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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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한 밤공기가 내 뺨을 훑는다. 한 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오지 않다가, 내가 '혹시 황녀가 눈치챈건가'하고 자리를 뜰려고 할 때, 저멀리서 작은 소리가 들린다. 황녀와, 그녀를 호위하는 두 명의 기사. 어차피 나는 이제 떠나야할 몸이니, 그녀는 나에게서 황자의 증표를 받고 약속을 지키면 되는 일만 남았다.

사실 그녀는 나오기 싫었겠지만, 황자도 몰래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에게 반항했다가 자칫 그와 똑같은 일을 겪게될까봐 두려워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오늘밤만 잘 자고 일어나면, 황자가 죽었든 살았든간에 그 사실을 알게될테니까. 나는 한 손에 반지를 쥐고, 나에게 다가오는 황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검은 두건을 푹 둘러쓰고 호위 기사 두명에게서 거의 감싸안듯이 보호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 레온 프라하스타. "

" 아. "

나는 씩 웃으면서 오른손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녀는 두건을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정말 아름답다. 심지어 내 혼까지 쏙 빼놓을 정도로.

" 받아. "

내가 엄지손가락으로 반지를 퉁겨서 그녀에게 보내자, 호위 기사 한명이 반지를 재빨리 낚아채더니 그녀에게 조심스레 보여주었다. 1황녀는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지면서 반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 ... 좋아. 당신이 약속을 지켰으니, 나도 약속을 지키지. 드래곤을 잡기 위해서 충분한 병력을 지원해주겠어. "

그녀는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몸을 빙글 돌려서 다시 돌아가려는 찰나에,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 잠깐. "

황녀가 자리에 멈춰서 나를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 .. 이제 그쪽과 나는 아무런 연관없잖아. "

" 아니. 아직 내 목적이 달성되지 않아서 말이지. "

" 드래곤을 잡기 위해서 병력을 보내준.. "

갑자기 그녀의 두 명의 호위기사 중 한 명이 피분수를 쏟아내면서 옆으로 쓰러졌다. 그의 목과 몸은 분리되어 바닥에 뒹구는 중이다.

황녀는 얼마나 놀랐는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만 쩍- 벌리고 있다. 나머지 호위기사는 재빨리 검을 뽑을려고 검의 손잡이를 잡았으나, 검과 검집이 떨어지는 시간보다 목과 몸이 떨어지는 시간이 훨씬 빨랐다.

- 푸슈슈슉!

꽤 많은 피가 그녀의 볼과 후드에 묻었다. 황녀는 바닥에 털썩 쓰러져앉으면서 턱을 달달 떨었다.

" 화.. 화.. 황자와 손..을 잡은거야?! "

" 아니. 황자는 죽였어. 네가 가지고 있는 반지를 보면 알잖아? 그건 죽지않으면 절대 뺄 수 없다는 것도. "

" 그..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짓을?! "

나는 씩 웃으면서 그녀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 사실 드래곤은 내 부차적인 목적이거든. 진짜는 따로 있지. "

그리고 나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면서 섬뜩하게 웃었다.

" 너. "

" 어? 용사님! "

" 바로 출발해. "

나는 수도를 나와서 곧장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도착했다. 이미 준비가 끝마친 그들에게, 내가 소리치자 마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발락은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몰았고, 나머지는 모두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 이 사람이 황녀인가요? "

" 그래. "

아침이 되면 암흑 제국은 발칵 뒤집힐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황자가 죽어있고, 황녀는 납치 당했다. 곧바로 수색대가 뜰 것이니, 멈추지 않고 달려야한다. 마차는 긴 수레바퀴의 흔적이 남기 때문에, 추적이 쉬웠으므로 서둘러 드래곤 산맥까지 들어가는 것이 나의 목표다.

' 그렇다고 완전히 따돌려서는 안되겠지. '

수색조가 숲속에 있는 우리의 마차 바퀴를 찾아낸다면, 아마도 기사단이나 병사들을 보내서 뒤쫓게할 것이다. 나는 그 속도에 맞춰서 드래곤 산맥으로 들어갈 것이고, 그들을 이용해서 드래곤과 맞설것이다.

" 그녀는 어쩌실 건가요? "

" 아, 내가 알아서 처리할거야. 마녀가 절대 환생할 수 없도록 하는 마법이 있거든. "

" 그렇군요. "

다 뻥이다. 그런 마법이 있을 턱이 없지만, 용사가 하는 말이니 왠지 수긍이 간다고 해야할까. 사실 나는 그녀를 하렘궁에 넣고, 온갖 욕구를 다 풀 생각이다.

임신? 그런건 마지막에나 해야할 일이고, 그 전에 나는 엄청 쌓여있는 욕구를 전부 그녀에게 분출할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멀쩡히 놔둘 내가 아니지 않는가.

