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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공기가 싸늘하다. 지금 내가 어디있는거냐고? 바로 겔 왕국의 왕성의 벽에 있다. 나는 아지트에서 곧바로 겔 왕국으로 출발했는데, 겔 왕국의 왕을 죽이기 위함이었다. 물론 왕의 침실을 지키는 경비가 있겠지만, 나한테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못한다.
" 읏차! "
단검을 역수로 양손에 쥐고 왕궁의 벽을 탔다. 마나를 가득 실어서 벽에 푹푹 박고 천천히 기어올라가서 저 위에 보이는 테라스까지 도달했다.
화려한 테라스라서 혹시했는데, 역시나 왕의 침실이었다.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나같이 벽을 타서 올라올 생각이 아니었으면 테라스에 올라온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테라스의 창문도 잠겨있지 않았는데, 별다른 위험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나는 수월하게 침실로 침입해서 침대 위에서 자고있는 왕과 왕비를 내려다보았다.
관계를 맺고 잠이 들었는지 왕과 왕비는 나체였다.
" 잘들 가시게. "
나는 단검으로 왕과 왕비의 심장을 동시에 찔렀다. 둘은 억-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피를 쏟으며 죽었다.
내일 아침, 아마도 겔 왕국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물론 선물로 편지도 한장 남겼다.
내용은 간단했지만 루시우스 왕자가 이것을 본다면 필히 나탈리아 왕녀가 쓴 것이라고 확정지을만한 것이었다. 이것으로 떡밥도 뿌려뒀으니, 이제 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기만 기다리면 될 일이다.
' 나탈리아 왕녀. 감히 날 거절했겠지? 크크크, 너는 제대로 나한테 찍혔어. '
그녀에게 곱게(?) 복수할 생각은 없었다. 아주 철저하게 파괴한 뒤에, 영원히 내 아래에서 울부짖게 만들 생각이었다. 나는 한번 키득 웃고 테라스를 통해 왕의 침실을 빠져나왔다.
예상대로 겔 왕국은 난리가 났다. 난데없이 왕과 왕비가 암살자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조용할 리가 없었다.
누가 암살자를 보냈는가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많았는데, 누구도 제대로 맞추는 사람이 없었다. 왕국의 수도에서의 최대의 이슈가 바로 그 배후가 누구인지를 예측하는 것이었다.
술자리에서도, 잠자리에서도 그 얘기뿐이었다. 왕과 왕비의 상을 치루고 루시우스 왕자가 왕위에 올랐다.
오름과 동시에 그는 어수선한 나라를 다시 잠재우기 위해서 여러 일들을 시행했는데, 특히 주변 도적 소탕에 열을 올렸다.
" 분명히 배후는 그로시아 왕국일거야. "
" 그게 무슨 소린가? "
내가 술집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가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 지금 루시우스 왕께서 병사들에게 도적 소탕을 시키는 이유가 뭘 것 같나? 바로 전쟁이지! 전쟁을 대비하는 거란 말이야. 그래서 병사들을 조련시킬 겸해서 도적까지 소탕하는 것이지. "
" 들어보니 그렇네. 아니, 그런데 왜 하필 그로시아인가? 프랑크 왕국도 있잖나. "
주장을 펼쳤던 사내가 손을 휘저으면서 자신에게 반문한 사내를 멍청하다는 눈빛으로 흘겨본다.
" 에잉, 멍청하기는. 지금 왕위 계승권 싸움으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프랑크 왕국에서 이런 일을 저지르겠나? 당연히 그로시아에서 이 일을 저지르지. "
" 그.. 그런가? "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겔 왕국은 프랑크 왕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특히, 나탈리아 왕녀를 콕 집어서 전쟁 의도를 밝혔는데, 겔 왕국의 왕과 왕비를 죽인 원흉이라는 이유였다.
물론 어이가 없는 나탈리아 왕녀가 반발했지만, 루시우스 왕이 그것을 이해할 리가 없었다. 오로지 부모님의 원수라고 생각하면서 처참하게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겔 왕국의 수많은 병사들과 기사들은 프랑크 왕국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프랑크 왕국은 계승권 싸움으로 이미 상처 투성이였는데, 겔 왕국과의 전쟁까지 겹친다면 정말로 위험한 상황까지 올 수도 있었다.
적당히 타협을 봐야했는데, 루시우스 왕은 결코 타협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제서야 프랑크 왕국은 그로시아 왕국으로 도움을 청했다.
