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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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드래곤이라고 했어? "

엘류나크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게임 플레이 중에서 최대의 난관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아무리 내가 강하다고 할지라도 드래곤이라면 얘기가 약간 틀려진다. 그랜드 마스터가 드래곤과 일대일을 뜰 수 있다고들 하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공중까지 능수능란하게 오갈 수 있는 능력과, 무시하지 못할 엄청난 크기의 몸체는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고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물론 나는 그랜드 마스터를 뛰어넘은 실력자가 되었지만(그 과정은 skip으로 넘어갔으니 따지지 말자), 드래곤과 싸워서 이긴다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 그래도 안 갈 수가 없잖아?! '

아무리 드래곤을 이길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 요정을 구해야한다.

" 아니, 왜 드래곤한테 있는건데?! "

" 소유..욕이라고 해야할까요? 우리가 마치 예쁜 보석을 발견하고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거에요. "

엘류나크의 말을 들어보니, 요정이 드래곤의 눈에 띄어서 갇혀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도 한번 블루 드래곤에게 갇힐 뻔 한 적도 있다고 나에게 설토했다.

" 어떤 드래곤인데? 누군지는 알아왔겠지? "

" 네. 마침 드래곤 산맥에 있다고 들었어요. 다행히도 그린 드래곤이구요. "

그나마 드래곤 중에서 가장 약하다는 그린 드래곤이어서 다행이다. 그렇다면, 황녀를 납치해서 드래곤 산맥을 넘어갈 때... 잠깐. 순간 내 머릿 속을 치고 지나가는 엄청난 작전이 있었다. 이거 꿩먹고 알까지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잖아?!

" 어쨌든, 엘류나크. 잘했어. 상까지.. 흠흠.. 주고 싶지만, 상황상 힘들겠군. "

" 흐.. 흥! 어차피 기대도 안했어요. 이.. 이만 가겠어요. "

엘류나크가 약간 기대하는 눈으로 날 물끄러미 보다가, 내 말에 흥- 하고 토라지면서 사라져버린다. 츤츤- 거리는게 아주 내 마음을 뒤흔들고 가니, 다음에 그녀를 한번 실컷 안아줄 생각을 가졌다.

하여튼, 드래곤이라.. 드래곤, 암흑 제국. 크크, 참으로 볼만한 영화 한편이 나오겠는데? 내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진다.

드디어 4강전이 시작되었다. 나까지 포함하여 8명이나 되는 참가자들은 스테이지로 올라와 황제에게 인사를 건넨 뒤에 페어플레이를 하겠다고 선서했다. 그런 다음에 바로 4강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3번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2번 참가자와 곧바로 붙게 되었다.

" 서로 최선을 다합시다. "

" 그러죠. "

지역 예선전 중에서 수도 우승자인 2번 참가자는 나에게 한번 인사를 건네고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씩 웃는 채로 그저 뒷짐만 지고 있었다. 관객들은 이번에도 검을 뽑지 않는 나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찬다.

강력한 우승 후보인 2번 참가자를 상대로 검을 뽑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그 모습은 곧 경악으로 뒤바뀔 것이다.

" 검을 뽑으시죠. "

" 당신 정도야 두 발로만으로도 쉽게 상대할 수 있습니다만. "

내 상대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자세를 낮췄다.

" ... 곱게 이길려고 했는데, 팔 하나는 잘려야 정신을 차리겠군. "

" 호, 그래.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 남자지. "

상대는 나에게 순식간에 쇄도하더니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나는 몸만 살짝 움직이면서 검을 수월하게 피했다.

상대는 방심하지 않고 다시 곧바로 내 가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무런 마나의 반응도 없던 검이 갑자기 마나로 휩싸이더니 길게 쭉 늘어난다.

그런 공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나는 급작스럽게 뒤로 몸을 날렸다.

" 호, 이걸 피하다니. "

다행히 아무런 피해도 없다. 하지만, 아주아주 기분이 더럽다고 해야할까. 아주 잠깐이지만, 날 당황하게 만들어? 크크크, 넌 오늘 멀쩡하게 집까지 걸어가게 만들지는 않겠어.

" 이제 제대로 가주마. "

" 와랏...?! "

그가 무언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의 몸이 붕 날라서 저멀리 바닥에 쳐박혔다. 나에게 얼마나 강하게 맞았는지, 그는 꺽꺽 하면서 숨을 쉬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내지 않고 나는 다시 한번 더 그의 옆구리를 발로 강하게 찼다.

