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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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일주일동안, 나는 아르펜을 만나 사랑을 속삭이며 천천히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내가 떠날 날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한숨은 더욱 깊어만 간다.

" 하아. "

" 왜 그래? "

별이 빛나는 밤. 내일은 바로 내가 떠나는 날이다. 우리는 지금 언덕 위의 나무 밑에서 보를 깔고 누워있었다. 내 오른팔에 안겨 누워있는 그녀가 몸을 살며시 돌려 반대팔로 나를 안는다.

" 내일 갈리브를 떠나보내야 하니까요. 그러기 싫어요. 영원히 당신과 살고 싶어. "

그녀의 얼굴에서 눈물이 한방울 흐른다. 사실 정말로 꿈만 같은 일주일의 생활이었다. 하지만, 내일 나는 떠나야한다. 이제 그녀에게 슬슬 작업을 걸어야할 시기인 것 같다.

" 우린 이제 헤어져야해. 나는 이제 더 이상 왕자가 아니야. 일주일간 곰곰히 생각해봤어. 나는 널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 "

" 그런 말 말아요! 우리.. 우리 킬백 왕국으로 와요. 네? 내가 당신을 지켜주겠다구요! "

아르펜이 상체를 일으켜 두 팔로 내 가슴을 쥐고 흔든다. 하지만, 나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 아니야. 나 말고 더 좋은 사람 만나. 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여자야. "

나는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내 손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나와 함께 할 수 있죠? "

드디어 넘어왔다. 결국 그녀의 입에서 내가 원하는 물음이 튀어나온다. 이젠 그녀도 진심으로 날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이다. 결심한 표정. 일자로 다문 입은 그녀의 결심이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나도 백설 공주와 상의를 많이 해봤어. 하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해. "

" 뭐가 불가능하다는거죠? 저에게 얘기를 해줘요. "

내가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 더 그녀를 흔들어야한다. 여기서 말해줬다간, 죽도 밥도 안된다.

" 너는 알 내용이 아니야. 못 믿는 것이 아니라, 내 힘이 되어줄 수 없어. "

그게 결정타였다. 그녀는 내 어깨를 작은 주먹으로 때리며 소리친다.

" 내가 도와줄 수 있단 말이에요! 나도 힘이 있어요! 정보국의 수장이란 말이야! "

" 그게.. 무슨 말이야? "

결국 그녀가 울먹이면서 사실을 털어놓는다. 자신은 킬백 왕국의 정보국 명예수장이며, 자신의 오빠인 마르앙은 기사단의 명예대장이란다.

아마도 킬백 왕국의 왕이 자신의 딸, 아들에게 어느정도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보였다. 결국 나에게 털어놓는건가.

정보국의 수장이라면, 어지간하지않으면 자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도 정체를 숨긴다. 그만큼 그 위치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것을 내게 말했다? 그러면 이제 그녀는 나에게 완전히 넘어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 이럴.. 수가. "

" 이제 됬죠? 저에게 말을 해봐요.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지. "

나는 그녀에게 천천히 내 계획을 말했다. 킬백 왕국에서 '라인하르츠'를 침공하여 뺏으면, 분명히 리츠웰 왕국이 '라인하르츠'를 되찾기 위해서 병사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비어있는 왕국을 습격하여 왕궁을 탈환하는 것.

하지만, 이 계획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 킬백 왕국이 라인하르츠를 침공할 것이냐. 물론 명분은 있다.

원래 라인하르츠는 킬백 왕국의 소유지였고, 리츠웰 왕국이 그 영토를 빼앗아 온 것이므로 영토의 소유권을 주장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킬백 왕국도 성급히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테니, 현재로써는 라인하르츠를 침공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두 번째로, 병사가 빠져나가지만, 수성을 하는 일부 병사들이 수도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작가에 사병이 존재한다하더라도, 그 수는 고작 몇 천. 수성이라는 것은 적은 수로 많은 수를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므로, 만약에 수도에 남은 병사 수가 3천만 된다고 해도 시일이 걸리면 계획은 실패하기 쉽상이다.

