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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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백설 공주- 마지막 편.

" 쪽지가 날아왔습니다. "

백설 공주는 병사에게서 쪽지를 건네받고 천천히 펼쳤다. 쪽지에 적힌 글을 읽으며 그녀가 침을 삼킨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적혀있을까.

" 이것 봐, 갈리브. "

그녀는 내게 쪽지를 건네주었다. 이번으로 총 3번째. 5일동안 3개의 쪽지가 날아왔는데, 첫 번째 쪽지에는 동원된 기사단의 수가 0이었다. 두 번째 쪽지는 동원된 기사단의 수가 200명이었고, 이번에 날아온 쪽지는 상당히 큰 수였다.

' 500이라. '

이젠 출발해야할 시간이군. 나는 백설 공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병사에게 소리쳤다.

" 어서 출병 준비를 해라! 오늘 당장 출발하겠다. "

" 옙! "

병사는 가슴에 손을 착- 얹더니 방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제 정말 전쟁이 눈앞으로 다가온 기분이다. 백설 공주도 약간 긴장된 표정이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감쌌다.

" 걱정마. 다 잘 될거야. "

" 응, 고마워. "

나는 가볍게 그녀와 입을 맞추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여기로 돌아올 일은 없다. 어차피 내 물건도 없으니 그리 섭섭하지는 않다. 내 출병 소식을 들었는지, 뤼벨이 방안으로 뛰어들어왔다.

" 갈리브! "

" 아, 뤼벨. "

" 이제.. 가는 거에요?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두 눈이 글썽해진다. 나는 그녀를 토닥토닥하면서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 걱정마. 끝나면 부를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

" 네. 꼭 불러줘요. 기다릴께요. 흑. "

그녀는 울음을 참지 못할 것 같은지 내 품에서 빠져나와 방을 뛰쳐나갔다. 내가 그녀라도 울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전쟁에 나간다면 누구라도 그럴테니까. 나는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엄숙한 마음으로 방을 나섰다. 백설 공주도 준비가 다 됬는지, 내 방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 끝이야? "

" 응, 가자. "

살아서 영웅이 될지 죽어서 역적이 될지는, 이번 전쟁에 달려있다.

" 저기 연기가 보입니다! "

백작의 영지를 떠난 지 3일 째. 선두에 서있던 병사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희뿌연 연기가 저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쟁에 돌입한다고 생각했는지, 병사들과 기사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차올랐다. 다른 게임이었다면 신나는 흥분감에 젖어있었을텐데, 이번은 그러지 못했다.

아마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일까. 내가 말을 멈추고 손을 번쩍 들자, 병사들과 기사들이 순식간에 제 자리에 섰다.

" 여기서 잠시 대기한다. 선발대! "

대기하고 있던 선발대 5명이 말의 배를 차고 순식간에 나를 지나쳐 앞으로 뛰어갔다. 잠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해봐야했다.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것 자체가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이 상태로 대략 20분을 대기하고 있었는데, 매 한 마리가 우리들에게 날아왔다. 선발대가 데리고 간 훈련된 매였다. 매를 팔 위에 올린 병사는 발에 묶여있는 쪽지를 풀고 나에게 건넸다. 백설 공주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 이럴 수가! 큰일이다. '

" 당장 전진해! 빠르게 전진한다! "

병사들과 기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빠르게 앞으로 전진했다. 백설 공주와 기사단장이 나에게 다가와 어떤 말이 적혀있었는지 물어왔다.

" 리츠웰 왕국이... 함락되었어. "

저멀리 리츠웰 왕국 수도의 정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수도 곳곳에서 연기가 불에 타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멀리 보이던 연기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다행히 시간에 딱 맞춰왔는지, 활짝 열린 정문은 아직 닫혀있지 않았다. 막 정문을 뚫고 들어간 모양인데, 오히려 잘됬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곧바로 돌진한다! 적은 모조리 죽여라! 리츠웰 병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군은 우리뿐이다!! 돌진하라!! "

" 와아아아아!!! "

" 기사의 목에 100골드를 걸겠다! 만약 대장을 사로잡는다면 1000골드를 주겠다! "

" 우와아아아아!! "

순식간에 병사들과 기사단이 수도를 향해 뛰어갔다. 아직 정문에 남아있는 몇몇 킬백 왕국의 병사가 놀라면서 수도 안으로 도망쳤다.