- 펑!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가 다시 바닥을 뒹굴었다. 이미 검은 저멀리 팽개쳐진지 오래다. 나는 숨을 겨우 몰아쉬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머리에 발을 얹었다.

" 이제 너와 나의 격차를 알겠지? "

" 헉... 허억... "

그제서야 그의 눈에 공포의 빛이 감돌았다. 어쩌면 나를 드래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드래곤과 거의 동급으로 강한 것은 맞지만, 안타깝게도 드래곤이 아니라, 드래곤을 사냥해야할 인간이다.

" 너무 건방져서 팔 하나 정도는 으스러트릴려고 했지만, 그 눈빛이 마음에 들어서 봐주지. 다음부턴 상대를 알고 까불어라고. "

나는 그의 볼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관객들도, 심지어 황제도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심판이 말을 더듬더듬 꺼냈다.

" 3.. 3번 참가자, 레온 프라하스타 승! "

내가 팔을 번쩍 들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온다. 순식간에 시합이 끝나버려서 싱거운 면도 있지만, 이렇게 엄청난 강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기쁨이나 다름없었다. 몬스터 산맥과 바짝 붙어있는 그들에게는 한명 한명 강자들이 모두 국력이나 다름없다.

" 우와아아아아아아아!! "

귀가 떨어져나갈 듯한 환호성을 받으면서, 나는 스테이지에서 내려왔다. 4강전도 시시하게 끝내버렸으니, 이젠 상대방들도 긴장하겠지? 이젠 준결승이니, 임팩트도 그에 못지 않게 클 것이다.

' 이정도면 황제나 황녀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심어줬겠지? '

조만간, 이 짓거리도 끝날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어둠으로 둘러싸인 긴 통로를 걸어갔다.

암흑으로 뒤덮여있지만, 나의 눈에는 마치 아침처럼 환하다.

그 뒤로, 준결승전과 결승전은 수월하게 끝냈다. 워낙 강한 임팩트를 심어줘서 그런지, 상대들은 나에게 제대로 공격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줄줄이 바닥을 뒹굴었다.

역시 4강전에서 맞붙었던 상대가 그나마 가장 나았다. 물론 결승에서는 마지막 내 신위를 보여주기 위해서 검을 뽑아서 상대방의 검을 싹뚝 잘라버림과 동시에 끝을 맺었다.

" 이로써, 이번 무투대회의 우승자는... 레온 프라하스타! "

내가 검을 든 손을 번쩍 들었다. 엄청난 함성 소리가 대회장을 가득 메웠다. 이제 시상식과 함께 황제를 만나러갈 차례다.

" 자네가 레온 프라하스타구먼. "

" 반갑습니다, 황제 폐하. "

황제는 두 명의 호위를 받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두 명은 혹시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까 싶어서 긴장한 채로 경계하는 중이었지만, 나는 황제에게는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오직 제 1 황녀뿐. 아니, 사실 제 2 황녀도 관심에 넣긴 했지만, 내 감은 확실히 제 1 황녀가 맞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 이번 우승자는 정말로 강하더군. 역대 무투 대회의 우승자 중에서 가장 강할 것 같아서, 내 기대감을 부풀게 만들었어! "

" 기대..감이라뇨? "

" 흠. 그건 나중에 얘기함세. 자, 일단 우승자에게 상을 내리지. "

원래 사실은 준우승자와 같이 시상을 해야하지만, 내가 그를 기절시키는 바람에 시상은 나 혼자만 했다. 나는 황실 기사단에 임명됨과 동시에, 수도에 있는 저택을 선물로 받았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 오늘 무투 대회를 마치는 겸해서 황성에 파티가 있는데, 알고 있는가? "

" 물론입니다. 반드시 참가하겠습니다. "

" 껄껄. 그래. 자세한 얘기는 이 사람이 전해줄거야. 우승을 축하하네. "

황제는 그 말을 끝으로 내 어깨를 두번 툭툭 치고 뒤돌아 가버렸다. 아쉽게도 황녀를 가까이서 보지 못했지만, 파티에서 만날테니 실망하지는 않았다.

