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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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또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개발사에 대한 원망은 없었다. 나는 13살, 그녀들은 12살이 되었다. 이젠 그녀들도 더 이상 꼬마가 아니었다. 가슴도 꽤 봉긋 나왔고, 얼굴도 숙녀티가 났다. 몸은 수련으로 단련되어서 군살없이 매끈했고, 미모는 마을에서는 더 이상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가장 축복받은 것은, 보리가 아주 정말 아주 미세하게나마 검에 마나를 불어넣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3년이 조금 넘는 시간만에 소드 익스퍼트 하급을 달성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아직 에덴은 마나의 감각도 잡을듯 말듯 했는데, 보리는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 축하해, 보리야. "

에덴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그녀를 안았다. 정말이지, 천재라는 건 존재하는 것이구나. 놀라운 것은, 이것은 정말로 현실을 반영한 게임이기에, NPC는 플레이어 보정따윈 없었다.

정말 순수 노력으로 저만큼의 위치까지 올라갔다는 말인데, 아무리 내가 가르쳐준 검술이 뛰어나고, 마나 호흡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해도, 습득하는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고 해야할까.

" 대단해. 잘했어, 보리. "

그녀는 내 칭찬에 눈물을 훌쩍이며 울기 시작한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흐르는 모양이다. 에덴도 덩달아서 코를 훌쩍이면서 '이런 기쁜 날에 울긴 왜 울어! 기지배야.'하고 소리치지만, 그녀의 눈도 어느새 붉다.

나 역시도 1년동안 정말 이를 악물고 죽어라 칼을 휘둘렀다. 어차피 겪어야하는 시간이라면, 나중을 위해서 죽을 만큼 수련해주마- 하는 심정으로 칼을 휘두르다가 소드 마스터가 되어버렸다.

물론 '요정들의 수호를 받는 전설의 용사' 라는 어마어마한 버프덕분이었다. 그래도, 호수의 지배자인 엘류나크에겐 한 주먹감도 안되었다. 그나마 좀 버티기는 하겠지- 하고 호수를 찾아갔었는데, 한 방에 넉다운 되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엘류나크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약간 달라졌다는 점일까. 예전에는 단순히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관심을 약간 가지는 정도? 아주 미미하지만, 그렇게 강한 요정의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는 것은 쉽사리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물론 1년간 칼만 휘두른 것은 아니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 대해서도 열심히 찾아봤는데, 약 백 년 전에 마녀의 저주를 받은 공주가 어떤 탑에 갇혀있다는 전설을 찾아냈다. 아직 탑의 위치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저주를 건 마녀만 찾는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 스킵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는 말일텐데. "

아무런 사건도 없이 이렇게 무료하게 시간만 때우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정말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그 날은 언제나처럼 그녀들과 숲속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열심히 칼을 휘두르던 에덴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저멀리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를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 아! 레온! 저기 연기좀 봐. "

연기가 올라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시커먼 연기가 마을이 있는 방향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이 터지다니! '

대비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런 식으로 일이 터질 줄은 몰랐다. 나는 그녀들과 함께 급히 마을로 뛰어갔지만, 이미 마을은 쑥대밭이 되어버린 후였다.

처참한 광경. 항상 집을 나서면 웃으면서 인사해주던 중년 아저씨도 칼에 찔려 죽어있었고, 냇가에 종종 빨래하러가던 처녀도 간살된 상태로 죽어있었다. 백 명이 넘었던 마을은 이제 살아있는 사람은 나와 그녀들 뿐인 것 같았다.

" 아, 아.... 아아아..!! 엄마.. 아빠!! "

에덴과 보리가 황급히 자신의 집으로 뛰어갔다. 그녀들을 반긴건 싸늘한 시체가 된 그녀들의 부모님과 형제자매들뿐이었다.

나도 이를 악물고 집으로 뛰어갔는데, 나의 어머니는 이미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아랫도리가 벗겨져 흰 정액을 몸 이곳저곳 묻힌 채로. 슬퍼서 눈물이 흐르거나 하진 않았다.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녀들은 과연 이런 상황을 버틸 수 있을까. 아무리 정신 수양을 한다고 해도, 그녀들은 이제 막 12살이 된 소녀들이다.

" 레온... 레오오오오온!!! 흐아아아아앙. "

그녀들은 집에서 나와 레온을 붙잡고 펑펑 운다. 그래도 정신줄 놓지않고 최대한 이성을 붙잡은 상태로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녀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 그들이 한 짓이겠지? '

이미 예전에 이 주위에 산적들이 머물고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이런 산골 마을을 습격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 일을 저지른 모양이다. 지금 산적들의 아지트를 털어버릴까? 나 혼자만으로도 상처 하나 없이 그들에게 복수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차라리 그들을 남겨두어서 그녀들에게 복수의 칼을 갈도록 한다면?

' 좋은 방법이군. '

나는 내 품에서 엉엉 울고있는 그녀들을 달래면서 입을 열었다.

" 분명히, 산적들이 한 짓일거야. "

" 흑. 그 놈들을 죽일거야.. 복수하고 말겠어. "

에덴이 눈을 날카롭게 뜨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 아직 우리들의 실력 가지고는 무리야. 적어도 소드 익스퍼트 상급은 되어야 상대할 수 있어. "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을 꽉 감았다. 복수하고 싶지만, 아직 힘이 없다. 내가 없다면, 그녀들만으로는 산적들에게 필패였다. 보리는 땅에 떨어트린 손으로 흙을 꽉 쥐며 이를 악 물었다.

