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150)

35

" 아흣, 아응.. 핫.. 하응 "

내 몸 위에서 아르펜이 자신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몸을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일명 승마자세. 지금 나는 두 손과 두 다리가 침대에 꽉 묶여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몸을 받아들여야했다.

" 좋지 않아요, 갈리브? 우리.. 사랑을 속삭였잖아요. 그 나무 아래에서.. 하읏.. 기억 나죠? 하앙.. "

" 후우, 꼭... 이렇게까지.. 후우... 가야겠어? "

그녀가 갑자기 엉덩이를 빠르게 위아래로 흔들더니, 철썩철썩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곧 허리에서 올라오는 강한 쾌감에 그녀의 몸속으로 내 정을 뿌렸다.

최악이다. 이대로 그녀의 씨종자 노릇을 해야한단 말인가? 그녀는 그것도 상관없는 얼굴이다.

단지 내가 그녀 옆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 당신의 아이를 임신하면, 생각이 바뀌겠죠? 더불어서 백설, 그 년까지 죽여버리면 모두 끝이니까. "

" 더 이상.. 날 시험에 들게 하지마. 임신을 하든, 백설 공주를 죽이든 이제 너와는 끝이야. "

아르펜이 사나운 표정을 한채 순식간에 두 손으로 내 목을 졸랐다. 눈이 완전히 맛이 갔다.

" 날 거부하지마! 날 이렇게 만든건 당신이잖아! "

젠장할, 미치겠다.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목을 잡고 있던 두 손을 놓았다. 내가 쿨럭거리며 기침을 하자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내 가슴 위로 쓰러졌다.

" 흑흑, 왜.. 왜 이러는 거에요? 난 당신만 원하고 있는데! "

" 거짓말.. 하지마. 나만 원한다고? 하. 넌 지금이 아쉽지? 공주라는 신분 말이야. "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말면서 나를 올려다본다.

" 니가 왜 내가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결국 넌 공주고, 왕자는 마르앙이야! "

- 짝!

아르펜이 내 뺨을 강하게 갈겼다. 그것도 모자라서 다시 한번 반대편 뺨을 또 때렸다.

- 짝!

" 하아, 하아. "

그녀의 두 눈이 붉다. 이를 부드득 갈면서 나를 노려보는 꼴이 흡사 사람을 죽인 살인마의 표정같다.

" 하! 그래. 맞아. 내 남편이라는 작자가, 왕도 아니고, 고작 왕자? 그것도 왕자라고 부를 수도 없지. 당신을 사랑해. 그건 어쩔 수가 없어. 하지만 난 권력도 포기 못해. "

아르펜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간다. 결국 그녀의 본심이 드러나버린다.

" 그러면 방법은 딱 하나잖아? 내가 권력을 가지는거. 이 리츠웰 왕국을.. 내가 먹어버리면 되는거 아니야? 당신은 그냥.. 내 옆에만 있으면 돼. "

" 결국, 그게 너의 목적이었지? 더러운 년! "

" 날 더럽다고 하지마! 이것도 얼마나 내가 고민하고 생각한건지 알아? "

그녀가 이렇게나 권력욕이 대단한지 상상도 못했다. 자식을 버리는 여왕이 있다고 해서 내 주변에 또 이런 여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것이 하필이면 아르펜이라니. 그녀가 정보 기관의 명예 수장이랄때부터 알아봤어야했다. 여자가 그런 권력집단의 수장이 된다는 것이 힘들었을텐데. 하물며 그것이 공주라는 신분이라면 더더욱.

" 내 잘못이군. "

" 그래! 당신 잘못이야. 하지만, 당신에게 넘어가버린 나의 잘못도 있지. 그래서, 내가 이런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거야! 알아?! "

아르펜은 씩씩- 거리며 나를 노려보다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잠시 후에 눈을 뜬 그녀는 다시 보통 때의 아르펜으로 돌아갔다.

" 오늘은 당신이랑 있고 싶었는데, 잠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네요. 줄은 조금 있다가 풀어줄테니까 기다려요. "

그녀는 옷을 입고 방을 나갔다. 곧 방안은 묘한 냄새와 함께 고요해졌다.

잠시 후에 시녀 두 명이 들어와 내 몸을 닦고 묶여있던 줄을 풀었다. 제법 오래 묶여있던 바람에 손목과 발목에 꽤 붉어져있었다.

