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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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순조롭다. 돈을 조금 써서 큰 마차를 하나 샀다. 릴을 마차 뒤쪽 공간에 싣고, 나와 공주, 그리고 뤼벨이 마차를 탔다. 카렌은 릴과 함께 있는다. 물론 마차를 모는 사람은 칼리고.

나는 1골드라는 거금을 주고 산 지도를 펼쳤다. 지금 출발지가 뷔넬. 샬렛 백작가까지 가려면 한참을 가야한다. 대충 어림잡아도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중간에 도시를 거치고 가느냐, 그냥 통과하느냐를 의논했는데, 공주는 그대로 통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 시간이 없잖아. 이미 왕궁에서 손을 뻗었을지도 모르고. "

옳은 소리다. 이미 충분히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해뒀으니, 모자라는 것은 중간중간에서 보충만 하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대륙을 가르는 긴 산맥때문인데, 돌아가려면 일주일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 산맥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숨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여서 도적들이 꽤 출몰이 잦은 곳이라고 공주가 말했다.

그것때문에 자신도 꽤 골머리를 앓았었다고 한다.

' 이거 감이 안 좋은데. '

일주일을 더 걸려서 안전하게 가느냐, 빨리 통과하면서 위험을 감수하느냐. 당연히 나는 전자다. 물어보니 다 만장일치로 전자를 택했다. 그렇다면 주저할 것 없지.

마차가 힘차게 달린다.

5일을 달리자, 드디어 산맥이 보였다. 얼마나 높은지 꼭대기가 새하얀 눈으로 덮여있다. 마차는 산맥의 가장자리를 따라 달렸다. 그렇게 2일을 달렸는데, 칼리가 마차의 앞쪽에 달린 작은 문을 두드린다.

" 무슨 일이야? "

" 앞에서 연기가 보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

공주의 얼굴이 약간 심각해진다. 모두들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는데, 내가 답을 내리길 원하는 눈치다.

지도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즉, 도시는 아니란 얘기. 마을일 수도 있고, 도적들이 야영하는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자는 가능성이 작은게, 산맥에서 벗어나 도적들이 활동한다는 소리를, 공주는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무대가 산맥인 이상, 거기서 벗어나면 전투력이 급하락하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는 법이다.

" 일단 가까이 가보자. 아니다싶으면 돌아서 도망쳐버리면 되니까. "

여기서 또 둘러서 가다가는 길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어서 일단은 가까이 다가가보기로 결정한다. 아침에 연기가 났는데, 오후가 되니 연기가 사라졌다. 그 연기의 발생지에 가까워졌을때, 칼리가 소리쳤다.

" 뭔가 보입니다! "

나는 마차에서 내려 최대한 안력을 높여 멀리 바라본다. 마을은 아닌 것 같은데? 조금 더 다가가보기로 결정하고 마차를 몰았다.

칼리의 옆자리에 타서 그곳이 어딘지 뚫어지게 응시했다. 처음 보인 것은 시체. 이름모를 사내의 시체. 몸을 뚫어버린 구멍에서 피가 철철 흐른 모습이다.

죽은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주위로 수많은 말발굽이 보인다.

" 가보자. "

수많은 시체가 널려있다. 시체들은 하나같이 다 목이 잘려있다. 복장을 보니, 민간인은 아니고, 도적인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이 남자였는데, 여자도 보인다. 그녀들은 목이 잘리진 않았지만, 벌거벗긴채 능욕을 당하고 죽은 모습이다. 그녀의 사타구니쪽에서 흰 액체가 피에 섞인채로 굳어 있다.

" 왕국군이군. 그것도 정식은 아니고. "

" 왕국군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습니다. "

칼리가 단호하게 머리를 흔들었지만, 그녀는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식이 아니란 말은, 아마도 공작의 군대가 섞여있었다는 뜻이다.

