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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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칼에 뿜어져 나오는 푸른 오러가 점점 더 짙어진다. 그 남자는 자신의 자존심이 상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음 본선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내 목숨을 노릴 생각인가보다. 이제 데스 매치는 나와 그 남자의 싸움에만 집중되어버렸다. 이거 생각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데?

" 이야아아아앗! "

보통 사람이 보기엔 잔상만 남을 정도로 나에게 빠르게 달려온 그는, 칼을 강하게 횡으로 그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허공만 갈랐다. 이번에는 그도 방심하지 않고 사라진 나를 찾아서 고개를 휙휙 돌렸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의 뒤를 점하고 있다. 내가 그의 등에 손가락을 쿡 찔러넣자, 그는 얼음이 되어버렸다.

" 넌 이미 죽었어. "

내 말뜻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고 있는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 다.. 당신은 누구야. 어떻게 내 눈을 속이고..! "

" 뭐, 너도 그다지 약하지는 않지만 나에겐 너나 일반인이나 비슷해. "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눈을 내리깔았다. 이제 나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기권해야할 듯 싶어서 손을 들려고 했는데, 내가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이정도 강자면 분명히 나에게도 쓸모가 있을 것이니까.

" 가만. 너에게 흥미가 생겨서 말이지. 토너먼트에 올라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 귀찮으니까 다른 녀석들을 물리쳐주지 그래? "

" ... 날 동정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거절하지요. "

" 아니, 너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거야. 토너먼트에 올라와 나와 다시 싸울 기회가 생긴다면, 나의 전력을 보여주지. "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내가 건넨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확실히 군침이 돌만한 제안이었다. 나는 그에게 확실히 쐐기를 박기 위해서 한마디 말을 더 뱉었다.

" 너정도 강하다면, 충분히 나중에 크게 될 재목이니까. 여기서 무너지기엔 아깝지 않나? "

나만큼의 강자에게 이정도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을 날아갈듯한 기분일 것이다. 물론 나에게 졌다는 것은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강자와 대결해서 패했다는 것은 그래도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랑이 될 수도 있다.

" ...좋습니다. 다음 토너먼트에는 저도 모든 실력을 보이겠습니다. "

그가 나의 손을 잡았다. 이제 나와 팀을 맺은 거나 다름없어져버렸기에, 다른 참가자들이 사색이 되면서 서로를 바라본다.

" 저.. 저게 뭐야. "

" 설마 둘이 손잡은거야?! 그럼 우린 떨어진거나 마찬가지잖아! "

그들은 서로서로 바라보더니 검을 움켜쥐었다. 차라리 전부 손을 잡고 그 둘을 물리쳐야할 것처럼 보였는지, 다들 말이 없어도 해야할 일을 알고 있었다.

" 모두 쳐!! "

나의 손을 잡은 남자가 그들을 힐끗 보다가 내 손을 놓고 검을 쥐었다.

"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

" 이름이라. "

참가자들이 우리들에게 우르르 몰려온다. 마치 개미떼들이 반항하듯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 같다. 간단히 발로 질끈 밟으면 모두 죽어버릴 것 같은.

" 레온. '레온 프라하스타'다. "

나는 '이빌'이라는 남자와 간단하게 데스 매치에서 토너먼트로 올라갔다. 그는 용병에서 꽤나 명성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 용병일을 전부 청산하고 수도에 정착하기 위해서 무투 대회에 참가했다고 한다. 마침 스테이지에서 내려온 나에게 에덴이 뛰어와 축하한다고 말을 건넸다.

" 축하해요, 레온. "

" 아, 그래. 이쪽은 이빌. 용병...은 이제 아니고, 뭐 자유로운 신분이랄까. "

" 반갑습니다, 음. "

" 에덴이라고 해요. "

이빌이 약간 머뭇거리자 에덴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보통은 싹 무시하는 편이었지만, 내가 먼저 이빌을 소개한 것으로 보아서 무슨 이용가치가 있겠다고 느낀 모양이다. 확실히 나와 같이 생활하면서 눈치 하나는 굉장해진 것 같다.

