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150)

15

" 아으어... 아아.... 어어.... "

왕의 숨소리가 잦아진다. 숨을 계속 헐떡이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뱉다가 갑자기 소리가 뚝 그친다. 왕의 주변에서 그의 임종을 맞이한 신하들이 울면서 바닥에 엎드렸다. 왕비도 눈물을 흘리며 몸을 돌렸다.

" 폐하! "

" 흐어엉.. 폐하아.. "

다들 눈물을 흘리며 왕을 부르짖는다. 7일째 되는 밤, 리츠웰 왕국의 왕이 죽었다. 모든 도시에 비보가 전해졌다. 왕께서 승하하셨다고. 그래도 나름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었기에, 백성들은 슬퍼할 것이다.

' 이제 공자는 어떻게 되지? '

증거 불충분으로 아직 죄가 성립되지 않았다. 하지만, 심증은 가는 상태. 아마도 귀족들의 가부로 결정될 것이다. 현재로썬 죄의 성립이 압도적이었다. 나와 왕비만 남겨둔채 신하들이 전부 밖으로 나갔다. 가족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 흑. "

" 어머니. "

왕비가 붉은 눈으로 나를 돌아본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시 차분해진 얼굴이다.

" 일은 잘 해결되었고? "

" 네, 끝났습니다, 어머니. "

왕비가 창문 밖을 바라본다. 아련한 눈빛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모양이다.

" 긴 세월이었다. 많은 귀족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업신여겨지며 여기까지 올라왔다. "

나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 왕비가 된지 벌써 5년이 되었구나. 내 나이 이젠 마흔 둘이다. 그래도 끝엔 광명이 비치는 것 같구나. "

" 어머니. "

그녀를 살며시 안았다. 왕비는 진심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녀에겐 지금까지의 삶이 참으로 고통받았던 삶이었다. 하지만 고통받던 삶도 이젠 끝이다.

" 고생하셨습니다, 어머니. "

" 아니다. 너야말로 고생했다. 고맙구나, 갈리브. "

한참을 포옹하고 있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내가 문을 똑똑 두드리고 들어와라고 말했다. 신하들이 시종들과 다시 침실로 들어온다. 이젠 나와 왕비는 이곳에서 떠나야할 시간이다.

" 어떻게 됬어? "

" 다 끝났어. 이젠 내가 왕이야. "

르세뜨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리고 나에게 푹 안겼다.

" 다행이다. 드디어 끝이구나. 너무 고마워. "

" 뭘. 너도 고생했어. "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포옹하고 있다가 누구 먼저할 것 없이 입을 맞췄다. 입맞춤이 격렬해지더니 르세뜨와 내가 순식간에 속옷 차림이 되었다. 아뜨린느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순식간에 방안에서는 열풍이 휘몰아쳤다.

왕의 장례식때문에 아침일찍 일어나 왕궁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시종 한 명이 급히 뛰어왔다. '루시아르도 벤더' 남작이 보냈단다. 시종은 급히 감옥으로 가셔야할 것 같다고 나에게 전했다. 감옥? 뭔가 느낌이 안 좋다. 감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즉, 공자에 관한 문제다.

' 젠장, 탈옥이라도 한건가? '

황급히 감옥으로 달려갔다. 입구에 남작이 보인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혹시 공자가 탈옥한 겁니까? "

" 그것보다 심각한 일입니다. "

탈옥보다 심각하다고? 설마.

" 내려가서 보시죠. "

공자가 아직 감옥에 있었다. 문제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다는 거지만. 보기에는 아무런 외상이 없어보였다. 격렬히 고통받으면서 죽었는지 프로이테드 공자는 바닥을 뒹굴었던 모양이다. 옷 전체가 흙먼지가 묻어있었고, 눈알이 뒤집어진 상태로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

" 독처럼 보입니다. 그의 몸에서 이 침이 나왔습니다. "

남작이 나에게 기다란 침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누가 공자를 죽인거지? 죽이면 돌아올 이득이 가장 큰 것은 나였다. 하지만 나는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밑에 부하들이 자의적으로 그를 죽였을 리도 없고.

" 도대체 누가 죽인겁니까? "

" 전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사실.. "

남작이 나를 흘깃 보고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린다. 나를 의심하고 있다라. 물론 지금 상황에서 가장 의심이 가는 것은 나겠지.

" 하하, 절 의심하는 모양이신데, 절대 아닙니다. 저도 깜짝 놀랐다구요. "

" 그러십니까. 뭐, 일단 사건은 여기서 종결지어야할 것 같습니다. 증거라곤 이 기다란 침 하나 뿐인데, 사건을 더 이어갈 순 없겠죠. 다만 공작 저하가 걱정일 뿐입니다. "

그가 어떻게 반응할까. 자신의 아들이 감옥에서 죽었다고 하면, 죄를 지었든간에 화가 날게 분명하다. 자칫하면 군사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올수도.

' 잠깐. '

순간적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갈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공작이 여기로 쳐들어 온다고? 아들의 복수를 위해?

- 우리 아버지를 조심해.

르세뜨의 어머니가 공작가에 있다고? 나와 결혼을 해서 기쁘다고? 아들이 죽었다. 공작이 쳐들어온다? 갑자기 내 머릿속이 엄청나게 복잡해진다.

' 지금 가장 이득인 사람이 누구지? '

자신이다. 가장 이득이었던 사람은 바로 나. 하지만, 한 명 더 있다.

' 르세뜨. '

설마했다. 설마, 하하하. 내가 괜히 의심하는 걸꺼야. 그녀가 그럴리 없지. 하지만, 내 마음은 순식간에 내 이성을 배반했다. 속았다고. 지금 르세뜨가 내 머리 위에서 날 보며 비웃고 있다고.

