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150)

23

" 빨리 서둘러! "

나는 입었던 옷을 벗고, 편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젠 이 비싼 옷도 필요없다.

그대로 침대 위에 던져두고, 침대 밑에서 200골드가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지금 있는 200골드와 합하면, 400골드가 된다.

이걸로 나와 뤼벨이 빠져나가기에는 충분하다. 그 마르앙이라는 녀석이 나와 공주의 관계를 계속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같은 배를 탈 수가 없다.

잘못하다가 내 신분이 걸리는 날에는 그대로 끝장이다. 그러면? 이곳을 탈출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 끄.. 끝났어요. "

" 얼른 가자. 챙길건 대충 다 챙겨놨지? "

" 네. 귀중품이랑 물이요. "

우리 둘은 서둘러 여관을 나왔다. 아직 새벽이라 여관의 1층에는 술에 떡이 되어 골아떨어진 몇몇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남자 점원 녀석이 뛰쳐나가는 뤼벨을 보고 뭐라고 외쳤지만, 그녀가 이대로 도망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나와 뤼벨은 곧바로 말 구입장으로 달려갔다. 역시 닫혀있다.

- 쿵쿵쿵쿵쿵

" 주인장! 주인장! "

한참을 문을 두드리자 잠옷을 입은채로 누군가 문을 연다. 그 영감이다. 나는 문을 열고 다짜고짜 들어가 말을 팔라고 종용했다. 그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상인은 상인이었는지 곧바로 우리를 마굿간으로 데리고 갔다.

" 150 골드에 2마리 사지. 좋은 놈으로 골라주시오. "

" 150골드면, 그래도 뜀박질 하는데는 문제가 없지요. "

그는 갈색 말 한 마리와 검은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나쁘지 않아 보인다.

흥정같은 것도 할 것 없이 곧바로 그에게 300골드를 건네주었다. 그는 서비스라면서 안장을 각각 설치하고 고삐를 건네주었다.

뒤돌아볼 것도 없이 우리는 그대로 도시의 정문까지 달렸다. 보초병이 보인다.

그는 나와 뤼벨을 세우고 신분증명서를 내라고 손을 내민다. 나는 그 위에 골드 3개를 얹어주었다.

" 따끈한 술 한잔 하게. "

" 통과하십쇼. "

3골드에 헤벌쭉 해진 병사가 곧바로 문을 열어준다. 해방이다. 이제 곧 해가 뜰거고, 배도 출발할 것이다. 나와 뤼벨은 말을 타고 달렸다. 사막은 한번 통과해봤으니, 두번은 어렵지 않다.

" 끝난건가요? "

" 응. 끝이야. "

- 다그닥 다그닥

뤼벨은 말이 처음이라 빨리 뛰지 못했다. 뒤따라 붙는 녀석들도 안보이고, 전속력으로 달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녀의 속도에 맞췄다. 해가 떠오른다. 사구 위에서, 바다 저멀리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아름답다. 온 세상에 천천히 색이 그려진다.

" 아름다워요. 이제껏 봤던 모든 여명 중에서 제일이요. "

" 이제 출발하자. 아무래도 배가 더 빠르니까, 우리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늦게 도착할거야. "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보면 다시 해안 도시가 나타난다. '뷔넬(Buiinell)'. 말을 들어보면, 작은 항구 도시라고 한다. 그곳이 바로 백설 공주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다.

" 이럇! "

갈색 말과 검은 말이 사막을 달린다.

4일을 달렸다. 사막은 훨씬 수월하게 지났다. 물론 셰넌이 아니라서 말은 쉽게 지쳤고, 휴식도 자주 가져야했다. 어차피 뤼벨때문이라도 자주 쉴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젠 하루만 더 달리면, '뷔넬'에 도착할 수 있다.

검은 밤하늘이 반짝이는 별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 꿈만 같아요. 이게 정말 현실이 맞죠? "

" 그래. 현실이야. "

나에겐 가상이지만. 그녀에겐 현실이다. 뤼벨이 살며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장작 위에서 타오르는 불에 그녀의 얼굴이 붉다.

" 고마워요. 절 데리고 가줘서. "

그녀가 고마움을 표한다. 하지만, 여기서 명확히 해야한다. 그녀는 어디까지 날 따라올지. 돈을 받고 헤어질지, 아니면 나를 따라올지.

