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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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럇! "

마차는 흙먼지를 풀풀 날리고 바닥에 긴 두 줄을 만들며 힘차게 달려간다. 이대로 백작가로 갈 수는 없었다. 분명히 뒤를 잡힐 것이기에, 나와 백설 공주가 연관이 되어있다는 실마리를 주면 안되니까. 그렇다면?

' 이대로 다시 '라인하르츠'로 돌아가야한다. '

혹시 몰라서 '라인하르츠'에 아르펜 공주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두었기에, 일단은 잠시 몸을 피해야했다. 그나저나 여왕이 이 일의 원흉이었다니. 친아들도 버릴 정도로 권력이 궁했던건가? 물론 역사적으로도, 권력때문에 자신의 자식을 버리는 일은 허다했으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주 멀리서 점 2개가 보였다. 무엇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 자신들을 쫓는 무리이리라.

역시 '샬렛' 백작가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저쪽은 말 혼자서 달리는 것이고, 우리는 마차를 끌고 가야하는 것이라 이대로 달린다면 아마도 내일이나 모레면 따라잡힐 것이 분명했다.

' 마차를 버려? '

어차피 버릴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나는 라인하르츠를 둘러싼 사막에서 버릴 예정이었다. 여기서 라인하르츠까지 5일은 걸릴테니까 차라리 지금부터 거리를 유지하면서 달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나는 곧장 마차를 멈추고 마차문을 열고 르세뜨에게 말했다.

" 르세뜨. 마차를 버리자. 꼬리가 붙었어. "

" 말을 타고 가야하는거야?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흔쾌히 마차에서 내려 말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다행히 말은 몇번 탄 적이 있다고 하니, 적어도 말에서 떨어질 일은 없을 것 같다. 흑마 위에는 르세뜨를 태웠고, 나는 갈색마에 올라탔다. 안장같은 것이 없어서, 초보인 르세뜨가 불편할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 가자! 이럇! "

흑마와 갈색말이 달린다. 거의 반나절동안 잠깐잠깐 쉬고 계속 달렸다. 그제서야 저멀리 보이던 두 개의 점이 이젠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들도 지쳐서 쉬고있는 것 같다.

" 르세뜨. 우리도 잠깐 쉬자. "

주변에 물이 있는지 돌아보다가,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찾았다. 고여있는 물이었다면 마시지 못했겠지만, 시냇물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르세뜨는 목이 말랐는지 허겁지겁 물을 꿀꺽꿀꺽 마시며 입을 슥- 닦았다.

" 하아. 하아. "

" 힘들지? "

르세뜨가 날 바라보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이정도는 괜찮아. 아직 버틸만 하니까. "

안타깝게도 물을 담을 통이 없어서, 이대로 사막을 들어간다면 큰 낭패를 볼 것 같았다. 주변에 작은 마을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까 첫 번째 마을을 지나치고나서는 더 이상 마을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사막이 나타나기 전에 적어도 한 번은 더 마을이 나올거라고 믿었다.

" 잠시 눈좀 붙여. 내가 망을 보고 있을테니까. "

그녀도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내 어깨에 머리를 대었다. 하루 종일 거의 쉬지도 못하고 달려와서인지 그녀는 눈을 감자마자 약하게 코를 골며 바로 골아떨어졌다. 이젠 그녀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나는 르세뜨의 얼굴을 이곳저곳 살펴보면서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 고생했겠지. '

만약에 공작의 자식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죽었을지도 모른다.

대충 2시간 가까이 쉰 뒤에 나는 르세뜨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그녀가 힘겹게 눈을 뜬다. 아직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 이제 출발해야해. 힘들지? 조금만 더 참자. "

르세뜨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잠시 실례좀 하겠다며 풀숲으로 들어갔다. 생리 현상을 해결한 뒤에 다시 물을 듬뿍 마시고 나와 르세뜨는 말을 타고 출발했다.

어둑해지는 저녁에 출발해서 해가 뜨는 아침까지 달렸는데, 드디어 마을이 하나 나왔다. 막 아침밥을 짓고 있는 중이었는지,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굴뚝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혹시 몰라서 르세뜨를 잠시 기다리게 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조금씩 동냥받아서 바구니에 음식을 담고, 물통 두 개를 얻었다.

" 먹어. "

르세뜨가 주저하면서 천천히 손을 뻗어 음식을 집었다.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것은 쿠키를 빼고는 처음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배를 채우지 않으면 또 언제 채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와 그녀는 바구니에 든 음식을 전부 먹고 다시 말에 올라탔다.

