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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문이 부서진다! 다들 몸으로라도 틀어 막앗!! "
하지만, 나와 보리의 계속된 공격에 거대한 성문은 기어코 부서져버렸다. 부서진 틈새 사이로 순식간에 나와 보리가 쇄도해들어가 적들을 베어넘겼다.
적들은 우리들의 엄청난 위용에 감히 덤벼들 생각도 못하고 얼어붙어버렸다. 이만이나 되는 병력이 있었지만, 우리는 늑대 무리였고, 그들은 고작해야 양떼에 불과했다.
" 성도를 향해 무조건 전진이닷! 앞을 막는 놈은 누구라도 살려두지 마라! "
나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적의 장군이 황급히 병사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뚫리면 황제의 목숨이 풍전등화의 위험에 놓이게 될테니, 그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아야했다.
" 절대 뚫리면 안된다! 황제폐하를 목숨을 걸고 보호해야한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암흑 제국의 정예병들이다!! "
그제서야 병사들은 패닉 상태에서 점차 벗어나서 우리들을 점점 견고하게 둘러싸기 시작했다. 우리들에겐 좋지 못한 징조였다. 조금만 더 패닉 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했었다면, 더 손쉽게 성도를 향해 전진할 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미리 에덴에게 퇴로를 막아두게한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
기사단들이 부서진 성문 안으로 점차 밀려들어오자, 기세 역시 우리들에게 다시 점차 넘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물경 900에 가까운 초엘리트 기사들인데, 이만 명의 병력은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 이만이 아니라 그 두배인 사만이었다고 해도, 결국 승자는 우리들일 것이다.
" 병사들을 모두 상대할 시간이 없다! 성도를 향해 돌진한다! 무조건 돌진이다!! "
" 무조건 막아라! 적들을 결코 전진하지 못하도록 하라!! "
기사단이 병력을 뚫기 위해 송곳처럼 모여서 돌진하자, 병사들은 몸을 날려 우리들의 전진을 막았다. 그 사이에 적의 기사단도 등장했는지, 장군의 목소리에 조금 생기가 돌아왔다.
" 기사단이다! 황궁 기사단이 도착했다! 힘을 내서 적들을 무찌르자! "
백마를 타고 있는 이백의 기사들이 우리들 앞에 도열했다. 암흑 제국의 황궁 기사단이라는 명칭이 괜히 붙은 것은 아닌지, 그들의 기세가 결코 심상치 않았다. 아직까지 피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했지만, 이번의 격돌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을 듯 보였다.
" 모두 돌진! 성도로 전진하라!! 우리는 용사군의 무적의 기사단이닷!!! 죽어도 주신께서 끝까지 우리를 보살필 것이다! "
" 우오오오오!! "
죽어도 천국행이 예약되어있다면, 죽음을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몇몇은 천국이라면 오히려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 기사단은 기세가 들끓어올랐고, 그에 반해 황궁 기사단은 갑작스럽게 불타오른 우리들의 기세에 밀리기 시작했다.
" 두려워 하지 마라! "
기사단장쯤 되어보이는 사내가 의연하게 외쳤지만, 모두의 동요를 막을 순 없었다. 그는 이를 뿌드득 갈면서 말의 배를 힘껏 후려찼다.
자신이라도 먼저 솔선수범한다면, 그래도 사기가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 보였다. 다행히 그의 예상이 옳았는지, 그의 뒤를 따라 기사들도 힘껏 말의 배를 차올렸다.
이백의 말이 힘차게 달리자 땅이 두구두구- 울리기 시작했다. 이미 병사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기사단에게만 맡겨둘 순 없었다.
장군은 기사단장의 돌진을 보면서 자신도 검을 강하게 움켜쥐고 우리들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 다들 공겨어어어억!! "
순식간에 전투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고, 거의 전무했던 우리 기사단의 피해도 점점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사단장은 소드 마스터였는지 마나 소드를 힘껏 펼친 상황에서 우리 기사중의 한명의 목을 베어냈다.