시녀들은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탁자에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곧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문을 잠근 모양이다.

" 하아. 백설은 잘하고 있겠지? "

영리한 여자니까, 잘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보다 여기서 마냥 기다릴 순 없으니까, 어떻게든 탈출을 해야겠는데. 침대 옆에 보이는 창밖으로 나가니 바람이 훙- 하고 불어온다.

가파른 돌 절벽이 보인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파도가 세차게 흰 구슬을 만들며 부딪히고 있다. 듬성듬성 바위가 바닷물 위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 바다 위로 떨어졌다가 바위에라도 부딪혀버린다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 그래도, 여기 밖에 없으니까. '

나는 곧바로 침대보를 뜯어내서 길게 꼬았다. 면 한장으로는 굉장히 약하지만, 이것을 여러겹으로 뭉치면 내 몸무게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문제는 밧줄 대용으로 쓸만한 천이나 면이 너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여러 겹으로 겹쳐두었던 천을 조금 더 얇게 해야했다.

위험성이 커졌지만, 그렇다고 절벽 중간쯤에서 떨어질 순 없으니까. 깜깜한 밤이 되서야 드디어 밧줄 비스무리한 것을 완성시켰다. 곧바로 식어버린 음식을 먹고 배를 채웠다.

' 가자. '

테라스의 기둥에 천을 단단히 묶고 절벽 밑으로 줄을 던졌다. 줄 끝에서 바다 위로 떨어진다고 해도, 바위만 부딪히지 않는다면 큰 충격은 없을 것 같았다.

후-. 다음 번에는 반드시 먼치킨같은 캐릭터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줄을 잡고 절벽 위로 몸을 던졌다. 천천히 절벽을 콩콩- 딛으면서 천천히 줄을 잡고 끝까지 내려왔다.

바람이 굉장히 세차게 내 몸을 강타했다. 깜깜한 밤바다라서 상당히 무서웠지만, 바위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속으로 숫자를 셌다.

' 하나, 둘.. 셋! '

내 몸이 허공을 날았다. 순식간에 바다 위로 풍덩- 하고 빠졌다. 성공이었다.

" 푸하! 하아. "

다행히 수영은 수준급이라서 물에 빠져 죽지는 않았지만, 파도가 너무 거세서 빠져나오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마라톤을 하고 나온 것처럼 힘이 빠진 몸으로 간신히 바다에서 나와 백사장에 드러누웠다.

" 하아, 하아, 하아. "

다시는 라인하르츠로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천천히 일어나 내 옆에 보이는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바다를 통해 우회해서 돌아온 덕분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도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겐 지금 식량도 없고, 물도 없었다.

적어도 사막만 빠져나올 수 있다면 살아날 방법이 보일 것 같은데. 일단은 바다를 옆에 끼고 가는 편이 옳겠다 싶어서 웃옷을 벗고 물기를 짜내며 걷기 시작했다.

' 고생길이 보이는구만. '

대략 이틀을 터덜터덜 걷기만 했다. 그래도 탈출했던 날에 저녁을 확실히 든든하게 먹고와서 그런지 아직까진 버틸만했다. 문제는 물이 없어서 내 오줌까지 받아먹어야했지만. 정말로 게임하면서 오줌까지 받아먹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 그래, 어디 끝까지 가보자. '

오줌 덕분에 그래도 탈수현상으로 쓰러지진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더 걷자 사막이 끝나고, 나무가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있는 잡초를 뽑아서 입에 넣고 씹었다. 진액이라도 받아먹어야 수분을 보충할 수 있을테니.

" 젠장하아아아알!!! "

자신의 세력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할 줄이야.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남의 세력을 빌려와 싸우려고 했지만, 그것도 끝끝내 뒤통수를 맞아버렸다. 왠만하면 쌍욕을 퍼부으면서 게임을 종료시키고 다시 했겠지만, 이제껏 쏟아부은 시간이 너무나 아쉽다. 끝이 보일듯말듯한데, 이렇게 굴러야하다니.

' 다음은 무조건 먼치킨이야! 걍 짜증나면 다 쓸어버릴거야아아아!!! '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티면서 하염없이 걷는다. 잠오면 아무대나 털썩 쓰러져 자버렸고, 목이 마르면 풀을 따서 진액을 빨아먹었다. 그렇게 사막을 벗어난지 약 4일만에 작은 항구마을이 보였다.

