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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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이 거의 전멸 직전까지 가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그들이 암흑 제국의 기사단이라고 해도, 상대는 드래곤이다. 나는 그 모습을 집중있게 바라보면서, 드래곤이 다시 한번 브레스를 쏘기를 기다렸다. 손에 쥔 창의 감촉이 더욱 선명해진다.

- 죽어라.

드래곤은 숨을 들어마시면서 브레스를 뿜어내려고 포즈를 취했다. 바로 그 때, 나의 시선에 드래곤의 빈틈이 잡혔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드래곤을 향해 검은 창을 던졌다. 창은 순식간에 하나의 검붉은 가시가 되어서 드래곤의 몸통을 관통했다.

얼마나 빠른지, 드래곤도 가시가 전부 관통이 되고나서야 자신이 무언가에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크어어어억!

드래곤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강한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기사들도 드래곤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드래곤이 고작 기사 몇명이 휘두르는 검에 치명상을 입을 리는 없었다.

아무리 창에 몸 중앙이 관통되었다고 해도, 나머지 기사들을 잡아죽일 정도의 기력은 남아있었다.

- 가증한 놈들!!

드래곤은 기사들을 전부 꼬리로 내리쳐서 죽여버렸다. 한 놈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보내면서 브레스를 날렸다. 순식간에 강한 염산이 내가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염산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는 먼지 한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산화되어버렸다.

" 호, 아직 브레스를 날릴만한 기력이 남아있는가보네? "

- 너는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이겠다.

나는 비웃음을 날리면서 팔짱을 끼었다. 드래곤은 창에 관통된 상처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아무리 힐로 치료하려고 해도, 그것이 될리는 만무하다. 왜냐하면, 내가 날린 창은 결코 힐로 치유될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 오늘 여기가 네 무덤일 것이다, 드래곤. "

- 그건 네놈이다!

드래곤은 나를 향해 빠르게 꼬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 정도 피하는 것쯤이야 나에겐 가뿐하다. 드래곤은 계속해서 꼬리를 휘둘렀지만, 내가 잘 피하자 약이 오르는 모양이다.

- 쥐새끼같은 놈!

이제 드래곤은 나에게 용언까지 날렸다. 꼬리를 피하다가 갑자기 내 몸이 느려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 정도로도 날 멈출 수는 없었다. 용언은 그랜드 마스터가 되면 거의 모든 것을 방어해낼 수 있는데, 나는 그랜드 마스터는 옛저녁에 넘었다. 그제서야 드래곤도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날 노려본다.

- 너... 보통이 아니구나.

용언까지 썼는데 날 잡을 수 없다면, 드래곤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드래곤은 자신의 몸을 줄여서 전투형 몸으로 바꾸었다. 30m가 넘던 거대한 몸체가 순식간에 3m에 정도로 줄어들었다. 거의 전투형 발키리처럼 보이는 모습은, 천사와 같았다.

' 아름다운데? '

정확한 인간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드래곤과 인간, 그리고 천사의 몸이 서로 섞인 듯한 모습은 인세의 인간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 너는 오늘 여기서 반드시 죽는다. "

" 그건 끝까지 가봐야 알테지. "

드래곤의 손에는 거대한 검이 들려져 있었고, 반대 손에는 거대한 방패가 들려있었다. 두개의 하얀 깃털이 달린 투구와, 은빛으로 번쩍이는 갑옷은 그녀의 성스러움을 더욱 배가해주고 있었다.

" 꽤 끌리는데. "

하지만, 내 감상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검이 내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공격이 갑작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몸집이 컸던 드래곤과는 다르게, 전투형으로 바뀐 그녀의 속도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빨라졌다.

나도 방심했다가는 그대로 목이 날아가버릴 정도였다. 정말 간신히 그녀의 공격을 피하고, 나도 허리춤에서 검을 꺼냈다.

정말 처음으로 만난 제대로된 상대일 것 같다.

" 나도 진심으로 간다. "

그녀는 방금의 공격으로 날 죽일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가뿐히(물론 가뿐한 것은 아니었지만) 피하는 것을 보면서 얼굴이 굳어진다. 그녀는 다시 몸을 낮추면서 전투를 재개했다.