" 레온.. 난 꼭 마스터가 될거야. 혼자서라도.. 그 놈들을 전부 죽여버릴거야. 내 부모님.. 동생들의 원수를 반드시 갚아줄거야! "

좋은 다짐이다. 에덴도 보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정도의 스테이지가 끝난 것이겠지? 내 생각대로,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이 일시정지가 되면서 눈앞에 창이 하나 떴다.

- Skip / Resume

절대.. 절대로 Skip 할거야! Resume을 눌렀다가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몰랐기에, 나는 아주 신중히 Skip을 눌렀다. 아마 플레이어의 성향에 맞게 몇년의 세월이 흐를 것이다.

점점 세상이 어두워진다.

" 이봐! 들었어? "

" 뭘? "

시커먼 수염이 턱 전체를 뒤덮고 있는 사내가 대머리 사내를 향해 조용히 소근거렸다.

" 이번에는 우리 옆에 '도끼파' 산채가 하나 털렸다는데? "

" 워미. 이거 무서워서 살겠어? "

그들은 1년전부터 대륙 전체에 퍼진 엄청난 소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산적이란 산적은 모조리 다 잡아서 죽인다는 정체불명의 집단! 이번에 들린 소문은 바로 옆에 있던 산채가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사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무만 보일 뿐이다.

" 설마.. 우리들에게 오는건 아니겠지? "

" 에잉. 설마.. "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이 있다. 그들은 잡고 있는 이가 다 빠진 칼을 전방으로 향해 빼들고 경비에 집중했다. 그들의 두목은 혹시 수상한 자들이 나타나면 곧바로 종을 울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한다면 목이 잘릴 각오를 해야했다.

그런데, 저멀리서 이상한 형체가 보였다. 사람! 그것도 여자 둘! 멀리서 봐도 빼어난 미인들이라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둘은 이게 왠 떡이냐 싶어서 종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진지에서 빠져나왔다.

" 흐흐흐, 이쁜이들이 여긴 왠일인가? "

그들은 살면서 처음보는 어마어마한 미인들을 보면서 입을 헤벌쭉 벌렸다. 오랜만에 아랫도리가 호강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곧 그들의 시야는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다.

' 어? '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오지 않았다. 곧 바닥으로 떨어지는 충격과 함께, 그들은 분리되어있는 자신들의 몸을 보면서, 눈을 감았다.

- 우지지직! 쾅!

산채를 드나드는 거대한 나무문이 엄청난 굉음을 내며 쓰러진다. 휘유. 잘해낼테지.

" 성공한 것 같습니다, 주군. "

" 그런 것 같네. 그럼 나 먼저 돌아가지. 그녀들과 함께 복귀해. "

" 옙! "

나의 충실한 종, 메넬. 오래 전, 산적들에게 마을이 털렸지만, 나에게 구출되어 부하가 된 고아였었다. 지금은 나의 잡다한 일을 해결해주는 왼팔이 되었고.

그렇다. 1년 전에 시작된 게임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나는 21살이 되어있었고, 세력을 형성해 있었는데, 산적들에게 가족이 죽임을 당한 고아들로 이루어진 집단!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는 충실한 부하들이 많았다.

이제 나는 소드 마스터를 훌쩍 뛰어넘은, 아주 강한 존재 중에 하나가 되었다. 요정들의 축복을 받아서인지 모든 일에 행운이 따랐고, 하는 일마다 성과가 있었다. 이제 슬슬 진짜 게임을 진행해야할 때가 온 듯 했다.

" 브룩! 브룩!! "

" 네, 주군. "

" '릴' 이라는 공주가 암흑 제국의 숨겨진 탑 안에 있다 이거지? "

" 모은 정보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

브룩이라는 사내가 가슴에 왼손을 얹고 정자세를 취한 상태로 말했다. 전설을 자세히 조사한 결과는 이랬다. 마녀는 암흑 제국의 여왕이었고, 공주는 '릴'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멸망한 왕국의 하나 뿐인 왕녀였다. 이미 마녀는 죽었고, 그의 후손들이 암흑 제국을 계속 지배하고 있는 중이었다.

" 암흑 제국이라서 그 이상의 정보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

" 흠, 그래? "

이번 대륙은 3개의 왕국과 하나의 신성 제국, 그리고 하나의 암흑 제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단 탑을 향하기 전에, 암흑 제국을 어떻게 해야한다는 소리였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3개의 왕국이라고 해봤자, 모두 힘을 합쳐야 겨우 신성 제국과 암흑 제국의 세력과 비슷비슷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개의 왕국은 무척이나 사이가 좋지 않아서 힘을 합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차피 신성 제국은 백설 공주가 성녀가 되어있을 것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

' 문제는 암흑 제국인데. '

얼마나 꽁꽁 싸매고 있는지, 암흑 제국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고작해봤자 아주 단편적인 사실 정도?

' 힘을 모아야겠군. '

어차피 게임을 진행하려면, 네임드 캐릭터들을 모아야한다. 요정과 마녀, 그리고 이웃 나라 왕자. 이웃 나라 왕자를 빼면, 요정과 마녀가 남는다. 마녀는 이미 죽었다는데, 그럼 네임드 캐릭터가 되는 것은 마녀의 진전을 얻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릴' 공주가 저주를 받기 전에, 그녀의 16살 생일 파티에 초대된 요정을 찾아야 한다.

' 이런 일은 엘류나크가 잘 알겠지. '

이미 나의 아랫 사람이 되어버린 엘류나크의 농염한 몸을 생각하면서, 나는 익숙한 미소를 지었다.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작품 후기 ============================

이제 진짜 시작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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