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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혁과 아돌프가 백작가에 도착했을때 이미 아돌프의 남동생이 마중을 나와있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소식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는 형이었던 아돌프와는 다르게 얼굴과 몸이 모두 남자답게 생겼다.
" 형! "
" 에렉? "
아돌프가 싱긋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랐다. 안본지 거의 5개월이 지났을 뿐이었는데 동생이 몰라보게 컸던 모양이다. 그는 아돌프를 힘껏 안으려고 제스쳐를 취했지만, 그녀가 약간 곤란해하면서 몸을 슬쩍 피했다. 잘못하다간 자신이 여자라는 것이 들통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아, 미안. 내가 다.. 다친 곳이 있어서. "
" 그래? 나중에 꼭 의원에게 가서 약을 지어. "
" 응.. 아참, 여기 내 영원한... 중요한 분이야. '발더스 그레이스'라고 하셔. "
'영원한'이라고 말할 때 굉장히 목소리가 작아졌지만, 내가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녀의 옆에 천천히 다가가 손으로 엉덩이를 한번 꽉 잡았지만, 아돌프는 히끅- 하고 딸꾹질을 한번 하고는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온다.
" 발..더스 그레이스? "
에렉이 얼굴이 잠시 묘해졌다가 원래대로 천천히 돌아왔다. 이 녀석도 나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는지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가 고개를 푹 숙인다.
" 반갑습니다, 발더스님. "
" 나도 반가워, 에렉. "
아돌프는 곧바로 나를 데리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나는 그녀의 방 가까이에 있는 빈방으로 안내받았다. 순간 방안에 둘만 있을 때, 나는 그녀를 벽에 살짝 밀어넣고 그녀의 쇄골을 혀로 핥았다. 아돌프가 하읏- 하고 신음을 내며 내 가슴을 살짝 밀었다.
" 그.. 지.. 지금은 너무.. "
" 호, 날 밀쳐낸거야? "
"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사.. 사람들이 혹시 들으면 안되니까요. 죄.. 죄송해요, 발더스 공자님. "
하지만 곤란해하는 그녀의 얼굴이 재미있어서 나는 가슴을 강하게 움켜쥐고 주물럭거렸다. 그녀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면서도 한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한손으로 벽을 짚으면서 몸을 살며시 떨었다. 더 이상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쯤에서 멈췄지만, 오늘 밤은 아주 환상적으로 그녀를 안을 생각이다.
대충 내 방을 둘러보고 우리는 곧바로 백작에게 찾아갔다.
" 반갑소, 발더스 공자. "
" 안녕하십니까, 필립 백작님. "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백작은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있는, 꽤 인자하게 생긴 중년이었는데, 손으로 느껴지는 것은 생긴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강자. 백작도 소드 마스터였다.
' 호, 그래서 아돌프가 하지도 못하는 검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인가. '
" 이 아이가 누굴 데려왔나 싶었는데, 발더스 공자님이셨군요. "
" 저라서 실망하셨다면, 죄송하군요. "
그는 별말 않고 빙긋 웃기만 했다. 나와 아돌프가 나란히 앉고, 정면으로 백작이 앉아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아돌프는 몇번 심호흡을 하더니 고개를 확- 들어올리고 백작을 향해 입을 열었다.
" 아..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
필립 백작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날카로운 눈으로 내 위아래를 샅샅히 훑어보고 있었다. '말해보거라.'하고 아돌프에게 말하면서도 나에게 닿은 시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 저, 바.. 발더스 공자님을 주군으로 삼았어요. 그를 따를 거에요. "
그는 아무 말도 없다.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고, 여유롭게 내려가있던 손이 천천히 올라와 머리를 쓸어올렸다.
" 뭐, 제 아들을 낚아챈건 공자님이니 대답해주시길 바랍니다. "
" 물어보십시오. "
" 혹시, 섬기시는 분이 있습니까? "
아마도 지금 벌어지는 계승권 싸움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조용히 있다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 없습니다. "
" 그렇소? 나는 당신이 일리아나 왕녀님이나 필리아 왕녀님을 섬길 줄 알았는데 말이오. "
" 죄송하지만, 둘다 아닙니다. "
백작이 웃음기 있는 얼굴로 의자 등판에 몸을 눕혔다.
