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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서 그의 노리개가 되었다? "
노리개라는 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아돌프는 눈물을 한 방울씩 흘리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는 지금 내 방으로 돌아와 욕실에서 샤워를 끝내고 나와 얘기하는 중이었다.
" 제발, 절대로 이 일을 말하면 안돼. 만약에 다른 이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나는 끝장이야! "
그는 내 발밑에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면서 빌었다. 그나저나, 그 자식이 게이라니. 괜찮은 정보를 하나 얻은 기분이다.
이름이.. '루시앙' 이라고 했지? 나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왜 아돌프는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학원에 끈질기게 남아있는거지? 만약에 정말 싫다면 자신의 영지로 되돌아가버리면 될 것을.
' 설마. '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질질 짜는 그의 턱을 살며시 잡고 들어올렸다. 남자애가 무슨 여자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게, 정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든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속삭인다.
" 너.. 남자를 좋아하는구나. "
" ! "
아돌프가 순간 뒤로 살짝 물러나면서 엉덩방아를 찍는다. 그런 거였어. 물론, 루시앙 왕자가 그를 괴롭히는 것도 있었지만, 이 놈도 그것을 즐기고 있었던 거야! 알고보니, 상당히 음탕한 자식이었잖아.
" 마.. 말도 안되는 소리.. "
" 호오. 정말 그럴까? 그냥 사실대로 털어놓으면 돼. 남자.. 좋아하지? "
나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의 쇄골을 살며시 훑었다. 그 녀석은 읏-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찡긋했다. 역시. 거짓말을 잘 못하는 편인지 그는 왕방울만한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나를 애처롭게 올려다본다.
" 난.. 난.. "
" 그래그래. 다 이해해. 사람은 가지각색이니까 말이지. 널 이해한다고. 자, 일어나. "
아돌프가 불안불안한 눈으로 나를 힐끗 훔쳐보다가 내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선다. 정말 괴롭혀주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하는 녀석이었다.
자기 말로는 루시앙 왕자에게 처음 큰 실수를 범한 뒤에 입막음으로 놀림감이 되다가 이런저런 일을 당하기 시작했다는데, 물론 그런 사연도 있긴 있겠지만 그의 성향도 한몫한 것 같았다.
' 크크크,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고. '
하지만, 나의 음흉한 속을, 아돌프는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전-혀.
다음 날, 나는 아돌프와 함께 '세계 역사 토론' 수업을 같이 들었다. 물론 루시앙 왕자가 나와 아돌프를 수시로 번갈아 보곤 했지만, 나는 그냥 빙긋 웃기만 했다. 어쩌면, 저 놈은 나까지 타겟으로 삼은 지도 모른다.
" 공자 당신과 루시앙 왕자가 꽤 가까워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데요. "
" 아, 그런가요? 소문도 참 빠르네요, 일리아나 왕녀님. "
그로시아 제 3 왕녀의 이름은 '일리아나' 였는데, 그녀는 토론 중에 나에게 슬며시 말을 걸어왔다. 물론 나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그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더니 정말이냐는 목소리로 다시 나에게 물어온다.
" 그게 정말이었나요? 헛소문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는데. "
" 헛소문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죠. 그나저나 저에게 관심 있으십니까? "
내가 씩 웃으면서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왕녀는 살짝 의아한 얼굴로 나에게 반문했다.
" 그 질문의 의도가 뭐죠? "
" 아, 왕녀님이 생각하는 그런 복잡한게 아닙니다. 그냥 단순히 남자로써 관심이 있냐는 뜻이죠. "
그제서야 왕녀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하- 하더니 완전히 나에게 몸을 돌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 아니요. 전혀요. "
" 어이쿠, 너무 단호해서 단호박인 줄 알았습니다. "
" ... 장난치지 말아요. 당신은 내 상황을 알텐데? "
우리 둘이 토론 중에 계속 사소한 얘기를 나누자, 안경쓴 청년이 어- 하더니 조심스레 우리들에게 말을 꺼냈다.
" 저기.. 지금 토론 중인데.. "
" 아, 잠시 시간을 줄래요? 이 사람과 할 얘기가 있어서요. "
" ... 그.. 알겠습니다. "
무언가 반박하려다가 일리아나 왕녀의 날카로운 시선에 그는 자라목이 되어 슬그머니 빠졌다. 왕녀는 다시 고개를 나에게 돌리며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한다. 물론 그 정도 소리는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토론 소리에 묻혀서, 가장 가까이있는 나에게만 들린다.
