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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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니, 제 1 황녀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과연 요정이나 드래곤이 아닌, 인간이 이정도로 아름다울 수 있는 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때문에 오히려 나는 그녀가 마녀의 진전을 이어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제 1 황녀를 뒤따라 나온 제 2 황녀도 아름다웠지만, 1황녀에 비하면 과장해서 태양과 반딧불이라고 해야할까. 왜 그녀도 나를 주시하면서 미소를 지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황녀도 날 어떻게 해볼 생각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내가 확실히 이용해먹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그녀에게 접근할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물론 무투 대회에서 우승한 나였기에, 그 가능성은 충분히 보인 셈이지만, 확신할 순 없다.

" 오오, 황녀님이다. "

그녀를 사랑해서 상사병에 걸린 수많은 귀족 자제들이 그녀의 자태를 보면서 감탄사를 터트렸다. 나도 그녀를 보면서 대단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는데, 하물며 보통 인간들은 그녀가 마치 여신처럼 느껴질 것이다.

황제는 무투 대회가 무사히 끝마침을 기뻐하면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이더니, 곧 박수 소리가 연회장을 들썩일 정도로 크게 울려퍼진다.

" 좋소! 오늘은 다들 귀족이라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즐겁게 즐겨주시오! "

황제가 웃으면서 크게 소리친다. 그에 맞춰서 황녀들과 황자가 단상 위에서 내려오더니 여러 귀족들과 웃으면서 담소를 나눈다.

1황녀도 자신에게 다가온 많은 귀족들과 남자들에게 일일이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나에게서 계속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붙은 피래미가 떨어질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고나서야,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다 건네고 나에게 다가왔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나를 콕콕 쑤신다.

" 어머. 반가워요. 이름이. "

" 레온. 레온 프라하스타라고 합니다, 황녀님. "

" 호호, 우승을 축하드려요, 레온경. "

이제 곧 기사 직위를 받을테니, 경이라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그녀는 나에게 잠시 자리를 옮길 수 있냐고 물었다. 나야 환영하는 바였으니, 응당 수락했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 찰싹 달라붙은 호위를 비키게 했다. 테라스로 나온 우리는 곧 조용한 침묵에 휩싸였다. 주위에는 이름 모를 벌레만 찌륵찌륵 울고 있다.

" 대담하군요. "

" 대담하다뇨. "

" 암흑 제국에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상당히 대담하다구요, 레온 프라하스타 용사. "

황녀가 고개를 천천히 나에게 돌리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놀란 것보다는, 역시- 하고 감탄하는 마음이 더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 찾았군요. 긴가민가했는데, 확신을 줘서 고맙군요. "

" 보는 순간, 당신이 용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왜 여기 암흑 제국으로 당신이 왔는가에요. "

그녀는 팔짱을 끼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이해시키지 못하면, 네 녀석은 죽은 목숨이다- 라는 표정인 것 같다. 어차피, 이미 그녀를 납득시킬 이유도 있다.

" 사실, 드래곤 산맥에 용건이 있어서 말이죠. "

" 그렇다면 암흑 제국으로 들어올 이유도 없을텐데요? "

" 솔직히 말하자면, 암흑 제국의 힘을 조금 이용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만. "

황녀가 호오- 하고 씩 웃었다. 어설프게 변명하기보다는 확실히 털어놓는 수법이 그녀를 안심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담한 수법에 숨겨진 비수를, 그녀는 모를 것이다.

" 신성 제국과 드래곤이 대립한다면 크게 힘을 잃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암흑 제국의 힘을 이용한다면, 드래곤도 잡고, 암흑 제국의 힘도 약화시킬 수 있고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

" 그래서, 무투 대회에서 우승하여 기사단으로 들어오려는 것이군요. 드래곤을 잡기 위해! 호호호. "

그녀가 알아챘다는 듯이 눈을 번뜩이면서 호호호- 하고 소리높여 웃었다. 멍청한 년. 네 잘난 머리가 오히려 널 구렁텅이에 빠트릴거야.

" 그렇죠. 물론 황녀님이 그 의도를 알아채긴 했지만요. "

내가 그녀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을 말할 것이냐- 하고 말없이 물었다. 그녀는 잠시 조용히 나를 쳐다보더니 흐음- 하고 소리를 내면서 몸을 돌렸다. 어떻게 나를 최대한 이용해먹을지 그녀도 머리를 팽팽 돌리고 있는 모양이다.

