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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세뜨 서둘러! "
부장이 붙여준 건장한 사내들 사이에 숨어서 르세뜨와 같이 도시를 가로질렀다.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정문은 물론이고, 바다까지 모두 막혀있는 상태였다. 아니, 막혀있기 보다는 완벽히 통제가 되고 있었다.
이미 도시 곳곳에는 수배서가 붙어있었고, 건장한 사내들 사이에서 숨어있지 않았었다면 나는 진작에 시민들의 신고를 받았을 것이다.
" 젠장! 정말로.. 안되는건가. "
도저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무대포로 정문을 뚫고 도망갈까- 하고도 생각했는데, 이미 기사단이 사막을 건너오는 중이라면 도망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물론 사막의 가장자리에 찰싹 붙어서 도망가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정문부터 뚫기가 힘들어 보였다. 그 사이에 저멀리 사구쪽에서 수많은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사단이 도착했다. 그 순간 정말로 목이 콱 막히며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 정말로 끝난건가. '
저기 사구부터 라인하르츠까지는 대략 10분. 이젠 도망갈 희망도 완전히 사라졌다. 건장한 사내들은 흉흉한 기세를 뿌리며 서둘러 도시 한쪽 구석으로 몸을 옮겼다. 일단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최대한 도망치다가 기회를 잡아야했다.
" 르세뜨. 넌 부장에게 돌아가. "
" 싫어! 절대 안갈거야. "
" 자네, 부탁 하나만 하지. 르세뜨를.. 부장에게 데려가 줘. 자네도. 둘이서 같이 데리고 가면 반항 못하겠지. "
" 옙. "
건장한 사내 둘이 르세뜨의 양 허리를 잡고 훌쩍 들었다. 르세뜨는 싫다고 발악하며 나에게 손을 뻗는다. 미안하다, 르세뜨. 일단 저들의 목적은 나니까. 괜히 너까지 말려들 필요는 없잖아.
" 싫어!!! 갈리브!! 갈리브으으으으으으!!! "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면, 르세뜨를 데리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이젠 정말 목숨을 걸고 탈출하던가, 아니면 잡히던가 둘 중 하나뿐이었다. 이제 약 열 명정도 남은 덩치들이 눈에 힘을 바짝 준다.
' 그래도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명령을 수행한다니. 대단하네. '
정예 사병이라고 부장에게 들었는데,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이제 목숨을 다할 때까지 나를 지켜줄 것이다. 그래도 이들이라도 있어서 그나마 희망은 조금 있달까.
' 지금 현재 가장 가능성이 있는 방법은, 기사단이 도시 전체를 수색할 때, 약한 부분을 순식간에 뚫고 정문을 돌파한 뒤에 도망가는 거야. '
인간 방패가 되어줄 강한 사병들도 있다. 우리들은 숨어서 동태를 살폈는데, 기사단이 도시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들은 길게 나란히 서서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며 망을 좁혀왔는데, 차라리 그렇게 해주는 편이 나에겐 좋았다. 거의 반 이상을 좁히면서 서서히 다가온다.
여기서 만약에 건물에 숨는다면, 오히려 더 빼도박도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이럴 땐 숨는 것보단 강행돌파가 훨씬 살아남을 가능성이 많았다. 물론 강행돌파 자체도 생존률이 현저히 낮았지만.
' 지금이다! '
잠시 몇몇이 자리를 뜨고, 골목 깊숙히 들어가 확인할때, 우리들은 밖으로 순식간에 뛰어나와 기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두 명의 기사가 순식간에 당했다.
나는 기사들이 타고 있던 말에 올라탔다. 혹시 몰라서 사내가 한 명 말을 타고 내 옆을 지키며 달렸다. 이대로 정문을 향해 달린다! 기사들이 순식간에 우리 뒤를 쫓아왔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 아, 정문이.. '
이미 정문은 몇몇 기사들이 꽉 막고 있었다. 칼을 흉흉하게 빼들고 우리들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 순간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 때, 내 옆에 달리던 사내가 힘차게 달리더니 육탄으로 기사들에게 부딪혔다. 말과 말끼리 부딪히며 엄청난 소리가 터져나왔다.
정문을 막고 있던 기사들 사이로 뚫고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그들도 너무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재빨리 수습하지 못했다.