그와 동시에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검에 묻은 피를 흔들어서 털어내고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말 위에서 싸우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어느정도 나에게 가까워진 후에 그는 말에서 내렸다.
" 가소롭기 짝이 없군. "
이미 내 주변은 병사와 기사들의 시체가 수북했다. 그 때문인지 나와 기사단장의 싸움에는 누구도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 널 죽이고 전쟁에서 이기겠다!! "
" 시간 없으니 빨리 덤비기나 해! "
기사단장은 나에게 쇄도해서 검을 횡으로 그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내 검에 막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의 검이 점차 잘리기 시작한 것이다.
- 서겅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검을 한번 내려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 그.. 그랜드 소드.. 마스.. "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단 한번의 격돌로 기사단장의 목이 베이는 것을 보면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구할 수 있다면 모를까, 이건 거의 개죽음에 가깝다고 느낀 모양이다.
" 이.. 이길 수 없어. "
어떤 병사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전염되었는지, 그들의 전의가 순식간에 상실되었다. 몇몇은 전장에서 이탈하기 시작했고, 기사들중 일부도 이미 말을 타고 꽁지빠지게 도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 전부 돌격! 적을 뒤쫓지마라! 우리들의 목표는 오직 황제! 황제다!! "
예상대로 어전 안에는 황제가 없었다. 뭐,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에덴을 대기시켜놓았기 때문에 얼마 있지 않아서 분명히 잡혀올 것이다.
나는 검을 흔들어 피를 털어내고 검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황좌로 다가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흠, 이게 황제가 바라보는 시야인가.
어차피 다른 게임에서도 황제나 왕 따위는 수 십번은 넘게 해봤기 때문에, 굳이 이런 자리를 원하고 있지는 않다. 오직 원하는 것은 황제의 목이다.
황제를 죽이고, 전쟁을 끝내는 것!
" 주군! "
" 들어오라. "
때마침 황제가 잡혀온 모양인지, 어전 밖에서 에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에덴의 손에 끌려온 황제의 모습은 처참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군데군데 피도 흐른 자국이 보였다. 최대한 의연한 척 하고는 있지만, 눈빛에서 보이는 두려움은 날 속일 수 없었다.
" 후후후. "
나는 황좌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주먹 위에 턱을 괴었다. 심히 건방진 자세가 아닐 수 없으나, 지금은 누구도 날 제재할 사람이 없었다. 이미 승자는 정해졌으니까.
" 날 풀어주게. "
" 호, 어디서 이런 배짱이 나오는 걸까? "
" 날 죽이면, 신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야. "
" 과연 그럴까. "
내가 손뼉을 짝짝- 치자, 줄줄이 엮여 굴비가 되어있는 많은 신하들이 나왔다. 황제와 다르게 미처 피하지 못한 중신들이다.
" 이미 그들과는 얘기가 끝났지.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너의 목일 뿐이고, 아무런 원한이 없는 이들에게는 자유를 줄 것이다. 예전과 똑같은 권리를 줄 것이고, 바뀌는 것은 오직 황제의 자리 뿐이다. "
" 말도 안되는 소리 마라! "
" 하하하, 이미 얘기가 끝났다니까? "
황제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신들을 홱 노려보았다. 그들은 차마 황제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 이놈들!! 제국.. 제국을 팔아넘길 생각이냐! "
" 노노, 오해하지 말길. 암흑 제국을 손댈 생각은 전혀없다. 바뀌는 것은 오직 당신만이라니까. "
" 헛소리 하지마라! 내가 곧 제국이고, 제국이 곧 나다! "
어차피 얘기가 끝난 것이기 때문에, 길게 말할 필요는 없다. 내 목표는 황제의 목을 잘라서 전쟁을 끝내는 것이니까. 어차피 중신들에 의해서 전쟁은 멈출 것이고, 승리는 우리가 가져갈 것이다.