우리는 순식간에 수도 안으로 진입하여 여인들을 겁탈하고, 재물을 약탈하고 있는 킬백 왕국의 병사들을 죽였다. 순식간에 수도 안은 킬백 왕국의 병사들의 시신으로 넘쳤다.

그 기세를 몰아 순식간에 성에 당도한 우리는 파괴되어 있는 성문을 통과해 왕성을 향해 진격했다. 승리에 도취된 킬백 왕국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황급히 무기를 잡고 저항했지만, 순식간에 밀려오는 병사들을 막기엔 무리였다.

하지만, 킬백 왕국의 병사들의 수가 많다보니까, 다시 열을 정비하고 우리들과 맞싸우기 시작했다. 사방은 순식간에 칼소리와 비명소리가 난무한다.

" 갈리브!! 이게 무슨 짓이야!! "

왕성에서 아르펜과 마르앙이 우리를 노려보면서 걸어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머리채가 집힌채 질질 끌려나오는 리츠웰 여왕이 있었다. 그녀는 악악- 거리며 두 손으로 머리카락이 쥐어진 아르펜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 감히 내 뒤통수를 쳐? 모두 적을 죽여!! 저자를 사로 잡는 자는 만 골드를 주겠어!! 당장 그를 잡아! "

만 골드라는 소리에 눈이 돌아간 적들이 나를 향해 칼을 들고 뛰어왔다. 그래도 리츠웰 왕국과 싸우면서 꽤 많은 병사들을 잃었는지, 우리들의 전력과 거의 대등했다. 문제는 기사단의 수가 현저히 밀리고 있었는데, 소란을 듣고 수도 곳곳에 있던 킬백 왕국의 기사들이 속속 왕성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팽팽하던 싸움이 천천히 킬백 왕국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나도 숨겨놓은 한 수가 있었다.

" 모두 화약을 꺼내라! "

내가 큰소리로 외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품에서 화약을 담은 천주머니를 꺼냈다. 그들은 곧바로 부싯돌로 주머니에 달려있는 줄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주머니를 킬백 왕국의 병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 쾅! 쾅!

대량 살상정도의 위력은 아니었지만,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쇠붙이때문에 죽지는 않아도 고통때문에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하기 힘들었다. 백 개에 가까운 주머니를 던졌지만, 불길이 약해서 바람때문에 꺼진 것이 많아, 대략 삼십 개 정도 밖에 터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 피해는 충분했다.

순식간에 전세가 확 뒤집어지면서 '샬렛' 병사들이 기세를 잡았다.

" 갈리브!! "

아르펜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마르앙의 손에 있는 칼을 뺏어들었다. 그리고 여왕을 일으켜 세워서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 당장 병사를 물려! 아니면, 당신의 어머니는 이 자리에서 죽어! "

그녀는 죽든말든 상관없다. 어차피 왕궁을 탈환하면 그녀를 본보기로 목을 칠 생각이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더 큰 강수를 두었다.

" 그녀를 데려와! "

어디선가 병사들이 익숙한 얼굴을 데리고 왔다. 아차, 르세뜨! 그녀는 슬픈 눈을 하면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몰골을 보니 말이 아니었다. 아르펜은 비릿하게 웃으며 르세뜨의 머리칼을 잡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볼에 칼을 문지르며 음산하게 외쳤다.

" 이 년을 모르진 않겠지? 당장 병사를 물려! "

" 갈리브! 다행이에요. 당신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

르세뜨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입에서 미소를 지우진 않았다. 그래도, 정이 가장 많이 쌓인 그녀여서 외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르세뜨를 계속 응시했다. 젠장. 그렇다고 병사를 물릴 수도 없다고! 마지막 기회란 말이야!

" 르세뜨.. 미안하다. "

" 아니요. 전, 괜찮아요. 어차피 마르앙, 저 남자에게 더럽혀진 몸이에요. 당신을 정말로 사랑했어요. 꼭 다음 생애에선, 다시 당신과 함께 있었으면.. "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녀는 혀를 길게 빼물고 강하게 물어뜯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르펜도 놀라서 그녀의 머리칼을 놓쳤다.