" 이럇. "

또 우리는 달렸다. 그렇게 3일을 지내자 사막이 나온다. 최대의 고비. 다행히도 이번은 나에게 경험도 있었고, 음식과 물도 충분했다. 단지, 르세뜨의 체력만 관리하면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사막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 마음 단단히 먹어, 르세뜨. "

지저분해진 옷과 얼굴을 하고 있는 르세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5일 가까이 얼굴과 몸에는 물 한방울 묻히지도 못한 나와 그녀였다.

다시 우리들의 말은 사막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꼬박 하루하고 반나절이 걸려 사막을 건넜다. 그 때처럼 사구를 올라가자 저멀리서 '라인하르츠'가 보였다. 르세뜨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 다 왔어, 르세뜨. 해냈어. "

" 응. 고마워, 갈리브. "

나와 르세뜨는 지친 몸을 이끌고 라인하르츠에 들어갔다.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가기에는, 이미 나의 소문이 퍼져있어서 좀 눈치가 보였다. 나는 곧장 아르펜 공주와 연락이 가능한 장소로 몸을 옮겼다.

" 어서 오십시오. 공주님께 들었습니다. "

우리를 반겨주는 한 여인. 이곳 라인하르츠의 정보를 관리하는 정보 부장이라고 했다. 다행히 아르펜이 잘 말해놓고 갔는지, 우리는 대접을 꽤 잘받았다. 몸도 씻고, 음식다운 음식도 먹었으며, 잠자리도 좋았다.

" 공주님께 뭐라고 연락할까요? "

" 며칠정도 걸리지? "

부장은 음- 하고 생각하더니 손을 쫙 펴면서 얘기했다.

" 5일이면 될 것 같습니다. "

" 그러면 충분해. 일단 우리가 잠시 여기로 피신해 있다고 전하고, 더불어서 최대한 빨리 계획을 실행시켜라고 해줘. "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에 무언가 휘갈겨 적더니 부하를 불러 건네주었다.

" 그럼 편안하게 쉬십시오. "

" 그래, 고맙군. "

부장이 준비해준 방에 들어가니 르세뜨가 곤히 잠들어있었다. 아마 그녀는 머리털나고난 후에 처음으로 이런 강행군을 했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서 귀 뒤로 넘겼다.

" 으음. "

르세뜨가 몸을 살짝 뒤척인다.

' 백설 공주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

그녀에게도 대충 지시를 내려야 한다. 그것을 얼마나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를 서랍에서 몇장 꺼내고 펜으로 글을 적었다. 한 장 정도 분량의 편지가 완성되자 나는 방 밖에 대기하고 있는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 이걸 부장에게 갔다주고, '백설 공주'에게 전해달라고 해. 최대한 빨리. "

" 네. "

남자는 편지를 들고 어디론가 황급히 뛰어갔다. 이걸로 대충 일단락되었다. 이제 일이 얼마나 잘 풀릴지는 아르펜 공주에게 달려있다.

' 이제 이 게임도 슬슬 막바지로 치닫는구나. '

왠지 모르게 힘이 쭉 빠진다. 아직 감상에 빠져들기엔 이른 시기지만, 그래도 참 고생을 많이 한 것 같다.

' 다음번 내가 아주 강해야겠어. 이건 뭐, 힘도 없고, 세력도 없고. '

나는 침대 위로 올라가 르세뜨가 덮고 있는 이불을 끌어올려 그녀의 목 언저리까지 올리고 잠을 청했다.

그녀의 숨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온다.

거의 이주가 넘는 시간동안 르세뜨와 방안에서 뒹굴면서 지냈다. 아르펜 공주와 백설 공주가 아니면 딱히 할 일도 없었고, 괜히 밖에 나가서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골치만 아팠으니까. 그렇게 시간만 죽이며 지내고 있을 때, 드디어 아르펜 공주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무려 3장이나 되는 긴 장문의 편지였다. 나는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그녀의 편지를 읽어나갔는데, 옆에서 그것을 보던 르세뜨가 가끔씩 고양이눈을 하며 내 옆구리를 꼬집은 것만 빼면 모두 만족할만했다.

맨 마지막에 찍혀있는 아르펜 공주의 입술 모양때문에, 또 한 차례 르세뜨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 방안은 열풍이 휘몰아쳤다.