이제 우리 둘 사이에선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았다.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전투의 재개는 내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순식간에 그녀의 측면으로 쇄도한 다음, 검으로 강하게 그녀를 향해 휘둘렀다. 피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그녀는 방패로 내 검을 비스듬히 막았다.

그녀는 내 검을 막고는 곧바로 다시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몸을 반으로 잘라버릴 기세로 떨어지는 검을 흘려막으면서 나는 발로 그녀의 방패를 강하게 걷어찼다.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그녀가 뒤로 날아간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굴욕적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다. 이번엔 그녀가 빠른 속도로 내 앞까지 쇄도하더니, 방패로 내 시야를 막았다.

나는 위험하다는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을 뒤로 피했지만, 허벅지쪽에서 강한 고통이 느껴졌다. 다행히 뼈가 잘린 것은 아니지만, 살이 강하게 베어져서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입에서 욕지꺼리가 튀어나오면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 씨발! "

갑작스럽게 방패로 내 시야를 막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 생각이 내 방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드래곤이라서 마법이 아니라, 근접 전투는 내가 우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 역시 이런 근접 전투에 능숙했다.

역시 드래곤은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라고 느끼면서, 나는 다시 검을 제대로 고쳐잡고 그녀를 응시했다. 방패를 단번에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그녀 역시 방패에 마나를 흘려보내서 나의 응축된 마나검을 막고 있었기에, 단번에 잘라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 정말 드래곤이 만만치 않은데. '

그랜드 마스터라면 드래곤과 1대 1로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은 개소리임이 증명되었다. 드래곤 중에서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그린 드래곤도 이정도인데, 레드 드래곤이나 블랙 드래곤은 얼마나 더 강하다는 말일까. 잡다한 생각에 잠시 머리를 흔들고,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이번 공격에 모든 것을 퍼붓겠다고 마음 먹고, 검에 마나를 강하게 집중했다.

' 이번 한수에.. '

그녀 역시 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잠시 우리 둘은 서로를 노려보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우세를 점한 것은 그녀였다. 방패로 내 검의 진로를 완전히 막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이 회심의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얼굴에서 미소가 새겨졌다. 하지만, 나 역시 그녀의 이런 방식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법도.

" 흐아앗! "

나는 손으로 그녀의 방패 위쪽을 잡고 끌어내렸다. 그녀는 상상치도 못한 내 방식에 순간 방심을 한채로 몸을 드러냈다. 은빛 갑옷이 내 눈앞에 드러났다. 나는 그녀가 대응하기도 전에, 바로 검을 그녀의 배에 쑤셔넣었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터져나온다.

" 크아아아아아앗! "

엄청난 고통이었는지, 그녀는 방패와 검을 모두 손에서 놓치고 땅으로 쓰러졌다. 붉은 피가 순식간에 그녀의 은빛 갑옷을 붉게 물들였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내쉬면서 쓰러져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후우.. 후우... "

" 으읏... "

그녀는 두려움과 분노가 섞인 눈으로 날 올려다본다. 나는 다시 검을 들어서 그녀를 향해 내리꽂았다.

" ! "

내 검은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목옆에 박혔다. 드래곤은 얼마나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뜨면서 자신의 목옆에 꽂힌 검을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

" 내가 이겼지? "

" ... "

인정하기 싫은지 그녀가 이를 악물고 나를 노려본다.

" 여기서 결정해. 죽을 것인가, 아니면 나의 수호자가 될 것인가. "

사실 나는 드래곤을 죽일 생각이었지만, 여기서 죽이기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내 수호 드래곤(Guard Dragon)으로 만든다면, 내 앞길이 훨씬 튼튼해질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보니, 둘다 선택하기 싫은 것 같다.

