 굳는다. 자, 백설 공주! 선택을 해보시지. 나냐, 공자냐. 혼란스러운 얼굴이다.

" 꿈이지? 그렇지? 이건 악몽이야. 너.. 너 가짜지? 그 어명은 가짜잖아!! "

" 무엄하오! 아무리 공주님이라지만, 이것은 폐하의 어명이시오! "

" 아.. 아아.. 내가 뭘.. 뭐야 이게. "

흐흐흐, 미치고 팔짝 뛰겠지? 하지만, 쥐도 궁하면 고양이를 무는법. 이쯤에서 살길을 내줘야 공주도 적당히 양보할 것이다.

" 백설? 그러면 정말 내가 자비를 내려서 하나 제안하지. 그 각서를 파기시켜. 그러면 아버지께 내가 잘 말씀드려보겠어. 크흐흐흐. "

" 이 사악한 새끼!!! 그 입 닥쳐!! "

시녀들이 공주를 보며 수근거린다. 언제나 다소곳하고 예의바른 공주의 입에서 저런 험한 소리가 튀어나오다니. 하지만, 그녀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각서를 파기시켜야 자신도 살아날 구멍이 생긴다는 것.

" 아아.. 아아아아아... "

그제서야 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완벽히 당했다. 아마 각서때문에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방심하게 만들려고 각서를 대충 만든 점도 있지만.

" 후... 후... "

공주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이성을 가지기 시작한다. 물론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사그라든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까처럼 험한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다.

" 마지막으로 말해주지. 그 각서는 이제 효력이 없을거야. 왜냐하면, 넌 이제 공주가.. 아니니까. "

" 악마같은.. ㅅ.. "

공주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이제 그녀의 징표는 효력이 없다. 내 각서에 찍힌 그녀의 징표도 이젠 의미없는 표시에 불과하다.

" 자, 그래도 내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너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줄게. 아까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자고, 응? 자, 공.주. 각서를 찢어. "

시녀들의 시선이 백설 공주에게 모인다. 침묵. 숨소리까지 죽이며 시녀들이 백설 공주를 바라본다. 공주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눈물을 한방울 뚝 흘린다. 그리고 각서를 두 손으로 잡고 쫙 찢는다.

" 각서를.. 파..기하겠어. 흑. "

" 흐흐흐, 아주 좋은 선택이야, 백.설. "

" 뭐? "

공주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바라본다. 뭔가 이상하다. 그가 자신을 공주라고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해 놀란 모양이다.

" 일단 아버지께 잘 이야기해주지. 하지만, 얼마나 먹힐지는 장담 못해, 백.설. 크흐흐흐흐. "

" 아... 아아.... 아아... 아아아.... 아버지... 엄마.. 엄마아아... "

백설 공주는 어명을 받은 남자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혼이 빠져나간 표정이다.

" 나를.. 나를 아버지에게.. 아버지에게 데려다줘. 얼른. 부탁이야.. "

" 폐하께서 이 말을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

" 말..? "

남자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 다시 입을 연다.

" 당분간 누구도 만나지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

" 거짓말이야.. 거짓말.. 봤잖아요.. 저.. 저놈이 저놈이 날 속인거라구요. 난 속았단 말이에요! "

" 전 이제 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

그는 백설 공주에게 어명을 받은 어지를 건네주고 왔던 길을 돌아갔다. 공주는 멍하게 어지를 내려보고 있다가 나를 바라보았다.

" 널 저주해.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지 알고나 있어..?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일거야아아앗!! "

공주가 갑자기 옆에 서 있던 근위병의 칼을 순식간에 빼들고 나에게 뛰어왔다. 근위병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그렇게 행동하리라고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 젠장! '

그녀가 내 배에 칼을 쑤셔넣었다. 젠장, 독 다음에 이번엔 칼이냐?!

- 땡그랑

백설 공주가 놀라며 칼을 떨어트렸다. 하지만, 이미 내 복부는 구멍이 나버린 상황. 관통하지는 않았지만, 피가 펑펑 쏟아진다.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 아.. 아아.. "

" 크윽..! "

시녀들도 다 놀라서 굳어버렸는지 말이 없다. 겨우 한 명이 비명을 지르자 다같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근위병 몇몇이 뛰어와 상황을 마무리시켰다. 공주는 넋이 빠진 표정으로 시녀에게 부축받아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도 근위병에게 엎혀서 서둘러 의원이 머무는 궁으로 옮겨졌다.

" 이 무슨! 내 이년을 당장!! "

" 고정하시죠. 너희들은 이만 나가거라. "

" 네. "

왕비를 모시는 시녀 둘이 방을 나갔다. 나는 배에 붕대를 둘둘 감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왕비는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 다행히 제가 하란대로 하셨더군요. "

왕비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그녀는 인상을 약간 찌푸리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 나도 생각을 엄청 했단다. 이게 진정으로 잘하는 짓인지.. 하아. 모르겠구나. 그를.. 그렇게 만들면서까지. "

사실 나는 왕비에게 왕을 마약에 찌들게 만들도록 요구했다. 르세뜨에게 남아있는 모든 마약을 왕비에게 주어 그를 세뇌시키게끔. 시간이 약간 촉박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마약의 효능이 대단했는지 왕비는 내가 시킨대로 잘해냈다. 아마 왕은 이미 마약의 맛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마약이란 것이 그렇게 중독성이 강할 줄은 몰랐다. 거의 하루만에 그가 반쯤 미쳐서 그것을 계속 요구하더구나. "

" 어쩔 수 없습니다, 어머니. 우리들이 살려면 그 방법밖엔 없었습니다. "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뒤덮여있다.

