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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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보인다. "

나의 시야에 '샬렛' 백작 영지의 모습이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정말 힘들었어. 이런 개고생을 해야하다니 말이야. 마치 '베어 그릴스'를 빙의한 한 달이었다. 그 사람도 이렇게 최악이지는 않았겠지. 물론 그렇다고 코끼리 똥같은 것에서 수분을 마시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다.

' 그럴 바에야 진짜 죽는게 나을지도. '

어쨌든, '샬렛' 백작 영지까지 무사히(?)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영지도 이젠 전운이 감돌고 있어서, 성 바깥이 꽤 많은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 멈추시오. 외지인은 영지 안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소. "

" 난, 갈리비오르 왕자다. 백설 공주가 직접 증명해줄거야. "

보초병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갈리브 왕자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들고 있는 창의 뭉퉁한 기둥쪽으로 나를 툭툭 치면서 소리쳤다.

" 이런 새끼가 또 있네. 잘 걸렸다. 나도 진급이나 해보자, 이 새꺄. "

" 뭐하는 짓이야?! 내가 갈리브 왕자라고! "

" 그럼 증명을 해 이 새꺄! "

갑자기 보초병이 창대를 휘두르며 내 옆구리와 어깨를 마구 패기 시작했다. 이, 씨발! 게임을 시작하면서 정말 '처음'으로 쌍욕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 이봐! 무슨 짓이야?! "

" 아, 대장님. 아니 이 자가 자신이 갈리브 왕자라고 말하는게 아닙니까? "

" 어? 백설 공주님과 같이 다니시던 분 아니십니까? "

머리 끝까지 화가 부글부글 차올랐다. 나를 바라보며 사색이 된 병사를 향해 바로 발을 날렸다.

내 다리를 잡고 엉엉 울면서 빌때까지 죽도록 팬 뒤에,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영지 안으로 들어갔다. 대장은 내가 왔다는 소식을 전해주겠다면서 성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내가 성의 입구쯤에 도착했을때, 백설 공주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뛰어온다. 그래도, 무언가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 갈리브으으!! "

나는 그녀를 향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백설 공주는 내 품으로 뛰어와 가슴에 얼굴을 박고 엉엉 울면서 가슴팍을 적셨다.

" 이거 원, 얼음 공주가 눈물을 다 흘릴 때가 있었네? "

" 흑흑. 도대체 어떻게 나온거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어디 다친 곳은 없어? "

" 애들 다 본다. 들어가자. "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백설 공주가 내 품에서 황급히 떨어져 손수건으로 눈을 콕콕 찍었다. 나는 그녀의 반대편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성안으로 들어갔다. 얼굴이 폭삭 늙은 백작이 나를 마중나와 있다.

" 이야기 다 들었소, 갈리브 왕자. "

" 아, 속인 것은 죄송합니다. "

" 아니아니, 이해하오. 그나저나 여기까지 오느라고 힘들었을텐데, 뭐라도 먹어야하지 않겠소? "

나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음식다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건가. 백작은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백설 공주는 내 손을 잡고 그녀의 옆방으로 안내했다. 내가 지낼 곳이란다.

" 여기서 생활하면 돼. "

분위기도 딱 좋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문을 닫고 그녀를 문에 기대서게 한 뒤에 공주의 두 어깨를 손으로 잡았다. 그녀 또한 애틋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갈리브. "

나는 곧바로 그녀의 촉촉한 입술에 입을 대었다. 혀를 집어넣자 그녀의 저항이 느껴졌지만, 나는 어깨에 있던 손을 천천히 내리며 허리를 쓸었다. 그녀의 입이 아주 천천히 열리며 내 혀와 그녀의 혀가 섞였다.

" 하아. "

그녀에게서 떨어지자, 백설 공주는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저번의 얕은 입맞춤을 제외하면, 아마 처음으로 제대로 된 키스를 해본 셈일테니 숨이 차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 뭔가.. 꿈같아. "

" 꿈? "

백설 공주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내가 너와 이렇게 될거라곤 상상도 못했었어, 예전에는. 너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

" 그 때는 정말 미안했어.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고. "

" 아니아니, 그걸 원망하는게 아니야. 그냥, 그..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거구나, 하고 생각이 들어. "

그녀가 천천히 나를 올려다본다. 오똑 서있는 예쁜 코가 정말로 매력적이었다.