" 아무도 마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해. "

" 네. "

나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시체들을 샅샅히 살펴보았다. 다들 하나같이 몸이 뚫려있다. 창을 쓴다. 그리고 말발굽이 사방에 널려있다. 주위를 보니 아침을 먹다가 급습당해서 죽은 것처럼 보인다. 산맥에 있지 않고 내려왔다는 뜻은 아마도 몰이사냥을 당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마지막 승리는 공작군이 가져간 것이고.

' 이거 별로 안좋은데. '

어수선한 시기를 도적퇴치로 잠재우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이다. 아군의 사기도 높일 수 있고, 왕국군과 공작군을 하나로 합치기에도 좋은 일이니까. 전쟁까지는 아니지만, 함께 싸웠다는 것만으로도 동지애가 생성될 수 있다.

' 왕국군까지 흡수할 생각인가. '

어쨌든, 도적들은 거의 퇴치된 모양이다. 문제는 왕국군과 마주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아주 큰일난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고 생각하자. 나는 마차의 마부석에 올라타 칼리를 보고 출발하라고 명했다.

" 이럇. "

이제 밤이 되어도 불을 피우지 못할 것 같다. 괜히 불을 지폈다가 왕국군이 우릴 찾을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우리는 아무 일 없이 산맥을 돌아갔다. 그렇게 샬렛 영지로 무사히 도착했다. 영지를 통과한 시간은 아주 이른 새벽, 영지의 정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갔다. 사람들의 눈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공주의 신분은 밝혔지만, 나는 짐칸에 몰래 숨었다. 마차는 그대로 백작의 성 안까지 통과했다.

" 도착했어. 칼리과 카렌은 얼른 릴을 의원에게 데리고 가. 한달 정도 푹 요양하면, 병이 나을거야. "

여기가 샬렛 영지구나. 역시 후작가보다 훨씬 발달되어있다. 수도와 비견될 정도로 도시의 건물도 세련됬고, 사람들도 많았다. 공주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백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 오오, 우리 손녀딸. 너무 오랜만이구나. "

" 할아버님. "

백설 공주와 백작이 서로 손을 잡았다. 혈육이라서 그런지 백작의 모습이 애틋해보인다. 내 정체를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

" 반갑습니다. '글렌 드렉슬러(Glen Drexler)' 라고 합니다. 킬백 왕국에서 왔습니다. "

" 반갑네. "

대충 아무 가문 이름을 지어내어 둘러댔다. 백작이 모든 귀족의 가문을 다 외우고 있지 않은 이상은 알지 못할테니까. 곧 나와 백설 공주는 그의 아침 식사 초대를 받았다.

아직 이른 새벽이라서 식사 하기 전이었던 모양이다. 뤼벨은 너무 힘들다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기 때문에, 식사는 나와 공주만 가기로 결정되었다.

" 괜찮겠어? 널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

" 들키면 도망쳐야지, 어쩌냐. 위험이 있다고 모든 것을 피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지. "

백설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백작 부인은 몸이 좋지 않아서, 침대 생활을 한다고 했다.

" 백설, 너가 라인하르츠로 쫓겨났다고 했을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단다. 그렇다고 폐하의 명을 거역할 순 없어서 도와줄 수가 없었구나. "

" 아니요, 괜찮아요, 할아버님. 그래도 이분께서 절 도와주셔서 다행히 나올 수 있었어요. "

" 흠. 왕궁의 상황을 알고 있느냐? "

나와 백설 공주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공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 네. 대충은요. 공작 저하께서 섭정을 하신다고. "

" 아, 이젠 아니란다. 얼마 전에 대공으로 등극하셨단다. 왕비님이 여왕 폐하가 되시고, 혼인하셨지. "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 여왕 폐하? 대공? 과연,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가장 쉽게 왕궁의 힘을 흡수할 수 있는 방법. 바로 현재 왕비를 여왕으로 추대하고 그녀와 혼인하는 것.