" 차라리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 "

" 안돼. 넌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돼. 죽던가, 아니면 내 수호자가 될 것인가. "

오래 살아온 드래곤일수록 목숨에 집착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도 인간의 수호자가 된다는 것은 드래곤의 수치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선뜻 후자를 선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아직 살날이 창창한 자신과, 백년이면 죽는 인간과는 삶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 좋다.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인간. "

" 레온. 레온 프라하스타. 용사다. "

드래곤 나이트이면서, 요정들에게 축복받은 용사. 그 이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드래곤 로드라고 해도, 쉽사리 대하지 못할 것이다.

" 그래서, 엘렌은 너의 레어 안에 있다는 말이지? "

" 그렇다, 용사. "

'란'이라고 불리는 드래곤은(진명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직 자신과 드래곤 로드만이 드래곤의 진명을 알 수 있다.), 내가 진작에 용사라고 밝혔으면 요정을 바로 내어줬을거라고 한탄했다.

" 그녀를 만나러가지, 란. "

란은 나의 어깨를 잡고 공간이동으로 그녀의 레어로 이동했다. 드래곤의 레어답게 화려함에 눈이 멀 정도로, 레어의 내부는 황금으로 번쩍였다.

그녀는 성큼성큼 어디론가 걸어가더니, 레어의 중앙에 있는 창살로 다가갔다. 그곳은 수많은 요정들이 갇혀있었다.

물의 요정도 있었고, 나무의 요정, 그리고 불의 요정도 있었다. 하나같이 모두 아름다운 모습. 그들은 내 모습을 한번 흘낏 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버렸다.

아마 나를 란의 드래곤 친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 엘렌, 나와. "

창살 안에 있던 요정 중 한 명이 고개를 들고 천천히 일어났다. 엘류나크와 다른 성스러운 아름다움이 엘렌의 몸에서 뿜겨져나온다. 등뒤에 황금색 날개 2쌍이 빛을 뿌리면서 빛나고 있었고, 그녀의 새하얀 얼굴 위에는 붉은 입술이 내 심장을 쿵쾅 뛰게 만들었다.

" 무슨 일인가요, 드래곤. "

" 널 찾아온 인간이 있다. 오늘부로 넌 자유다. "

인간이라는 말에, 모든 요정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어떻게 한낱 인간이 드래곤과 어깨를 나란하게 할 수 있냐-는 의문의 표정이었다.

" 인..간이요? "

" 그렇다. 얼른 나와라. "

창살에는 문이 없었지만, 드래곤이 말을 하자 창살은 엘렌만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마법적인 효과가 부여된 창살인 듯 하다.

내 예상대로, 그녀의 미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금발에, 땀구멍 하나 보이지 않는 흰 피부, 그리고 굴곡이 완벽하게 드러나있는 몸매까지. 지금껏 보았던 수많은 미녀 중에서 과연 그녀만큼의 미녀가 존재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심지어 다른 게임까지 전부 포함해서)

" 당신이 엘렌인가? "

" 드디어, 예언대로 되었군요, 용사. "

" 예언이라니? "

어쩌면 그녀는 내가 그녀를 풀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요정들의 축복을 받은 용사가 모든 요정들을 구원해준다-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모든 요정들에겐 당신이 구원자입니다. "

그 말에 창살 안에 있던 요정들이 내쪽으로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미녀들뿐. 정말 드래곤은 미적감각에 대한 갈망이 강하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나는 팔짱을 꼈다. 흥미로운 예언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모든 요정들을 도울 생각은 없다.

" 미안하지만, 그 예언은 틀릴거야. 그걸 신경쓰기엔 해야할 일이 너무 많거든. "

엘렌을 제외한 다른 요정들의 애틋한 눈빛이 나를 향해 쏟아졌지만, 수많은 요정들을 구할 생각은 없다. 오직 나의 목적은 엘렌뿐이었으니까.

" 그러면 다 된거겠지? "

" 그렇다, 란. "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정들은 모두 실망한 눈빛으로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엘렌은 두 쌍의 황금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부르신거지요? "

" 너와 함께 해야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

나는 잠시 침묵을 한 뒤에, 엘렌의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 무슨 일 말씀하시죠? "

" 마녀의 탑. 공주가 잠자고 있는 마녀의 탑을 들어갈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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