" 그리고, 그 때의 대답.. 아직 못했어. "

" 대답을 들려줄래? "

백설 공주가 나를 살며시 안으며 머리를 기댄다. 그녀의 따뜻한 기운이 내 몸으로 전달되었다.

" 나도, 사랑해. 갈리브. "

나는 식사를 깔끔하게 마치고, 다시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아서 지금까지 흘러온 상황을 그녀의 입으로 직접 전해 들었다.

" 상황이 생각보다 우리에게 좋게 흘러가고 있어. 리츠웰 왕국은 킬백 왕국을 견제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더라고. "

" 아니, 그렇게만 생각할 순 없어. "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법이므로, 어쩌면 여왕은 최소한의 병력으로 킬백 왕국을 수비하면서, 샬렛 영지를 집중 공격할지도 모른다. 만약에 자신이 여왕이었다면, 그 방법이 아마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할테니까.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혹시 빠른 시일내에 샬렛 영지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 그렇다고 킬백 왕국을 먼저 칠 수도 없지. 왜냐하면, 우리때문에 뒤가 위험하거든. "

" 그러면, 결국엔 이 모든 상황은 킬백 왕국이 쥐고 있는거네? "

" 그렇지. 그들이 욕심만 부리지 않았어도, 벌써 이긴건 우리쪽일거야. "

백설 공주가 아쉬운 한숨을 내쉰다. 내 말을 듣고 그녀는 아마도 좋다고 생각했던 상황이 생각보다 꼬여있다고 느낄 것이다. 일단 지금 현재로써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최대한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영지의 치안과 민심을 잡아놔야 했다.

" 일단, 킬백 왕국와 리츠웰 왕국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고 있어야지. 둘이 서로 뜯고 싸우면서 피해를 입을 수록 우리들에게 좋은 일이니까. "

하지만, 킬백 왕국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 뭐?! 지금 장난해? "

" 똑똑히 보았습니다. "

나는 한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로 생각하기 싫었던 최악의 패가 나와버렸다. 바로, 킬백 왕국의 병사들이 '샬렛' 영지로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백설 공주도 그 소식을 거의 동시에 전해 들었는지, 내 방을 박차고 들어왔다.

" 이게 무슨 소리야, 지금? "

" 나도 환장하겠다, 정말. "

" 그 년, 미친거 아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병사들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움직여? "

미치지 않았다면, 이미 나를 감금하지도 않았을 껄. 아마도 아르펜 공주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킬백 왕국의 병사 전체가 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아르펜이 독자적으로 병사를 꾸려서 이곳으로 진격하는 모양이었다.

" 그래서 수는 얼마정도랬지? "

"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어림잡아 1만은 되어보였습니다. 기사단도 100명은 넘었구요. "

현재 '샬렛' 백작가의 사병 수는 싹 쓸어모아도 3천. 그나마 기사단이 300명정도 되었지만, 1만은 정말 무시무시한 수였다. 물론 수성하는 쪽이라서 적은 수로도 1만을 막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그들이 작정하고 포위한 다음에 시간만 끈다면?

' 미친! 정말 최악이잖아. 차라리 밖에서 싸우는 편이 나을 정도야. '

생각이 있는 장군이라면, 영지 밖에서 물을 끊고, 한달 정도 기다릴지도 몰랐다. 물론 1만이라는 수를 먹여살릴려면 그만큼 많은 식량이 필요했지만, 그것을 대비하지 않았을리가 없을테니 장기전으로 가면 무조건 우리쪽이 불리했다.

" 차라리, 협상을 하자. "

" 협상? 킬백 왕국과? 그녀가 말을 듣겠어? "

" 아니면, 정말로 전부 죽어. 차라리 말로 그녀를 설득시키는게 훨씬 확률이 높을거야. "

백설 공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혹시 리츠웰 왕국이 움직이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망하길 바랐는지 그들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 젠장할, 더러운 족속들. "

" 어쩔거야? "

" 어쩌긴.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하는데. 말이라도 건네봐야지. "

" 너는 못 보네. "

백설 공주가 단호한 목소리로 딱 잘라말했다. 나는 그녀의 옆자리로 옮겨 그녀의 반대편 어깨에 손을 올리며 사근사근하게 입을 열었다.