" 서로 협력하죠. 어차피 드래곤 한 마리 잡는 정도로 우리 제국이 흔들리지는 않으니까. "

" 좋습니다. 황녀님은 무얼 바라십니까. "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키고 주위를 보더니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 암살. "

그녀는 제 3 황자를 죽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힘가지고는 암살은 커녕, 현재 자신의 목도 간수하기 힘들다고 한다. 지금 3황자 옆에서 그의 수족처럼 붙어다니는 두 명의 소드 마스터가 있는데, 그들은 얼마나 강한지 같은 소드 마스터라도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지금 황제가 1황녀를 애지중지 여기고 있긴 하지만, 제국의 법 특성상 여황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은 꼼짝없이 황자에게 황위를 물려줘야한다고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여황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대를 이을 황자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암흑 제국의 긴 역사에서도 여황이 종종 있곤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대를 이을 황자가 없어서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 황제에게는 수많은 후궁들이 있지만, 이미 1황녀가 손을 써서 절대 남자 아이가 태어날 수 없도록 조치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녀의 힘을 사용해서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암살을 흔쾌히 수락했다. 아니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되는게, 황자를 암살하고, 황녀까지 납치하면 암흑 제국은 틀림없이 신성 제국을 향해 전쟁을 터트릴 것이다.

" 마녀는 찾았습니까? "

" 그래. "

발락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물론 이렐린과 발락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까지 말할 필요가 없다.

발락도, 이렐린도, 히폴리아도 모두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세상을 위험에 빠트릴 마녀를 처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계획을 모두 알게 된다면, 그들은 놀라서 심장마비가 올지도 모른다.

"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기사단에 들어가셨다면서요. "

" 응. 황녀의 직속 기사단이지. 여러모로 바빠질테니까 잘 오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항상 준비해놔야 해. 곧바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

" 물론입니다. 그녀들에게도 다 이야기해놓겠습니다. "

발락과 에덴은 지금 내 심부름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보리와 이렐린, 그리고 히폴리아를 내가 직접 만날 수는 없으니까. 황녀와 만난 이후로 나에게 감시가 붙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마 3황자의 세력인 듯 싶다.

' 크크크, 그래그래. 잘들 놀아보라고. 장단을 맞춰줄테니까. '

놀랍게도, 황녀는 나를 그녀의 직속 기사단 중에서도 중대장에 임명했다. 덕분에 그녀와 가까이서 만날 시간이 무척 많았다.

이상하게도, 1황녀는 2황녀와 매우 사이가 좋았는데, 아마도 2황녀가 1황녀를 황위에 올리기 위해서 전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그런 듯 싶었다. 그녀의 미모도 내 하렘궁에 있는 여자들과 거의 동급을 이룰 정도였지만, 1황녀의 미모가 워낙 뛰어나서 약간 묻힌다는 느낌이었다.

" 언제 그를 처치할거죠? "

" 글쎄요. "

" 설마 드래곤을 먼저 잡을 생각은 아니겠지요? "

1황녀가 찻잔을 살며시 내려놓으면서 날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 사실 제 목적부터 먼저 이루고 싶긴 합니다만. "

" 하, 지금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신성 제국에서 온 용사라는 것만 밝히면, 그대로 참수형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텐데? "

"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황녀님께서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잖습니까? "

" 호호호, 그건 걱정말아요. 약속은 반드시 지키니까. "

그녀는 절대 지킬 여자가 아니다. 그것은 내 목을 걸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녀가 지키든 말든 나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내 목적은 그녀를 납치해가는거니까. 그리고, 그녀를 내 소환수 목록에 넣어놓는 것이고.

" 좋습니다. 그러면 암흑의 신께 맹세하시죠. 절 반드시 도와주겠다고. "

" 알겠어요. 암흑의 신께 맹세하죠. "

앙큼한 년같으니. 맹세는 맹세일 뿐, 절대적인 구속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신 '쥬논'에게 맹세하는 것과 그녀가 암흑의 신에게 맹세하는 것은 무게가 틀리다. 아마도 그녀는 그것을 이용해서 나를 안심시킬려고 하는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주신을 믿는 독실한 신자가 아니다.

그녀의 행동은 내 눈에 훤히 보인다.

" 그럼 황자를 암살하죠. "

" 후후후. 근데 용사라는 것도 다 허울뿐이군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남을 해치다니. "

황녀가 묘한 눈빛으로 내 위아래를 훑더니 훗- 하고 웃는다.