물론 그로시아 왕국은 프랑크 왕국에게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다. 입술이 없으면 잇몸이 시린법이기 때문이었다.
" 이제 슬슬 나도 움직여야겠지. "
겔 왕국에서 여러 소식을 듣고 있던 나는 프랑크 왕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메넬과 브룩이 나를 반긴다. 이미 프랑크 왕국은 내 계획대로 차근차근히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좋은 소식이다.
" 왕자는 어떻고? "
" 손을 써놨습니다. "
" 그래? 잘했어. "
왕자를 이미 손에 넣었으니, 이젠 나탈리아 왕녀만 잡아두면 될 일이다. 일단 그로시아 왕국에서 프랑크 왕국을 도와주기로 했지만, 조만간 그 도움은 받을 수 없을 것이다.
' 왜냐? 프랑크 왕국이 멸망 직전까지 가야하니까 말이지. '
소문에 의하면, 나탈리아 왕녀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돌파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데, 그게 잘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테니, 이때 내가 쨔잔- 하고 나타난다면 틀림없이 손을 뻗을 것이다. 물론 항상 마음 속에 의심을 품겠지.
나는 그녀가 자고 있는 방에 몰래 숨어들어갔다. 이럴 때는 그녀의 목숨이 내 손에 있다는 것을 주지해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침대에 걸터앉아서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흐트러져있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올렸다.
그녀가 흠칫- 하고 놀라면서 눈을 번쩍 뜬다. 비명을 지르려고 포즈를 잡는 그녀를 향해 나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져다 대었다.
" 쉬쉬. 해치려고 온게 아니니까 입 다물어. "
" 당신 누구야. "
그녀는 나를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이불을 끌어다가 몸에 칭칭 감았다. 혹시 내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하면 비명을 지르겠다는 얼굴이었는데, 나는 그녀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서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리고 아무런 악의도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긴장을 살짝 풀면서 입을 연다.
" 왜 여길 온거야. 목적을 말해. 또 당신은 누구고. "
" 하나하나 천천히 물어. 제일 먼저 물어보고 싶은게 뭐야? "
" ... 당신 누구야. 암살자는 아닌 것 같고. 왜 하필 내가 자고 있는 이런 밤에 들어온거지? "
나는 씩 웃으면서 자리에 일어나 의자에 걸터앉고 다리를 꼬았다.
" 나는 '레온 프라하스타'라고 한다. 용사지. "
" 하, 용사? 장난은 집어쳐. 난 진지하니까. 그딴 식이라면 바로 기사를 부르겠어. "
" 워워, 정말이야. 뭐, 그럼 용사라는 것은 잠시 접어두지. "
나탈리아 왕녀는 마음에 안든다는 얼굴로 내 위아래를 훑어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여기 들어온 목적이 뭐야? "
" 그건.. 바로 너의 힘이 되어주기 위해서지. "
" 나의.. 힘?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이불을 살며시 내리고 내쪽으로 슬며시 몸을 옮겨왔다.
" 그래. 지금 네 상황이 딱해보이는데, 도와주고 싶어서 말이야. 물론 대가는 있지. "
그녀는 그냥 도와준다고 했다면 아마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을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대가라는 말을 듣자 오히려 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의심하던 표정이 살짝 풀린다.
" 일단 대가부터 들어볼께.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기사를 부를거야. "
" 기사가 오는게 빠를까, 내가 네 목을 따는게 빠를까. "
" ... "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고 날 노려본다. 뭐, 동업자가 될건데 처음부터 나쁜 감정을 부여할 필요는 없으니 여기까지만 해야겠네.
" 뭐, 어쨌든 대가는 별거 없어. "
" 말해. "
" 날.. 프랑크 왕국의 2인자로 만들어주면 돼. 물론 1인자는 네가 할테니까. "
고민하는 눈치다. 내가 정말 진심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고민해봤자 뚜렷하게 나올 것은 전혀 없다. 지금 그녀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일테니, 분명히 내가 뻗은 손을 잡을 것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상하다 싶으면 중간에 떼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 좋아. 2인자의 자리를 주지. 하지만, 어설프게 도와줬다간 없느니만 못한건 알고 있겠지? "
" 물론. 확실하게 도와주도록 하지. 루시앙 왕자? 훗. 그 정도쯤이야 나 혼자만으로도 싸그리 해치울 수 있어. "
내 자신만만함이 그녀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약간 풀렸다. 그녀는 하품을 쩍- 하더니 나에게 손을 휘휘 젓고 축객령을 내린다.