" 이럇!! "
정신을 차린 몇몇 기사가 칼을 빼들고 나를 향해 휘둘렀다. 칼은 내 오른팔을 베고 지나갔다.
몸을 틀었다고 틀었는데도 팔에는 꽤 심한 상처가 나서 피가 줄줄 흘렀다. 그래도 다행히 정문을 통과했다. 하지만, 수많은 기사들이 나를 뒤쫓아왔다. 높은 사구때문에 말이 달릴 수가 없어서 내려야했지만, 내리는 순간 잡힐게 뻔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구 옆면을 타고 달릴다가 말의 발이 모래에 푹 잠기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내 몸이 붕- 하고 날아서 저앞 모래 속으로 쳐박혔다.
입안 가득 모래가 들어와 퉤퉤- 하고 뱉어내고 얼굴을 돌렸는데, 벌써 기사들은 나를 중심으로 원형을 유지한채로 에워싸고 있었다.
" 반역자, '갈리비오르 리츠웰' 왕자. 당신을 여왕폐하의 명으로 처단하겠소. "
내가 아는 자였다. 기사 단장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조금의 인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말에서 천천히 내쪽으로 다가왔다. 이젠 정말로 아무 방법도 없다. 죽는 것 뿐이다.
" 하하하하하. 어머니께 한마디만 전해. "
" 말하시오. 전해드리겠소. "
" 아주 현.명.하셨다고. 다음번에 만나면, 인정을 바라지 말라고 전해드려라. "
기사 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칼을 스릉- 하고 빼들었다.
" 다른 말은 없소? "
어차피 죽으면 다시 리셋된다. 다만, 이제껏 백설 공주와 함께 했던 시간이 아까웠다. 쳇, 거의 다 넘어왔었는데. 눈을 천천히 감고 목을 뺐다.
" 잘가시오. "
난 죽는구나.
" 뭐지? "
" 저자들은 누구야? "
사구에서 수많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와- 하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떠 사구 위를 쳐다보았다. 사병들. '샬렛' 백작 영지의 사병들!
' 백설 공주가 일을 냈군. '
아마도 수배서가 나온 일과, 후작 기사단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때문에 그녀도 사병을 보낸 모양이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진건가. 하지만, 기사 단장은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칼을 번쩍 들어올려 나를 향해 내리쳤다. 간신히 모래 바닥을 굴러서 그의 칼을 피해냈다.
" 이놈! "
" 미안하지만, 살 수 있는 구멍이 생겨서 말이야. "
'오르도' 기사단들은 쏟아져내려오는 사병들과 기사단들을 보면서 당황했는지 허둥지둥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곧 기사단장이 크게 소리쳤다.
" 다들 정신차려!! 모두 태세를 갖춰라! 전투 준비! "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기사단들이 모두 은빛을 내뿜는 칼을 뽑아들었다. 거의 삼백에 가까운 기사단이 길게 일렬로 섰다. 나는 그 사이에 도망치려고 했지만, 기사 두명이 나를 붙잡고 기사 단장에게 데리고 갔다. 다행히 당장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그는 밧줄로 나를 묶었다.
" 다가온다! 모두 긴장해라! 태세를 갖춰라! "
와-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코앞에 '샬렛' 기사단들이 도착했다. 그들도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뽑아들고 그들에게 달려갔다.
" 공격!! "
- 쿵 쿵 쿵
- 챙챙챙
말과 말이 부딪히는 소리, 칼과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퍼졌다. 처음 싸움은 거의 대등했지만, 사병들이 몰려오고 나서는 '오르도' 기사단들의 열세가 확실히 느껴졌다.
약 삼백 명이었던 '오르도' 기사단들은 순식간에 이백 이하로 줄어들었고, 백오십 명 가까이만 살아남은 채 항전하고 있었다. 기사단장이 이를 부드득 갈며 나를 끌고 나와 내 목에 칼을 들이댔다.
" 멈춰라! 갈리브 왕자의 목이 날아가기 싫으면. "
그의 큰 소리에 전투가 천천히 멈추더니 곧 진영이 갈리며 서로 떨어져나갔다. 싸움은 10분 정도 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벌써 삼백 명의 기사들 중에서 남은 기사는 약 백 명정도 뿐이었다. 기사단장은 내 머리칼을 잡고 들어올리며, 내 목에 칼을 들이댔다.