" 용사도 결국 사람이잖습니까. 저도 이뤄야할 목표가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

" 좋은 태도에요. 그래도 신성 제국이라서 좀 답답한 면이 있을거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너무 말이 잘 통하군요. "

그녀는 자기의 말만 끝내고 나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물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지만, 언젠가 그녀의 이런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고쳐놓을 것이다. 아주 나락까지 떨어트려서 말이다.

황자 암살? 나에겐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그의 곁에 소드 마스터가 둘이나 있다고 해도, 소드 마스터도 나에겐 그저 칼좀 쓰는 사람 정도 밖에 안되니까. 어차피 여기에 오래 있어서 좋을 것은 없다. 최대한 암흑 제국에서 황녀를 납치하고, 빠져나와야한다.

" 발락경. 내일 출발해야할거야. 모두에게 전해. 미리 수도를 나가서 도주 준비를 끝내라고. 발락경도 같이 대기해. 마녀를 데리고 갈테니까. "

" 알겠습니다. 그럼, 무운을 빌겠습니다. "

발락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서 멀어졌다. 이제 드디어 마녀를 데리고 갈 타이밍이다. 어쩌면 암흑 제국이 자랑하는 암흑 기사단이 추격해올 수도 있다. 발락은 그것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내가 있는 한 누가 쫓아와도 도망칠 자신은 있었다. 설령 그것이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 조금만 기다려라, 1황녀. '

황자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나는 황자의 궁으로 침입해 들어가서 방을 하나하나씩 조용히 살폈다.

암살의 위험때문에 매일같이 방을 바꾸지만, 내 기척까지 속일 순 없다. 강한 기운 두 개가 3층 중간 방쯤에서 느껴졌다.

나는 나와 마주친 하녀와 하인들을 잠재우고, 3층 복도에 도착했다. 소드 마스터 두 명이 지키고 있는 지라 병사들이 필요없는지, 복도가 휑했다.

기운도 딱 세 개. 아마 황자와 두 명의 소드마스터인 것 같다. 나는 문으로 다가가 똑똑- 노크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문이 열린다.

" 넌 누구냐. 어떻게 여기까지 온거지? "

두 명의 소드 마스터 중 하나가 인상을 팍 쓰면서 나를 노려본다. 나에게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서 암살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이상한 낌새를 느낀 모양이다.

" 아, 반갑군요. 전 암살자입니다. 오늘 황자의 목을 따기 위해서 왔구요. "

" ... 뭐? "

내 검이 순식간에 소드 마스터의 복부를 꿰뚫고 나온다. 내가 검을 옆으로 촥 그어버리자, 남자는 장을 쏟아내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너무 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는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죽어버렸다. 나머지 한 명이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리면서 소리쳤다.

" 브렉!! "

" 아, 이 놈 이름이 브렉이었나. 어찌됬든 나란히 저승길에 보내주지. "

" 이 개새끼!! "

남은 남자가 검을 들면서 나를 향해 뛰어왔다. 소드 마스터 중에서 상당히 실력자인 것 같은데, 그래봤자 나에겐 장난수준이다. 나는 검으로 마나로 응축된 그의 검을 잘라버렸다. 너무나 허망하게 잘린 검을 바라보면서 남자가 멍한 얼굴이 되었다.

" 너는.. 누구.. "

" 아, 걱정마. 황자까지 나란하게 보내줄테니까. 거기서 평생 지키면 되겠지 뭐. "

" 이 개새끼. 황자님은 놔ㄷ..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검이 그의 목을 잘라버렸다. 피분수가 쏟아지면서 온 방이 피로 물든다. 침대에 있던 황자가 오돌오돌 떨면서 나에게 사정사정했다.

" 사.. 살려줘, 제발 모든 걸 다 줄께. 제발 목숨만은. "

" 미안하지만, 네가 죽어야 내 일이 잘풀리거든. 잘가. "

내 검은 그의 심장을 단번에 쑤셨다. 그의 눈이 부릅 떠지면서 입에서 피가 컥- 하고 쏟아진다. 그리고는 황자는 곧바로 절명했다. 나는 황자를 증명해주는 반지가 끼여져있는 손을 잘라서 가지고 온 가죽주머니에 넣었다.

' 이제 1황녀 너도 끝이군. '

피가 묻은 내 섬뜩한 얼굴에서 긴 호선이 그어진다.

기다려라, 황녀.

============================ 작품 후기 ============================

이제 조만간 암흑 제국 황녀 납치도 끝나겠네요. 하지만, 이게.. 과연.. 끝일까요?! 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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