" 아.. 아. "

" 왜 그러십니까? "

" 아.. 아닙니다. 전 잠시 바쁜 일이 생겨서. "

남작이 나의 심각해진 얼굴을 보며 얼굴을 갸웃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습니다. "

" 그럼 이만. "

달렸다. 일단 무작정 달려서 마차를 탄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녀가 나를 처음부터 속이고 있었다면, 나는 정말로 심각한 함정에 빠진 것이다. 뭐랄까,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셈이랄까. 너무나 완벽한 계획이었는데, 그 완벽한 계획 뒤에 르세뜨가 숨어있다.

' 지금 궁으로 돌아가면.. 죽는다. '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감'이라는 것이 있다. 이 모든 것의 원흉은 '르세뜨'라는 것.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사람을 쉽게 속이는 성격이었다. 어쩌다보니 계획에도 없이 그녀의 정체가 들통났지만 그녀는 거기서 날 속이기 위해서 오히려 모든 것을 보여주었던 걸지도 몰랐다. 숨길 수 없다면 차라리 보여주겠다고. 거짓이 없는 말은 속기 더 쉬운 법이다.

" 하하. "

화보다는 웃음이 나온다. 여기서 도망칠까? 아니면, 궁으로 돌아가서 확인을 할까? 만약에 속았다는 것이 확실하면 그냥 죽는 것이 나을까? 너무 믿었다.

이젠 여기서 어떻게 해봤자 방법이 없다. 이미 난 르세뜨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 같으니까. 적어도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면 수도를 벗어나야한다.

그 때, 백설 공주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 그녀에게 갈까? '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에게 가는 것이 옳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럼 왕비는? 그녀를 빼올 방법은 이제 없을 것이다. 포기하자.

" 마차를 돌려! 도시로 나간다! "

마차가 방향을 돌리지 않는다. 내 말이 분명히 전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부답이다. 이미 여기까지 손을 뻗은 모양이다. 이젠 확실하다. 나는 속았다. 그리고 지금 호랑이의 입으로 가는 중이다.

" 이 씨발!! "

마차의 문을 박찼다. 그리고 바로 몸을 던졌다. 상당한 속도여서 몇바퀴를 바닥에 굴렀다.

바닥에 부딪힌 부분이 까져서 피가 흘렀지만, 일단 도망쳐야했다. 마차가 멈춘다.

마차를 몰던 사내가 뛰어내려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지금 저자를 뿌리치고 도망가면, 체력문제때문에 도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무조건 말을 뺏어야했다.

" 크크, 어딜 도망가시려고? "

기회를 본다. 내가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엎드려있자 그는 경계심을 풀고 나에게 느릿느릿 걸어왔다. 사내가 내 사정거리에 들어왔을때 바닥에 있던 모래를 그의 얼굴에 휙 던졌다.

" 크윽! 이 씨발놈이! "

상놈인 주제에 말버릇이 고약하다. 나는 순식간에 그의 가슴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그리고 주먹으로 사정없이 얼굴을 쳤다.

정말 인정사정없이. 주먹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사내의 얼굴이 피떡이 되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가빠른 숨을 삼키고 마차를 향해 뛰어갔다.

마차와 말이 연결된 줄을 떼고 말 위에 올라탔다. 그래도 여러 게임을 했던 덕분에 승마의 기본은 알고 있었다.

" 히얏! "

말이 달린다. 그래도 그 사내놈이 말을 애지중지하며 관리를 잘했는지 털에 윤기가 흐르고 몸이 잡혀있다. 마구와 고삐가 없어서 맨 등에 엉덩이를 대고, 털을 두 손으로 잡고 고삐처럼 활용했다. 일단 곧바로 수도를 벗어나야했다.

' 어디로 가지? '

떠오르는 건 후작 영지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오래 버틸 수 없다. 내 체감으로 약 10분정도가 흘렀을때, 수도의 문이 보인다. 검문을 하기 위해 보초병들이 서 있었지만, 거기에도 이미 세작을 끼워놨을 지도 모른다. 강행돌파다.

" 비켯!! "

" 멈추시오!! 멈추... 으악! "

나를 멈추려는 보초병을 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이대로 계속 달려가야한다. 나를 추적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 으아아아아아아아아!!!!!!!!!!!!!!!! "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래도 속이 후련하지가 않다. 다시 한번 더 내지른다.

" 으아아아아아아아!!!!!!!!!!!!!!!!!!! "

이제야 조금 머릿속이 맑아졌다. 내가 진 것이다. 그렇게 경계하던 백설 공주도 아니고, 공자도 아니다. 가장 믿었던 르세뜨에게 패배했다. 그것도 완패.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심한 패배감을 느꼈다.

' 날 돌아버리게 만들었어, 르세뜨. 너도 아차하겠지? 날 놓쳤으니까. '

다시 돌아보니 완패라고 하기 힘든 것 같다. 아직 내가 살아있으니까. 르세뜨도 승리를 자축할 수 없을 것이다. 날 놓쳤으니까.

' 결국 왕 자리는 공작에게 돌아가는 건가. '

처음부터 왕 자리를 꿰차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공작이 섭정을 맡겠지. 왕비의 생사는 포기해야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왕비까지 구하려하다간 자신까지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마지막에 웃는 놈이 진짜 웃는 놈이다. '

말은 계속 달린다.

============================ 작품 후기 ============================

한 회만에 상황 대역전.

제가 썼지만, 르세뜨.. 참 독한 여자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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