여기서 그녀가 만약에 첫 번째 문제점을 해결해준다면, 두 번째 문제점까지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나는 아르펜에게 계획을 상세히 털어놓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녀는 무언가 한참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었다.

" 만약. "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어서 말을 시작한다.

" 제가 그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면.. 갈리브는 다시 왕궁으로 돌아갈 수 있는건가요? "

드디어 그녀가 수락했다. 기쁜 마음에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계속 연기를 진행해야한다.

" 널 곤란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께. "

" 아니요! 전 마음 먹었어요. 갈리브를 절대 이렇게 두지 않을거에요. 당신을 반드시 왕궁으로 돌아가게 해줄거에요. 그리고... 당신과 혼인할거에요. "

아르펜이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친다. 박력있다. 그리고 꽤 대담한 마음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녀가 정보국의 수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명예직이지만. 이젠 밀당도 여기까지 해야할 듯 싶다.

" 좋아. 나도 너와 혼인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왕자.. 아니, 적어도 왕자로 복직이 되야해. "

" 네. 다시 자세히 얘기해봐요. "

시간이 없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나에게 받기를 원한다. 즉, 이제 실질적인 정보국의 수장은 내가 되는 것이다.

' 좋아. 라인하르츠를 함락하는 것도 시간 문제고. 그러면 나는 수도만 탈환하면 되는 일인가. '

이제 내가 신경써야하는 것은, 최대한 보안을 유지해야하는 것과 수도의 병사들을 빼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열띤 음성이 오가던 밤이 지나갔다.

" 어땠어? "

" 어땠긴. 성공했지. "

" 오. 아르펜 공주가 성깔있기로 유명한데, 너한테는 역부족이었나봐? "

턱을 괴고 마차창을 통해 밖을 멍-하게 보고 있던 나에게 백설 공주가 비꼬듯 얘기한다. 이런 말투를 보니, 그녀도 어느정도 성과가 있는 모양이다. 잘된 일이다.

" 오늘 널 붙잡고 울고불고 할때부터 알아봤다니깐. 하여튼, 여자들은 다 꼴불견이에요. 이런 녀석이 뭐가 좋다고. "

백설 공주가 내 위아래를 흘겨보며 흥- 하고 콧바람을 뀐다. 젠장맞을 년. 누가 츤데레 아니랄까봐. 아마도 그녀의 산파극이 아니꼬왔던 모양이다.

" 내 노력좀 알아달라고? 너 좋다고 하는 일인데, 뭘 그렇게 불만이냐. "

" 도와달랬지, 누가 여자 꼬시라고 했어? "

" 뭐야, 꼭 내 마누라처럼? 혹시, 내가 바람필 것 같아서 걱정했어? "

백설 공주가 어버버- 하며 당황한다. 얼굴이 붉어지더니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꽥- 하고 소리친다.

" 무슨소리야!! 내가 왜 너 따위 놈과! "

" 아니면 말고. 왜 이렇게 소리쳐? "

그녀는 날 노려보면서 입을 꾹 다문다. 이쯤에서 살살 풀어줘야지.

" 그건 그렇고. 넌 마르앙을 어떻게 꼬신건데? 니 얘기도 해봐. 숨기지 말고. "

백설 공주는 순식간에 화가 난 표정을 풀고 뤼벨을 살짝 봤다가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괜찮냐는 의미다. 즉, 그녀도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뤼벨은 상관없을테니.

" 응, 말해도 괜찮아. "

공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조잘조잘 얘기하기 시작한다. 뤼벨도 그녀의 말에 맞장구치며 신나게 얘기를 듣는다. 중요하지 않은 내용도 얘기하면서, 그 녀석이 어땠니 저땠니 하며 수다를 떠는데, 장장 몇 시간동안 떠든 내용을 내가 압축해본 결과는 단 한 줄이었다.