" 반가워요, 에덴씨. 그럼 저는 이만 토너먼트를 준비하러가겠습니다, 레온씨. "

" 그러세요. 다음에 만날 때는 좀더 발전한 모습이 되길 빕니다. "

" 그럼. "

이빌이 토너먼트 참가에 대한 등록때문에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나는 에덴을 한번 껴안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내일 잘 마무리하도록 해.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으니까. "

" 물론이에요, 레온. "

다음날, 당연하게 그녀는 압도적으로 데스 매치에 통과하여 토너먼트를 신청했다. 내일이 마지막 데스 매치가 있는 날인데, 데스 매치가 끝난 후에 정확히 일주일 뒤, 토너먼트가 시작된다.

이번 토너먼트도 무작위로 뽑히는 것인데, 103개 조에서 총 206명이 선출될테니, 부전승까지 포함해서 마지막 최후의 8인이 되면 예선에 참가할 수 있다. 예선은 총 16명이 참가하는데, 거기서 두번의 시합을 토너먼트로 진행해서 마지막 본선에 참가할 4명을 남긴다.

본선만 진출하게 된다면, 이미 암흑 제국의 황실 기사단에 스카웃되는 것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 다들 준비는 철저하게 하고 있지? "

" 물론이에요, 용사님. "

나는 성녀를 뒤뜰에 몰래 불러냈다. 우리 일행은 일주일간 여러 가지를 대비해서 황궁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는데, 제일 철저하게 대비한 것이 바로 신분 위장이었다.

나의 신분은 산골 마을에서 자라서 후에 대도시로 훈련하러 나온 예비 기사였다. 물론 예비 기사치고는 지나치게 강한 면이 있지만, 내 천재성을 강조하면 그 정도쯤은 쉽게 속일 수 있다.

에덴과 발락도 적당히 신분을 속였는데, 우리 일행은 무투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수도로 왔다가 우연하게 만난 것으로 되어있다.

" 아주 잘했어, 이렐린. "

그녀의 찰랑이는 머릿결을 쓰다듬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면서 미소를 지었다. 백설 공주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마치 한 마리의 암사자같은 느낌이었다면(물론 나중에는 부드럽게 바뀌었지만), 지금은 주인에게 애교부리는 다소곳한 고양이랄까. 어느정도 달구어줄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쪽 맞췄다.

" 주신 '쥬논'의 가호가 있기를. "

정말로 가호가 내려지는지, 그녀의 몸에서 환한 빛이 나오다가 사그라들었다. 사실 이건 요정의 축복이다.

" 고.. 고마워요, 용사님. "

사실 그녀를 암흑 제국에 데리고 온 것도, 모두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함이었다. 어차피 나에 대한 애정도는 만땅이겠지만, 닥치고 따먹기만 해버린다면, 이런 게임을 하지말고 다른 게임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내가 이 'Fairt Tale'을 하는 이유는 다른 판타지 세상을 느껴보고 싶기도 하고, 내 속에 잠들어있는 사악한 욕구도 풀어내고 싶기도 해서랄까? 물론 사악한 욕구는 성욕뿐만 아니라, 권력과 흑막같은 것도 있다.

' 특히 캐릭터들이 내 함정을 깨닫고 절망하는 표정이 너무 재밌어서 그렇지만 말이야. '

성욕 다음으로 제일 즐기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 난, 너를 좋아해. "

" 저.. 저도 용사님을 좋아해요. "

" .. 말을 바꿔야겠네. "

나는 다른 남자들이 본다면 구역질을 할만한 느끼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손가락으로 쇄골을 훑었다. 그녀가 살짝 움찔하면서 나를 올려다본다.

" 사랑해, 이렐린 성녀. "

" !! "

그녀가 뜨거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는 성녀. 자신을 주신에게 바쳐야하는 사명이 있는 여자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금기였지만, 사실 사랑을 느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나에게 끌릴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나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절대 거부할 수 없는, 그런 절대적인 것과 같은.