" 그렇..군요. "

" 그럼 백설, 너의 죄는 모두 끝난 것이냐? "

" 네, 그런 셈이지요. "

백작은 다행이라는 얼굴로 허허- 하고 웃는다. 그는 배가 고플테니 얼른 식사를 하라고 말한다. 공주는 천천히 음식을 입에 넣는다. 나도 고기를 조금 잘라서 입에 넣는다.

하지만, 맛을 느끼기에는 내 마음이 심란하다.

" 어떻게 할거야? "

" 어쩌겠어. 백작님에게 도움을 요청해야지. "

백설 공주는 팔짱을 낀다. 얼굴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 내가 보기엔 할아버님은 왕궁에 대해서 별로 불만이 없으신 모습이었어. 도움을 요청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단 말이야. "

" 그럼 다른 방법이 있어? 그래도 최소한 우리들에게 군사는 있어야 뭘 해볼거 아냐? "

그녀는 엄지 손톱을 살짝 깨물면서 생각에 빠졌다. 썩 내키는 모습은 아니다. 물론 내가 아니라, 자신의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 어떻게 저렇게 무심하실 수가 있지? 그래도 내 아버지가 돌아가신건데. "

" 진정해. 일단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해. 우린 해야할 일이 있어. "

내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할 수 있지? 백작님은 설득할 수 있지? "

" 해..볼게. "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다시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 아니, 그런걸로 안돼. 할.수.있.지? "

공주가 잠시간 침묵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 응. 할 수 있어. "

이젠, 킬백 왕국과 길을 터야 한다. 그것도 백작에게 부탁해야 할 것 같다. 백설 공주는 심호흡을 하고 나를 한번 흘깃 보고 백작의 서재로 들어갔다. 이젠 그녀에게 달렸다. 여기서 거절당한다면, 이젠 왕궁을 재탈환할 방법이 거의 전무하다. 후작가라고 해봤자, 기사단 하나 뿐이었고, 군사는 천 명이 될까말까였다.

' 안된다면 쿨하게 포기해야지 뭐. '

그런 다음에 백설 공주를 공략해야한다. 하지만, 극적인 상황이 훨씬 드물테니까,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 제발. '

한참을 서재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것은 좋지 못한 징조다. 거절당한건가? 안 좋은 가정이 내 머릿속을 휘감을때, 문이 열린다. 공주다. 약간 얼굴이 굳은 상태다. 그녀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 한숨을 푹 내쉰다.

" 실패..했어? "

" 아니, 성공이야. 그런데, 반만 성공했어. "

" 반만이라니? "

어떻게 반이라는 뜻이지?

" 기사단의 반과 병사들의 반만 지원해주시겠대. "

" 그런가. "

그래도 반이라도 성공했다는 것이 어딘가.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잘했다고 칭찬했다.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연다.

" 소.. 손 치워! 감히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다니! "

" 어, 미안해. 나도 모르게 버릇이 나와버렸네. "

" 흥. "

쳇, 도도한 척 하기는.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대로 내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문을 쾅 닫자 그녀가 당황하면서 몸을 움츠린다.

" 무.. 무슨 짓이야. "

" 무슨 뜻이야? 나머지 얘기는 내 방에서 해야 안전할 거 아냐. "

공주의 얼굴이 살짝 묘하게 바뀐다. 후후, 사실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가지고 놀아야 안달이 나겠지. 이런 작은 스킨십이나 행동들도 다 내 계획에 포함된 것이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 킬백 왕국에 대해서는? 얘기했어? "

" 응. 좀 내키시는 얼굴이 아니었지만, 그쪽 왕실과 연결되는 줄이 있으시대. "

" 다행이네. 날 의심하시지는 않으셨고? "

공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날 별로 신경쓰지 않으신단다. 뭔가 다행이면서도 기분이 나쁜데. 어쨌든, 걱정했던 문제는 거의 다 해결된 셈이다. 남은 건 딱 하나.

' 킬백 왕국과 얘기를 잘해야겠네. '

나의 주 장기인 '밀당'을 써먹어야할 차례군.

그러나, 상황이란 것이 그리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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