황제의 자리는 암흑 제국의 2황녀가 맡을 것이고, 제국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뿐이다. 다만, 이제부터 암흑 제국은 신성 제국의 볼모의 나라가 될 뿐이지만.
나는 황좌에서 일어나 황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검집에서 검을 스릉- 하고 뽑자, 황제는 두려운 눈빛으로 덜덜 떨기 시작했다.
" 지.. 지금 뭐하는 것이냐! 정말로.. 정말로 날..! "
" 그래도 한 제국의 황제였던 사람인데, 용사인 내가 친히 그 목을 잘라주겠다. "
" 안돼.. 안돼애앳! 뭣들 하느냐! 이것 놔! 으아.. 으아아아아아!!! "
- 서겅
황제의 목이 몸과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세번째 계획이 이로써 끝났다.
" 하하, 아하하, 아하하하하하하. "
정말 오래걸렸다. 게임상으로도 그렇고, 현실 시간으로도 매우 오래걸렸다. 목표때문에 게임을 이렇게 오래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무언가 달성했다는 성취감이 온몸을 강타했다.
나는 황제의 피가 묻은 검을 번쩍 들고 크게 소리쳤다.
" 우리가 승리했다! 황제는 죽었다!! "
" 와아아아아! "
나를 뒤따라온 기사들 역시 검을 뽑아들고 번쩍 든 상태로 우렁찬 소리를 외쳤다.
그렇게 전쟁은 거짓말처럼 끝나버렸다.
적의 총 손실 병력은 30만이 넘었고, 우리의 손실은 기사 23명이었다.
" 어허, 그렇게 노려보면 쓰나? "
" 우리들은 당신의 손에 놀아난 셈이군요. "
" 황제가 되서 기쁘지 않은가? "
" 퉷! 더러운 놈. 아버지를 죽인 원수! "
2황녀는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며 험악하게 소리쳤다. 그래봤자 나에겐 조그마한 앙탈에 불과했지만, 뒤에 시립해있던 몇몇 기사들이 그녀의 행태에 앞으로 나설려고 했다. 나는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추게 한 뒤에, 볼에 묻은 침을 손으로 닦아냈다.
" 그래도 그 애비에 그 딸인 모양이군. 호기롭게 외치는 것 보니까. 하지만, 난 처제까지 어쩌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말이야. "
" 처.. 처제라니, 무슨 헛소리야! "
나는 씩 웃으며 그녀의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그리고 그녀만 들을 수 있도록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 닥치고 말들으라고, 개같은 년아. 어줍잖게 나대다가는 고문이란 모든 고문을 한 뒤에 처참하게 죽여버릴거니까. "
그녀는 순간 나에게 들려온, 살기가 철철 흘러넘치는 말에 바짝 얼어붙었다. 이가 덜덜 떨리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자상하게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넘기면서 빙긋 웃었다.
" 이제 암흑 제국은 내 손에 있어. 그러니까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알겠지? 괜히 날 화나게 하지 말도록 해. "
2황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내 시선을 피했다. 이러나저러나 겁이 많은 한 명의 여린 여인일 뿐이니까.
황제의 목이 떨어진 후에, 드래곤 산맥을 타고 용사군이 빠르게 암흑 제국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만신창이가 된 암흑 제국의 군대로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여러 중신들의 명령도 있고, 대부분의 귀족들이 자신의 사병을 데리고 영토로 돌아가버리기도 해서, 70만에 가까웠던 병력은 순식간에 반토막, 아니 그 이하로 줄어버렸다.
며칠 후에 곧바로 2황녀의 황제 즉위식이 열렸다. 화려하지도 않고, 시민들의 축복도 없었다. 그저 형식적인 즉위식이었다. 그녀는 끝끝내 즉위식의 마지막에 눈물을 흘렸고, 몇몇 충신들 역시 그녀를 따라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직 나의 손에 맡겨질 뿐.