" 그럼 이만 나가봐. 난 피곤하니까. 레온.. 프라하스타라고 했지? 내일 낮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
" 좋은 꿈 꾸길, 레이디. "
물론 그녀는 진정한 악몽으로 발을 들였다는 것은 꿈속에서도 모를 것이다.
" 겔 왕국의 병사들이 지금 프랑크 왕국으로 진격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 "
나탈리아 왕녀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너무나 골치였다. 자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데, 정말로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미치고 환장할 것 같지만, 사람들은 믿어주는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 어떻게 이 상황을 이겨내야하는데? "
" 없어. "
" ... 뭐? "
황당하게 바뀐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또박또박하게 대답했다.
" 없다고. 네가 해야하는 일은 지금 계승권을 왕자에게 넘겨주는 일뿐이야. "
" ... 말이 되는 소릴해. 죽어도 그런 짓은 못해. "
" 정말 죽는다고 해도? "
" ... "
아무리 그래도 계승권이 목숨보다 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왕자에게 준다면 잘못하다가 영영 되찾을 수도 없다. 혹시 프랑크 왕국이 겔 왕국을 무찌른다면? 그렇다면 자신이 여왕이 되는 것은 무리다.
" 아니, 프랑크 왕국은 절대 겔 왕국을 못 이겨. 내가 그렇게 만들거거든. "
그것도 그것나름대로 문제가 있었다. 망국의 여왕이 될바엔 차라리 여왕이 안되는 것이 나을테니까.
" 하지만, 그로시아 왕국이 프랑크 왕국을 도와주기로 했단 말이야. "
" ... 편지 받았지? 그로시아 왕국의 제 1 왕자에게. "
나탈리아 왕녀가 깜짝 놀라면서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다.
" 내가 모르는 것은 없어. 모든 사방에 내 정보원들이 깔려있지. 프랑크 왕국도 예왼 아니야. "
그녀는 이를 살며시 갈다가 서랍을 열어서 편지를 꺼냈다.
" 그래. 편지를 받았어. 이제 왕자도 궁에 유폐됬다는데 필요도 없잖아? "
" 만약에 그로시아 왕국에게 이것을 왕자가 받았다고 하면서 건네준다면? "
그제서야 그녀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다가 서서히 인상을 찌푸렸다. 나를 노려보는데, 그 눈빛에는 혐오스러움도 섞여있다.
" 이걸.. 노린거였어? "
" 어쩔 수 없잖아. 지금 왕자가 망하게 해둬야지. 그래야 뺏기 쉬우니까. 그런 다음에 네가 계승권을 다시 뺏어와서, 겔 왕국을 무찌르면 아주 완벽해지는거야. "
" .. 괜찮긴 하네. "
그녀도 내 계획을 인정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상 좋은 시나리오는 없어보인다. 적을 이용해서 내부의 적을 무너뜨리고, 남은 적을 무찌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그녀는 내게 편지를 건네주면서 입을 열었다.
" 그러면 이걸 그로시아 왕국에 전해. 나도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봐야하니까. 너랑만 얘기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거든. "
당연히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의논을 해봐야했다. 하지만, 일단 내 의견에는 찬성하는지 편지를 그로시아 왕국으로 보내라고 명했다. 아마 그녀도 이 방법을 밀고 나갈 생각인 것 같다.
" 분부대로. "
나는 그녀의 손에 들린 편지를 낚아채고 뒤돌아섰다. 크크크, 멍청한 년같으니. 나는 그녀의 방에서 천천히 나와서 밖에 대기하고 있는 내 부하녀석에게 편지를 건넸다.
" 이걸 그로시아 여왕에게 전달해. '발더스 그레이스' 이름을 대고. "
" 옙! "
이걸로 그로시아의 원군은 물건너갔다. 이젠 프랑크 왕국의 제 2 왕자의 세력이 겔 왕국에게 무너지기만 하면 끝이다.
' 크크크, 이제 3 왕국이 눈앞에 다가왔군. '
실컷 웃고 싶었지만, 그녀의 방앞이라서 조용히 비웃음만 만들고 천천히 다리를 움직였다.
그렇게 정복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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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개강이네요 ㅜㅜ 다들 즐거운 새학기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