" 지금 그로시아 왕국의 상황을 알고 있나요? "
" 제가 왜 그걸 모르겠습니까, 왕녀님. 그리고, 일리아나 왕녀님이 그 상황을 피해서 잠시 여기로 피신해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
" ... 그럼 얘기가 쉽겠네요. 공자 당신의 힘이 필요해요. 더불어 공작가 힘 전체가. "
그 말과 함께 토론 수업이 끝이 났다. 하지만, 몇몇 불이 붙은 학생들은 끝을 모르고 계속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조에 속한 나머지 두 명은 우리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여기서 더 얘기하면 괜히 중요한 말까지 나올 가능성이 있으니, 자리를 피해야했다.
" 여기선 좀 곤란하군요, 왕녀님. 어디 조용한 데라도 알고 계시는지...? "
" 그렇네요. 눈이 좀 많군요. "
왕녀는 나에게 조용한 곳을 안다며 따라와라고 말했다. 나는 아돌프에게 먼저 자리를 피하겠다고 말한 뒤에, 왕녀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물론 나에게 꽂히는 루시앙 왕자의 시선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도, 그와는 크게 상관 없는 일이라 날 그냥 놔두는 것 같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그녀가 생활하는 방이었다. 왕녀가 외간 남자를 자신의 방으로 끌어들일 정도라면, 그녀가 얼마나 급박한지 대강 짐작해볼 수 있었다.
" 지금 다른 곳은 감시의 눈이 있어서 곤란해요. 물론 내 방에 들어왔다는 자체가 당신에게 치명적일 수 있지만. "
" ... 만약에 감시가 있다면, 저에게 치명적이죠. 그만한 보답을 왕녀님 당신에게 받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지만요. "
일리아나 왕녀는 의자에 천천히 앉아 시립해 있는 기사를 향해 잠시 밖으로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사가 방을 나가자 그녀는 찻잔을 나에게 내밀었다.
" 지금, 1 왕자와 2 왕녀가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건 아시나요? "
" 프랑크 왕국과 비슷하네요. 거긴 1 왕녀와 2 왕자가 피터지게 싸우고 있던데. "
" 우린 더 심각한 편이죠. 나까지 합세하면, 3명이니까. "
왕녀는 마른 입만을 찻물로 적시고 다시 말을 이었다.
"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내게 둘도 없는 기회에요. 보답? 보답이라고 하셨죠? 그 보답을 드릴께요. "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진지한 어조로 말한다.
" 당신과 약혼하겠어요. "
' 약혼이라. '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물론 내가 왕족의 혈투에 직접 참가할 수 있게 되는 자격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너무 큰 제안이다. 물론 그녀가 보기엔 내가 심상치 않아보였다지만, 약혼은 너무 큰 보답이었다. 그 만큼 그녀가 지금 손이 부족하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
" 이거 나중에 박터지겠는데. "
1 왕자와 2 왕녀를 엄청 싸우게 해서, 세력을 확실히 줄여놔야 나중에 편해질 것 같다.
- 부스럭
누군가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다. 기사를 대동하고 온, 여인.
" 발더스 공자라는 사람이 날 불렀다고, 아돌프씨가 얘기하던데요. "
" 아, 나탈리아 왕녀님. "
그렇다. 그녀는 프랑크 왕국의 제 1 왕녀, 나탈리아였다. 이 곳으로 부른 이유는 뻔하다. 손을 잡기 위해서. 더불어 그녀를 이용해서, 미리 프랑크 왕국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
' 예전, 백설 공주때, 아르펜 공주에게 호되게 당했었지. '
왕국을 얻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서로 집안 싸움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프랑크 왕국의 1 왕녀와 2 왕자가 서로 대립한다고 하지만, 그로시아 왕국처럼 피터지게 싸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 시발점을, 일리아나 왕녀가 만들어야한다. 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거니까.
" 무슨 일로 나를 여기로 부른거죠? 당신과 루시앙은 꽤 친해보이던데. "
뒷말에 살기가 약간 감돈다. 이미 나와 루시앙이 만났다는 사실이 학원 전체에 퍼진 모양이다.
차라리 그게 좋다. 그래야 왕자가 안심할테니까. 그러고보니, 이 나탈리아 왕녀라는 여자도, 미모가 장난이 아니다.
일리아나 왕녀는 단순히 예쁘다-정도에 그쳤지만, 나탈리아 왕녀의 미모는, 여자로 탈바꿈한 레이와 버금갔다. 확실히 미녀들만 골라서 결혼하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자식들이 예쁘긴 예쁜 모양이다.
" 아, 오해하지 마시죠. 어디까지나 약간의 친.분.만 있으니까. "
" 그 친분도 저에겐 거북해서 말이죠. "
" 하하, 나탈리아 왕녀님.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
그녀가 눈을 살짝 찡그리며 나를 돌아본다.