" 허허, 난 누굴 섬기는지 아시오? "
아돌프는 백작이 섬기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지만, 확실한건 아니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말은 자신이 누군가를 섬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 1 왕자만 아니면 되지만, 기분이 묘하게 나빴다.
" 설마. "
"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 분이 맞을거요. 제 1 왕자님이지. "
" 어쩌..실거죠? "
" 뭘 어째. 포기해야지. "
아돌프가 눈물을 흘리며 훌쩍거렸다.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자신의 아버지는 제 1 왕자를 섬긴단다. 나는 그녀를 가슴에 품고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거렸다.
" 흐앙. 죄송해요. "
" 어쩔 수 없지. 내일 당장 돌아가야겠네. "
그녀가 주춤거리다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눈물을 머금은 그녀의 모습이 상당히 귀엽다.
" 저도.. 따라가면 안되요? 이젠 발더스 공자님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
" 백작 후계자는.. 네 동생이 될텐데? "
" 상관없어요, 그런 자리는. 공자님만 있으면 되요. "
그 때, 우리들을 향해 누군가가 걸어온다. 약간 후미진 곳이었는데, 여기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나는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상황을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제지하지 않았다.
" 형..님? "
" 아, 에렉. "
아돌프가 황급히 돌아서서 흘린 눈물을 닦고 미소를 만든채로 에렉을 바라보았지만, 에렉의 눈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그 눈빛은 나를 향했는데, 그것은 마치 새끼를 뺏긴 어미 고양이의 눈빛 같다고 해야할까.
" 무슨 짓을 한거야. "
" 에렉! 너 지금 뭐하는 짓이니? 공자님, 죄송해요. 아직 철이 없는 녀석이라. "
" 형은 조용히 해! 당신. 처음부터 이상했어. "
에렉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 당신 소문도 이상한거 알지? 그리고 그 마수를 우리 형한테까지 뻗어?! "
" 에렉! 조용히 하지 못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잖아! "
" 뭐..? 형. 지금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내 형이 저런 나쁜 놈한테 뺏기는데,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했어?! "
아돌프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약간 물기를 머금은 눈으로 자신의 동생을 속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에 그녀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몸을 휙 돌린다.
" 어차피 떠날 거니까.. 너에겐 얘기할께. 공자님.. 괜찮겠죠? "
" 상관없지. "
그녀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 에렉을 응시했다.
" 난, 이제 여자가 됬어. 그리고, 공자님을 사랑해. 세상 누구보다도. "
" 무.. 슨 소리야? 그런 웃긴 소리로 날 설득할 생각이었어? "
" 정말이야. 난 이제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일 뿐이야. "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에렉이 아돌프의 위아래를 훑어본다. 나는 그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아돌프의 뒤로 가 그녀의 가슴을 잡고 주물럭거렸다.
" 읏, 고.. 공자님! "
그녀는 갑자스럽게 가슴을 만지는 내가 당황스러워서 소리를 쳤지만, 거부하는 손짓은 없다. 그녀도 에렉에게 이렇게 확신을 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 무슨 짓이야! 당장 형한테서 안 떨어져? "
" 네가 좋아하는 형은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 오직, 여자인 아돌프만 남았지. "
" 아읏, 공자님. "
우리는 잠시 진한 키스를 나누고, 멍-하게 그 자리에 굳어서있는 에렉을 남겨두고 자리를 피했다. 이 정도면 대충 알아들었을 것이다.
' 아마 백작가는 이 녀석에게 넘어가겠지? '
뭐, 무서울만한 녀석도 아니고, 장애물이 된다면 살풋 밟아주면 되니까.
백작가를 손에 넣는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된 것 같지만(백작을 살짝 없애도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아돌프를 생각해서 거기까지 행하지는 않았다.), 이런 가문 하나 없다고 힘들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 내일 곧바로 공작가로 돌아가야겠군. '
그녀의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곧바로 뜨거운 키스를 하면서, 침대 위로 쓰러졌다.
다음날, 우리는 곧바로 백작가를 떠났다. 아돌프도 미련없는지 백작가를 벗어날 때 동안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으니 좋다면서 내 품에 안겼다.
