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7/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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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포고가 있은 뒤로부터, 그림자들에게 올라오는 정보는 단순했다. 거의 모든 병력이 해상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는데, 그것은 나에게 오히려 기분좋은 일이었다.

보고를 올릴 때마다 창백한 표정의 정보원들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사실 그들이 사색된 얼굴로 보고를 올리는 것에 약간 희열감을 느낀달까.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암흑 제국의 병력의 수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내 예상마저 산산히 깨부쉈는데, 아직 본격적으로 전쟁에 돌입하기도 전이었는데 물경 오십만이라는 숫자가 해상에 모였다.

적의 전선의 수만해도 무려 수천이 넘었고, 보급되는 물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 잘했어. 가서 쉬도록 해. "

새하얀 얼굴로 방을 나가는 정보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메넬은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 무슨 복안이라도 있으십니까. "

" 복안은 무슨. 오십만? 후후. 백만이 와도 이기는건 우리야. "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메넬이라면 말해줄 수도 있지만,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여야한다는 말이 있다. 분명히 그들 역시 드래곤 산맥을 의식하고 있겠지만, 우리쪽에서 드래곤 산맥에 대해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판단되면 방비가 소홀해질 것이 분명하다.

" 걱정말도록. 너는 민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 괜히 내분이 일어나면 골치아프니깐. "

" 알겠습니다, 주군. "

드디어 암흑 제국의 해상 병력이 움직인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선전포고가 있은 뒤로 대략 3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사이에 일리아나 여왕은 출산해서 여자 아이를 낳았고, 암흑 제국의 1황녀의 배도 상당히 부풀어 올랐다.

적의 병력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인, 백만 대군이란다. 물론 내가 할 일은 그 백만 대군을 막아서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백만 대군이 신성 제국의 땅을 밟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나는 용사군을 해안가에 배치시켜두었다.

" 주군, 이런 말을 드려 죄송하지만 어떻게 그들이 해상에서 몰살당한다는 말입니까? 해일이라도 오는 겁니까? "

결국 답답해진 메넬이 나에게 물어왔다. 어차피 출발해야하는 시점도 다가왔고 이제 정보가 새어나가도 늦을테니, 나는 메넬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고 걱정없이 입을 열었다.

" 용사인 내가 고작 백만 대군을 못막아서면 되겠어? 걱정마, 드래곤들이 도와줄테니까. "

드래곤이라는 말에 메넬이 침을 꿀꺽 삼키면서 얼굴이 환해졌다. 꽤 오래전부터 골머리를 싸매던 문제가 한번에 풀린 듯한 표정이다.

" 역시, 주군이시군요! 전 감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 이제서야 정말 마음이 놓이군요. "

" 드래곤들이 있는한, 그들은 절대 신성 제국의 땅에 발을 딛지 못한다. "

"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단 하나군요. "

두뇌 회전이 빠른 메넬은 단숨에 내 뜻을 간파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소수 정예로 드래곤 산맥을 넘어가는 것이지. 단숨에 수도를 격파한다. "

정보원에 따르면, 수도를 지키는 인원은 현재 이만. 이만 명도 결코 작은 숫자는 아니지만, 내가 데리고 갈 엘리트들과 비교할 순 없다. 일단 그레이트 마스터(그랜드 마스터를 뛰어넘은 호칭이 없기에 직접 만들었다.)인 나와, 그랜드 마스터가 된 보리, 그리고 최상급 소드 마스터인 에덴을 비롯하여 수많은 소드 마스터들. 그리고 거의 천여명에 달하는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까지. 그야말로 무적의 기사단이다.

" 드래곤과 암흑 제국의 해상 병력들이 만나면 곧바로 드래곤 산맥을 넘어갈 생각이니, 넌 그 사이에 최대한 정보를 교란시키도록. "

" 알겠습니다, 주군. "

한층 더 존경심을 담은 메넬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시야에서 천천히 사라졌다. 어차피 드래곤이 내 편인 이상, 해상에서는 적이 백만이든 이백만이든 상관없다. 아주 간편한 '수장'이라는 방법이 있으니까. 블루 드래곤이 해일이라도 일으키면 그대로 수십만에서 최고 백만까지 한번에 죽일 수 있다.