' 그 녀석이 나를 좋아해서, 자신을 도와주기로 했다. '

고작 이 말을 그렇게 길게 하는 기술이 있다니. 여자들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2주 가까이 달려, 드디어 백작가에 도착했다. 나도 어디로 갈 곳이 없으니 백작가로 돌아왔지만, 여기도 오래 있어봤자 좋을 건 없어보인다. 최대한 계획이 빨리 실행되야, 나도 공주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런데, 마침 뜻밖에 좋은 일이 생겼다. 수도에서 가면 무도회가 열린단다. 아마도 이번 계기로 귀족들의 여론을 모아보고 싶은 공작의 의도인 것 같다. 가면 무도회라. 무언가 기회의 냄새가 난다.

" 가겠다고? "

" 응. 딱 좋은 기회야. 어머니와 잘한다면 만날 수도 있고 말이지. "

하지만, 백설 공주는 탐탁지 않은 표정이다. 내가 가면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가면 무도회라고 해도, 신분은 다 확인하니까.

"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왕궁 상황을 알아야할텐데, 내 눈으로 직접 봐야 직성에 풀리니까. 그리고 어머니를 만난다면, 안팎으로 도와줄 수 있는 아군도 생길 수 있는 것이고. "

" 그래도 이건 아니야. 사지에 들어가는 거라고? 나는 몰라도, 너는 갈 수 없어. 차라리 내가 갔다왔다가 너에게 말해줄테니까.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를 만나려면 내가 직접 가야한다. 백설 공주만 간다면, 어머니는 아마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백설 공주를 쫓아냈는데, 그녀가 직접 돌아와서 나와 손을 잡았다고 한다고? 내가 당사자가 되어도 쉽사리 믿지 못할 것 같다.

" 걱정마. 다 방법이 있어. 나만 수도로 넣어줘. 그러면 알아서 빠져나올테니까. "

하지만, 그녀는 내 말에 찬성하지 않는다. 절대 할 수 없단다. 잘못하다간 나 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녀는 자신보다 내가 어떻게 될까봐 걱정하는 모습이다. 후후, 그래도 여기는 밥이 잘 되어가는 모습이네.

" 그럼 알겠어. 갔다와서 상황을 상세히 얘기해줘. 가면 무도회가 언제 열린다고? "

" 일주일 남았어. 이미 삼 주 전에 통보가 왔었는데, 그 땐 우리가 없었을 때니까. "

그렇다면 출발은 내일이나 모레에 해야 조금 여유가 있다.

" 그럼 내일 출발해. 왕궁 상황을 좀 알아보려면 말이지. "

" 응. 어쨌든, 허튼 생각하지마. "

공주는 검지 손가락을 내밀고 단단히 경고를 준다.

" 나도 사지로 직접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알았으니까 얼른 가서 준비해. "

그녀는 약간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흘겨본다. 나는 그녀의 등을 떠밀어 방 밖으로 내보내고, 이젠 어떻게 여길 탈출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아마도 백설 공주의 성격으로는 내 감시를 붙일 것이니까.

" 뭐야? "

" 공주님께서, 왕자님을 단.단.히 감시하라고 명을 내리셔서 말이죠. "

하필이면, 칼리라니.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고 방앞에 무표정하게 서있는 칼리를 보며 알겠다고 손짓했다. 그녀는 주먹을 쥐고 가슴에 착- 하고 얹고 내 방앞에 시립한다.

젠장. 문으로 통과하는 것은 이제 무리겠군. 고지식한 사람 중에서 수위를 다툴 그녀를 말로 설득하기는 무리일테니, 무슨 좋은 방법이 없나? 일단 백설 공주에게 내가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안되니까, 그녀가 출발하고 난 뒤에 나도 탈출을 감행해야했다.

' 잠깐, 아주 좋은 방법이 생각났는데? '

나는 한손으로 턱을 쓸어내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흐흐, 칼리 이 년. 내가 널 아주 단단히 물을 먹여주겠어. 공주는 내일 오전에 출발할테니까, 지금 떠오른 방법을 실행한다면 나는 밤에 출발하겠지?

" 그동안 당했던 설움을 복수해주마, 칼리야. 으흐흐흐. "

기분 좋은 웃음을 내뱉으며, 침대에 누웠다. 밤이 되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가면 무도회라. 사실 왕궁의 상황이 궁금했는데, 잘 됬어.

이것저것 골똘히 생각하다가, 나는 천천히 잠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30편이 눈앞에 있네요.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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