엄청난 핏물이 그녀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르세뜨는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나에게 시선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백설 공주도 그녀의 희생에 놀랐는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화를 주체할 수가 없어서 병사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 당장! 저 년과 저 새끼를 죽여!!! 킬백 왕국 병사들은 모조리 죽여버렷!!! "

다시 전투가 치열해졌다. 하지만, 우리쪽으로 기울어지던 기세가 다시 천천히 대등해지기 시작하더니 그들쪽으로 서서히 기울어진다. 아무리 병사의 수가 우리쪽이 우세해도, 기사들의 위용은 따라잡을 순 없는 모양이었다. 아까 화약의 폭발도, 기사들의 갑옷을 뚫을 순 없었는지, 그들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아르펜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피를 많이 쏟아서 목숨을 잃은 르세뜨의 얼굴을 발로 툭 찼다.

" 이젠, 다 소용 없어졌네, 갈리브? 곧 이 전투도 끝나가는 모양인데. "

" 하. "

이렇게 해도 안되는 건가.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무릎을 털썩 꿇었다.

두 팔을 벌리고 멍- 하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백설 공주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수세에 몰린 그들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기 일쑤였다. 그녀도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 나를 마주본 상태에서 무릎을 꿇고 나를 껴안았다.

" 사랑해, 갈리브. 내가 죽는다고 해도 절대 널 사랑한건 후회하지 않아. "

" 미안하다, 백설. 결국, 내가 졌어. "

" 아니야. 이만큼 왔던 것도, 다 너 덕분이야. 고마워. "

그녀가 나에게 입맞춤을 쪽- 했다. 죽기 전이었지만, 이때껏 한 모든 입맞춤보다 달콤했다. 소란스럽던 주위가 드디어 고요해졌다. 모두 죽거나, 항복한 상태다. 아,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늘이 얄밉게 푸르다. 이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노, 슬픔은 더 이상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

" 백설. 미안해. 다음 번에는 반드시 널 지켜줄게. "

" 아니야. 다만 아쉬운건, 너와 같이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는 것뿐이야. 죽으면.. 모든게 끝이겠지? "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혀로 살짝 핥았다.

" 죽기 전에 해후를 나눌 시간 정도는 주겠어. 물론, 갈리브 당신은 다리 한 쪽은 잘라야겠지만. "

아르펜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내게 아무런 감흥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다만, 슬퍼하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백설 공주의 눈만 의식될 뿐이었다.

그 때, 무언가가 내 머릿 속을 강타한다.

' 소환수. '

그리고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읽었던 설명서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 ... 동화의 스토리 중간이라도, 아니면 스토리가 무한히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소환수'의 결정은 게임의 끝을 알리는 종점입니다.

" 하하, 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

아르펜의 얼굴에 미소가 새겨진다. 내 웃음소리가 모든 것을 포기한 신호였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르펜, 미안하지만 나에게 절대적인 무기가 하나 있어.

나는 백설 공주의 어깨를 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백설, 나에게 하나만 대답해주겠어? "

" 물론. 말해줘. "

나는 목을 가다듬고 천천히, 하지만 또렷하게 그녀를 향해 말했다.

" 나의 '소환수'가 되어주겠어? "

" ... !! "

그녀의 얼굴에 놀람이 떠오른다. 잠시 멍-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천천히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 '소환수'... 라고? "

" 응. "

그 때, 마르앙이 황급히 놀라면서 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 당장 그를 멈춰!!! 그를 죽여어어어엇!! "

" 무.. 무슨 소리야! 그만두지 못하겠어?! 마르앙! 무슨 소릴 하는거야? "

" 당장 그를 멈추라고오오오!!! '소환수'를 결정하고 있잖아아아!!! "

그제서야 아르펜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 당장 그를 멈추게 해! 백설 공주를 죽여엇!! "

하지만, 이미 백설 공주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병사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가면서 칼을 휘두른다. 하지만, 백설 공주의 입에서 나온 말이 더 빨랐다.

" 당신의 '소환수'가 되겠어. "

그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칼이 멈췄다. 백설 공주의 머리 위에 손마디만큼을 남겨둔 채. 그리고, 내 눈앞에는 -Game Clear- 라는 문구가 떴다.

게임이 끝났다.

그동안 아주 힙겹게 플레이한, 게임이 정말 끝났다.

" 아,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 "

나는 미친 것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백설 공주가 소환수가 되었다. 이젠, 그녀는 영원히 나의 것이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녀는 이제 나에게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영원히.

============================ 작품 후기 ============================

1부 후기도 올렸습니다!

읽어주시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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