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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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전쟁 놀이는 싫은데.. "

에덴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볼을 불리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녀가 불만을 표출하자 들고 있던 나뭇 가지로 그녀의 등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 전쟁 놀이? 아니, 이제부터 너희는 나의 영원한 반려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할거야. "

" 반..려자? "

에덴과 보리 둘다 반려자라는 말을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나을 지도 모른다.

단어 하나하나까지 내가 세세하게 나만의 것으로 주입시킬 수 있을테니까. 나는 반려자라는 말뜻을 아주 자세하게 둘에게 가르쳐주었다. 둘은 얼굴을 살며시 붉히며 킥킥- 하고 수줍게 웃었는데, 순간 가슴에 양심이 흔들리-기는 커녕, 나도 아주아주 기분이 좋았다.

" 좋아! 나 할래, 훈련. 반려자 하고 싶어. "

" 나도.. 나도! "

그녀들은 꺄르르 웃으면서 손을 번쩍 들고 흔든다. 후후후, 지금은 웃음이 나오겠지?

"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어? 이건 절대 취소못해. "

" 절대 취소 안해. 난, 레온의 반려자가 될거야. "

" 나도 취소 안해. "

작은 주먹을 꽉 쥐고 나를 바라보며 힘차게 얘기한다. 아주 좋은 자세군. 나는 이쯤이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들고 있던 나뭇 가지를 손으로 탁,탁- 치면서 그녀들의 앞뒤로 오갔다.

" 좋아. 그럼 딱 하나 약속해. 절대, 내 말을 모두 복종하겠다는 것! "

" 응! 약속할게. "

" 나도. "

나는 에덴과 보리에게 지금 당장 마을을 한 바퀴 뛰고 오라고 시켰다. 둘은 알겠다면서 짧은 다리를 빠르게 놀리면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마을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아서, 그녀들의 두 짧은 다리로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 헉.. 헉.. 갔다 왔어. "

" 한 바퀴 더. "

" 어? 방금 돌고 왔는데? "

" 씁! "

나는 인상을 팍- 쓰면서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에덴과 보리가 다시 나에게서 벗어나 뛰기 시작한다.

물론 나도 그녀들을 따라서 뛰기 시작했다.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 그녀들은 아직도 뛰고있는 나를 보며 우는 표정으로 따라오기 시작한다.

좋아, 내가 직접 솔선수범하면 어쩔 수 없이 해야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이 놈의 몸뚱아리는 한 바퀴 뛰었다고 벌써 지쳐온다.

' 따..딱, 한 바퀴만 더 돌까. '

두 바퀴를 돌고, 마지막 한 바퀴를 더 돌자, 온 몸의 에너지가 방전된 느낌이 든다. 흙바닥에 털썩 쓰러지며 숨을 마구 몰아쉬었는데, 비단 나뿐만 아니라 그녀들도 힘들었는지 내 양옆에 털썩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 좋아.. 하아.. 하아.. 이렇게 매일... 하아.. 마을을.. 하아.. 돌거야. "

" 하아... 하아... "

나는 일단 이 저질체력부터 단련하기 위해서 매일 마을을 돌 생각이었는데, 하루에 한 바퀴씩 늘릴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쉬고 난 후에는 그녀들과 함께 뭉퉁한 나뭇 가지를 들고 공중에 휘둘렀다.

온갖 게임을 하면서 섭렵했던 검술을 그녀들에게 직접 사사했는데, 나는 심지어 게임을 로그아웃하고 다른 게임으로 직접 들어가서 검술을 배우고 난 뒤에 그녀들에게 가르쳤다. 검술 이름은 내 이름을 따서 '프라하스타 검술식'이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에덴과 보리는 검을 몇번 휘두르더니 힘들다면서 징징댔지만, 나는 뽀뽀까지 동원하면서 그녀들을 복돋아주었다.