" 혹시 들키지 않을까? "

" 아니요. 들키지 않습니다. 그 마약은 특별한 성분으로 만들어진거라서요. 마약이란 것도 모를겁니다. "

" 그가 계속 약을 찾는데, 어떻게 하면 좋느냐? 이대로 계속 놔둘 순 없잖느냐. "

왕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물론 이대로 계속 놔둘 순 없다. 그러면 방법은 단 하나 남겠지.

" 그럼 바꾸지요. "

" 바꾸다니? 무엇을 말이냐. "

입에 미소가 걸린다. 이미 머릿속에 구상은 다 해놓았다.

" 왕과 저를 말입니다. "

" !! "

" 자, 아 해. "

" 나 혼자서 먹을 수 있어. "

" 안돼! 우리 아가, 아. "

르세뜨가 음식을 집어 아- 하고 말한다. 내가 픽 웃으며 입을 아- 하고 벌렸다. 그녀는 내 벌어진 입에 음식을 쏙 넣는다. 맛있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시 양념이 구운 고기를 집어들었다.

" 아. "

다시 입을 아 하고 벌리자 그녀가 고기를 쏙 넣어준다. 이런 경우는 현실과 게임을 통틀어 처음 겪는다. 그만큼 르세뜨가 특이하다고 해야되나?

" 르세뜨. "

" 응? "

고기를 씹는다. 맛있는 양념이 내 혀를 애무하면서 섞인다.

" 준비해. "

" 뭘? "

입을 오물거리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 조만간 왕이 죽을거야. "

" 뭐..? "

그녀가 깜짝놀라며 음식을 떨어트렸다. 아, 아까운걸.

" 그게 무슨 소리야? 폐하가.. 죽는다고? "

" 소리 낮춰. 응. 조만간 죽을 거야. "

르세뜨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지금 그녀를 이해시키려면 한참 얘기를 해야되니 잠시 접어두고 싶다.

" 이해가 안되는데? "

"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줄게. 나 지금 바쁘거든. "

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젓가락을 빼앗아 음식을 마구 집어먹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바닥을 보며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있었다.

하늘이 붉게 노을진다. 마차가 덜컹거릴때마다 공주에게 찔린 배가 아팠다. 그래도 무언가 얻으려면 이정도 고통은 감내할 수 밖에 없다.

얼른 도착하기를 속으로 빌고 있을때, 드디어 마차가 멈춘다. 공방이 보인다.

여긴 전에 날 치료해준 의원이 있다는 곳이다. 마차에서 내리자 공방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온다.

그 의원이다.

" 어이구, 왕자님. 여긴 어쩐일로. "

" 자네에게 보답을 하고 싶어서 말이야. 가져와. "

사내 두명이 낑낑 거리며 의원을 지나쳐 공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공방 구석진 곳에 상자를 내려놓고 다시 마차 뒤에 몸을 실었다.

"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왕자님. "

" 알고 있네. 사실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

" 들어오십시오. "

의원이 공방으로 들어가 어지럽혀있는 탁자 위를 대충 정리한다. 차를 한잔 주려는 것을 정중히 거절하고 입을 열었다.

" 혹시 내가 저번에 당했던 독에 대해서 알고 있나? "

" 아, 그 독 말씀이시군요. 그 후에 더 조사해보면서 어떤 독인지 알았습니다. "

" 오, 그럼 미안하지만 그 독을 내가 좀 가져갈 수 있겠나? 조사단에 제출해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말이야. "

의원은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찬장을 뒤지더니 병 하나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뚜껑을 열어보니 두 알이 들어있다.

" 꼭 범인을 찾기를 바랍니다, 왕자님. 참, 제조에 쓰인 독초를 가르쳐드릴까요? 제조법이 있는 책도 있는데.. "

" 아, 괜찮아. 다음에 필요하면 부탁해도 되겠지? "

" 물론입니다, 왕자님. "

병을 옷 속 깊이 넣었다. 이젠 볼 일은 끝이다. 그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고 수고하라고 말했다. 그는 밖까지 날 배웅했다.

" 그럼 가보겠어. "

" 조심히 가십시오, 왕자님. "

마차가 출발한다. 순식간에 공방이 작아지며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마차 뒷편에 달린 창을 두번 두드리자 드르륵- 하고 열린다.

" 오늘 밤에 처리해. 절대 증거남기지 말고. "

" 네. "

속 주머니에서 병을 꺼냈다. 눈앞까지 들어올려 살짝 흔들자 자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 이건 잘 쓰겠어. "

밖은 순식간에 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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