" 넌 돈을 받고 뭘 할건데. "

뤼벨은 아무 말도 없다. 나도 답을 보채고 싶진 않다. 그녀의 중요한 갈림길이니까. 500골드라면 어딜 가서라도 충분히 한자리를 할 수 있는 금액이다. 뷔넬에 도착하면, 나는 백설 공주에게 돈을 받아서 곧바로 그녀에게 건네줄 생각이다.

" 절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아니, 호감보다 더 높은 무언가. 그것을 사랑이라고 칭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걸 바로잡아줄 필요는 없어보인다.

" 솔직히 말할게. "

뤼벨이 나에게 살짝 떨어진다. 나와 그녀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정면으로 몸을 맞췄다.

" 나는, 리츠웰 왕국의 왕자야. "

" 에..? 그게.. 무슨. "

" 물론 속인건 아니야. 나는 후작가의 후계자이기도 했으니까. 이름은 다르지만. 그건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 "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이 밝지 못하다. 귀족이라는 명함보다는 왕자라는 명함이 그녀를 더욱 압박했다.

사랑? 결혼? 사랑에는 국적이 없지만, 신분은 있다. 그 말은, 그녀와 내가 신분차이가 너무 난다는 것이다.

평민, 그것도 고아인 평민과 왕자. 물론 내가 반역죄를 쓴 왕자라는 것은 빼면 말이다.

" 상관 없어요. 전, 글렌의 답을 듣고 싶어요. "

" 갈리브라고 불러. "

" 갈리브. 답을 해주세요.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

힘든 물음이다. 과연 나는 그녀에게 뭐라고 답해야할까. 좋아한다? 그렇게 말해도 괜찮을까. 이제 내 앞길은 가시밭길이다.

백설 공주와 함께 그 가시밭길을 뚫어나가야한다. 그 거친 길을 그녀가 버틸 수 있을까? 이전에 도박장에서 했던 상황이나 말을 타고 도망쳐 나오는 상황은 어쩌면 천국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을까?

" 힘들지도 몰라. 아니, 확실히 힘들어. 이젠 내 앞길은 깜깜한 암흑 속이야. 더불어 너만 생각해줄 수도 없어. 너는 아마 뒤로 밀려나게 될거야. 난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

그녀가 살짝 입을 벌린다. 그리고, 아랫 입술을 깨문다. 눈이 촉촉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꾹 버틴다.

" 상관 없어요. 처음 봤을때, 알죠? 그때, 뭔가가 저에게 날아왔어요. 이 사람과 나는 무언가 인연이 될 것 같다고요. 그게 여기서 끝나지는 않을 거에요. 사랑해요, 갈리브 왕자님. "

뤼벨이 나에게 다가와 입을 맞춘다. 나도 그녀의 입을 맞추며 혀를 섞었다. 곧 나와 그녀는 뒤엉키며 바닥에 쓰러졌다.

뤼벨과 내가 한몸이 된다.

다음날 이른 오후에, 나와 뤼벨은 '뷔넬'에 도착했다. 작다.

정말, '라인하르츠' 크기의 5분의 1정도 되는 작은 항구 도시였다. 간단히 뇌물을 먹여주고 입구를 통과한 나와 뤼벨은 이곳에서 가장 큰 여관으로 향했다.

그래봤자, 굉장히 허름한 곳이었지만. 뤼벨은 못볼껄 봤다는 얼굴로 인상을 찡그리며 여관의 이곳저곳을 훑는다.

" 사람을 찾는데. "

" 누구 말씀이죠? "

소녀가 장부를 뒤적이며 묻는다.

" 칼리라고, 왠 키가 좀 큰 여성인데. "

" 모르겠는데요. "

" 그럼 애슐리는? "

" 그 분이 애슐리에요. "

참나, 정말 답답하게 막혔다. 끝까지 칼리라고 하지 않는구만. 그것도 딱 공주에게만 허용하다니. 언젠가는 꼭 그 버릇을 고치겠다고 마음 먹으며 로비에서 기다렸다. 소녀가 칼리를 부르기 위해 올라간지 얼마되지 않아서 백설 공주가 달려나와 나에게 안겼다.

" 오오,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

" 잘 대처한 모양이네. 칼리랑 카렌은? "

" 내려오고 있어. 카렌은 릴을 보살펴주고 있고. "

칼리가 내려온다. 그녀는 내 품에 안긴 백설 공주를 바라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린다.

" 얼른 떨어지시죠, 공.. 아니 백설님. "

백설 공주는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나에게 황급히 떨어졌다. 당황한 모습이다. 그런 모습도 나름대로 귀엽지만.