단, 괜히 병력을 드래곤 산맥으로 이동시켜서 적을 동요하게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면 모든 것은 바로 내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실현되고 있는 중이고.

여느때처럼 여유롭게 녹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있을 무렵, 천막 안으로 누군가가 황급히 들어온다. 그의 한손에는 투명한 유리 구슬이 쥐어져있었는데, 그것은 영상과 소리를 공유할 수 있는 통신 장치였다. 물론 마법적인 부분에서지만.

" 용사님! 연락이 왔습니다. "

" 흠, 그래? "

천막 안으로 들어온 사내는 탁자 앞에 구슬을 내려놓더니 곧 무언가 중얼중얼거렸다. 곧 투명 구슬안에서 무언가 영상이 보이더니, 한 사내의 얼굴이 비친다.

- 여기는 블루, 응답바란다.

" 여기는 마운틴, 상황을 보고하라. "

- 적 해상 병력이 출현했다. 하지만 정체를 모르는 물체가 엄청난 속도로 쇄도하더니 갑자기 해일이 일어 적 전선을 침몰시켰다.

" 알았다, 수고하라. "

- 라져.

구슬이 다시 투명해진다. 드디어, 때가 왔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입구의 천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대략 천 명의 기사들이 시립해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 중에는 에덴과 보리도 있었고, 발락뿐만 아니라 성기사 히폴리아도 있었다.

그들을 포함해서 천명에 달하는 기사들 모두가 적의 수도를 급습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기사단이다.

" 드디어 때가 왔도다, 용자들이여. "

그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나에게 집중되어, 입도 뻥긋하지 않고 귀 기울여 내 말을 듣고 있다.

" 우리는 앞으로 며칠간, 짐승이 될 것이다. 앞을 막는 것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조리 죽일 것이며, 결코 자비를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희생으로 이 불필요한 전쟁을 끝낼 것이다. "

나는 검을 뽑아서 하늘로 번쩍 들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암흑 제국 황제의 "

그리고 땅에 깊숙히 꽂는다.

" 목이다! "

드래곤 산맥을 넘어가는 일은 매우 쉬웠다. 이미 드래곤과 입을 맞춰놨기 때문에, 3개의 산맥에서 신성 제국과 맞닿아있는 산맥과 중간 산맥의 몬스터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있다고 해도 이정도 인원으로 순식간에 쓸어버리고 지나갔을테지만. 하루가 지나서야 마지막 산맥에 도착했는데, 우리는 곧바로 몬스터들을 학살하면서 산맥을 넘었다. 반나절이 지나자 내 눈에 익숙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 암흑 제국이다. "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를 영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저멀리 병사의 초소같은 것이 보였지만, 그 정도는 연락이 가기도 전에 순식간에 처리가 가능하다. 이럴 것을 대비하여 나는 말을 백여 마리 정도 준비해두었다.

" 적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도록. 한 놈도 도망가게 둬선 안된다. "

" 네, 주군. "

보리가 내 명령을 듣고 말을 타고 힘차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뒤를 따라 99마리의 말이 뛰어나갔는데, 특별히 좋은 말만 골라서 뽑았기 때문에 속도는 어지간한 말보다 훨씬 빨랐다. 아마도 놓치는 병사는 없을 것이다.

" 우리도 빠르게 전진한다. "

암흑 제국의 목덜미에 보이지 않는 칼이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한다.

" 폐하!! 폐하!!! "

노신이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대전을 뛰어들어간다. 평소라면 결코 뛰지 않을 사람이었지만, 사태가 너무 급박하여 도저히 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는 황제의 면전으로 다가가 예도 다 차리기 전에 입부터 열었다.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 폐하, 적입니다! 적들이 출현했습니다!! "

" 적? 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또 드래곤이 나타난건가? "

해상에서 드래곤에 의해 병력이 떼몰살을 당한 일을 생각한 황제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한손으로 이마를 슬슬 문질렀다. 해상에서 드래곤은 여간 골치아픈 존재가 아니었다.