" 좋아! 만약 둘중에서 나의 마음에 들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면, 내가 더 좋은 것을 해주지. "

" 정말?! "

그게 발화점이 되었는지, 그 날 이후로 둘은 다시는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우리는 매우 달라져 있었다. 에덴과 보리는 더 이상 나약한 소녀들이 아니었고, 나 역시도 그 사이에 키도 많이 커서 소년티가 풍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을을 매일 100바퀴를 돌았는데, 그 이상은 괜히 무리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뛰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정신 수양과 검술을 병행했는데, 특히 정신 수양이 그녀들을 성숙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젠, 에덴과 보리는 더 이상 꼬마숙녀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 핫, 핫하앗! "

에덴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처음과는 영 딴판인 솜씨로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젠 검도 나무 몽둥이가 아니라, 나무를 잘 깎아서 만든 나무칼을 썼다. 그것도 몇번이나 부러지는 바람에 새 나무칼을 여러 개나 만들어놓았다.

- 후웅

순간 딴 생각을 하는 바람에 검이 살짝 흔들렸는데, 에덴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의 목을 향해 검을 쑤셔넣었다. 나는 목을 틀어서 공격을 피하고 곧바로 그녀의 옆꾸리를 칼 옆면으로 후려쳤다.

" 꺄앗! "

에덴이 엉덩방아를 찍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보리가 황급히 달려와 에덴을 일으켜 세우며 엉덩이를 털어준다.

" 후, 방금은 위험했어. 순간 진심이 나와버렸네. "

" 치-, 이번엔 정말로 공격할 수 있었는데! "

나와 그녀들의 약속. 바로, 그녀들과 대련하는 시간에 나를 한번이라도 검으로 몸을 닿게 하면 뽀뽀를 하기로 약속했었다. 물론 아직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종종 뽀뽀는 해주었다. 문제는 그녀들 스스로도 악-이 늘어서 어떻게든 날 한번 맞춰보려고 노력한다는 거지만.

" 보리는 아직이야? "

" 응.. 아직.. 조금만 더 기다려줘. "

놀라웠던 것은, 보리가 생긴거와는 다르게 검술에 매우 재능이 있었다는 점이다. 에덴은 배우는 시간에 비례해서 검술이 늘었지만, 보리는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실력이 늘었다. 하필이면, 그런 아이가 보리라니.

" 렌..은 이제 안와? "

에덴이 살짝 슬픈 얼굴로 나를 향해 물었다. 귀족 자제였던 렌은 이제 도시로 다시 돌아가버렸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파서 잠시 요양차 왔었는데, 그녀가 결국 죽고 렌은 저택으로 돌아가버렸다. 돌아가기 전날에 펑펑 울면서 나에게 안겼던 것은, 아마도 자신과의 이별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아니었을까.

" 응. 이제 안와. 다음에 꼭 데리러 갈거니까, 걱정마. "

그녀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심하게 대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일단 우리는 다시 한차례 쉬고 난 후에 수련을 거듭했다.

그리고, 점점 더 강해져갔다.

다시 1년이 지났다. 벌써, 나는 12살이 훌쩍 넘었고, 에덴과 보리는 11살이 넘었다. 놀라운 것은 바로.

' 1년 반을 수련만 하고 지냈다고!!! 이 개같은 개발사놈들아아아아!!! '

스킵을 하는 시스템이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 배율 조정때문에 현실로는 고작해봤자 3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3주간 수련만 한다는 것은 말이 되는 소리인가? 왠지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은 기분나쁜 상상이 들었지만, 아닐 것이다. 그래, 아니여야한다.

다행인 것은, 그 사이동안 나와 그녀들은 장족의 발전을 했다는 것이다. 어느새 그녀들도 2차 성징이 시작되어서 가슴이 봉긋 올랐고, 엉덩이도 발달했다.

나 역시도 사타구니에 거무스름한 털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고, 목소리도 굵어졌다. 약간 엣되던 내 얼굴은 이젠 남자다움이 넘쳐서, 마을 여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 후우.. 후우.. "

내 어깨에 보리의 칼이 닿아있다. 드디어 1년하고도 반만에 그녀가 나를 한번 닿는데 성공했다. 물론 닿았다는 것뿐이지 이긴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도 않는 에덴과는 엄청난 차이였다. 어느새 소녀티가 풍기는 금발 머리의 보리가 칼을 천천히 떼어내며 수줍게 웃는다.

" 해.. 해냈어. "

" 축하한다. "

물론 내가 진심으로 그녀와 싸운 것은 아니었다. 만약 내 진심이 담겨있다면, 그녀를 단 한 번만에 이길 자신은 있었다. 칼을 잘라버리면서.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그녀들의 실력을 높이기 위한 대련이기 때문에 항상 그녀들의 실력을 맞추어주었다.