나는 대기해있는 고위급 귀족에게 파티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전해들었다. 뭐, 한마디로 하면, 무례하게 굴지 말고 예의를 지켜야한다는 말이었는데, 뭘 그렇게 길게 칭얼칭얼 얘기하는지. 마음같아선 주먹으로 입을 때려버리고 싶었지만,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릴 순 없는 법이니까.

" 축하해요, 레온. "

에덴이 미리 나와서 나를 맞이해줬다. 발락도 나를 향해 박수를 몇번 쳐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안타깝게도 준결승에서 떨어져서 나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3, 4위전에서 깔끔하게 이겨 3위를 차지하는 덕분에 굴욕은 면했다.

" 이제 이것도 끝났고 하니 다음 차례로 넘어가지. 저택은 감시 받을 수 있으니까, 계속 여관 안에서 지내도록 해. "

사실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보리와 이렐린, 그리고 히폴리아와는 요새 만나지 않고 있다. 오직 에덴과 발락하고만 교류했는데, 다른 사람 눈에는 아마 무투 대회에서 친분을 쌓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 다들 파티갈 준비해. 어차피 예선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파티에 참가할 수 있으니까. "

" 전 아닌 걸요? "

" 넌 내가 특별히 데리고 가면 뭐라고 할 사람도 없어. "

에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파티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깔끔한 정복도 필요했는데, 마침 황제가 나를 위해서 파티 예복을 내려줬단다. 안타깝게도 에덴과 발락 것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재단사를 찾아가 직접 옷을 맞춰야했다.

나는 그날로 바로 황제가 선물한 저택으로 몸을 옮겼다. 엄청 크지는 않지만, 한 가족이 살기엔 아주 충분한 크기였다. 아마 나중에 여자를 만나서 가족을 꾸릴 수 있게끔 배려한 모양이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떠날 곳이니 정을 붙일 필요는 없었다.

이것저것 계획에 대해서 다시 한번 철저하게 확인하고나자,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나는 황제가 내려준 예복을 입고, 대기해있는 마차를 탔다.

역시 사람은 출세하고 봐야하는군. 준우승부터는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오직 우승자에게만 내려지는 혜택이었다.

심지어 그 때부터는 귀족 여식들의 구애도 한 몸에 받게 된다. 만약에 황녀를 납치한다는 계획이 없었다면, 암흑 제국에서 아주 즐거운 해피 라이프를 보낼 수도 있겠다는 망상도 했지만, 어차피 이미 3 왕국에 하렘궁이 있으니 크게 유혹되진 않는다.

" 도착했습니다. "

마차는 한참을 달려서 황궁에 도착했다. 정확히 황궁은 아니고, 황궁 옆에 있는, 파티 용도로만 쓰이는 궁전이었는데, 그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신성 제국의 궁보다 아름답다고 해야할까. 이게 사치라고 생각하면 사치겠지만, 그들의 국력이라고 말해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것이다. 확실히 3 왕국과 신성 제국에 비해서 힘이 비대하게 큼을 단편적으로라도 알 수 있었다.

마차는 날 내리고는 다시 어디론가 휑- 하고 가버린다. 파티장은 벌써 많은 귀족들로 득실거렸는데, 하나같이 무슨 콩고물이 없나- 하는 눈빛으로 파티장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번 무투대회 우승자인 나를 보자마자 인맥을 쌓을려고 인사를 건넸다. 하나같이 말단 귀족들이다.

당연히 백작 이상의 귀족들은 멀뚱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눈빛에는 내가 다가와주기를 바라는 열망을 담고 있었다. 체면만 아니라면, 출세길이 훤한 나에게 달려와 손이라도 덥썩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물론 내 목표는 그런 구질구질한 늙은 귀족들이 아니다. 바로, 황녀! 안타깝게도 아직 황녀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상당히 많은 귀족 자제들도(물론 남자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은지, 게속 황제와 황녀가 나올 입구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귀족 여식들은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면서 자신을 어필했는데, 그 신경전이 만만치가 않았다.

때마침 무투 대회의 다른 참가자들이 몇몇 더 들어오니, 그녀들의 시선이 분산되어서 머리를 뜯고 싸우는 불상사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 황제폐하 납시오! "

드디어, 내 목표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황제 따위가 아니다.

' 제 1 황녀..! '

그녀 역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나도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리고, 우리들의 입에 긴 호선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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