" 저.. 저는. "

이렐린은 자신이 성녀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나에게 돌리게 해서 내 눈을 바라보게 했다.

" 너도 날 사랑하지 않아? "

" ... 사.. 사.. "

하지만, 그 이상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분명히 날 사랑하고 있지만, 그 이상 말한다면 안된다는 것이 뇌리에 박혀있는 듯 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것이 더 재미있을지도. 사실 나는 히폴리아 성기사가 나를 따라온 것이 아주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성녀와 성기사가 서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이 재밌어보이니까.

" 그래. 어쩔 수 없지. 이해해. "

나는 그녀를 푹 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사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히폴리아가 보고 있다. 아마 꽤 경악한 표정일 것이다. 오직 주신에게만 보내야하는 사랑을 나에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비록 내가 신의 대리인이자, 대륙을 지킬 용사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리인일뿐이지 주신 그 자체는 아니니까.

나는 성녀를 향해 먼저 숙소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괜히 같이 들어갔다가 오해받으면 안될테니까. 하지만, 사실 다른 목적이 있었다. 바로 히폴리아. 내 예상대로 성녀가 사라지자마자, 그녀가 내게 다가온다. 규율에 아주아주 엄격한 그녀가 이런 것을 보고 있을리가 없기 때문에.

" 용사님. "

" 아, 히폴리아. "

그녀는 인상을 약간 찌푸린채 내 앞까지 다가와 입을 열었다.

" 방금, 성녀님과 무슨 상황이지요? "

" .. 봤구나? "

" 아무리 용사님이라고 해도, 당신께서 신의 대리인이라고 해도, 성녀님과의 사랑은 불가합니다. 당신을 섬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결국 몸과 마음을 전부 바쳐야하는 것은 주신 '쥬논'뿐입니다. "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히폴리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 넌 신경쓰지 않아도 돼. 이건 성녀와 나의 문제니까. "

그녀가 약간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고작 성기사인 그녀가 용사인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아마도 이 사실을 신성 제국의 교황이나 다른 대주교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 그것이 내 의도이기도 하지만. '

나는 먼저 실례하겠다고 말하고 그 장소에서 벗어났다. 아마도 그녀는 꽤 고심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성녀와의 썸썽은 이것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그와 동시에 히폴리아도 공략할 생각이다.

' 크흐흐, 재밌겠는데. '

히폴리아가 성녀를 질투하게 만든다면, 볼만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차피 네임드 캐릭터만 뺀다면, 다른 캐릭터들이 어떻든지간에 내 여흥거리에 불과하다. 내 목표는 오직 마녀와, 잠자는 공주일뿐. 어차피 이렐린은 나에게 속박된 소환수니 신경쓸 필요도 없다.

' 하루 빨리 우승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

과연 마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일단 제 1 황녀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뿐이다. 너무 한쪽으로만 쏠리게 되면 일을 망치기 쉬운 법. 언제나 다른 방향의 가능성에도 문을 열어놔야한다.

" 그나저나, 아직도 잠자는 공주의 초대를 받은 요정을 못 찾은건가? "

네임드 캐릭터에 유일하게 속하는 요정을, 엘류나크가 아직도 찾고 있었다. 사실 이정도 시간이 지나면 찾아야 정상일텐데, 아직도 못 찾았다는 말은 분명 요정에게 무언가 일이 일어났다는 것밖엔 없었다. 그래서 그 수소문이라도 하기 위해 엘류나크가 온 사방을 헤매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달된 말은 없다.

' 뭐, 일단은 이번 계획에 집중하자. '

이제 얼마있지 않으면 황녀를 볼 때가 다가올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마녀의 진전을 이어받았다고 확정이 된다면, 바로 납치하여 드래곤 산맥을 넘어야한다.

과연 암흑 제국은 얼마나 날 즐겁게 해줄지 궁금하다.

이번에는 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게 해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숙소로 돌아간다.

============================ 작품 후기 ============================

읏.. ㅜㅜ 요새 너무 바빠서 힘드네요.

어쩔 수 없이 2일 1연재로 바꿔야할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들, 죄송해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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