살았다. 살았다고! 게임을 하면서 이렇게 감동적이었을 때는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복권에 걸려도 이보다 기쁠까. 아니, 그건 비슷비슷한가. 어쨌든 항구 마을을 향해 힘차게 뛰었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10채도 안되는 다 쓰러져가는 판자촌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내 상황보다는 나을테니까.

- 쿵쿵쿵

" 이보세요. 계십니까? "

콜록- 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볼이 홀쭉한 여인네였다. 얼마나 못 먹었는지 피부가 푸석푸석해 보인다.

" 혹시, 물 한잔만 얻어마실 수 있을까요? "

그녀는 멍-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컵을 하나 가지고 나왔다. 드디어, 물을 마실 수 있다! 나는 그녀가 건네준 컵을 받아서 단숨에 들이마셨다. 정말로 이제껏 마셨던 모든 물 중에서 가장 달콤하고, 맛있는 물이었다. 원효대사가 마신 해골물보다 달콤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무언가를 더 요구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몰골이나 집안 상태를 보니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그 집에서 떨어져나왔다. 다른 집을 봐도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래도 기대를 가지고 들어왔었는데.

' 물 한 잔이라도 마신 게 어디야. '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젠장, 국토대장정? 이것보다 심하겠냐. 군대 행군? 차라리 거기가 천국이었다. 다행히 첫 번째 마을이 나타난 이후로 드문드문 항구 마을이 존재했다. 덕분에 배를 곯거나, 물을 마시지 못하는 사태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며칠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거지들이 나를 본다면 형님! 하고 인사하겠지?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걷다가, 저 멀리서 무언가가 보였다. 뷔넬.. 뷔넬이다. 뷔넬이야! 드디어 도착했다고.

" 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해냈어! "

나는 순식간에 '뷔넬'까지 뛰어가 정문에 도착했다. 병사들은 상거지가 되어있는 내 모습을 보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나에게서 멀어졌다.

신분 검사를 하지도 않는건가? 거지라도 장점은 있네. 다행히 뇌물을 먹일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품속에 소중히 간직해오던 두 개의 반지 중 하나를 보석상에 팔아넘겼다.

" 30골드. "

" 에? 적어도 100골드는 넘을텐데? "

" 후-, 그정도로도 감사하다고 생각해, 거지나으리. "

울며겨자먹기로 싼 값에 반지를 하나 팔아먹고, 그 돈으로 몸을 씻고 옷을 사입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거지에서 순식간에 귀족으로 탈바꿈했다. 나는 마지막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고민했다.

' 이걸 팔아, 말아? '

아르펜이 주었던 '킬백 왕국' 귀족의 증표. 못해도 몇 백 골드는 나갈 아주 귀중한 물건이었다. 어차피 팔지 않으면 말도 살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다시 반지를 팔았던 보석상으로 들어갔다.

돼지같던 주인은 아까 들어왔을 때와는 행동이 반대가 되었다.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입에 금을 칠해놨는지 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만 한다.

" 아이고, 이런 귀한걸. "

" 얼마까지 하지? "

" 음, 보자. 딱 300골드만 주십쇼. 제가 많이 얹어드리는 겁니다. "

얹기는 개뿔. 못해도 500골드는 훌쩍 넘을텐데. 어쨌든 돈이 궁했으므로 흥정없이 귀족 증표 반지를 그에게 넘기고 보석상을 나왔다. 곧바로 말 상인에게 가서 200골드짜리 말을 하나 구입했다.

300골드 짜리라고 입에 침을 바르면서 거짓말 하는 상인의 면상을 후려치고 싶었지만, 나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얘기했다. 100골드짜리 말이 아니길 빌면서.

" 이럇! "

나는 식품 가게에서 잔뜩 산 음식과 물통들을 천에 둘둘 싸서 말을 타고 달렸다. 여기서 '샬렛' 백작 영지까지는 못해도 십 일은 걸린다. 산맥을 넘는다해도 일주일은 걸렸다. 그 전에 백설 공주가 라인하르츠로 가지 않기를 빌면서 말의 배를 더욱 강하게 발로 찼다.

" 이랴앗! "

'뷔넬'이 서서히 멀어진다.

============================ 작품 후기 ============================

최대한 현실을 생각하면서 글을 적었는데, 반전이 너무 많았나보네요.. 아하핫. 그래도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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