" 상으로 뽀뽀를 해주지. "

보리가 볼을 붉히며 어쩔 줄을 몰라하지만, 거부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입을 쭉 내밀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는 그녀의 입에 뽀뽀를 쪽하고 물러났다.

에덴이 그 모습을 보며 울상을 지었지만, 확실히 보리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에덴은 밤이 늦도록 검을 휘두르는 보리를 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젠, 그녀들의 체력도 성인 남성은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마을을 100바퀴 도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힘이 드는 것은 대련이었다.

" 오늘은 각자 돌아가서 수련하도록 해. 쉬고 싶으면 쉬어도 돼. 오늘 만큼은 특별히 허락할께. "

에덴과 보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아주 오랜만에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 자고 싶어~ 오늘은 푹 자기만 하고 싶다아. "

그녀들은 나에게 한번씩 폭 안기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무엇을 할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녀들을 이렇게 빨리 보낸 이유가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요정들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들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끝까지 본 뒤에 곧바로 검을 허리춤에 차고 숲속 깊이 들어갔다.

" 오셨나요. "

호수의 요정. 시리도록 파란 머리칼이 허리까지 길게 자라있는 아주 어여쁜 여인. 그녀는 인간의 모습으로 호수에 발을 살짝 담근채로 나를 뒤돌아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신발을 벗고 호수에 발만 담군 채로 앉았다.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들어서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넘겼다.

" 용사님은, 특별하시네요. "

" 특별? 어디가? "

요정은 물속에 잠긴 예쁜 발을 몇번 흔들더니 말을 이었다.

" 보통, 12살이라면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때 아닌가요? 저는 가끔씩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용사님은 이미 나이가 많지만.. 몸만 어려진 것 같다는 것을요. "

속으로 뜨끔했지만, 나는 태연히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

" 아리엘. 널 속이지 않을게. 나는 다른 세상에서 온거야. 재앙을 막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

" 그런가요.. "

아리엘이 예쁘게 웃는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천천히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 이제 가야할 시간이네요. 어머님이 절 부르세요. "

내가 안력을 높여 저멀리 바라보았다. 호수 한가운데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요정-. 바로 이 넓은 호수의 실질적인 지배자. 그녀 역시도 아리엘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확실히 그녀와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몸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아직 내가 범접하기 힘든 세월이랄까.

" 그럼, 다음에 보지. 꼭 너를 데리고 나갈거야. "

" ... 안녕히. "

그녀의 모습이 천천히 사라지더니 공중으로 분해되었다. 저멀리 호수 한가운데에 있던 누군가가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온다. 찌릿찌릿한 기세가 온몸으로 느껴졌는데, 보통 강한 요정이 아니다.

내 눈앞에 다가온 그녀는 어마어마한 미녀였는데, 상체는 두 가슴을 훤히 드러내놓고있었고, 하체는 흐물흐물한 물로 이루어져있었다.

"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랬는데! "

" 아, 호수의 지배자, '엘류나크' 님이시군요. "

" 내 경고를 넘겨 들은 것은 아니겠지!! "

쩌렁쩌렁하지만, 고운 목소리가 터져나오더니 사방의 나무가 기세로 싸-하고 흔들렸다. 주위에 느껴지던 많은 요정의 기운이 그녀의 기운을 느끼자마자 황급히 사라진다. 확실히 급이 틀린 강함. 이 여자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 좋겠지만, 그녀는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다만, '엘류나크'님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서 온 것이지요. "

" 감히 내가, 너 같은 애송이놈의 밑으로 들어갈 것 같으냐! 이번이 마지막 경고다! 다시는 이 호수에 모습을 보이지 마라. "

물이 치솟아오르더니 내 몸을 강타한다. 엄청난 수압. 내 몸은 훅- 튕겨나가더니 저멀리 바닥에 내려꽂혔다. 젠장! 너는 내가 곱게 데리고 가지 않으마. 반드시 기억하지, 엘류나크!

그녀는 내 모습을 한번 보고 흥- 하고 비웃더니 호수 안으로 사라졌다. 확실히 아직 내가 상대하기엔 급이 너무 달랐다.

' 반드시 널 데리고 가겠다, 엘류나크! 아리엘은 덤이고. '

마구 흔들리던 호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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