" 누가 우두머리냐! 감히 여왕폐하의 명을 거역하다니! "
그 때,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 천을 칭칭 감고있는 여인이었다. 천을 풀자 예쁜 금발 머리카락이 허공에 휘날렸다.
' 백설 공주! '
" 내가 한 일이다. 몰살 당하기 싫다면, 그를 우리에게 보내. "
" 백설님이시군요. 그런데, 이것이 여왕폐하의 명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당신은 지금 반역을 행하고 있습니다! "
" 닥쳐라! 감히 나에게 그딴 망발을 하다니. 진정한 이 나라의 주인은 그녀가 아니라, 바로 나다! "
기사단장이 화가 난 표정으로 칼을 들어 내 목을 살짝 베었다. 뜨끔한 느낌과 함께 무언가 목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백설 공주가 헉- 하고 놀라며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 무슨 짓이냐! 감히! 그를 당장 풀어줘! "
" 그럴 순 없습니다. 여왕폐하께서 명한 일입니다! 반역자 갈리비오르 왕자를 처단하는 것! "
백설 공주는 입을 악다물고 기사 단장을 노려보았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 좋아. 너희들을 살려보내줄테니, 그를 넘겨. 더 이상의 협상은 없어. 이게 마지막 경고야. "
공주가 목소리를 깔고 천천히 말했다. 음산한 목소리때문인지 기사들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기사단장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들에게 가망이 없었다.
기사 단장은 이를 부드득- 갈면서 내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더니 공주를 향해 던졌다. 덕분에 모래가 한움큼이나 입에 들어가버렸지만.
" 갈리브! "
백설 공주가 나에게 뛰어와 내 얼굴을 매만지며 밧줄을 풀었다. 공주는 기사 단장을 노려보면서 험악하게 입을 열었다.
" 당장 사라져. 이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자비니까. "
" 후회하실 것이오, 백설. 이제 당신의 반역행위를 여왕폐하께 보고할 것이오. "
기사 단장은 무리를 이끌고 사막을 향해 뛰어갔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다리 힘이 쫙 풀렸다. 그래도 타이밍좋게 와서 다행이야, 백설 공주.
" 죽는 줄 알았어. "
" 나도 혹시나 해서 뒤따라 와본거야. 기사단들이 '라인하르츠'로 달려간다는 정보가 있었거든. 하여튼,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
그녀는 나를 살며시 안았다. 향긋한 냄새. 아마 백설 공주의 품에 안겨본 것은 이번이 처음일거다.
나는 몇몇 사내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났다. 내가 살아난건 좋지만, 일이 틀어져버렸군. 이제 양동 작전을 쓰는 것은 물건너갔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왕성을 쳐야했는데, 이젠 이미 백작가가 적이란 것을 들켜버렸으니.
" 어쩌겠어. 난 그래도 널 잃어버리지 않은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
나는 다시 그녀와 함께 라인하르츠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르세뜨가 펑펑 울면서 내 품에 안겼다. 이젠 라인하르츠를 아예 우리가 접수해야할 판이었다. 원래 존재하던 병사들을 쫓아내고 도시를 장악했다.
" 부장. 아르펜 공주와의 연락은? "
" 조만간 라인하르츠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최대한 빨리 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실 것 입니다. "
이젠 정면승부 뿐이었다. 킬백 왕국의 병사들을 이용하여, 리츠웰 왕국과 싸워야했다.
물론 백중지세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불리한 쪽은 킬백 왕국이다. 왜냐하면 물자 보급이나 병사 보충같은 것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에. 이젠 '샬렛' 백작도 어중간하게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서 우리를 도와주게 될 것이다.
" 병력은 이게 전부야? "
" 아니. 백작 영지에 반은 더 있어. 원래는 이게 다 였지만, 이미 백작 영지는 적이라고 인식되었을테니, 할아버지께서 날 도와주지 않으실 수 없을테니까. "
여왕. 이젠 정말 제대로 한판 떠 보자고.
그녀에게서 몇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맞이하고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이젠 제대로 싸워볼 생각이었다. 이젠 돌이킬 수도 없었다. 마지막 모든 것을 쏟아부어 왕궁을 탈환하는 것뿐.
' 기대하시죠, 여왕폐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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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편까지도 안 갈 것 같네요. 대략 40편 안에 백설 공주 편은 끝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