" 적을 무찌르기 위해선, 적을 잘 알아야한다. "
" ... 그 말의 의도가 궁금하군요. "
좋았어. 역시 욕심이 많은 인간들은 조금의 이득만 보여주어도 움직이기 쉽다. 나탈리아 왕녀도 그 범주에 크게 벗어나는 인물은 아닌 모양이다.
" 그 말은 쉽게 하면, 전 당신의 편이라는 말입니다. "
" 고작 그런 말로 제가 넘어간다고 오해하진 마시죠. "
" 물론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
그녀는 관심을 가지고 나를 응시했다. 내가 잠시 기사를 턱짓하자, 그녀는 괜찮다면서 그녀의 호위기사를 물렸다.
" 루시앙 왕자를 한번 크게 밟아줄 수 있다면? "
" 이 씨발! "
루시앙 왕자는 상소리를 내면서 게시판에 붙어있는 종이를 뜯어냈다. 하지만,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상태라서 학생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주위의 학생들에게 외쳤다.
" 이딴 개소릴 믿어?! 씨발, 어떤 새낀지 잡히기만 하면 아주 죽여버릴거야! "
그렇게 말하면서도, 루시앙은 속으로 아돌프를 꼭 집고 있었다. 자신의 무리들이 이딴 것을 붙일 리가 없었다. 그들도 자신과 같이 행동했고, 즐겼던 자들이니까. 그렇다면 범인은 딱 한 명뿐. 아돌프.
" 그 씨발새끼. "
나는 벽 뒤에 몸을 숨겨서 몰래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사내 두 명이 황급히 루시앙에게 뛰어온다. 건물 전체를 돌아서 붙어있는 종이를 모두 뗐는지, 그들의 손에 종이가 한 가득하다.
" 아돌프 그 새낄 찾아서, 당장 데리고 와. "
둘은 종이를 찢어서 쓰레기통에 쑤셔넣고 아돌프를 찾기 위해서 다시 건물을 이잡듯이 뒤졌다. 결국 수업을 듣고 있던 아돌프가 두 명에게 붙잡혀 그들에게 숲속으로 끌려갔다. 아돌프는 루시앙의 앞에서 심하게 몸을 덜덜 떨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 이 개새끼야. 내 말이 물로 들렸어? 이 씨발새끼. "
" 흑흑, 내.. 내가 한 거 아니야. 난 절대로 아니야. "
" 니가 안해? 이 씨발놈이. 야! 뭐해? 빨리 옷이나 벗겨. "
어차피 그를 완전히 묵사발로 만들고 여기서 쫓아낼 생각이었으므로, 마지막으로 즐겨보겠다는 심보였다. 그런데, 아돌프의 옷을 거의 찢길 정도로 우악스럽게 움직이던 그들의 손이 멈칫했다. 무언가 이상한 것 같다. 아니, 이상했다!
" 어.. 루.. 루시앙님. 뭔가 이상한데요. "
" 이상할 게 뭐가 있어? 뭐해? 비켜. "
두 사내를 밀친 루시앙의 눈에도 무언가 이상한게 보였다. 봉긋한 가슴과, 아무 것도 달려있지 않은 민둥산이 보이는 사타구니.
' 봉긋? 민둥산? 이게 뭐야. '
며칠 전까지만해도, 멀쩡하게 남자였던 아돌프가, 갑자기 오늘 여자가 되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숲속에 있던 그들은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황급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여기다! "
누군가의 몸이 풀숲에서 불쑥 나온다. 발더스 공자, 바로 나다. 순식간에 사방에서는 여러 귀족들로 가득찬다. 그 중에는 일리아나 왕녀도 있었고, 나탈리아 왕녀도 있다. 그 외에도 10명이 넘는 귀족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심지어 그들을 호위하는 기사들까지 모습을 드러내었다.
" 어.. 어.. "
루시앙 왕자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어어- 하고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물론 그의 뒤에 있는 두 사내도 이 상황에 놀라 자리에 철퍽 주저앉은 상태다. 잠시 후에, 루시앙 왕자의 얼굴이 악귀같이 변하면서 갑자기 아돌프를 삿대질한다.
" 이.. 이 씨발놈이 날 함정에 빠트렸어. 이 개새끼가 날 함정에 빠트렸단 말이야. "
"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를 해야겠죠. 안 잡아들이고 뭐해? "
나탈리아 왕녀가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그들은 루시앙을 양쪽에서 붙잡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 아돌프 이 개새끼야아!!!!! "
처절한 루시앙의 외침이 온 숲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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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늦었네요.. 죄송.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