" 그러면.. 이제 우리는 암흑 제국과 맞서 싸워야하는 건가요? "

" 그래. 이미 준비를 끝마쳤잖아? "

" 네. 3왕국과 신성 제국 모두 전쟁 준비를 끝마쳤어요. "

어차피 황녀를 잡기 위해서 신성 제국을 떠나기 전에, 나는 모든 준비를 끝마쳐놓았다. 이제 전쟁이 터지는 것은 거의 시간문제랄까. 암흑 제국도 만만치 않겠지만, 3왕국과 신성 제국이 합한 힘은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드래곤 산맥을 넘으면서 많은 인명 피해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바다를 건너서 올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미 그에 대한 방비도 세워놓은 상태였다.

" 으음. "

황녀는 몇번 신음을 흘리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손발이 묶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을 번쩍 뜨더니 사방을 훑다가 내 시선과 마주쳤다.

" 악마같은 놈! 날 이렇게 만들고 네놈이 멀쩡하게 살아돌아갈 것 같아?! 배를 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할껄! "

" 우리가 배를 타고 왔다고 생각하나? "

" 그게 아니면.. 설마. "

그녀가 말도 안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드래곤 산맥을 넘어왔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해?! 터무니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 날 방심시켰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

" 뭐, 그건 나중에 가보면 알지. 에덴, 황녀의 입을 막아. "

" 당장 이것 풀지못.. 움움.. 우움! "

에덴은 천뭉치를 돌돌 말아서 그녀의 입에 쑤셔넣고 그 위로 천을 둘둘 돌렸다. 그녀는 표독한 눈으로 날 노려보았지만, 내가 그런 것으로 눈하나 깜빡할 리가 없다.

오히려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그녀를 당장이라도 따먹고 싶었지만, 아직 이렐린과 히폴리아에 대한 떡밥도 회수하기 전이라서 그런 일을 저지를 순 없다.

거의 일주일이 흘렀을까. 드디어 우리들의 눈앞에 제일 처음 도착했던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드래곤 산맥의 초입부에서 군대를 기다리면 된다.

" 네놈의 생살을 씹어먹을거야아아앗!! "

황녀는 발악하면서 나에게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녀는 하루에 한번정도만 묶인 손과 발을 풀었기 때문에, 씻는 것은 고사하고 눈꼽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악취가 그녀의 몸에서 났지만, 그래도 그녀의 아름다움까지 막지는 못했다. 물론 발락은 그녀의 그런 모습에 환상이 깨져버린 것 같지만.

" 에덴. "

내가 그녀를 부르자, 에덴은 물 한바가지를 가리고 황녀의 얼굴에 강하게 뿌렸다. 그녀는 푸하- 하고 얼굴을 휘휘 젓더니 다시 날 노려본다.

" 한번만 더 귀찮게 입을 놀리면, 물고문을 당할테니까 각오해. "

" ..! "

황녀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움찔거렸지만, 물고문이라는 소리에 이를 악물고 고개를 휙 돌렸다. 그래도 고문이라는 말이 꽤나 그녀를 무섭게 만든 모양이다.

" 그건 그렇고, 기사들이 마을로 찾아왔다고? "

" 네. 조만간 우리들의 흔적을 찾고, 여기로 올 것입니다. "

" 좋아. 다 끝났구만. "

여기서 3일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이제 내일 이른 아침에 드래곤 산맥을 넘어가야할 듯 싶다. 어차피 기사들은 자신들의 뒤를 따라올테니, 그 전에 황녀를 데리고 산맥을 전부 넘어서 신성 제국으로 보내야했다.

" 다들 일찍 자도록. 내일부터 산맥을 넘어갈테니까. "

예전에는 3일정도 걸렸지만, 이번에는 더 빨리 넘어야한다. 황녀는 내 말에 안색이 시퍼래지면서 입을 떨었다.

" 미.. 미친거 아냐? 어떻게 드래곤 산맥을 넘어간다고 그래?! 거긴 절대로 가서는 안되는 곳이란 말이야! 누구도 산맥을 넘진 못했다고! "

" 귀찮으니까 기절시켜. "

" 난 죽기 싫... "

에덴이 그녀의 목을 강하게 치자, 황녀는 정신을 잃고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그제서야 사방이 조용해진다. 일행은 다들 침낭으로 들어가 무거운 눈을 감았다. 나도 침낭 안으로 들어가 하늘을 보면서 천천히 계획을 곱씹었다.

' 거의 다 왔다. 2차 목표도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어. '

물론 드래곤이라는 변수가 나타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조금만 머리를 쓴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그 외에는 아주아주 이상적으로 흘러왔다.

공주가 잠자고 있는 탑으로 들어가기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드래곤 산맥을 넘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우리들에 대한 것이 산맥에 퍼졌는지, 몇몇을 제외하면 우리들에게 다가오려하지 않았다.

꽤 학살을 많이 한 덕분도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강한 위압감을 드러내면서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괜히 몬스터들을 잡으면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으니까. 덕분에 우리는 2일만에 산맥을 넘어갈 수 있었다.