뭐, 그건 그냥 넘어가고. 간단히 말해보면, 아르펜과 마르앙은 왕을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2만 명의 병사와 5백 명의 기사를 데리고 일주일 후에 출발하겠다고 적혀있었다. 그 외의 모든 내용은 다 자신이 나를 엄청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내용뿐이었다.

하루 뒤에 바로 백설 공주의 편지도 도착했다. 이번에도 르세뜨가 도끼눈을 하고 내 어깨너머로 편지를 훔쳐보았다.

" 어머어머, 이 애도 넘어가버렸네. 참, 별꼴이야. "

시작이 요상했다. 내 걱정으로 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거의 편지의 반이 내 걱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르세뜨의 심술을 풀어주기 위해서 내 한 몸을 희생했다.

이것도 대충 요약해보면, 아르펜 공주가 라인하르츠를 침공했다고 소문이 들려오면 곧바로 사병들이 출병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것.

" 마지막 이건 뭐야? '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그 때 했던 너의 말에 대한, 나의 대답을 들려..줄께' ? "

" 아니, 별건 아니고. "

대답을 듣지 않아도 대충 그녀가 뭐라고 말할지는 감이 왔다. 문제는 르세뜨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슬픈 눈을 했다는 거지만.

" 알고 있어. 갈리브, 너는 나한테만 만족할 수 없다는 거. 너는.. 나 혼자 감당하기에 힘든 남자야. 뭐, 물론 잠자리뿐만이 아니고. "

" 이해해줘서 고마워. "

나는 르세뜨를 안아서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 그래서 결국 백설 공주를 여왕으로 만들거란 말이지? "

" 응. 현재로썬 그게 최선이야. "

르세뜨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나를 왕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니깐. 어차피 내 목표는 백설 공주를 소환수로 결정만 하면 된다. 여왕으로 만들고, 나를 완전히 사랑하게 만든다면, 아마도 그녀는 수락할 것이다.

" 큰일났습니다. 갈리브님. 이걸.. 이걸 보십시오. "

부장이 방으로 찾아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준다. 내 수배서다.

밑에 적혀있는 현상금은 1만 골드. 눈이 돌아갈만한 금액이다. 신고를 해서 내가 맞다면 잡지못해도 2천 골드를 준다는 말까지 적혀있었다.

큰일이다. 분명히 라인하르츠를 들어갈 때, 내 얼굴을 본 사람들이 몇몇은 있었으니까. 적어도 정문을 검문하는 병사들은 내 얼굴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 이건 언제 온거야? "

"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밑의 부하놈이 저에게 건네줬는데, 아직 도시 전체에 붙인건 아니라고 합니다만. "

들키는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일단 수배서가 붙기 전에 이미 내 얼굴을 본 병사가 신고했을지도 몰랐다. 2천 골드라면, 적어도 그런 병사에게는 평생 만져보지 못할 돈이니까.

" 당장 도망치겠습니다. 배편은 있습니까? "

" 그게, 지금 우리쪽 배가 이미 다 출발한지라. "

부장이 난감한 얼굴로 얘기한다. 그렇다면 다시 사막을 통해 도망친다? 그것도 위험하다.

" 이상하게 생각했었던건데.. 혹시 이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

" 또 있어? "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 얼마 전에 '오르도(Ordo)' 후작 영지에서 3백 명의 기사단이 이곳으로 출발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저희는 그걸 크게 문제 삼지 않았었습니다만. "

킬백 왕국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때문에, 잠시 3백의 기사단을 보내서 이곳 라인하르츠의 상황을 알아보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수배서가 뜨기 전이었다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배서가 뜬 상태에서 기사단이 병사들도 대동하지 않고 라인하르츠로 온다?

' 분명히 내가 여기 있음을 들킨거야. '

그것도 하필이면 후작가라니. 그 말은 여왕이 직접 후작가에게 지시를 내렸다고도 볼 수 있었다. 즉, 자신의 수족을 이용하여 날 완벽히 제거해버리겠다는 말과 상통했다. 큰일인데.

" 그게 얼마전이지? "

" 이미 사막을 건너고 있는 중입니다. "

꼼짝도 못하게 생겼다. 기사 3백 명이라면,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이 거의 없었다. 수배서도 이미 떴고, 사방에서는 목줄을 조여오고.

' 정말 죽게 생겼는데. '

일단 최선을 다해서 살 길을 마련해야한다. 하지만, 수륙이 전부 막혀있다.

' 젠장!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

내 목에 칼이 서서히 겨누어지는 느낌이었다.

정말로, 위험한.

============================ 작품 후기 ============================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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