" 그.. 그게 아니고 얼른 올라오기나 해! "

공주가 다시 위로 뛰어올라간다. 나는 뤼벨을 데리고 칼리의 뒤를 따라갔다. 큼직한 방이다. 그래도 이 여관에서 나름 고급스러운 방인 것 같다. 침대가 여러개 보이는데, 릴이라는 시녀가 누워있는 침대 옆으로 카렌이 서서 나에게 꾸벅 인사한다. 나는 손으로 화답해주고, 공주를 불렀다.

" 500골드를 챙겨와. "

칼리가 500골드가 담긴 가죽 주머니를 가져온다. 나는 그것을 뤼벨에게 건네주었다.

" 자, 약속한 금액이야. 이걸로 너와 나의 관계는 모두 청산된거야. "

" 이젠 이건 필요없어요, 갈리브. "

" 뭐야, 너 본명을 말한거야? 저 여자를 끌어들이려고? "

백설 공주가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말한다. 목소리에 가시가 돋쳐있다. 나는 어깨를 살짝 올리고 500골드를 다시 칼리에게 건네준다. 이건 뤼벨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젠 대충 일도 마무리됬고.

" 이젠 급한 일은 모두 껐어. 우리 수중엔 꽤 많은 골드가 있고, 편안하게 '샬렛' 백작가로 출발하면 돼. "

" 너흰 안 쉬어도 돼? 말 타고 오느라 힘들었잖아. "

" 하루는 쉬어야지. 일단 의논이나 해보자는 뜻이었어. 내 침대는 어디야? "

칼리의 눈썹이 살짝 올라간다.

" 왕자님의 방은 따로 준비하십시오. 여긴 공주님께서 머무르시는 방입니다만. "

" 앞으로 진행에 대해서 의논할 것도 많은데 무슨. 그냥 대충 공주 옆 침대에 자리잡을테니까. "

다행히 가장 큰 방으로 잡아서 침대가 많았다. 딱 하나가 비었는데, 그건 나와 뤼벨이 같이 쓰면 될테니까. 그 말을 들은 공주의 표정이 약간 이상해졌지만, 별 말은 하지 않는다.

" 일단 좀 쉬자. 힘들어 죽겠거든. 이봐, 칼리! 음식좀 주문해줘. 배고파 돌아가시겠다. "

" 애슐리 경입니다. 그럼 대충 제가 정해서 주문하겠습니다. "

" '샬렛' 백작가의 힘은 어때? 충분히 우리의 힘이 되어줄만 한가? "

백설 공주가 고민한다. 그녀도 확언할 수 없는 부분인가보다. 그래도 오르도 후작가보단 낫지 않을까. 만약에 후작가가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손을 잡아도 되니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 장담은 못해. 하지만, 첫 왕비를 뽑을 정도였다면, 충분히 세력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 기억엔 백작 영지가 꽤 부유했으니까. "

" 그래도 일단 너와 내가 모습을 쉽게 드러낼 순 없어. 일단 너는 공주의 직에서 물러났고, 나는 반역자니까. "

라인하르츠에서 벗어났지만, 그래도 상황이 좋지 못하다. 샬렛이 강하다고 해도, 왕국과 싸울 수는 없으니까. 왕국을 탈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몇개가 있다.

첫 번째는 각개격파인데, 지금으로썬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들이 군대 수를 일부러 줄인 상태로 우리와 싸울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 양동작전이지. '

수도에 있는 군대를 빼낸 뒤에, 우리들은 그들의 심장인 왕궁을 친다! 현재로써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 혹시 왕국의 시선을 끌만한 무언가가 있나? "

" 시선? 흠. 그거야 많겠지. 가장 확실한건, 영토지만. "

영토라. 이웃 나라와의 전쟁을 뜻하는 말이다. 그 사이에 우리가 왕궁을 탈환한다? 이웃 나라와 연합해서 영토를 건네주는 대신에, 우리들이 적의 심장을 도려낸다.

" 좋네. 이웃 나라라. "

" 우리 영토를 노리는 나라가 하나 있긴 있어. "

" 어디? "

백설 공주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하고 두드린다.

" '킬백' 왕국. "

============================ 작품 후기 ============================

시간이 없어요오. ㅜㅜ 두개씩 올리고 싶은데, 일단 최대한으로 그렇게 해볼게요. 안될 가능성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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