" 그러면, 백작가는 네 동생에게 넘어가는건가? "
" 그렇겠죠. "
" 후회 안해? "
아돌프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 어차피 그런 직위는 저랑 안맞아요.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
" 넌, 남자로 태어나서는 안될 놈이었네. "
그녀와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이틀을 달렸다.
저멀리서 공작 영지의 거대한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여기로 돌아왔다. 학원을 떠날 거라고 미리 얘기를 해놔서, 내 도착을 알리는 병사가 성안으로 들어가 델프시 공작을 데리고 나왔다.
" 오오, 아들아. 별탈은 없었고? "
" 네,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
"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온거냐?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고. "
나는 아돌프와 델프시 공작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흘러온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얘기했다. 일리아나 왕녀와 손을 잡은 것부터, 필리아 왕녀에 대한 얘기까지. 공작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어깨를 잡고 입을 열었다.
" 뭐, 언젠가는 누군가의 손을 들어줘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네가 선택한 것을 존중하마. 이 애비는 네 편이다. "
" 이해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 "
공작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났으니 이제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다. 서둘러 왕성으로 들어가야했다. 나없이 일리아나 왕녀가 얼마나 버텨줄지 걱정도 되고, 에덴과 보리를 오랜만에 만나고 싶기도 했다.
" 오늘 당장 떠난단 말이냐? 하루쯤은 쉬었다가도 되지 않느냐. "
" 안타깝지만, 한시가 급합니다. 이미 필리아 왕녀가 계승권 싸움에서 져서 꼬리를 말았잖습니까. 일리아나 왕녀도 불안불안해서 그렇습니다. "
공작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살포시 안았다. 따뜻한 부정이 내 가슴을 타고 흐른다.
" 널 믿는다, 발더스. 넌 하나뿐인 내 아들이야. "
" 아버지! 꼭,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
마차가 천천히 출발한다. 델프시 공작은 마차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바라본다. 아돌프는 부러운 눈으로 우리를 번갈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 부럽네요. 부자간에 정이 참 깊어서요. "
" 그렇지. 흠, 여기서 왕성까지 얼마나 걸리지? "
우리를 따라 달려오는 레이에게 물으니, 대략 삼일은 잡아야한다고 대답한다. 어차피 큰일도 생기지 않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왕성으로 복귀해야한다. 머뭇거리다가 정말로 제 1 왕자가 계승권을 가져가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 최대한 빨리 달려! "
마차는 최고 속도로 힘차게 달리기 시작한다.
다행히 죽어라 달리는 덕분에 이틀만에 왕성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일리아나 왕녀의 궁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와 내 품에 안겼다. 그동안 꽤 고민이 깊었는지 그녀의 얼굴 피부가 푸석푸석하다.
" 하아. 발더스 공자. 정말 기다렸어요. "
" 별 일은 없었고? "
" 네, 큰일은 없었어요. 다만, 왕성의 분위기가 보통이 아니에요. "
그럴 것이, 쫓겨났던 필리아 왕녀가 일리아나 왕녀의 손을 잡고 등장했으니, 제 1 왕자의 세력도 바짝 긴장한 채 날을 세웠을 것이다. 나와 아돌프는 허기진 배를 채우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녀에게 직접 들었다.
" 호, 다시 팽팽해졌단말이지? "
" 네. 제가 등장해서 그런지 언니쪽 세력이 힘을 내서 일어선 모양이에요. "
" 그럼 지금 둘다 세력을 끌어모을려고 혈안이 되어있겠구만. "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돈과 여자다. 일단은 제 1 왕자를 직접 만나봐야할 것 같아서 일리아나 왕녀에게 부탁하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쪽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제가 찾아갈 수가 없어요. "
아마도 암살의 위험까지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만큼 왕자는 매사에 신중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미리 심어놓은 첩자를 이용하는 수 밖에.
' 크크크, 드디어 메넬을 불러야겠군. '
이미 모든 판은 내 손안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아주, 철저하게 말이지.
============================ 작품 후기 ============================
3 왕국을 서둘러 다 흡수해야겠네용. 히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