" 알잖아.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거. 아르펜이 내가 없으면 설득 되겠어? "

" 그래도 안돼. 너무 위험해. "

" 다 죽을 셈이야? 걱정마. 다 방법이 있으니까. "

" ... 정말? "

방법은 개뿔. 사실 어떻게 아르펜을 설득시킬지 정말 걱정되었다. 정말 그녀가 빡돌아서 내 말이든 뭐든 상관안하고 영지를 포위시켜버린다면, 우린 이제 끝이었다. 이렇게 끝나나, 저렇게 끝나나 둘다 끝나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전부 써보는게 나을 것 같다.

" 그럼. 그러니까, 내가 갔다올께. 걱정하지 말고 영지를 잘 지키고 있어. 백성들도 동요 안하도록 잘 보살피고. 그리고 최대한 물도 아껴놓고. "

" 알.. 았어. 절대.. 절대로 무리하지마. 안되겠다 싶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와. "

너가 말안해도 그럴 셈이었어. 아르펜에게 잡히면 이젠 두번 다시 탈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백설 공주는 죽을 것이고, 이제껏 나의 수고도 모두 물거품이 될테니까. 그렇다고 여왕이나 이웃 나라 왕자인 마르앙을 소환수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 좋아. 그러면 지금 바로 갈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

" 응, 꼭 무사히 돌아와야해. "

나는 그녀에게 진한 입맞춤을 하고 방을 나섰다. 아르펜 공주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킬백 왕국의 병사들은 내 옆에 병사가 들고온 하얀 깃발을 보고 진격을 멈춘다. 잠시 후에 킬백 왕국쪽에서도 하얀 깃발을 매단 말 두 마리가 뛰어나왔다. 눈에 익은 백마. 그녀다.

" 오랜만이에요, 갈리브. 몸은 괜찮아요? "

" 덕분에, 오줌까지 받아먹으면서 여기까지 왔지. "

" 역..시, 대단하네요. "

아르펜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마중나오신거죠? 혹시 마음이 바뀐거에요? "

" 그래. 리츠웰 왕국을 넘겨 주겠어. 그러니까, 지금 영지로 진격하는건 멈춰줘. "

" 호. 정말인가요? "

내 말에 놀랐는지, 옆에 있던 병사가 나를 확 돌아본다. 아르펜도 내 말이 뜻밖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입에 미소를 지었다.

" 하지만, 하나 더 있다는 걸 알잖아요? "

" 만약에 정말로 니가 리츠웰 왕국을, 수도를 함락시킨다면! 나도 한번 생각을 바꿔볼 용의가 있어. "

" 흠. "

아르펜 공주가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하늘로 치켜올렸다. 제발.

" 내가 당신의 의도를 모르는건 아니지만. 좋아요. 한번 속는 셈치고 마지막으로 믿어볼게요. "

" 고맙다. "

" 하지만 이건 명심해요. "

그녀의 얼굴이 굳는다.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입을 여는데 정말로 등줄기가 오싹했다.

" 만약에, 정말로 또 날 속인다면 그 땐 저도 가만히 있을 생각 없어요.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죠? "

" 물론. "

날 죽이지는 않겠지만, 팔다리 하나는 잘라버릴 수 있는 여인이다.

" 좋아요. 그럼 전 이만 돌아가보죠. 나중에 만날땐, 정말로 좋은 얼굴로 봐요, 내 사랑. "

"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아르펜. "

아르펜은 손으로 입을 쪽- 맞추고, 나에게 후- 하고 날려보낸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 다시 자신의 병사들 사이로 돌아갔다. 순식간의 병사들의 행군 방향이 바뀌더니 천천히 나의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 다행입니다, 갈리브 왕자님. "

" 그래. 근데 이게 다행인지.. "

일단 당장 눈앞에 있는 불은 껐지만, 나중에 있을 재앙이 무섭다. 정말로 리츠웰 왕국이 힘도 못써보고 무너지면 이렇게 돌려보낸 보람이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쉽게 말머리를 돌린 것도 아마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나는 부디 리츠웰 왕국이 최대한으로 버텨주었으면 하고 기도했다.

" 하하. 웃긴 상황이 되버렸네. 리츠웰 왕국을 응원해야한다니 말이야. "

" 그러게 말입니다. "

나는 다시 말을 돌려 천천히 영지로 되돌아갔다.

부디, 여왕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면서.

============================ 작품 후기 ============================

오늘은 좀 늦어버렸네요. 에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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