황녀는 자신이 넘어온 산맥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말도 안돼.. 정말 산맥을 넘어가다니. "

" 이제 잠시 나는 자리를 비우겠어. 아직 일을 끝마치지 못했거든. 너희들부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 "

일행은 황녀를 데리고 신성 제국으로 향했다. 나는 다시 산맥으로 몸을 돌렸고.

" 엘류나크! "

바닥부터 물이 모이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지더니, 곧 아름다운 모습을 한 엘류나크가 등장했다.

" 그린 드래곤을 불러. 드래곤을 죽이겠다. "

" ... 가능하겠어요? "

"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요정들의 축복을 받은.. 용사야. 크크크. "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입을 맞췄다. 물론 나머지 한손으로 그녀의 몰캉몰캉한 가슴을 주물럭거린다. 이미 몸과 마음을 전부 나에게 빼앗긴 그녀는 체념한 듯이 눈을 감고 나를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 어차피 암흑 제국의 기사놈들을 조금 이용해먹을 생각이니까. "

" 알겠어요. "

요정들과 드래곤 사이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다. 드래곤은 아름다운 요정들을 보면 수집하려는 욕구가 강해서, 잘못했다간 요정들은 아주 오랫동안 드래곤 레어에 갇혀야했다. 엘류나크도 그린 드래곤의 레어에 갇혀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는 그 요정을 구하고 싶었다.

" 아참, 그 요정의 이름이 뭐지? "

엘류나크가 혀로 입술을 살짝 핥고 입을 연다.

" 엘렌, 엘렌이에요. "

" 여기 발자국이 이어진다! 다들 힘내! 황녀님을 구하고, 당당하게 성으로 돌아가자! "

" 우오! "

기사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지친 몸을 이끌었다. 이미 산맥 깊숙히 들어와서 돌아가기도 애매했지만, 황녀를 구출해야한다는 사명감이 더욱 강했다.

강하고 거대한 몬스터들이 나올때마다 기사들이 죽었지만, 그래도 그들을 막을 순 없었다. 아직까지 산맥의 반의 반도 못 들어갔지만, 300이었던 기사의 수는 벌써 200으로 줄어있었다.

용사의 일행이 몬스터들을 한번 쓸어주지 않았다면 이미 전멸했을지도 몰랐다.

힘차게 다시 산맥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해가 구름에 가린 것보다 더 어두컴컴했다. 기사단장이 '뭐지?'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사색한채로 입을 떡 벌렸다. 말로만 듣던, 전설의 생명체, 드래곤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 쿵!

기사들은 전부 돌이 되어서 멍하게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30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몸집때문에, 기사들은 절망감에 힘이 빠졌다. 하지만, 기사단장을 혀를 꽉 깨물면서 정신을 차렸다. 여기서 무너지면, 더 이상 황녀를 구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소리치면서 검을 뽑아들었다.

" 우리들이 죽는다고 해도, 제국에서 우리들의 이름은 끝까지 남을 것이다! 보지 못했는가?! 우리들의 선배님들이 모두 왕성의 벽에 이름을 새겨놓았다는 것을! 우리들도 모두 그곳에 이름이 새겨진다!! "

그 말에 기사들도 하나둘씩 용기를 얻으면서 검을 뽑아들었다. 곧 200명의 강한 살기가 드래곤에게 뿌려졌다. 물론 그린 드래곤은 하찮은 인간들의 행동에 웃음이 피식 흘러나왔다. 어떤 요정이 자신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을 보고 흥미가 생겨서 잠시 나와본 것인데, 이런 희안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 재밌는 인간놈들이군.

" 다들 공겨어어억!! "

기사들은 '와-'하고 소리치면서 드래곤에게 달려갔다. 드래곤은 거대한 꼬리로 기사들이 달려오는 곳에 강하게 내리찍었다. 그 한번의 공격만으로 7명이 압사해죽어버렸다. 하지만, 나머지 193명은 멈추지 않고 드래곤에게 끝까지 달려갔다. 죽은 자신의 동료들을 애도하면서.

" 드래곤을 죽여라! "

말도 안되는 소리다. 고작 200명의 기사들을 가지고 드래곤을 죽일 수 있었다면, 드래곤 산맥이라는 곳은 진즉에 없어졌을 것이다.

그린 드래곤은 입을 쩍 벌리고 브레스를 뿜어냈다. 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은 기사들은 형체도 없이 공중분해되었고, 스쳐지나가거나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린 드래곤이 내뿜은 브레스의 강한 염산에 몸이 녹아버렸다.

그것으로 거의 50명이 넘는 기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기사단장은 이것으로 자신이 여기서 뼈를 묻을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지만, 전진을 멈추지는 않았다.

" 복수하라! 드래곤을 공격하라! "

나는 그 모습을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었다. 드래곤이 방심하는 그 순간, 드래곤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창으로 드래곤을 정확하게 조준하고 있으니까.

' 크크크, 더욱 발악해라, 기사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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