브레스 몇번 뿌리고 해일만 일으키면서 병력 소모만 시키는데,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화가 났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설상가상으로 드래곤이 적을 도와준다는 소문때문에 사기도 바닥을 기는 중이었다.

하지만, 육지에서라면 드래곤을 무찌를 자신이 있었다. 그랬기에 황제는 그나마 자신만만하게 대꾸를 했는데, 노신은 고개를 흔들면서 침을 튀기며 입을 열었다.

"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신성 제국의 기사단입니다! "

" 뭐? 그들이 어떻게.. 설마. "

" 네, 드래곤 산맥을 넘었습니다. 완전히 속았습니다. 심지어 기사단의 위용이 엄청납니다. 우리 병력의 피해는 만이 넘어가는데, 적의 피해는 전무합니다! "

" 하.. 하하하. "

황제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의자에 푹 기댔다.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는 듯한 느낌을, 황제는 온몸으로 느꼈다. 식은 땀이 흐르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미 병력이란 병력은 모조리 해상으로 투입했기 때문에, 고작 남아있는 병력이라고 해봤자 수도를 방비하는 병력 이만이 전부였다.

" 신, 목숨을 걸고 막겠습니다. 그 사이에 몸을 보전하십시요! "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지만, 노신의 말은 한마디로 도망치라는 뜻이었다. 황제도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목이 달아날 위기가 올수도 있다는 생각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네. 부디 살아서 봅세. "

" 부디.. "

노신은 말을 다 잇지도 못한채 몸을 돌려 어전을 빠져나왔다.

끊임없는 학살로 온몸에 피범벅이 되어있는 우리 기사단은 드디어 암흑 제국의 수도 앞까지 진격했다. 다행히 그 전에 적 병력을 놓친 적이 없었는지, 적은 이제서야 우리들의 등장을 눈치채고 서둘러 수도 방어에 전력을 쏟기 시작했다. 나는 황제가 도망갈 가능성도 생각하여 에덴에게 비밀스럽게 지시를 내렸다.

" 혹시 황제가 도망갈 가능성도 있으니, 너는 기사단 백 명을 데리고 배후를 치도록. "

" 네, 주군. "

에덴은 보리가 타고 있던 말에 올라타 기사 백 명을 데리고 순식간에 달려나갔다. 보리는 성을 뚫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으니, 황제의 탈출을 막기엔 너무 고급 인력이었다.

다들 며칠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한채 여기까지 진격했지만, 이제 드디어 끝난다는 생각에 힘이 솟아오르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도 드디어 이 지긋지긋하고 길었던 3개의 계획이 오늘로써 종지부를 찍는다는 생각에 온몸에 활력이 솟아올랐다.

" 드디어, 오늘로써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다. 암흑 제국의 황제를 죽이고, 영웅이 되는 것이다!!! "

" 와아아아! "

성을 뚫기 위한 계책? 아니면 공성 무기? 그딴건 필요없다. 그저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버릴 뿐. 나에게 적의 성문은 그저 조금 단단한 철문정도랄까. 더군다가 옆에는 그랜드 마스터인 보리까지 있다.

우리 두명이라면 성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것은 1분도 걸리지 않는다. 더군다가 기사단 모두가 적어도 익스퍼트 최상급이기에, 날아오는 화살도 충분히 막아낼 실력이 있다.

그야말로 무적의 기사단! 아마 이번 전쟁이 끝나면, 암흑 제국에서는 우리들이 악몽의 기사단으로 기억될 것이다.

" 모두 전진!! "

우리들은 척척-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세로 암흑 제국의 거대한 성벽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일단 동화파괴자 2부가 끝난 뒤에 리턴을 연재할 듯 합니다.

동시 연재는 아직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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